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 헤밍웨이 우울증 치료하던 전기경련요법 현재는...

2016. 12. 13. 11:09글모음

[6] 전기요법, 오해와 진실 그 70년 역사


70년 넘게 심각한 우울증을 치료하는 데 쓰여 온 전기경련요법은 효과가 뛰어났지만 그 효과를 일으키는 기전은 불명확했다. 최근 뇌영상 연구를 통해 그 실마리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고 있다. 전기경련요법은 어지간한 약물보다 역사가 오래되었고 안전한 치료 방법으로 발전해왔지만 한편에선 여전히 비인도적 치료로 잘못 인식되곤 한다. 그 오해와 진실, 역사를 살펴본다.

 » 근이완제를 투여하고 마취한 뒤 시행되는 요즘의 전기경련요법 장면. 출처/ http://www.youtube.com/watch?v=W8Ypt-vKI2U


릴 적에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은 소감은 ‘허무하다’였다. 허무하다란 뜻도 잘 모를 때였으니 조금 더 솔직한 느낌을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이건 뭥미?’였을 테다. <노인과 바다>의 줄거리는 많은 사람이 익히 아는 것처럼 84일 동안 물고기를 잡지 못하던 노인 산티아고가 홀로 거대한 청새치와 나흘 밤 동안 외로운 싸움을 벌여 승리했으나, 상어가 청새치를 물어뜯는 바람에 결국 머리와 등뼈만 앙상하게 남은 청새치만 가지고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불굴의 의지 강조한 헤밍웨이의 역설적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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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었을 때에는 미련해 보이지만 목표를 향해 우직하게 나아가는 삶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를 느낄 수 있었다. 이는 소설에서 노인이 자면서 반복적으로 꾸는 ‘사자의 꿈’을 통해 암시되는 것 같다. 야수의 왕, 늠름하고 위풍당당한 사자처럼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역경을 이겨나가는 소설의 주제가 이 꿈을 통해 나타나는 것 같다. 이런 주제 의식은 종군기자로, 언론인으로 현실의 어두운 측면을 경험한 헤밍웨이의 삶의 궤적과도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00etherapy1.jpg » ’노인과 바다’로 노벨상과 퓰리처상을 수상한 어니스트 헤밍웨이. 출처/Wikimedia Commons 그러나 역설적으로 헤밍웨이는 1961년 아이다호주 케첨에서 자신이 애용하던 엽총을 머리에 겨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리의 삶이 때로는 머리와 등뼈만 앙상하게 남은 청새치처럼 우리를 배신해도 노여워하거나 낙담하지 말고 침대에서 다시 사자의 꿈을 꾸는 노인 산티아고처럼 묵묵히 걸어나가는 것을 보여준 작가 정신과는 반대 아닌가.


실망은 잠시 접어두고 헤밍웨이 말년의 행적을 살펴보자. 1960년 헤밍웨이는 우울증 치료를 받기 위해 미네소타주의 메이요병원에 입원해 전기경련요법(electroconvulsive therapy)를 받았다. 그러나 석달 뒤 다시 자살 충동을 느끼자 다시 입원해 추가로 전기경련요법을 받고 6월 30일 집에 다시 돌아왔다. 우울감은 나아졌지만 전기경련요법의 부작용으로 기억의 일부가 손상된 것을 괴로워하던 헤밍웨이는 이틀 뒤 자살했다.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선택한 치료 방법으로 도움을 얻었지만 이로 인해 발생한 부작용을 못 견딘 것이다.



전기경련요법의 긴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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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에게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안겨준 전기경련요법의 역사는 1930년대에 시작된다. 이탈리아 의사 유고 첼레티(Ugo Cerletti)와 동료 루치오 비니(Lucio Bini)는 뇌전증(腦電症 -예전 ‘간질’이란 이름이 사회적 편견을 담고 있어 새로 바뀐 이름)과 우울증을 함께 앓던 환자들이 잦은 발작을 겪은 뒤 우울증 증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했다.[1] 뇌전증의 발작은 뇌의 전기적 이상에 의한 뇌세포의 과흥분 때문이기에, 이들은 전기 자극으로 인위적 경련을 일으켜 발작이 실제 정신질환 증상을 호전시키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이들은 먼저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전기 충격기를 이용하는 도살장을 방문했다. 돼지들은 전기 충격으로 의식만 잃을 뿐 죽는 경우가 없었기에 이들은 안심하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을 계획하게 되었다.


00etherapy2.jpg » 로마대학 정신과에서 전기경련요법을 시행중인 루치오 비니. 출처/각주[2] 사적인 첫 번째 기회는 1938년 4월에 찾아왔다. 경찰이 로마 기차역을 배회하며 뭔가를 계속 중얼거리다가 이따금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르는 39세 신원미상의 환자를 데리고 왔다. 면밀한 관찰과 토의 끝에 이들은 이 환자를 인체 실험에 적합한 대상으로 판단했다. 두려움과 긴장 속에서 먼저 10분의 2초 동안 70볼트의 전기 자극을 환자 뇌에 가하자 환자는 대발작 경련을 잠깐 일으켰다. 다행히(?) 환자가 죽지 않은 것을 확인한 이들은 자극의 정도를 조금 더 높여 0.5초 동안 110볼트의 전류를 환자에 다시 가했다. 또 한 차례의 경련이 지나간 뒤 깨어난 환자는 주변 상황을 인식하고 조리있게 말을 하는 극적인 변화를 보였다. 이후 10회의 추가 전기경련요법을 받은 환자는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지난 뒤 전기경련요법을 받은 환자의 증세가 다시 악화되었지만 세레티와 동료들은 실망하지 않았다. 증상이 덜 심각한 환자에서는 치료 효과가 더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기념비적 성과로 세레티와 비니는 노벨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 치료 방법은 이전의 화학물질을 이용한 충격 요법에 비해 경제적이고 편리하며 덜 위험했기 때문에 1940-1950년대를 거치며 전세계에 널리 퍼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제 강점 시절에, 당시로선 첨단인 이 치료 방법이 세브란스병원과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부속병원에서 시작되었다.[3,4] 정신약물학이 발달하기 이전에 마땅한 치료 방법이 없던 시절 전기경련요법은 정신과 영역에 새로운 장을 열어준 것이다.



‘불은 컸는데 어떻게 껐는지 알 수 없는 소방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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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시절에 처음으로 전기경련요법을 시행한 적이 있다. 당시 환자는 자책 망상과 빈곤 망상이 동반된 우울증을 심하게 앓고 있던 할머니였다. 환자는 자신의 잘못 탓에 집이 다 망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고, 자신은 먹고 마실 가치도 없다며 식사를 거부하고 있었다. 치료 초반 서로 다른 기전의 항우울제 및 조현병 약물을 투여했지만 2달이 지나도록 환자의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다. 고령의 환자가 장기간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신체적 이상의 우려가 커졌기에 치료진의 회의 결과 전기경련요법을 시행하기로 결정되었고 환자와 가족의 허락을 받았다.


처음 전기경련요법을 마친 뒤 환자의 증상은 이전과 비슷해 보였다. 병원 정신과 과장님은 고개를 갸우뚱하는 내게 증상이 호전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 했다. 환자는 고령이어서 3일 간격으로 치료를 시행했는데 네 번째 치료를 받은 뒤부터 필사적으로 거부하던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두 달 넘게 지속되던 증상이 2주도 채 되지 않는 기간에 호전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원래 계획대로 10회의 치료를 마친 뒤 환자는 우울증이 오기 전의 밝고 고운 모습으로 돌아갔다. 약물로도, 면담으로도, 심지어 환자에게 식사를 권유하며 실랑이했던 정성으로도 낫지 않던 환자가 전기경련요법을 통해 고쳐진 것이었다.


그저 교과서에만 존재하는 옛날 치료 방법으로만 알고 있던 전기경련요법의 엄청난 효과를 목격하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 가지 질문을 떨칠 수 없었다. 바로 ‘환자가 왜 좋아졌을까?’였다. 전기경련요법을 시행하기 전 공부를 하면서도 뚜렷한 답을 찾을 수는 없던 부분이었다. 여러 사람에게 물었을 때 돌아오는 일관된 답은 전기충격을 통한 일종의 ‘재부팅의 효과’였다.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을 때 보통 전원을 껐다 다시 켜면 원상태로 돌아오는 이치라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컴퓨터는 이렇게 해도 여전히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재부팅 개념 만으로는 기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보였다.


지만 궁금증도 잠시뿐. 전공의의 분주한 삶이 계속되면서 전기경련요법의 기전에 관한 질문은 어느 새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특히 전기경련요법의 시행 빈도 자체가 매우 낮았기 때문에 더더욱 관심을 갖지 못했다. 전문의 시험을 앞두고 공부하던 시절 다시 손에 든 책에서 전기경련요법이 언급되었지만 적응증, 전처치, 방법, 부작용 등을 열심히 외웠을 뿐 기전 부분은 살짝 살펴본 뒤 그냥 넘어갔다. 여전히 기전에 대한 설명은 불명확했기 때문이다.


참 모순적인 상황이었다. 효과를 지닌 오래된 치료 방법인데 정작 정확한 기전은 알려져 있지 않다니. 물론 앞서 언급한 재부팅 개념 외에도 뇌유래 신경영양 인자(Brain-derived neurotrphic facotr; BDNF)의 증가로 인해 신경세포의 생성과 연결성이 강화된다는 주장[5]이나 내인성 오피오이드(opioid - 뇌 속에 존재하는 몰핀 성분의 물질)의 증가 때문이라는 주장[6] 등이 있지만 확실하게 규명된 것은 아니었다. 이는 마치 소방관이 활활 타오르는 불을 끄기 위해 오래된 소방기계를 사용했는데 정작 왜 꺼졌는지는 알지 못하는 것과 비슷해 보이는 상황이었다.



뇌영상 통해 밝혀지는 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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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오스트리아의 란젠버거(Lanzenberger) 교수 연구진은 뇌영상 연구를 통해 불분명했던 전기경련요법 기전의 실마리를 제공했다.[7] 연구진은 심한 우울증을 앓던 환자 12명을 대상으로 전기경련요법 전후 뇌의 변화를 양전자방출 단층촬영(PET)을 통해 비교했다. 양전자방출 단층촬영은 소량의 방사능 물질을 체내에 투여한 뒤 관심 영역에서 변화를 추적하는 방법으로, 연구진은 뇌의 세로토닌 1-A형 수용체(serotonin 1-A receptor; 5-HT1A)에 관심을 두었다. 아울러 환자들의 전기경련요법 전후의 우울증상 변화를 자기보고식(自己報告式檢) 검사를 이용해 측정했다.


젠버거 교수는 왜 세로토닌 1-A 형 수용체에 주목했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일반적인 항우울제의 기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처방되는 항우울제 ‘프로작(Prozac)’은 통상적으로 ‘선택형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 SSRI)’라고 얘기된다. 우울증 환자의 뇌에서는 세로토닌 농도가 낮아지는 것에 착안해 프로작은 뇌의 신경접합부(synapse)에서 방출된 세로토닌이 재흡수되는 것을 막아 좀 더 오랫동안 머물러 농도가 낮아지지 않도록 돕는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신경접합부에는 여러 가지 아형(亞型)의 세로토닌 수용체가 존재하는데 그 중 세로토닌 1-A형 수용체는 독특한 기능을 수행한다. 이 수용체는 자가수용체(autoreceptor)로서 세로토닌을 생성하는 신경세포의 세포체(cell body)에 있는데, 세로토닌이 여기에 결합하면 세포 활동을 억제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세로토닌 1-A 수용체가 활성화하면 신경세포에서 세로토닌의 분비는 줄어들게 된다.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세로토닌의 농도를 올려야 하므로, 임상 영역에서는 세로토닌 1-A 수용체를 활성화시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기전을 이용한 항우울제 ‘바이브리드(Viibryd)’는 선택적으로 세로토닌의 재흡수를 억제하는 기능과 함께 세로토닌 1-A 수용체에 부분적으로 작용(partial agonist)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세로토닌 1-A 수용체의 활성화를 막음으로써 항우울증 효과를 얻거나 다른 항우울제의 효과를 촉진할 수 있으므로, 연구진은 세로토닌 1-A 수용체에 초점을 둔 것이다.


실험 결과에서 12명 환자 중 10명(83.3%)이 전기경련요법 뒤에 우울 증상이 호전되었지만, 2명은 충분한 치료 효과를 보이지 못했다. 그렇지만 연구진이 기대했듯이 모든 환자의 뇌 피질과 피질하 영역에서 세로토닌과 세로토닌 1-A 수용체의 결합 능력(binding potential)이 약 20~30% 감소했다. 그리고 이런 결과는 환자의 성별, 나이, 전기경련요법 시행 횟수 및 편측 혹은 양측 시행 여부 등 다른 요인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00etherapy3.jpg » 전기경련요법 전후 세로토닌 1-A 수용체 결합 능력이 눈에 띄게 감소함. 출처/각주[7]

연구 결과는 전기경련요법을 통해 뇌에서 세로토닌 1-A 수용체의 결합 능력이 감소해 항우울 효과가 있음을 밝힌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그러나 이 연구에는 다른 많은 연구처럼 추가로 고민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 예를 들면 연구 기간 내내 환자들이 다양한 종류의 항우울제를 복용했다는 점이다. 사실 정확한 초기 뇌영상 자료를 얻기 위해서는 항우울제를 끊는 것이 필요했지만, 좋은 자료를 얻겠다고 심한 우울증으로 시달리는 환자들의 약물 복용을 금지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 여러 제한점이 있지만 이 연구 결과는 70년 넘게 미지의 영역이었던 전기경련요법의 기전을 탐험하는 데 훌륭한 나침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억 상실의 염려와 듀카키스 부인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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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치료 방법이 그렇듯 전기경련요법도 장점과 함께 단점을 갖고 있다. 그 중 많은 환자들이 가장 염려하는 부작용이 기억력 손상이다. 전기경련요법이 잘 시행되어 우울증이 호전되어도 기억력에 문제가 생기면 환자는 많이 불편해하고, “그것은 엄청난 치유였지만 우리는 환자를 잃었다”[8]라고 언급한 헤밍웨이처럼 크게 낙담할 수도 있다.


이에 치료 효과는 유지하면서도 인지 기능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을 줄이기 위해 여러 방법이 추가되어 왔다. 예를 들면 치료시 전극을 머리 양쪽 대신 한쪽에 두거나, 자극을 가할 때 사인파(sive wave) 대신 짧은 파동(brief pulse)을 사용하고 있다.[9] 또한 전기 자극의 세기도 그동안 크게 줄어 요즘에는 헤밍웨이가 치료 받던 시절의 10분의 1의 세기만이 가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전기경련요법으로 인한 기억력 손상이 많이 줄었고, 설령 발생해도 대부분은 6개월 이내에 회복되는 것이 일반적이다.[10]


그러나 일부 환자에서는 안타깝게도 기억력 손상이 영구히 지속되곤 한다. 이런 경우 환자는 우울증 증상이 좋아져도 기존에 알고 있던 기억을 되살리지 못하거나(역행성 기억상실; retrograde amnesia), 새롭게 습득한 기억을 유지하지 못해(선행성 기억상실; antertograde amnesia) 일상생활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고 이로 인해 삶의 질 저하를 경험할 수 있다.


00etherapy4.jpg » 키티 듀카키스가 전기경련요법을 경험한 뒤 써낸 책, 충격(Shock) 출처/Amazon.com 제 전기경련요법을 받은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까? 널리 알려진 사례가 하나 있다. 미국의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이자 1988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섰던 마이클 듀카키스의 아내 키티 듀카키스(Kitty Dukakis)의 예를 살펴보자.[11] 그는 1980년 초반부터 특별한 이유 없이 반복되는 우울증으로 고생했다. 우울증은 8-9개월 간격으로 찾아와 3-4개월 머무르며 그를 괴롭혔다. 그는 우울한 마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술을 마시고, 약물에도 손을 대어 봤다. 또한 여러 종류의 약물치료, 면담치료와 함께 여러 번 병원에 입원도 해봤으나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고, 이에 낙담해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2001년 키티 듀카키스는 지긋지긋한 우울증을 떨쳐버리기 위해 전기경련요법을 받기로 결심했다. 사실 담당 의사가 수 년 전부터 권유했지만 결정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특히 남편의 형 스틸리언 듀카키스가 1951년에 전기경련요법을 받은 뒤 마치 좀비와 같은 모습으로 변했던 것을 지켜봤기에 더욱 어려웠다. 그러나 그는 담당 의사가 보여준 동영상을 본 뒤 과거 자신이 알던 것과 많은 차이가 존재함을 깨닫고 걱정과 우려를 뒤로 할 수 있었다.


첫 치료를 받던 날은 우연히 듀카키스 부부의 38번째 결혼기념일인 6월 20일이었다. 치료 전에 담당의사는 치료 후 우울증이 호전되지 않으면 키티 듀카키스가 크게 낙담할 것을 염려해 너무 큰 기대는 갖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막상 치료를 받은 첫 날부터 그는 기분이 나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는 남편에게 저녁에 레스토랑에서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는 식사를 하자 졸랐다. 우울증에 빠져있을 때는 기분이 가라앉고, 활력이 없어 결혼기념일조차 피하던 아내의 모습을 기억하던 남편 마이클에게 이러한 모습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변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원래의 계획은 첫 번째 치료 이후 2주 동안 추가로 네 차례 치료를 받는 것이었지만 호전 속도는 매우 빨랐다. 키티 듀카키스는 두 번째 치료를 마치고 나서는 미장원에 들른 뒤 저녁 파티에 참석할 수 있었고, 텔레비전으로 보스턴 레드삭스의 경기를 시청할 정도로 놀라운 회복을 경험했다. 반복성 우울증으로 황폐했던 그의 삶이 극적으로 바뀐 것이다.


이후에도 우울증이 찾아올 때마다 주기적으로 전기경련요법을 받은 키티 듀카키스는 한껏 나아진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그녀 역시 부작용으로 기억력 손상을 겪게 되었다. 우울증과 관련된 나쁜 기억을 잊은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전화 번호를 잊거나, 약속 장소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해 정치인 부인으로서 사회 생활을 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그는 기억력 손상이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심각하지 않으며, 특히 자신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던 우울증이 사라진 것에 비하면 감당할 만한 것으로 여겼다. 아울러 전기경련요법이 없었더라면 자신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키티 듀카키스는 한 예일 뿐이다. 2013년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기경련요법을 받은 우울증 환자들은 6개월 뒤 증상이 사라지면서 삶의 질 수준이 일반인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12] 전기경련요법으로 인해 발생하는 기억력 손상은 의학 발전으로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보다 덜 발생하고 정도가 심하지 않으며, 설령 발생하더라도 이로 인한 삶의 질 저하는 우울증이 호전되어 얻을 수 있는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인다.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가 남긴 오해와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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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etherapy5.jpg » 전기경련요법에 투영된 공포. 스티브 존슨과 루 팬쳐의 삽화. 이제 의사가 네게 충격을 가할 것이다(The Doctor Will Shock You Now)’. 출처/각주[13] 전기경련요법은 어지간한 약물보다 역사가 오래되었고, 효과적이며 안전한 치료이지만 여전히 야만적이고 비인도적인 치료로 인식되곤 한다. 약물에 잘 반응하지 않는 우울증 환자와 보호자에게 전기경련요법을 권유하면 대부분 소스라치게 놀라며 거부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동시에 그 정도로 증상이 심하지 않다며 다른 치료적 대안이 없는지 묻곤 한다. 모든 우울증 환자에게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 저항성((treatment resistant) 우울증 환자에게 이런 대안이 있다는 차원에서 정보를 제공하는데도 거센 역반응이 나타나는 이유의 배경에는, 주변에서 봤던 뇌전증 환자의 고통스러운 경련을 직접 경험한다는 공포와 여러 대중 매체에서 습득한 잘못된 정보가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전기경련요법의 초기 시절에는 지금처럼 정맥 마취나 근육이완제 투여가 없었기 때문에 훨씬 위험했고 환자는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또한 전류의 세기도 높아 심하게 경련하는 도중 골절이나 탈골이 발생하곤 했다. 이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전기경련요법을 시행할 때는 환자의 팔과 다리에 억제대를 대고, 입에 혀 보호기를 넣고, 건장한 병원 직원이 환자의 몸통을 눌렀다.


영화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에서 주인공 맥머피(잭 니콜슨 분)가 부당하게 전기경련요법을 받는 장면에서 이러한 모습이 자세하게 묘사된다.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묘사된 전기경련요법의 시행 장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잭 니콜슨의 연기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그랬을까? 여전히 많은 사람은 전기경련요법 하면 이 장면을 떠올리며 고문을 연상한다. 그러나 영화가 개봉된 1975년에는 치료를 시행하기 전에 환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근육이완제와 진통제를 투여하는 것이 이미 일반적이었다. 이 영화에서 정신과 의사 스파이비 박사를 연기한 실제 정신과 의사 딘 브룩스(Dean Brooks)도 영화에서 묘사된 전기경련요법을 “기술적으로는 부정확했지만 희곡적으로는 정확했다”라고 언급했다.[14] 그리고 이 영화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 선입견을 갖게 된 것에 대해 “유감이지만 그건 단지 영화다!”라고 항변했다.


전기경련요법의 역사를 살펴봐도 초창기에 이미 환자의 고통과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시도가 있었다. 1940년에는 인디안의 화살독으로 사용되던 쿠라레(curare)가 근이완제로 사용되었고, 1951년에는 좀 더 안전한 석시닐콜린(succinylcholine)이 쿠라레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또한 근이완제 투여시 호흡근 이완으로 인해 환자가 경험하는 숨이 멎는 듯한 공포심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 잠깐 동안 환자는 마취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1950년 중반부터는 근이완제나 마취 없이 하는 일반적인 전기경련요법은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근이완제를 투여하고 마취한 뒤 시행되는 요즘의 전기경련요법 장면]


의 동영상에서 요즘 시행되는 전기경련요법의 전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일단 전반적인 분위기를 살펴보자.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와는 많이 다르지 않은가? 당연하다. 치료진이 강압적으로 시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치료 전 다른 의학적 처치나 수술처럼 설명 뒤 동의서를 받기 때문이다. 먼저 안전한 마취와 치료를 위해 혈압, 산소포화도, 심전도와 같은 기본적인 생체징후를 확인한다. 이어서 환자를 정맥 마취한 뒤 근이완제를 투여하는데 이때 실제 경련이 잘 일어나는지 확인하기 위해 한쪽 상지 혹은 하지에 압박대를 감아 압박 부위 아래로는 근이완제가 투입되지 않게 한다.


환자가 마취되면 전극을 두뇌에 붙이는 것으로 모든 준비가 완료되고, 이제 스위치를 누르면 된다. 위 동영상에서 전기 자극이 가해지면 환자가 얼굴을 찡그리는 양상으로 강직기(强直期; tonic phase)가 나타난 뒤, 근이완제가 들어가지 않은 오른 팔에서 간헐적 굴곡을 일으키는 간대기(間代期; clonic phase)가 이어 나타나는데, 이는 경련이 의도한 대로 잘 일어났음을 반영한다. 이것으로 치료 끝. 이제 마취에서 깨어나면 회복실에서 기다리는 가족을 만나면 된다.


우리나라의 전기경련요법

그러나 한편에서는 여전히 마취 없이 전기경련요법이 시행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12년 우리나라에서 마취 없이 이뤄지는 전기경련요법은 627회, 마취 하 전기경련요법은 1,794회 시행되었다.[15] 의학적 필요에 의한 치료이지만 일부 환자는 여전히 과거 환자들이 겪었던 고통과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그 이유로는 정신과 전문 병원 안에 마취과가 갖춰져 있지 않거나 마취를 하는 경우에 상승하는 병원비를 환자와 보호자가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비록 마취 없이 이뤄지는 전기경련요법이 더 적긴 하지만 환자의 안전과 존엄을 고려한다면, 될수록 마취 하에 시행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사용빈도 줄었지만 필요한 용도 지닌 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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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에서 1960년대에 정신질환이 정신과 의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 실재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에 바탕을 둔 ‘반 정신과 운동(anti-psychiatry movement)’이 크게 대두했다.[16]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건강하지 못한 사회로 인해 환자들이 피해자가 된 것으로 여기며 정신과 진단에 회의적이었고, 정신분석을 포함한 모든 정신과 치료를 통제로 여겼다. 이들은 특히 치료 과정이 비인도적이고, 많은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이유로 전기경련요법을 집중적인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기경련요법의 초창기 시절에는 여러 문제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우울증이 호전된 사람들도 있었지만 치료 도중 발생한 골절, 탈골 등으로 인해 고통 받았고, 소중했던 개인의 기억을 잃어버려 힘들어했고, 일부는 아예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의 많은 연구를 통해 전기경련요법은 뛰어난 효과는 유지하면서 안전한고 편안한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비록 여전히 일부 부작용이 발생하지만 삶을 앗아갈 수도 있는 우울증의 위험성에 비할 바는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에는 정신약물학의 비약적 발전으로 전기경련요법의 사용 빈도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소수의 환자에게는 꼭 필요한 치료 방법이다. 따라서 과거의 정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오해와 염려가 줄어 도움이 필요한 환자가 망설임 없이 이를 치료 방법의 한 가지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지금은 헤밍웨이가 살던 시대도 아니고,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시대도 아닌, 뇌영상을 통해 인간의 뇌를 들여다보는 시대이다.



[주]


[1] Nuland, S., The Uncertain Art: Thoughts on a Life in Medicine. Random House LLC, 2008.

[2] Shorter, E. and D. Healy, Shock Therapy: A History of Electroconvulsive Treatment in Mental Illness, Rutgers University Press, 2012.

[3]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신경정신의학회보. 2004. 44(4).

[4]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신경정신의학회보. 2004. 44(5).

[5] Li, B., et al., Repeated electroconvulsive stimuli increase 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 in ACTH-treated rats. Eur J Pharmacol, 2006. 529(1-3): p. 114-21.

[6] Palmio, J., et al., Changes in plasma amino acids after electroconvulsive therapy of depressed patients. Psychiatry Res, 2005. 137(3): p. 183-90.

[7] Lanzenberger, R., et al., Global decrease of serotonin-1A receptor binding after electroconvulsive therapy in major depression measured by PET. Mol Psychiatry, 2013. 18(1): p. 93-100.

[8] Hotchner, A.E., Papa Hemingway: A Personal Memoir, Da Capo Press, 2005.

[9] Sackeim, H.A., et al., The cognitive effects of electroconvulsive therapy in community settings. Neuropsychopharmacology, 2007. 32(1): p. 244-54.

[10] Lisanby, S.H., et al., The effects of electroconvulsive therapy on memory of autobiographical and public events. Arch Gen Psychiatry, 2000. 57(6): p. 581-90.

[11] Dukakis, K. and L. Tye, Shock: The Healing Power of Electroconvulsive Therapy. Avery Trade, 2007.

[12] Vaughn McCall, W., et al., Poor health-related quality of life prior to ECT in depressed patients normalizes with sustained remission after ECT. J Affect Disord, 2013. 147(1-3): p. 107-11.
[13] http://www.citypages.com/2009-05-20/news/minnesota-mental-health-patient-ray-sandford-forced-into-electro-shock-therapy/.

[14] http://host.madison.com/news/local/health_med_fit/vital_signs/forget-cuckoo-s-nest-safer-shock-therapy-helping-treat-depression/article_8575c3d6-80cb-11e0-9914-001cc4c03286.html.

[15] http://www.hira.or.kr/rdd_disease.do?method=listInfoMdfee&pgmid=HIRAA020044030000.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누리집에서 nn071(일반전기충격요법)과 nn072(마취하전기충격요법)으로 검색

[16] Duffin, J., History of Medicine, Second Edition: A Scandalously Short Introduction. University of Toronto Press, 1999.


2013.9.27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http://scienceon.hani.co.kr/?mid=media&category=90222&page=3&document_srl=123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