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 '푸른’ 종소리를 ‘보는’ 공감각자들에 비친 세상은

2016. 12. 13. 11:17글모음

[7] 공감각에 관한 최근 연구, 그리고 공감각자들


‘푸른 종소리’처럼 색과 소리를 함께 떠올리는 공감각 능력은 사실 종류가 매우 다양하며 공감각자 뇌는 일반인과 다른 특성을 나타낸다. 한 조사에선 일반인의 2%가량이 공감각 능력을 보여주었다. 파인만 같은 과학자, 칸딘스키 같은 예술가도 공감각 능력의 소유자로 추정되는데, 과연 공감각자는 뛰어난 기억력과 창조성을 지닐까. 공감각과 공감각자를 둘러싼 여러 통념을 살펴보자.




능력을 지닌 다양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풀어내며 시즌 1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히어로즈(Heroes)’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다. 그러나 인기를 이어받아야 할 시즌 2에서 미국 드라마 시나리오 작가의 파업이란 암초를 만나 완성도가 떨어지면서 흥행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이후 시청률이 떨어지고 이어서 제작비가 감소하는 악순환을 거듭하면서 초능력을 제대로 그리지 못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공상 과학물보다는 스릴러물에 가까웠던 시즌 4에서 우울하게 종영을 맞이했다.

00syn1.jpg »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히어로즈. 출처/ NBC.Com

시즌 4에서 첼로를 켜며 병원에서 일하는 여주인공 엠마가 있는데 시즌 초반 그의 초능력은 소리를 색으로 인식하는 것이었다. 시즌 4의 특성상 컴퓨터 그래픽이 많이 줄었지만 그가 첼로를 연주할 때 네 현에서 여러 색상이 흘러나오고, 병원에서 들리는 많은 소리가 다양한 색채로 그려졌다. 시즌 후반에 이 특이한 감각은 엄청난 힘을 지닌 파괴력, 일명 강화된 공감각(enhanced synesthesia)으로 드러나는데 엠마의 초능력을 볼 때마다 중학교 국어 수업 시간에 배운 김광균의 시 ‘외인촌’이 떠 올랐다. 시의 내용은 거의 떠 오르지 않았지만 밑줄 그어가며 외웠던 시구 ‘푸른 종소리’가 ‘공감각적’ 표현이라는 내용은 또렷이 기억할 수 있었다.

00syn2.jpg » '히어로즈' 여주인공의 엠마의 공감각 색청(色聽). 출처/ http://heroeswiki.com



생각보다 다양한 공감각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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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각(共感覺)이란 문자 그대로 감각을 공유한다는 뜻으로 영어인 "synesthesia"의 어원을 살펴보면 "syn (= together)"과 "aesthesis (= sensation)"으로 구성된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면 어떤 자극에 의해 일어나는 한 형태의 감각이 다른 형태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의미한다. 앞에서 언급한 히어로즈 여주인공의 경우 청각 자극이 청각 경험뿐만 아니라 시각 경험까지 유발하는 것이다.


인간의 감각이 5가지(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얼핏 생각하기에 공감각의 종류는 20개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6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 그 이유는 한 자극이 두 개 이상의 경험을 일으키거나(예. 소리가 촉각과 미각을 유발) 혹은 한 형태의 자극 내에서도 서로 다른 세부 특징 사이에서 일종의 연합(예, 글자를 볼 때 색을 경험)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마다 차이가 나지만 일반적으로 공감각은 인구의 2-4%가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 연구마다 빈도가 다른 것은 연구 방법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예를 들어 개인에게 한 자극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물어보는 방법을 택하면 개인의 주관적 답변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좀더 객관적인 결과를 얻기 어렵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연구자들은 다양한 형태의 공감각 검사를 개발했다.

00syn3.jpg » 색-자소 공감각자를 찾는 방법. 출처/각주[3]

공감각 중에서 가장 흔한 것으로 알려진 ‘색-자소(色-字素; color-grapheme) 공감각(문자나 숫자가 특정 색으로 인식되는 공감각)’ 검사를 예로 살펴보자. 일반인은 왼쪽 그림을 볼 때 숫자 5 사이에 파묻혀 있는 숫자 2를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숫자 5를 녹색으로, 숫자 2를 적색으로 인식하는 색-자소 공감각자들은 색의 대비로 인해 쉽게 숫자 2를 찾을 수 있다. 나도 공감각자였으면 하는 마음에 왼쪽 그림을 오랫동안 쳐다봤다. 그러면서 예전에 유행했던 매직 아이(magic eye)처럼 빨간색의 삼각형이 떠 오르기를 기대해 봤다. 결과는? 눈만 아팠다.


혹시 내가 흔하지 않은 공감각을 갖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에 다른 종류의 공감각을 찾아봤다. ‘움직임에서 소리를 듣는 공감각(hearing-motion synesthesia)’이 있었다. 다시 한 번 부푼 기대를 안고 아래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속상하게도 역시 눈만 아팠다.


[점들의 움직임에서 소리가 들리는가?]

 

이 흔치 않은 공감각과 관련된 이야기를 조금 더 살펴보자. 미국의 코크(Koch) 교수는 어느 날 한 방문객이 움직이는 점으로 구성된 컴퓨터 화면보호기에서 소리가 들린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00syn4.jpg » 연구에서 실제 사용된 빛과 소리로 구성된 리듬 형태의 자극. 출처/각주[4], 변형 이에 흥미를 느낀 그는 이 화면보호기 파일을 수 백 명에게 전자우편으로 보내 소리가 들리는지 물어봤고, 어렵사리 3명을 더 찾을 수 있었다. 이 공감각을 갖고 있는 4명과 일반인 10명을 대상으로 모르스 부호(Morse code)와 비슷한 형태의 시각, 청각 자극을 제시하고, 그들이 듣거나 본 일련의 신호가 일치하는지 물어보는 연구가 진행되었다.[4]


실험 결과 공감각자나 일반인은 모두 소리 리듬으로 제시된 청각 자극에서는 정확도가 각각 83.9%와 85.8%로 큰 차이가 없었지만, 빛 리듬으로 제시된 시각 자극에서는 유의미한 차이를 나타냈다. 공감각자는 여전히 일정한 정확도(75.2%)를 보였지만, 일반인은 그냥 찍었을 때와 비슷한 56.3%의 정확도를 보였다. 즉 움직임에서 소리를 듣는 공감각자들은 빛 리듬을 보면서 동시에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더 정확하게 그 차이를 구분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뇌영상으로 본 공감각자의 머릿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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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각자의 두뇌는 일반인과 어떤 차이를 나타낼까? 많은 연구가 이뤄진 색-자소 공감각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를 살펴보면, 2007년 네덜란드의 로우(Rouw)와 숄테(Scholte) 교수가 시행한 연구가 이후 연구들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5] 연구진은 색-자소 공감각자 16명과 일반인 18명을 대상으로 확산텐서영상(DTI)과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방법을 사용해 두 집단의 차이를 살펴봤다.


확산텐서영상 결과에서는, 공감각자 두뇌에서 우측 하측두피질(inferior temporal cortex), 좌측 두정피질(parietal cortex), 양쪽 전두피질(frontal cortex)에서 높은 ‘분할 비등방도(FA, 아래 용어설명)' 수치가 관찰되었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영역들에서 백질의 밀도가 증가했거나 연결성이 증가한 것을 시사한다.

분할 비등방도(FA: fractional anisotropy): 물 분자가 생체 내에서 모든 방향으로 자유로이 확산하지 않고 특정 방향으로 확산하는 ‘비등방성’의 정도를 측정하는 확산텐서영상의 수치. 뇌 백질의 구조적인 방향성과 연결도를 반영하는 수치이다.

00syn5.jpg » 녹색은 백질의 기본 골격, 노란색은 증가한 분할 비등방도를 나타냄. 출처/각주[5]

한편 연구진은 두 집단이 강하거나 약하거나, 아니면 아예 공감각을 일으키지 않는 자극으로 구성된 자소 과제를 보는 동안에 자기공명영상을 이용해 두뇌의 활성화 영역을 볼드(BOLD, 아래 용어설명) 신호로 측정했다.

볼드(BOLD: Blood oyxgenated level dependent): 혈액 속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 양의 변화를 나타낸다. 이를 이용해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의 해석에서는 소비하는 산소량이 증가한 영역이 활성화 영역이라고 판단한다.

그 결과에서는 일반인에 비해 공감각자 두뇌의 여러 영역이 활성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연구진은 이 중에서도 우측 하측두피질에 관심을 기울였다. 왜냐하면 이 곳이 확산텐서영상을 통해 구조적 차이가 확인된 영역과 자기공명영상을 통해 확인된 활성화 영역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공감각자 두뇌 중 이곳에서 구조적 차이를 보이면서 동시에 활성화 특성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00syn6.jpg » 노란색은 증가한 분할 비등방도, 파란색은 증가한 BOLD 신호를 나타냄. 출처/각주[5]

그런 독특한 특성을 보인 우측 하측두피질은 뇌에서 대체 어떤 영역일까? 이곳은 시각 자극을 인식하고 분류하는 기능에 관여하는 방추상회(fusiform gyrus)에 잇닿아 있다. 그런데 방추상회의 중간 영역은 문자 형태의 자극을 처리하는 ‘시각적 단어 형태 영역(visual word form area; VWFA)’을 포함하고 있고,[6] 또한 색을 처리하는 ‘색채 영역(human V4; hV4)’과 인접해 있다. 따라서 뇌 영상에서 확인된 ‘구조 변화’와 ’기능 활성화’의 특성을 종합해 생각하면, 색-자소 공감각은 두 영역의 증가된 연결성(hyperconnectivity)과 교차 활성(cross- activation) 때문에 비롯한다고 추정할 수 있다.


아울러 확산텐서영상에서 분할 비등방도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 또 다른 영역인 두정 피질을 살펴보자. 두정 피질에서는 구조적 연결성이 증가했다는 소견과는 달리 활성화 양상은 관찰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영역도 역시 공감각 경험에서 특정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두정 피질은 여러 형태의 감각 정보를 통합하는 신경세포를 지니며 감각의 결합(binding)을 담당하는데, 이전의 다른 연구에서는 색-자소 공감각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7] 또한 반복 경두개자기자극술(repetitive 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 rTMS)을 통해 우측 두정엽의 활성화를 억제하면 이런 감각의 결합이 약해진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8]


00syn7.jpg » 색-자소 공감각에 관여하는 두뇌의 부위; 편의상 모두 왼쪽 반구로 표시됨. 출처/각주[9] 종합해보자. 색-자소 공감각의 경우에 다음과 같은 두 단계의 모델로 그 신경학적 기전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9] 첫 번째 단계에서는 공감각자가 자소를 볼 때 활성화하는 영역에서 발생한 추가 신호가 인접한 색 처리 담당 영역으로 이동한다. 이때에 공감각을 경험하는 정도는 두 영역 사이의 연결성이 얼마나 되느냐에 비례한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발생한 공감각이 일반적인 결합 기전보다 강력한 일종의 과결합(hyperbinding) 상태로 이어진다. 즉 감각 신호의 뇌 영역 이동과 강력한 결합이 공감각 현상을 설명하는 현재 연구자들의 설명모델이 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공감각자는 기억력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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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시절에는 중간고사, 기말고사, 퀴즈, 쪽지 시험, 모의고사 등등 참으로 많은 시험을 봤다. 시험을 준비할 때면 많은 내용을 단기간에 외우는 게 가장 어려운데 이를 위해 각양각색의 방법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고전적인 ‘형광펜으로 밑줄 쫙’부터 시작해서, 앞 글자만 따서 다시 문장을 만들거나(엽기적일수록 좋다), 심지어는 춤과 노래를 만든다. 특히 춤과 노래는 한 번 만들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가무가 완성되면 암기 효과는 매우 좋다. 단, 시험 볼 때 재현하다가 교수님과 눈이 마주치면 굉장히 민망해지는 부작용이 있다.


‘가무 기억법(?)’을 학술적으로 표현하면 ‘공감각을 이용한 기억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무엇인가를 외울 때 시각 외에 청각이나 움직임을 추가로 동원해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쉬운 예를 들면 숫자 ‘7788’을 외울 때 시각 자극인 ‘7788’외에 기차 소리인 ‘칙칙폭폭’을 내며 청각 자극을 더하고, 움직이는 기차 바퀴를 형상화한 춤으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단지 눈을 이용해 ‘7788’을 외울 때보다 훨씬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다.(참고로 7788은 코레일 대표 전화번호 1544-7788의 뒷자리 번호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내용이 다양하고 많아지면 문제가 발생한다. 머리를 쥐어짜내면서 여러 공감각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고, 또한 이것을 다시 암기하는 것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애초에 공감각을 갖고 있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힘들여 노력하지 않아도 여러 감각이 교차 활성화하기 때문에 공감각자는 탁월한 암기력으로 인해 학교에서 부러움의 대상으로 등극할지 모른다.


00syn8.jpg » 기억력과 관련한 공감각자들의 자신감. 출처/각주[10]

공감각자의 기억력은 정말 일반인보다 뛰어날까? 2007년 영국의 워드(Ward) 교수 연구진은 46명의 공감각자와 46명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기억력이 평균 이하인지, 평균인지, 평균 이상인지 평가하도록 했다.[10] 그 결과 공감각자 대부분이 자신의 기억력이 평균 이상이라고 답했고, 70% 정도는 공감각이 기억력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이어서 연구진은 16명의 공감각자와 16명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여러 종류의 기억력 검사를 시행했다. 실험 결과 공감각자들의 기대가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음이 드러났다. 공감각자들은 단어를 떠올리는 경우에만 일반인에 비해 ‘약간’ 뛰어날 뿐 다른 기억력 검사에서는 일반인과 비슷한 수행 능력을 보였다. 다른 유사한 연구에서도 공감각자는 시각 탐색 과제(visual search task)만 ‘약간’ 뛰어날 뿐 일화 기억(episodic memory)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 못했다.[11]



특별한 공감각자 셰르셉스키가 빚은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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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각자의 기억력이 좋다’라는 오해는 어떻게 생긴 것일까? 이는 몇몇 특수 공감각자들의 놀라운 기억 능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일명 “S”로 알려졌던 러시아의 솔로몬 베니아미노비치 셰르솁스키(Solomon Veniaminovich Shereshevsky)는 50자리의 숫자를 몇 분 안에 기억하고 15년 뒤에 다시 기억해내는 기억력의 소유자였다.[12]


00syn9.jpg » 셰르솁스키가 소유했던 다양한 공감각. 출처/각주[12] 그는 매우 다양하고 강한 형태의 공감각을 갖고 있었다. 예를 들면 50 헤르츠, 100 데시벨의 소리를 들으면 빨간 혀 같은 모서리를 가진 어두운 배경 위로 갈색의 가느다란 조각을 보면서 달콤새콤한 러시아식 스프의 맛을 느꼈다. 또한 ‘1’이라는 숫자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로, 푸른색은 창문 너머 언덕에서 한 남자가 푸른색 깃발을 흔들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아울러 그는 일반 단어를 보면 여러 심상(心象; image)이 연상될 뿐만 아니라 심상이 일으킨 복잡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심상이 남으면 이후에는 무엇인가를 기억할 때 그저 떠오르는 심상대로 표현하면 되기 때문에 그에게 기억은 너무나 쉬운 것이었다.


젊을 적에 신문사 기자로 일했던 셰르셉스키는 평소 다른 사람의 말을 열심히 받아적는 다른 기자들과는 달리 그냥 듣고 있기만 했다. 그는 언제든지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들었던 말 전부를 기억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능력은 매우 부러운 부분이다. 단기 암기력의 부족으로 공부할 내용을 미처 외우지도 못한 채 시험을 본 뒤 재시 혹은 유급의 공포에 떨던 의대 시절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여전히 이런 능력을 사모하지만 현실은 그의 이름 철자를 제대로 외우는 것조차 버겁기만 하다.


그런데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을 외우는 남자인 셰르솁스키의 삶은 행복했을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의 공감각은 불필요한 감각을 일으켜 그는 문자적인 의미와 다른 정보를 외우는 것과 책을 읽는 것을 힘들어 했다. 또한 일상 생활에서 겪는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예를 들면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점원이 과일 아이스크림이 있다는 말을 할 때 정작 그는 석탄 혹은 잿더미가 연상되어 아이스크림을 사지 못했고, 변화무쌍한 이미지로 인해 다른 사람의 얼굴을 잘 인식하지 못했다.



공감각자는 창조성이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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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인지 명확하지 않은 기억력에 비하면 창조성은 공감각자의 장점일 수 있다. 여러 감각이 연합되는 특성으로 인해 일반 사람들이 기존에 생각하거나 상상하지 못한 부분을 손쉽게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휘자 레오나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작곡가 알렉산더 스크리아빈(Alexander Scriabin),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브코프(Vladimir Naboko) 등 많은 예술가들이 다양한 종류의 공감각을 소유했던 것으로 공감각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추정되고 있다. 실제 예술 전공 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색-자소 공감각자의 비율을 조사한 연구 결과에서도 각각 9%와 2%의 큰 차이를 나타냈다.[13]


그런데 가끔 공감각이 적용된 예술 작품을 접할 때 작가의 연합된 감각이 잘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칸딘스키의 그림 ‘구성 VIII(composition VIII)’(개인 의견으로는 통상 번역되는 ‘구성’보다는 ‘작곡’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을 뚫어지게 쳐다봐도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고, 스크리아빈의 교향곡 제5번 ‘프로메테우스-불의 시’를 20여 분 열심히 감상해도 아무런 감흥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00syn10.jpg » 칸딘스키의 ‘구성 VIII’. 출처/Wikipaintings

[예일대 음대 관현악단이 연주한 스크리아빈의 ‘프로메테우스: 불의 시’]


비공감각자의 슬픔(?)이 느껴지는 대목이지만 다행히도 작품에 담겨 있는 자신의 공감각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예술가도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미국의 사진작가 마샤 스밀랙(Marcia Smilack)이다. 그는 시간에 대한 공감각을 지녀 12달을 시계 반대 방향 순서로 배치된 타원형으로, 10년을 푸르스름한 회색빛의 삼차원 직사각형으로, 각 세기(世紀)를 여러 덩어리로 이뤄진 두꺼운 판으로 인식했다. 백문이 불여일견, 그의 작품 ‘주말이 평일보다 크다(Weekends Are Taller Than Weekdays)’를 감상해보자.

00syn11.jpg » 마샤 스밀랙의 ‘주말이 평일보다 크다’. 출처/Wikimedia Commons

위 사진에서 양 쪽의 우뚝 솟은 건물은 주말로서 왼쪽 건물이 일요일, 오른쪽 건물이 토요일을 의미하고, 가운데의 땅딸막한 하얀 부분은 월요일부터 금요일로 나타내는데 이 부분은 동시에 오르간 음악 소리를 내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는 자신의 누리집에서 다양한 공감각을 사진으로 표현하고 자세한 설명을 첨부해 공감각으로 표현된 예술의 이해를 돕고 있다.[14]


공감각에서 비롯한 창조성은 예술가뿐만 아니라 과학자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전기 분야에 지대한 공헌을 한 천재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가 공감각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액체로 채워진 접시에 종이를 떨어뜨리면 항상 입에서 특이하고 불쾌한 맛을 느낀다‘고 언급했다.[15] 특히 그는 좋은 발상이 떠 오르면 일종의 ‘시각화(visualization)’를 통해 실제 작업 없이도 머리 속에서 이미 완성품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물이 바로 교류 전기, 테슬라 코일, 라디오, 유도 전동기, 리모콘이다.

00syn12.jpg » 세르비아의 100 디나르에 담겨 있는 테슬라와 그의 업적. 출처/세르비아 국립은행 누리집

또한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로 손꼽히는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도 역시 공감각을 지녔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는 특히나 시각화에 능숙했는데 이를 이용해 파인만 다이어그램(Feynmann Diagram)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개념을 이해하기 쉽게 표현했다. 수학과 관련해서도 그는 ”베셀(Bessel) 방정식을 보면 ‘j’는 황갈색, ‘n’은 남보라, ‘x’는 고동색으로 보인다”며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보이는지 궁금해했다.[16]

00syn13.jpg » 파인만의 눈에 비친 수학 공식. 출처/각주[17]



어떤 공감각을 추구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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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촉각(mirror-touch) 공감각’이라는 특이 공감각이 있다. 이 공감각을 지닌 사람은 다른 사람의 몸에 가해지는 접촉을 볼 때 이를 자신의 몸에서 느끼며, 두뇌도 역시 자신의 몸을 만질 때처럼 활성화한다.[18] 약 10년 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다모’에서 아파하는 채옥(하지원 분)에게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고 말하며 위로하던 황보윤(이서진 분)이 혹 이 공감각의 소유자일지 모른다. 이들은 타인의 고통도 나의 고통처럼 느끼기에 당연히 뛰어난 공감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공감각은 우리 사회에서 많은 인기를 얻지 못한다. 대신 셰르셉스키의 경우처럼 기억력 향상과 연관된 공감각의 인기가 높다. 부모가 자녀의 공감각을 발달시키려 하고, 수험생이 공감각적 학습법을 시도하는 노력은 세계에서 유래 없는 교육열을 자랑하는(?) 우리 사회에서 당연해 보인다. 셰르셉스키 정도는 아니더라도 공감각을 이용해 기억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시험이나 평가에서 우월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뇌영상 연구에서 알 수 있듯이, 공감각의 신경학적 기전에는 일반인 뇌와는 다른 구조적, 기능적 차이가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정상 범위를 넘어서는 비정상 소견은 좋지 않은 의미로 받아들여지는데 우리 사회에서 공감각은 예외인 것 같다. 그러나 기억력이 좋아지는 공감각으로 무장한다 해도 무한경쟁의 경주에서는 필연적으로 패배자가 발생한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경쟁에서 낙오된 사람의 아픔을 헤아리고 달랠 수 있는 거울-촉각 공감각이지 않을까?


[주]



[1] Brang, D. and V.S. Ramachandran, Survival of the synesthesia gene: why do people hear colors and taste words? PLoS Biol, 2011. 9(11): p. e1001205.


[2] Simner, J., et al., Synaesthesia: the prevalence of atypical cross-modal experiences. Perception, 2006. 35(8): p. 1024-33.


[3] Ramachandran, V.S. and E.M. Hubbard, Synaesthesia?A Window Into Perception, Thought and Language. Journal of Consciousness Studies, 2001. 8(12): p. 3-34.


[4] Saenz, M. and C. Koch, The sound of change: visually-induced auditory synesthesia. Curr Biol, 2008. 18(15): p. R650-R651.


[5] Rouw, R. and H.S. Scholte, Increased structural connectivity in grapheme-color synesthesia. Nat Neurosci, 2007. 10(6): p. 792-7.


[6] Cohen, L., et al., The visual word form area: spatial and temporal characterization of an initial stage of reading in normal subjects and posterior split-brain patients. Brain, 2000. 123 ( Pt 2): p. 291-307.


[7] Weiss, P.H., K. Zilles, and G.R. Fink, When visual perception causes feeling: enhanced cross-modal processing in grapheme-color synesthesia. Neuroimage, 2005. 28(4): p. 859-68.


[8] Esterman, M., et al., Coming unbound: disrupting automatic integration of synesthetic color and graphemes by 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 of the right parietal lobe. J Cogn Neurosci, 2006. 18(9): p. 1570-6.


[9] Hubbard, E.M., A real red-letter day. Nat Neurosci, 2007. 10(6): p. 671-2.


[10] Yaro, C. and J. Ward, Searching for Shereshevskii: what is superior about the memory of synaesthetes? Q J Exp Psychol (Hove), 2007. 60(5): p. 681-95.


[11] Rothen, N. and B. Meier, Do Synesthetes Have a General Advantage in Visual Search and Episodic Memory? A Case for Group Studies. PLoS One, 2009. 4(44): p. e5037.


[12] Luria, A.R., The Mind of a Mnemonist: A Little Book about a Vast Memory. Harvard University Press, 1987.


[13] Rothen, N. and B. Meier, Higher prevalence of synaesthesia in art students. Perception, 2010. 39(5): p. 718-20.


[14] http://www.marciasmilack.com.


[15] Tesla, N., My Inventions: The Autobiography of Nikola Tesla. Martino Fine Books 2011.


[16] Feynman, R.P., “What Do You Care What Other People Think?”: Further Adventures of a Curious Character. Penguin Adult, 2007.


[17] Ottaviani, J. and L. Myrick Feynman. First Second, 2011.


[18] Banissy, M.J. and J. Ward, Mirror-touch synesthesia is linked with empathy. Nat Neurosci, 2007. 10(7): p. 815-6.


2013.10.29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http://scienceon.hani.co.kr/?mid=media&category=90222&page=3&document_srl=133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