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케인의 '삼성 라이징'

2020. 8. 13. 08:54되새김질

출처 : 교보문고

첫 사회 생활을 시작했을 때 월급이 썩 높지 않았다. 뭐 그래도 괜찮았다. 내가 평촌으로 병원을 선택한 결정적 이유는 예술의전당이 가까워서였으니까(슬램덩크 서태웅도 아니고 -_-).  물론 더 가까운 병원들도 있었다. 하지만 예술의전당 지척에 있는 반포성모병원은 경기도 및 충청도까지 순환 근무가 있다 하길래 제외했다. 삼성서울병원 역시 가까웠지만 음, 여기는 지원할 성적이 되지 않았다. -_- 나중에 알고 보니 삼성서울병원의 수련의 월급은 내 월급과 앞자리가 달랐다. 이럴 수가! 예술인의 마음은 어이없이 흔들렸다. 아, 다들 이래서 삼성 이름이 붙은 직장에 가려고 하는 구나. 내 마음에 삼성이 진지하게 각인된 첫 순간이었다.

 

삼성은 우리 국민에게 복잡한 감정을 일으키는 대상이다. 해외에 나가 삼성 광고를 보면서 커진 국력을 실감하게도 하지만, 반도체 공장의 산업 재해 처리 과정을 보면서 분노하게도 한다. 건강하지 못한 승계 작업을 놓고 핏대를 올리던 사람도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일원동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딴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다. 한 대상을 놓고 상반되는 감정을 갖는 것을 정신과에서 양가 감정(ambivalence)이라고 하는데, 우리 사회에서 양가 감정의 대명사가 삼성이지 않나 싶다.

 

제프리 케인의 ‘삼성 라이징(Samsung Rising)’은 흥미로운 책이다. 우리 국민은 전자 제품, 보험, 자동차, 카드, 아파트 등등 어떤 식으로든 삼성과 연관을 맺고 소위 '삼성 공화국'에 살면서 타자화를 하기 어렵기에 삼성이라는 회사를 객관적으로 보기 어려울 수 있지만 외국인은 그런 점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은 레퍼런스만 근 100쪽에 이를 정도로 저자는 꼼꼼하게 삼성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그려 나간다.

 

외국인들에게는 많은 등장 인물이나 지역, 정치 관계 등이 익숙하지 않아 가독성이 좋지 않았을 수 있지만 우리 나라 사람이 읽기에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책은 배터리 발화로 큰 문제가 되었던 갤럭시 노트 7으로 시작한다. 야심차게 출시한 제품에 발생한 문제를 극복하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일반적인 세계 기업과 다른 삼성만의 독특함을 소개하며 책 전반에서는 이러한 특징이 삼성의 성장에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한 부분을 꽤 상세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한다. 그러다보니 조금 지루하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갤럭시 3의 미국 진출 과정이었다(p.251-365). 물건의 성능은 뛰어나지만 브랜드 인지도는 매우 낮은 상태에서 담대하게 창의적인 광고로 애플을 싸움의 상대로 끌어낸 토드 팬들턴(Todd Pendleton)의 마케팅 팀 이야기는 몰입해서 읽었다. 물론 기본적으로 물건이 좋다는 기본 전제가 있어야 하겠지만, 물건을 어떻게 포장하는지 역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팬들턴이 갤럭시의 마케팅을 이끌던 2010년 초반기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을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