전체 글(125)
-
김동현의 '플레인 센스'
어떤 분야이든지 경험치가 만랩인 대가를 만나면 뭔가 아우라가 느껴진다. 학회나 grand round에서 원로 교수님들의 강의를 들으면 어렵고 방대한 내용을 매우 단순하고 쉽게 풀어낸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어디 정신과만 그렇겠나. 세상 모든 분야가 그럴 것이다. 이번에 읽은 김동현 기장의 를 읽으면서 중간중간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특히 7장 ‘아마추어와 프로, 그 보이지 않는 차이’에서 프로페셔널 조종사의 안전 관리 수준을 반응적, 선제적, 예측적 수준의 세 단계로 구분한다고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경험치+노력치(?)에 따른 의사들의 치료 전략이 많이 중첩되었다. 그래도 더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1-4장이었다. 동서양과 역사를 능수능란하게 넘나들면서 각종 사건 사고를 묘사하는 부분은 처음 접하는 이야기..
2020.08.06 -
김덕호의 '세탁기의 배신'
미국의 역사는 짧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미국사와 관련된 책은 미시적(微視的)일 때가 많다. 접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너무 지엽적이어서 지루할 때도 있지만 사소해 보이는 일상사를 살펴볼 수 있어서 재미있기도 하다. 김덕호 교수의 책을 처음 읽은 것은 몇 년 전 를 읽었을 때였다. 흥미롭게 읽어서 저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가 올해 나온 을 만나게 되었다. 저자는 산업화가 집안에서 남성과 아이들의 일을 없애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도 여성의 일은 전혀 줄여주지 못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는 부분을 지적하며 글을 시작한다(p.37). 이어 미국에서 1920년대에 시작된 대량 생산 사회의 전제조건은 포디즘과 테일러리즘임을 상기시킨다(p.71). 포디즘(Fordism)은 물질적 조건을 대량생산이 가능한 방식으로 ..
2020.08.03 -
사이먼 윈체스터의 '완벽주의자들'
지은이 : 사이먼 윈체스터 사이먼 윈체스터는 엄청난 이야기꾼이다. 공식 직함이야 저널리스트 혹은 기자로 부를 수 있겠지만 그의 책 이나 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스토리텔링은 매우 뛰어나다. 올해 4월 나온 그의 책 역시 그렇다. 기본적으로는 과학 역사 책이지만 시대와 지역을 종횡무진하는 그의 입담을 듣고 있노라면 진부한 표현이지만 시간가는 줄 모른다. 완벽주의자들은 정밀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산업혁명의 시대에서 촉발된 과학 문명의 빠른 발전의 배경에 정밀성과 허용 오차를 줄여나가는 노력이 있음을 잘 그리고 있다. 챕터 역시 허용오차 0.1에서 출발해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1에 이르는 과정을 시간 순서에 따라 배치하고 있다. 이런 부분까지 정교하게 배치한 저자야 ..
2020.07.20 -
[미래과학] 수술로 경기력이 좋아진 것도 도핑일까
24화 기술 도핑 ⑤ 토미 존 수술 정민태는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오른손 투수 중 한 명으로 뽑히는 선수이다. 1999년에는 20승 7패로 다승왕에 오르며 20세기 마지막 20승 투수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2003년에는 선발투수로 등판한 경기에서 21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하지만 선수로서 정민태의 진가는 정규 시즌이 끝난 뒤에 더 빛을 발했다. 포스트 시즌에서만 115와 3분의 1이닝을 던지면서 도합 10승을 달성했고, 한국시리즈에서만 2차례 최우수선수(MVP에) 오르는 활약을 펼쳤다. 17년 동안 마운드에 서며 124승 98패라는 성적을 거둔 정민태지만 프로 경력의 시작은 매우 좋지 못했다. 1992년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한 그는 첫 경기에서 4회를 던지던 중 팔꿈치에서 뜨끔한 기운을 느꼈다. 통..
2020.07.13 -
유홍준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중국편3'
작년 가을에 나왔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중국편 1, 2를 마무리 짓는 3권이다.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얼른 구입해 정주행했다. 읽고 난 뒤의 느낌이 작년과 미묘하게 달랐다.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코로나19였다. 작년에는 ‘언젠가 가볼 수 있겠지’ 이런 생각이었다면, 올해는 ‘과연 갈 수 있을까?’였다. 코로나 19가 일상 생활뿐만 아니라 독서에도 영향을 끼치는 부분이 있다니 놀라웠다. 3권은 실크로드의 도시들이 주인공이다. 여느 때처럼 풍부한 정보를 전달하지만 짧은 일정 탓인지 여유로운 느낌이 별로 없다. 이전에 책의 호흡과 관련해 1권을 프레스토, 2권을 아다지오로 묘사했는데 3권은 다시 프레스토로 회귀한 느낌이다. 실크로드라는 낭만적 이름과는 다르게 거칠고 척박한 과거 그리고 현재 상황을 ..
2020.06.29 -
댄 쾨펠의 '바나나'
어릴 적 바나나는 꿈의 과일이었다. 텔레비전 만화에는 등장하는데 실생활에서는 만날 수 없던 그런 과일이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아버지가 큰 맘 먹고 사오신 바나나를 처음 먹게 되었다. 생각보다 달지 않아서 조금 실망하긴 했지만 껍질을 살살 벗겨 한 입 한 입 먹는 과정은 재미있었다. 그때 내가 먹었던 바나나는 40년이 지난 지금 내가 먹는 바나나와 유전적으로는 동일한 바나나일 수 있다. 바나나는 교배 없이 홉근을 옮겨심는 것만으로도 재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안정적으로 대량 재배가 가능해졌지만 유전적으로 동일하기에 병에 매우 취약하다. 맛있는 바나나를 많이 먹는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것이다. 몇 년 전 읽은 은 이렇게 유전적 풀(pool)이 단순해지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2020.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