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의 '플레인 센스'

2020. 8. 6. 11:12되새김질

출처 : 교보문고

어떤 분야이든지 경험치가 만랩인 대가를 만나면 뭔가 아우라가 느껴진다. 학회나 grand round에서 원로 교수님들의 강의를 들으면 어렵고 방대한 내용을 매우 단순하고 쉽게 풀어낸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어디 정신과만 그렇겠나. 세상 모든 분야가 그럴 것이다. 이번에 읽은 김동현 기장의 <플레인 센스>를 읽으면서 중간중간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특히 7장 ‘아마추어와 프로, 그 보이지 않는 차이’에서 프로페셔널 조종사의 안전 관리 수준을 반응적, 선제적, 예측적 수준의 세 단계로 구분한다고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경험치+노력치(?)에 따른 의사들의 치료 전략이 많이 중첩되었다.

 

그래도 더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1-4장이었다. 동서양과 역사를 능수능란하게 넘나들면서 각종 사건 사고를 묘사하는 부분은 처음 접하는 이야기도 많은데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저자 역시 공식 사고 조사보고서를 꼼꼼히 읽어 왔다고 밝혔는데 정작 책에서는 레퍼런스 소개가 없는 부분이었다. 우리나라 인문서의 전반적인 특징이기도 책 분량 때문인지, 너무 딱딱해지는 것을 피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반전운동과 히피문화가 주를 이루던 60-70년대에 대중에게 하이재킹이 테러가 아닌 외로운 정치가와의 우연한 동행 정도로 여겨진 것(p.20)이나, 1970년대에 자그마치 50건이 넘는 하이재킹이 발생했지만 경제적 이유로 전수보안검사의 시행을 미루도록 항공사들이 끊임없이 로비한 것(p.43)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또 2018년에 랜딩기어베이에 기어 올라가 밀항을 시도한 5명이 모두 제삼세계 국가에 살던 19세 이하의 청소년들이란 사실(p.108)도 가슴 아팠다.

 

책 곳곳에는 한국을 포함한 동양권과 서양권 조종사들의 다른 어법, 태도에 대한 일화도 자주 소개되는데 많은 통찰을 제공한다. 관제사에게 강하를 요청할 때 우리나라 조종사들은 표준용어 ‘Request descent’ 대신 ‘Maintain 13,000feet’라고 에둘러 표현하거나(p.149), 붐비는 공항에서 관제사의 말을 못 알아들을 때 역시 표준용어 ‘Say again’ 대신 ‘I’m sorry. I didn’t understand. Would you please say that again?’하며 민폐가 되기도 한다(p.150). 또 다른 비행기의 기장 방송이 같은 주파수에 잡히면 우리나라 조종사는 ‘Check your radio’라고 바로 조언을 하지만, 서양 기장들은 ‘Excellent announcement, thank you, captain’하며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p.170)

 

그 외 기내 화재, 보잉과 에어버스의 경쟁사, 항로와 관련된 이야기도 재미있는데 후반부가 전반부에 비해 힘이 조금 딸리는 느낌이다.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의사로서 출발 경로의 기상 분석도 없이 무작정 이륙해 눈에 보이는 구름을 요리저리 피해가는 ‘반응적 수준’인지, 앞으로 닥칠 위험 요소를 미리 인지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선제적 수준’인지, 아니면 기상이나 항로 상황, 비행기 상태 등에 대한 정보를 분석해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예측적 수준’인지 돌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