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윈체스터의 '완벽주의자들'

2020. 7. 20. 14:14되새김질

출처 : 교보문고

지은이 : 사이먼 윈체스터

 

사이먼 윈체스터는 엄청난 이야기꾼이다. 공식 직함이야 저널리스트 혹은 기자로 부를 수 있겠지만 그의 책 <교수와 광인>이나 <태평양>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스토리텔링은 매우 뛰어나다. 올해 4월 나온 그의 책 <완벽주의자들> 역시 그렇다. 기본적으로는 과학 역사 책이지만 시대와 지역을 종횡무진하는 그의 입담을 듣고 있노라면 진부한 표현이지만 시간가는 줄 모른다. 완벽주의자들은 정밀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산업혁명의 시대에서 촉발된 과학 문명의 빠른 발전의 배경에 정밀성과 허용 오차를 줄여나가는 노력이 있음을 잘 그리고 있다. 챕터 역시 허용오차 0.1에서 출발해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1에 이르는 과정을 시간 순서에 따라 배치하고 있다. 이런 부분까지 정교하게 배치한 저자야 말로 정밀의 화신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영국이 한 때 세계를 지배한 배경에는 ‘정밀성’이 자리잡고 있다. 존 해리슨이 만든 정밀한 시계 덕분에 정밀한 항해가 가능해져 영국은 전 세계를 호령했고(p.50),대포의 천공 기술을 증기 엔진의 실린더 제조에 적용한 존 윌킨슨 덕분에 제임스 와트는 증기 기관을 개발할 수 있었고,(p.70). 헨리 모즐리가 증기 엔진으로만 돌아가는 공장에서 도르래를 대량 생산하면서 영국 해군은 프랑스와의 전쟁을 우위로 끝낼 수 있었다.(p.102,) 상반되는 인물도 있다. 조면기를 만든 미국의 엘리 휘트니는 정밀성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머스킷의 대량 생산이 가능한 것처럼 꾸미는 담대한 사기를 쳤지만,(p.130), 조지프 휘트워스가 나사와 볼트를 표준화시키면서 생산된 45구경 휘트워스 샤프슈터는 남군의 무기를 비웃는 북군의 장군 존 세지웍을 즉사시켰다.(p.163)

 

자동차 제조업을 초반에 프랑스가 장악했을 때의 유산은 garage, chauffeur, sedan, coupe, automobile 같은 영어가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것에 남아 있지만(p.183) 극소수에게 정밀성을 제공한 헨리 로이스(롤스로이스의 그 로이스!)와 달리 정밀성을 다수가 이용하게 하고 싶어했던 헨리 포드가 결국 자동차의 대량 생산에 성공했다(p.205). 즉 롤스로이스는 비싸고 배타적이고 맞수가 없는 무결점 차량으로 오랫동안 명성을 누려 왔지만 제작의 모든 단계에서 절대적인 정밀성을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조립라인에서 만들어지는 포드의 모델 T 생산에 있어서는 정밀성이 완전히 필수 요소인 반어적인 상황이 나타났다(p.217)

 

하늘에서도 정밀성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프랭크 휘틀이 제트 엔진 비행기를 만드는 비슷한 시기에 독일에서도 터보제트 항공기 실험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독일 정부는 이 항공기를 무시했고, 속도가 늦고 전투 지구력이 고작 몇 분이라며 비웃었다. 정밀성을 갖춘 기술자도 중요하지만 이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정치인이나 행정입안자 역시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다(p.247) 천체 망원경 허블은 그 유명한 사람 머리카락 두께 50분의 1일 설계에서 달라진 통에 처음 지구로 보낸 이미지가 쓸모 없게 되면서 웃음거리가 되었다(p.307) 1983년 비행금지구역인 사할린 영공에 들어섰다가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된 대한항공 007년 여객기의 비극을 계기로 로널드 레이컨 대통령은 GPS를 민간인 이용자들도 사용하도록 결정했다(p.337)

 

궁극의 정밀성을 다루는 반도체 관련된 장도 흥미로웠다. 레이저로 고도로 축소된 패턴을 격자형 웨이퍼의 정확한 지점에 찍는 공정이기에 만약 레이저가 발사되는 순간 패턴이 그려질 마스크 위세 순간적으로 먼지 미립자가 앉았다면 수백 개의 잠재적 칩이 망가지고 수천 달러에 달하는 제품이 영원히 못 쓰게 되기 때문에 반도체 공장에서 청결이 극도로 중요한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p.367). 그동안 나만 몰랐나? -_- 공알못인 내가 무어의 법칙이 실현되어 나가는 과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과학 도서가 보통 생물학, 물리학, 화학 책은 많은데 공학책은 만나기가 쉽지 않다. 향후 이런 부분의 공급이 늘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균형의 필요성, 즉 과도한 정밀성이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까 하며 저자는 일본의 세이코 공장에서 전기장 안에 놓이면 극적으로 진동하는 결정체로 초당 지동수가 정확한 쿼츠를 이용한 초정밀 시계와 소규모 숙련공이 수작업을 통해 생산하는 기계 시계가 같이 생산되는 장면을 균형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묘사한다.(p.398) 티타늄을 높이 평가하면서 한편으로 인간의 정신과 손재주가 빚어내는 예술품 만큼이나 전형적인 식물 대나무를 똑같이 중시한다고 일본을 거듭 칭찬하는데(p.407) 글쎄… 현재 일본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전부 동의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의 부인이 전 NPR 프로듀서인 세스코 사토라는 일본계 미국인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