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보다 강한 실 -실은 어떻게 역사를 움직였나-

2020. 6. 8. 14:21되새김질

사진 출처 : 교보문고

지은이 :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내가 즐겨 읽는 형태의 글은 한 가지의 주제로 여러 방면에 걸친 이야기를 풀어내는 글이다. <총보다 강한 실>은 그런 측면에서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책이었다. 하찮아 보이는 실로 역사를 풀다니! 그런데 가만 생각하면 인간 삶의 3대 요소인 의식주 중 의()의 기본 바탕이 되는 것이 실이다. 너무 익숙해져서 오히려 이런 글쓰기 시도가 없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은 동물 가죽부터 시작해서 리넨, 비단, 양모, 레이온, 거미줄실과 같은 실의 재료부터 돛, 레이스, 방한복, 우주복, 수영복과 같은 다양한 의복을 다양하고 현란하게 선보인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소개되는 각 이야기들의 서사성(narrative)는 다소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재미있어지려면 끝나 버리고, 흥미진진해지면 결말인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혹시 실이라는 주제에 맞게 의도적으로 이렇게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익숙한 대상을 낯설게 보는 일종의 소격화 글쓰기 방식으로 풀어낸 이 책은 소재의 참신성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문득 읽다가 궁금증이 하나 들었다. 최초의 합성 섬유이고 인류의 삶을 크게 바꾼 나일론은 왜 빠졌을까? 저자가 나중에 합성 섬유만 가지고 비슷한 성격의 책을 출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32

프로이트는 여자들이 잠재의식 속에 있는 수치심과 성기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옷감 짜는 기술을 연마했다고 주장했다. 즉 여자들은 남자들이 자신을 쳐다볼 때 음경이 없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옷감을 짰다는 것이다.

-> 아무리 프로이트여도 남녀불평등의 시대적 상황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듯.

 

p.82

리넨을 사용해 인간을 특별한 형상으로 조각한 것은 신성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 병원에서 자주 듣던 리넨은 그 리넨이 아니었다! 부연설명하면 리넨은 1)아마로 만든 섬유, 2) 침대시트, 베갯잇, 테이블보를 총칭(물론 예전에는 리넨으로 만들었겠지)한다. 병원에서 의무 없이 쓰이는 용어나 물건에 대해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

 

p.105

한고조는 그 책략을 ‘5가지 미끼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맛있는 음식과 구경거리, 음악과 여자, 건축물, 풍부한 곡식, 아름다운 옷이 흉노에게 삼손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과 같은 작용을 하리라는 구상이었다.

 -> 아름다운 옷은 비단!!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에서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p.121-125)

 

p.129

로마의 보수적인 시민들은 사치스러운 옷들이 일찍이 로마를 부유한 제국으로 만들었던 용맹한 정신을 무디게 할 것이라며 걱정했다.

 -> 흉노족의 역사와 연관해서, 그렇다고 거칠고 허름한 옷만 입고 다닐 수는 없지 않는가? 우리 사회의 옷차림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옷차림만으로 사회의 혹은 개인의 심리를 측정할 수 있을까? 후자는 글쎄다. 몇 년 전에 읽은 <옷장 심리학>에서 너무 실망했던 기억이 있어서. -_-

 

p.137

고고학자들은 붓, 수건, 양동이 같은 도구를 가장 많이 쓴다. 사라 파칵에게는 다소 특이한 도구 하나가 더 있었다. 그 도구는 바로 인공위성이었다.

 -> 새로운 수단을 기존의 학문 분야에 끌고 나오는 것은 참신하지만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정신의학에서는 어떤 수단이 있을까? 정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p.176

양모 교역은 12세기와 13세기 시토 수도사들을 부유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들을 세속화했다. 그들이 거래하는 하얀 금의 양이 늘어날수록 수도사적인 이상과는 멀어졌다.

 ->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

p.201

푸앵 드 프랑스(베네치아산 레이스는 대체한 프랑스산 레이스의 이름)가 유럽 패션의 정점에 섰을 때 프랑스 레이스 직공들은 콜베르에게 감사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콜베르의 후임자들은 레이스 직공들을 그만큼 살뜰하게 보살피지 않았다.

 -> 국가 정책의 일관성을 시사하는 대목. 그리고 한 명의 지도자에게만 의존하는 정책의 빈약함을 시사.

 

p.234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492년 실제로는 카리브해의 섬에 있으면서도 자신이 인도에 도착했다고 확신한 이유 중 하나는 그 섬에 목화 관목이 무성했기 때문이다.

 ->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p.253

두 원정대의 가장 큰 차이는 겉옷이었다. 영국 원정대는 개버딘(한 가닥 한 가닥 방수 코팅이 된 실로 촘촘하게 짠 가벼운 면 직물) 하의와 외투에 절대적으로 의존한 반면 로알 아문센의 원정대는 개버딘 위에 사슴 가죽이나 물개 가죽으로 만든 모피 웃옷과 바지를 입었다.

 -> 작은 차이가 노르웨이 팀에게는 첫 남극점 정복이라는 영광을, 스콧의 영국팀에게는 2위 뿐만 아니라 귀환 중 사망이라는 전혀 다른 결말을 선사했다(물론 이동 수단으로 개와 말이 사용된 점이 언급되지 않는 점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요새 읽고 있는 <모기>에서도 느끼는 것이지만.

 

p.289

18874, 27세 남자 하나가 정신질환 때문에 허드슨 리버 주립병원에 실려왔다. 12일이 지나자 또 한 사람이 강제로 수용됐다. 자세히 알아보니 두 사람은 같은 고무 공장에서 일하던 동료였다. 몇 달 후, 더운 여름날 그 공장에서 세 번째 환자가 같은 병원으로 실려 왔다.

 -> 흔히 인조 실크로 통하는 레이온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황화탄소는 인체에 매우 유해하다. 원진 레이온에서 일하던 노동자의 건강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공론화된 때가 1988년이니 100년의 차이가 난다. 무려 100. 그리고 30년 뒤인 2018년 삼성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백혈병 문제가 11년 이라는 오랜 시간의 진통 끝에 마침표를 찍었다. 요새 케이팝’, ‘케이방역등 국뽕(?) 단어가 넘치지만 직업병, 산재 처리 이런 부분만 봐도 아직 우리 사회가 걸어가야 할 길은 요원해 보인다.

 

p.362

첨단 기술 수영복이 코치와 선수들에게 확실히 알려준 것 중 하나는 자세의 중요성이다.

 -> 역시 운동은 자세다. 기술 도핑 관련해서 추가할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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