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 정신의학으로 짚어보는 브룩 쉴즈의 산후우울증

2016. 12. 14. 16:13글모음

[8] 엄마의 고통, 산후 우울증


 » 아이를 낳은 뒤에 우울감이 드는 산모들이 많다. 대부분 일시적이지만 간혹 산후우울증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사진/ 고려대병원(2004)


모의 10-15%가 겪는 산후 우울증은 산모가 아기와 나누는 공감을 방해한다. 이에 우울증을 겪는 산모는 자책감으로 괴로워하지만, 사실 이는 많은 경우에 뇌 기능의 변화에서 비롯한다. 1980년대의 미녀 배우 브룩 쉴즈의 경험을 통해 산후 우울증을 둘러싼 오해와 올바른 대처 방안에 대해 살펴보자.


1980년대에 중고등학생 사이에서 연예인 사진이 실린 책받침이 큰 유행이었다. 여러 책받침 스타 중 일명 ‘3대 미녀’가 있었으니 바로 브룩 쉴즈, 소피 마르소, 피비 케이츠였다. 이 중 브룩 쉴즈(Brooke Shields)는 ‘세기의 미녀’란 별칭이 늘 따라다닐 정도로 당대의 아이콘이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했던가? 아기 때부터 남다른 미모를 과시했던 그는 생후 11개월 때 비누 광고를 통해 연예계에 발을 들여 놓는다.


텔레비전 광고에 출연하고 아역 배우로 활동하던 브룩 쉴즈는 12살에 <프리티 베이비>란 영화에서 성매매 소녀 역할을 맡아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후 <블루 라군>, <끝없는 사랑>, <사하라>를 통해 절정의 인기를 누리게 된다. 또한 몸매도 뛰어나 모델로도 인기몰이를 했는데 14살에 잡지 <보그>의 최연소 표지 모델 기록을 세웠고, “바지와 나 사이에 뭐가 있는지 알고 싶나요? 아무 것도 없어요(You want to know what comes between me and my Calvin’s? Nothing)”라는 광고문으로 논란을 일으킨 캘빈클라인 청바지 광고의 모델로도 활동했다.

00baby1.jpg » 도발적인 광고로 논란이 되었던 브룩 쉴즈의 청바지 광고. http://www.youtube.com/watch?v=YK2VZgJ4AoM

그러나 그의 경력은 성인 배우로 이어지지 못했고 프린스턴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연예계 활동은 미미해졌다. 이후 그는 영화의 조연이나 드라마에 간혹 얼굴을 내밀었고 유명한 테니스 선수 안드레 아가시와 결혼하고 이혼했으며, 마이클 잭슨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낭독하면서 자신이 아닌 다른 유명인과의 관계를 통해 간간히 언론 보도에서 이름을 드러냈다.(뉴욕의 한인 상가에서 고추장을 고르는 모습이 포착돼 그가 ‘한식 마니아’라고 전한 언론 보도도 있었으나 이는 농림수산식품부가 돈을 주고 ‘연출’한 사진이었으므로 논외로 하자.)


00baby2.jpg » 브룩 쉴즈가 산후 우울증을 겪은 이야기를 펴낸 책, <비가 내렸어요(Down Came the Rain)>. 출처/Amazon.com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으로서 그가 받은 또 다른 관심은 바로 ‘산후 우울증’이었다. 그는 2003년 5월 재혼한 남편 크리스 헨치 사이에서 딸 로완을 낳았다. 첫 아이였으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워야 할 텐데, 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는 출산 뒤 5일 동안 병원에서 딸과 함께 있었지만 출산 전 기대와 달리 하나도 기쁘지 않고, 딸과 공감하기도 잘 이뤄지지 않아 당황했다. 퇴원 뒤에도 마음이 힘들어 그는 아기보다 더 많이 울었고 한때 아파트 창문에서 뛰어내려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브룩 쉴즈가 산후 우울증에 걸린 것으로 판단하고 상담과 약물 치료를 권유했다. 그는 우울증 진단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치료 받는다는 것이 유약한 자신이 어머니로서 실패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쳤기에 치료 받기도 많이 망설였다. 시간이 지나도 그의 기분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고 결국 고민 끝에 그는 치료 받기를 시작했다. 다행히 치료는 잘 진행되었고, 그는 딸 로완의 돌 무렵에는 평화롭고 행복한 기분을 느끼며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3년 뒤에는 산후 우울증을 여행에 비유한 책을 펴내어 자신의 경험을 여러 사람과 나누게 되었다.[1]



산후 우울감, 우울증, 정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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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로 살다 보면 심심치 않게 지인들에게 우울증과 관련한 질문을 듣곤 한다. “그동안 추진하던 프로젝트가 물거품이 되어 몹시 속상한데, 이거 우울증이니?”,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린다는데 돈 없는 내 처지가 우울하네. 나 약 먹어야 할까?”, “부인이 애 낳고 영 기운이 없는데 입원해야 하는 건 아닐까?” 대개 지인들은 질문을 던지고서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사실 이럴 때에는 고민이 된다. 내가 지인의 무릎이 닿기도 전에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무릎팍 도사도 아닌데 그 한 마디로 어떻게 우울증 여부를 진단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모호하게 교과서적인 답변을 하면 이내 실망스러운 눈빛이 돌아온다. 지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이번엔 내가 우울해지지만, 이 또한 정신과 의사로서 숙명(?) 아니겠는가. 이번 기회에 출산 뒤에 생기는 ‘우울감’과 ‘우울증’, 더 나아가서는 ‘정신증’을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그동안 받아온 실망의 반응을 일부나마 풀어 보도록 하자, 팍팍.[2]


[우울감] 많은 산모가 아기를 출산한 뒤 약간의 우울감을 느끼며 이유 없이 울고 싶은 기분을 경험하는 것을 ‘베이비 블루(baby blue)’라고 부른다. 산모의 30-75%가 이를 경험한다. 보통 출산 3-5일 뒤 발생하고, 며칠 내지 몇 주 동안 나타날 수 있다. 원인으로는 여성 호르몬 수치의 급격한 변화, 출산 과정의 스트레스,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한다는 책임감 등이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때에는 산모에게 교육과 지지(도움)를 제공하는 것 외에는 별도의 전문적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


[우울증] 그런데 가벼운 우울감이 아니라 하루 종일 우울하고 모든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2주 넘게 지속되고, 체중과 식욕의 변화, 과다한 수면이나 불면, 불안과 피곤이 나타나면 산후 우울증으로 진단을 내리게 된다. 이는 산모의 10-15%에서 나타나고, 증상으로 인해 실제 일상생활에서 기능 저하가 나타난다. 즉 산모가 아기를 돌보는 것을 포함해 엄마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게 된다. 더구나 치료하지 않을 경우 우울증은 수 년 간 지속되므로 면담 치료, 약물 치료 같은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정신증] 산후 정신증은 베이비 블루나 산후 우울증과는 조금 다르다. 일단 발생 빈도 자체가 1000명에 1-2명으로 매우 낮고, 주요 증상도 망상, 환청 같은 조현병(정신분열증)의 증상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산모는 아이가 죽었거나 기형을 가진 것으로 여기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거나, ‘아이를 죽여라’, ‘너는 살 필요가 없다’와 소리를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듣는 것이다. 뉴스에서 심심치않게 들을 수 있는 갓난 아이를 숨지게 한 엄마들이 보통 산후 정신증을 앓았던 것으로 보인다.


간단해 보이지만 이렇게 미묘한 차이가 있기에 사람들이 흔히 세 가지 상태를 혼동하거나 뭉뚱그리는 경우가 많다. 또한 약간의 증상만으로도 중병이 아닐까 미리 염려하거나, 반대로 증상이 심한데도 치료를 두려워하고 회피하는 일이 생긴다. 브룩 쉴즈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그의 경험을 한 번 살펴보자.


브룩 쉴즈는 퇴원 후 첫 외래 방문에서 우울감 때문에 자신이 엄마로서 잘 못하고 있으며, 엄마가 될 수 없을 거라고 의사에게 토로했다. 의사는 많은 산모가 베이비 블루를 경험하며 다른 산모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도움이 된다는 조언을 건넸다. 우울감을 호소한다고 의사가 바로 치료를 권유하는 것은 아니니 산모가 출산 뒤에 마음의 변화를 느낀다면 미리 염려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되겠다. 


한편 담당 의사는 매일 전화로 브룩 쉴즈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러던 중에 그의 기분이 지속적으로 가라앉아 있자 이를 산후 우울증으로 판단하고 치료를 권유했다. 그러나 브룩 쉴즈는 그저 의욕이 없을 뿐이고, 아기를 해칠 생각도 없다며 우울증 진단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즉 산후 우울증과 산후 정신증을 혼동한 것이다. 우울증이 왔다고 해서 속된 표현으로 ‘미친‘ 것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의사의 권유를 따르면 좋을 것 같다.



우울증 산모의 뇌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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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 우울증을 겪는 산모는 기분이 가라앉고, 신체 활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아기를 잘 양육하기 어렵다. 이들은 더워서, 기저기가 축축해서, 배가 고파서, 졸려서, 아파서 아기가 울 때 아기가 불편하구나 하며 공감을 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고 짜증내는 자신의 모습에 힘들어 한다. 다른 엄마들과 비교해 자신이 게으르거나 부족한 것으로 여기며 죄책감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뇌 영상 연구는 산후 우울증 산모의 이런 모습이 많은 경우에 뇌 기능의 변화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2010년 미국의 모지스-콜코(Moses-Kolko) 교수 연구진이 산후 우울증 산모 14명과 일반인 산모 16명의 뇌를 비교한 연구를 살펴보자.[3] 연구진은 두 집단에게 다양한 표정의 얼굴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뇌 반응을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unctional MRI; fMRI)을 통해 살폈다. 아울러 연구진은 산모들이 아기에게 애착을 느끼는 정도, 아기와 교감 중에 느끼는 적개감과 기쁨의 정도를 측정했다.


연구 결과 두 집단에서는 모두 무섭거나 화난 얼굴처럼 부정적인 표정을 볼 때 좌측 배내측 전전두피질(dorsomedial prefrontal cortex; DMPFC)이 활성화했는데, 이곳의 활성화가 산후 우울증 산모에서는 일반인 산모에 비해 덜한 것으로 나타났다.

00baby3.jpg » 부정적인 얼굴 자극에 활성화의 차이를 보인 좌측 배내측 전전두피질. 출처/각주[3]

배내측 전전두피질은 뇌에서 사회적 인지와 연관된 영역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감정 상태, 가치, 목표 등을 인식하고 고려해 타인에 대한 첫 인상을 형성하고, 그들의 관점을 수용하거나 위험한 정도를 평가하는 일을 담당한다. 따라서 이 영역에 결함이 있으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읽지 못하고 공감을 덜 하게 된다. 산후 우울증 산모의 경우에는 울음만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아기의 감정을 읽어내는 것이 어려운 일이 되는 것이다.


연구진은 또한 좌측 배내측 전전두피질과 좌측 편도체 사이의 연결성을 살펴 봤다. 배내측 전전두피질과 편도체 사이에는 하향식(top-down)의 연결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산후 우울증 산모가 부정적인 얼굴 사진을 볼 때 활성화가 감소한 배내측 전전두피질이 이런 연결성에 영향을 주었는지 조사한 것이다. 그 결과 일반인 산모에서는 두 영역이 효과적으로 연결된 데 비해, 산후 우울증 산모에서는 연결이 끊겨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00baby4.jpg » 산후 우울증 산모에서 사라진 배내측 전전두피질과 편도체 사이의 연결성. 츨처/각주[3]

배내측 전전두피질과 편도체 사이에 소통이 원활하면 부정적 정서 자극에 활성화한 편도체를 사회적, 공감적으로 조절하는 신경회로가 잘 기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이 신경회로가 출산 뒤 갑자기 바뀐 환경이나 아기를 돌보면서 생긴 스트레스로 인한 부정적 감정을 적절하게 다뤄 주변 변화에 잘 적응하는 것에 관여함을 시사한다. 바꿔 말하면 산후 우울증 산모는 두 영역 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아기를 양육하며 발생하는 부정적 감정을 효과적으로 재평가하지 못하고 조절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종합해서 보면 산후 우울증이 일으킨 일련의 뇌의 변화(배내측 전전두피질의 감소한 활성도, 배내측 전전두피질과 편도체 사이의 연결성 감소)가 엄마 역할을 방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산후 우울증 산모가 아기와 잘 공감하지 못하고, 아기의 불편을 쉽게 알아채지 못하는 것은 뇌 기능의 변화에서 비롯한 것이다. 참여자의 수가 적긴 하지만 생물학적 원인을 밝힌 이 연구 결과는 산후 우울증으로 자책하고 괴로워하는 많은 산모를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다.



산후 우울증 넘어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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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비무환

사실 모든 산모가 출산 후에 우울증을 겪는 것은 아니다. 이는 특정 산모에 취약성이 많고 발생 위험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전에 위험 요소를 파악해 발생 여부를 예측하고 미리 준비한다면 설령 우울증이 찾아와도 여러 부정적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다. 산모가 임신 기간에 우울 또는 불안하거나, 스트레스 높은 사건을 경험하거나, 사회적 지지가 빈약하거나, 과거에 우울증을 겪은 경우 산후 우울증의 발생 확률이 높아지는데[4] 브룩 쉴즈를 통해 구체적인 예를 살펴보자.


브룩 쉴즈는 재혼 전에 자궁의 암 이전단계 세포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이때 발생한 상처로 인해 자궁 경부가 짧아져 쉽게 아기를 갖지 못했다. 여러 시도를 했는데도 난임 상태가 계속되자 그는 결국 체외수정(시험관 아기)을 선택했고 몇 차례 실패 끝에 어렵게 임신에 성공했다. 일련의 과정에서 그가 받았을 스트레스와 우울감이 얼마나 컸겠는가.


임신 후에도 브룩 쉴즈는 여러 스트레스를 겪었다. 전립선암으로 투병하던 아버지가 그의 출산을 불과 3주 앞두고 숨졌다.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43개의 생활 사건을 정리한 척도(사회 재적응 평가척도, Social Readjustment Rating Scale)에서 ‘아버지의 죽음’은 5위에 해당할 만큼[5] 그가 겪은 내면의 고통은 매우 컸다. 또한 출산 당시 탯줄이 태아의 목을 감고 있어 제왕절개 분만을 시도했는데 수술 도중 자궁이 아래로 빠지면서 많은 출혈이 발생했다. 당시 의사는 출혈이 멈추지 않으면 자궁절제술을 고려했을 정도로 난산이었다.


출산 후에도 스트레스는 계속되었다. 퇴원한 뒤 브룩 쉴즈는 남편과 의논한 대로 보모를 두지 않고 부부가 직접 아기를 돌보려 했다. 그러나 임신 후유증으로 수근관 증후군(carpal tunnel syndrome; 손목을 이루는 뼈와 인대들에 의해 형성되는 통로의 압력이 증가하며 여기를 지나가는 정중신경이 손상되는 병)이 생겨 집안일은 물론이고 딸의 기저귀를 가는 것조차 하지 못해 무력감과 죄책감을 느꼈다.


브룩 쉴즈의 예가 너무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가 경험한 여러 어려움 중 일부는 많은 산모에게 출산 전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들이다. 산모가 위험 요소에 노출되었다면 산후 우울증의 발생 가능성이 높으므로 미리 주의할 필요가 있다. 최근 뇌에서 모노아민 산화효소A(Monoamine oxidase A; MAO-A)라는 물질이 증가하는 것을 통해[6], 혹은 혈액에서 특정 유전자(TTC9B, HP1BP3 같은)를 통해[7] 산후 우울증을 예측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었지만, 아직 실용화 단계는 아닌 만큼 당장은 유비무환의 자세를 갖추는 것이 좋을 것 같다.


[2] 시골에 살자?

2013년 캐나다의 비거드(Vigod) 교수 연구진은 2006년도 캐나다 보건당국의 인구조사 자료를 이용해 산모 6126명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연구를 했다.[8] 이 연구에서 연구진은 산후 우울증과 산모가 사는 곳의 연관성을 살펴봤는데, 시골이나 도시 근교에 사는 산모에 비해 도시에 사는 산모에서 산후 우울증의 발생률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혹여, 여기까지 읽고 산후 우울증을 피하기 위해 시골로 이사갈 생각을 한다면, 잠깐만 기다리시라. 연구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고 나서 결정해도 늦지 않다.


연구진은 인구 수에 따라 50만 명 이상 지역을 도시, 3만-50만 명 지역을 도시 근교, 3만 명 이하 지역을 시골, 1000명 이하 지역을 외딴 시골로 나눴다. 그리고 인구 수로만 지역이 분류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도시 지역권과 소도시 시골 지역권으로 나눴다. 이를 다시 대도시권의 영향을 받는 정도에 따라 소도시 시골 지역권을 강, 중, 약의 세 지역으로 나눠 사회적 연결성의 지표로 사용했다. 아울러 연구진은 산모의 여러 사회인구학적 정보와 건강 상태가 산후 우울증에 끼치는 영향을 함께 살펴봤다.

00baby5.jpg » 지역에 따른 캐나다의 인구 분포. 출처/Statistics Canada, 2001 Census

연구 결과, 산후 우울증은 도시 산모에서 9.16%로 시골 산모의 6.07%보다 의미 있게 높게 나타났다. 아울러 소도시 시골 지역권의 분석에서는 대도시의 영향을 적게 받는 지역이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에 비해 산후 우울증 발생률이 높은 경향을 보였다. 이는 도시 산모가 산후 우울증을 더 많이 겪지만, 시골 산모에서도 사회적으로 연결된 고리가 적다면 산후 우울증의 발생률이 상승함을 의미한다. 즉 시골에 산다고 해서 곧바로 산후 우울증의 발생률이 줄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요인을 추가로 고려해야 할까? 도시 산모의 특성을 살펴보면, 이들이 캐나다가 아닌 나라에서 태어난 빈도가 더 높고, 출산 전후로 사회적 지지를 덜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도시 산모는 이민, 이사로 인해 가족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거나 주변에 자신을 도와주고 챙겨줄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에 산후 우울증을 더 많이 겪게 되는 것이다. 특히 도시 산모에서 우울증의 기왕력이 낮은데도 산후 우울증이 더 많은 것은 가족의 도움과 주변 사람의 지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반증한다.

00baby6.jpg » 도시 산모는 이민, 이사로 인해 가족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거나 주변에 자신을 도와주고 챙겨줄 사람이 부족해 산후 우울증을 더 많이 겪는 것으로 해석됐다. 출처/각주[8], 변형

브룩 쉴즈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사는 뉴욕시티의 맨해튼에 살았다. 도시 산모였던 것이 그의 산후 우울증의 원인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그는 가족과 주변 사람의 도움을 충분히 받았다. 그가 우울증으로 힘들어 할 때 남편 크리스는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설득하며 도왔고, 어머니와 시부모도 집안일을 도우며 그를 지지했다. 또한 산후 3주 이후부터 브룩 쉴즈에게 아기 돌보는 방법을 가르치며 격려한 도우미 젬마의 역할도 한몫 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상황은 많이 우려스럽다. 남편이 법적으로 보장된 출산 휴가를 쓸 때에도 상사의 눈치를 봐야 하고, 육아 휴직은 경력 단절을 우려해 주저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야근과 회식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회사 생활에서 남편이 퇴근 후 바로 귀가해 낮 동안 아기를 돌보느라 지친 부인을 매일 돕는 것은 아직 요원한 일이다. 물론 양쪽 부모님이나 산후 도우미가 빈 자리를 채울 수 있겠지만, 사회적으로 남편이 적극적으로 양육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장려하는 문화가 필요해 보인다.


[3] 안성맞춤 치료

사람들이 우울증 진단을 받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임상 현장의 경험에 비춰보면 적지 않은 환자가 잘 인정하지 못한다. 설령 받아들여도 치료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신 마음이 약해서 그런 것 같다며 마음을 다잡겠다고 하거나, 기도원이나 절을 찾아 신앙의식으로 고치기를 바라거나, 여행이나 휴가를 통해 한동안 쉬면 힘든 순간이 지나가리라 기대하곤 한다.


산후 우울증 산모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산모의 경우 치료 받기를 고심하다가도 ‘완모(완전 모유 수유)’를 하고 싶은 욕심에 아기에 끼칠 영향을 걱정하며 약물 치료를 거부하곤 한다. 브룩 쉴즈는 어땠을까? 그는 모유 수유에 큰 의미를 부여했고 힘든 상황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에게 모유 수유는 양육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마저 하지 않으면 딸을 영원히 잃을 것 같아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처음 의사가 약물 치료를 권유했을 때 그는 주변의 어느 누구도 출산 후에 약물을 복용하지 않는다며 많이 망설였다.


이에 남편 크리스는 많은 사람이 다양한 이유로 약물 치료를 받지만 평생 복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기분이 나아진다면 시도할 가치가 있다며 부드럽게 브룩 쉴즈를 설득했다. 의사도 알코올 의존증의 가족력 때문에 약물 의존성을 걱정하는 그에게 처방하려는 항우울제에는 의존성이 없으며, 모유 수유와 관련해서도 안전함을 설명했다. 결국 그는 약물 치료를 결심했고 파록세틴이란 약물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모유 수유 중에 약물을 복용하면 아기에게는 약물이 얼마만큼 전달될까? 1966~2002년 기간의 관련 연구 57개를 통합분석(pooled analysis)한 연구에 따르면, 노르트립틸린(nortriptyline), 파록세틴(paroxetine), 서트랄린(sertraline)이라는 항우울제의 경우에 아기 혈장에서 약물 농도가 상승하는 것을 거의 확인할 수 없었다.[9] 우려와 달리 약물이 아기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미미한 것이다. 브룩 쉴즈의 담당 의사도 이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파록세틴을 처방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브룩 쉴즈는 약물 치료 외에도 매주 면담 치료를 받았다. 생물학적으로 우울증을 설명할 때는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 뇌의 기능 변화를 원인으로 언급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정신 질환처럼 우울증도 심리적인 요소가 발병 원인으로 작용하므로 이 부분을 다루는 면담 치료는 매우 중요하다.


브룩 쉴즈의 경우 생후 5개월 때 부모가 이혼하고 아버지가 재혼했기 때문에 어머니 쪽에서는 그가 유일한 자녀였다. 그와 어머니 사이에는 강한 애착이 형성되었고, 어른이 된 뒤에도 내면에는 늘 어머니의 어린 딸로 남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그러나 딸이 태어난 뒤에는 내면의 욕구와 엄마가 된 현실 사이의 갈등이 우울증의 발생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역할의 변화로 인해 발생한 우울증은 특히 대인관계 정신치료(Inerpersonal psychotherapy; IPT)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10] 브룩 쉴즈도 면담 치료를 통해 바뀐 역할에 적응해 나가면서 우울증을 극복해 나갔다. 또한 면담 치료는 약물 부작용이 너무 심해 여의치 않을 때에는 약물 없이 시행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이 고혈압을 진단받았을 때를 생각해보자. 대부분 혈압약을 복용하면서 유산소 운동 하기, 싱겁게 먹기 같은 일상생활의 노력을 함께 한다. 자신은 의지만으로, 신앙만으로, 휴식만으로 혈압을 낮추겠다고 한다면, 결국에 찾아오는 것은 여전히 높은 혈압이다. 우울증도 마찬가지이다. 일상생활의 노력이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산후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산모는 오해나 걱정 없이 전문적인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비 온 뒤 개는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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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만화 <슬램덩크>에서 북산고가 전국대회에서 전년도 우승팀이자 역대 최고의 전력을 자랑하는 산왕공고와 맞붙는 장면이 나온다. 경기 초반에 예상을 깨고 북산고가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선전하지만, 후반에 산왕공고의 전면 압박 수비와 가공할 공격력에 승부의 추는 산왕공고 쪽으로 급속하게 기울게 된다. 이때 경기장 밖에는 산왕공고의 매서운 공격을 상징하듯 거센 폭우가 내린다.


그러나 북산고는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나며 뒤진 경기를 따라 붙기 시작하고, 비가 멈추고 다시 해가 뜰 무렵 경기를 다시 대등한 수준으로 되돌린다. 그리고 마침내 북산고는 산왕공고를 꺾는 파란을 일으킨다. 만화 작가는 북산고의 위기 순간을 검은 구름에서 세차게 쏟아지는 비로, 회복의 시점을 구름 걷힌 맑은 하늘에 빗대어 실감나게 표현했다. 다소 상투적이지만 원래 보편적인 비유가 더 공감을 자아내는 법이다.


산후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인 출산 뒤에 역설적으로 찾아오는 우울증은 밝은 하늘을 가로막은 먹구름과 같다. 특히 아기와 공감하지 못하고 아기의 불편을 잘 알아채지 못할 때 드는 자책감은 잘 벼린 비수 같은 비가 대지에 꽂히듯 산모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다. 또한 아기도 엄마와 상호작용 부족으로 정서와 신체의 정상적 발달에 이르지 못할 수 있다.[11] 즉 산후 우울증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아기와 산모에 모두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물론 비는 언젠가 멈출 것이고 태양은 다시 뜰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 믿고 막연히 산후 우울증이 저절로 낫기만 기다리기에는 부정적 영향이 너무 크다. 그래서 비가 멈추도록 기원하는 일종의 기청제(祈晴祭)가 필요한데, 이는 산후 우울증을 바로 알고 대비하며 사회적 지지를 공고히하며 동시에 병이 발생했을 때 전문적인 도움을 받는 것을 포함한다. 브룩 쉴즈가 2006년 4월 둘째 딸 그리어를 낳은 뒤 우울증을 다시 겪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주]



[1] Shields, B., Down Came the Rain: My Journey Through Postpartum Depression. Hyperion,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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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9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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