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 고문은 어떻게 정신을 황폐화하는가?

2016. 12. 12. 13:38글모음

[4] 정신의학으로 본 고문 피해의 심각성


종합적으로 보면 심한 고문을 받은 뒤 발생한 뇌의 신경회로 이상으로, 외상과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거나 묘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나아가 자신을 자신한테서 분리하는 해리 증상까지 경험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백을 강요하는 고문은 사실 정보를 얻는 데에도 효과적이지 않은 심문 기술이다.

 » » 레온 골럽의 작품, 심문(interrogation) III. 출처/Wikimedia Commons  


난 6월25일 ‘국제 고문 피해자 지원의 날’(26일)을 하루 앞두고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이 땅의 수많은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김근태치유센터)’가 문을 열었다. 2011년 12월30일 파킨슨병을 앓던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세상을 떠난 뒤 고문 피해자와 유족을 비롯해 각계 인사 70여 명이 참여해 기금을 마련하고 설립 추진 과정을 거쳐 세운 김근태치유센터는 고문과 공권력 남용 등 국가폭력의 피해자를 치유하고 지원할 예정이다.[1]


00torture1.jpg » 김근태 전 고문의 생전 모습. 출처/한겨레 자료사진군사정권 치하에서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으로 반독재 투쟁을 벌이던 김 전 고문은 1985년 9월4일 일곱 명의 경찰에 의해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김 전 고문은 515호실에서 22일 동안 폭력혁명주의자, 공산주의자임을 자백하라는 경찰의 강요를 받으며 10차례에 걸쳐 끔찍한 고문을 받게 된다. 당시 고문에 참여한 사람 중 한 명이 악명 높은 ‘고문기술자’ 이근안이다. 이 기간에 고문자들은 김 전 고문을 굶기고, 잠을 재우지 않고, 옷을 벗기고, 성적으로 희롱하는 여러 방법으로 고문했고 심지어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반복해 가하며 허위자백을 받아내려 했다.


김 전 고문은 이후 고문 후유증으로 생긴 많은 질병으로 평생 고통을 받았다. 해마다 가을이면 몸이 먼저 고문 받았던 때를 기억해 심한 몸살을 앓았다고 한다. 또한 물고문의 후유증으로 심한 비염과 축농증을 앓았으나 공포스러운 기억 때문에 수술대에 오르기를 거부해 병을 키웠다. 그리고 치과의 기계소리는 고문 받았던 기억을 자극했기에 치과 진료도 회피해 치아 건강도 좋지 않았다. 아울러 말이 어눌해지고 몸놀림이 둔해지며 손이 심하게 떨리는 파킨슨병으로 평생 육체적 고통을 받았다.



우리나라의 고문 피해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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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2월 국제연합(UN) 총회에서는 만장일치로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되었다. 30개 조항으로 이뤄진 이 선언문 중 5조항은 “어느 누구도 고문을 당하거나, 잔혹하고 비인도적이거나 인간 존엄성을 해치는 처우나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라고 선언하고 있다.[2] 또한 우리나라 헌법 12조 2항은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3]


그러나 고문 방지를 위한 여러 노력이 이어지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한 예로 국제형사재판소의 로마 규정(Rome Statue)은 고문을 ‘인도(人道)에 반한 죄’로 규정하고, 특수한 상황에서는 전쟁범죄로 고발될 수 있음을 천명했지만 2013년 5월 기준으로 아직까지 122개 국가만이 이 규정을 비준하거나 수용했다.[4] 공식적으로도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고문은 여전히 지구 곳곳에서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다.

00torture2.jpg » 녹색과 주황색이 로마 규정을 비준 혹은 서명한 국가들. 출처/ Wikimedia Commons

렇다면 고문은 당한 사람에게 어떤 피해를 줄까? 막연히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겠지 하고 답하기에는 정도나 범위에서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다. 고문이 끼치는 영향은 국적과 민족을 떠나 비극적이지만, 우리나라의 자료가 더 많은 관심과 공감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이를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나라에서는 군사정부 시절과 이후에 고문이 빈번하게 자행된 어두운 역사가 있었지만 고문 피해자의 실태 조사는 2011년이 되어서야 최초로 시행되었다.


2011년 3월부터 10월까지 국가인권위원회의 의뢰로 213명 고문 피해자를 대상으로 시행된 연구결과는 <고문 피해자 인권 상황 실태조사>라는 보고서로 발표되었다.[5] 많은 피해자들이 다양한 질환을 겪고 있었는데 이 중에서 정신질환은 우울증, 양극성 장애(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조현병(정신분열증), 불면증 순으로 조사되었다. 특히 조현병의 진단은 11.3%로 일반인의 평생 유병율인 0.5%보다 매우 높게 나타났고, 23.1%가 진단받은 우울증도 역시 일반인의 평생 유병율보다 4배가량 높은 결과였다.

00torture3.jpg » 고문 피해자들의 앓고 있는 정신 질환. 출처/주 [5] 인용, 변형

또한 이들한테는 고문으로 인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신체화(somatization: 심리적 자극으로 인해 신체 증상이 나타나는 현상), 대인예민성, 우울, 불안, 적대감 증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24.4%나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보고되었는데, 이는 2007년 국민건강요양조사에서 65세 이상 노인 인구 중 실제 자살을 시도해 본 적이 있는 비율인 7.6%보다 4배가량 높은 수치였다. 이렇듯이 고문 피해자들은 일반인에 비해 정신질환으로 고통받기 쉽고 이로 인한 자살 시도도 매우 높음을 알 수 있다.

00torture4.jpg » 고문 피해자들에게서 나타난 심리적 후유증의 위험. 출처/주 [5]

아울러 고문 피해자의 고통은 가족한테도 심리사회적인 스트레스로 작용함이 드러났다. 비록 조사에 참여한 가족의 수가 10명으로 적었지만 모두 ‘완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의 위험 가능군에 해당되었고 사건과 관련한 고통, 사회경제적인 고통, 사회적 지지 부재와 피해자 폭력의 악순환 경험을 매우 힘들게 지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문과 해리 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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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받은 사람이나 그 가족 모두에서 증상의 발생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특징적인 증상은 외상의 재경험, 회피 행동, 부정적인 인지와 기분, 그리고 각성이다.[6] 그런데 극심한 심리적 외상에 노출된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서 마음을 분리한 뒤 고통을 겪고 있는 몸이 자신이 아닌 것처럼 느끼는 이인증(離人症, depersonalization)이나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현실이 마치 꿈이거나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끼는 비현실감(derealization)을 보이기도 한다.


정신의학 용어로 이러한 현상을 해리(解離, dissociation)라 한다. 사전적 정의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의식, 기억, 정체감, 신체 인식, 자신과 주변 환경의 인지처럼 평소에는 통합되어 있던 기능이 방해받고 분열됨을 뜻한다. 한 사람 안에 둘 이상의 구별되는 정체감이나 인격 상태가 존재하는 ‘다중 인격’을 떠올리면 조금 더 쉽게 해리의 개념이 와 닿을 수 있다. 왜냐하면 다중인격의 실제 의학적 진단명은 ‘해리성 정체감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DID)’이기 때문이다.

00torture5.jpg »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겪는 지킬 박사. 출처/ Wikimedia Commons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에게 외상 당시의 상황이 생생하게 정리된 글(narrative)을 읽으면서 당시 기억을 떠올려 보도록 했을 때 약 70%는 심박수가 빨라지면서 외상을 재경험했지만, 30%는 심장박동 변화 없이 이인증과 비현실감을 보였다.[7]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여러 연구에 따르면 자동차 사고나 자연 재해와 같은 우연한 일회성의 외상보다는 아동 학대나 전쟁처럼 지속적으로 반복된 외상을 경험한 환자에서 해리 증상이 더 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8]


와 관련해 2006년 독일의 엘베르트(Elbert) 교수 연구진의 뇌자도(腦磁圖, magnetoencephalography; MEG: 뇌세포의 전기적인 활동을 나타내는 미세한 생체자기를 초전도 코일을 이용해 측정하는 기술)를 이용한 연구 결과는 해리 증상에 대한 신경생물학적 통찰을 제공한다.[9] 연구진은 고문을 심하게 받은 뒤 발생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해 입원해야 하는 피난민 23명(터키인 16명, 옛 유고슬라비아인 6명, 알제리아인 1명)과 일반인 26명을 대상으로 해리 증상의 정도를 측정한 뒤 뇌자도를 이용해 이들의 뇌를 촬영해 비교했다.


실험 결과, 고문 받았던 피난민에서 해리 증상을 많이 경험할수록 좌측 복외측 전두피질(left ventrolateral frontal cortex)과 좌반구 전체(left hemisphere)에서 서파(徐波, slow wave)의 밀도가 비정상적으로 증가했다. 뇌자도를 이용한 많은 연구에서 비정상적인 서파의 생성은 뇌의 병리나 신경 조직의 기능 손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를 이용해 다른 뇌영상 도구가 찾아내지 못하는 구조적 이상이나 기능적 변화를 찾아낼 수 있다.[10]


좌측 전두피질은 언어와 실행 기능을 담당하므로 이 곳에 이상이 발생하면 기억을 저장하거나 기억된 내용을 말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고문 받은 사람들의 경우 이 곳의 신경회로에 이상이 발생해 고문 받을 때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떠 올리거나 이것을 언어화하는 능력이 감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좌반구는 자신의 얼굴을, 우반구는 다른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는 것과 주로 연관되므로[11] 좌반구에 이상이 발생하면 사람은 자신의 얼굴을 낯설게 인식할 수 있다. 종합적으로 보면 심한 고문을 받은 뒤 발생한 뇌의 신경회로 이상으로 인해 외상과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거나 묘사하는 데 어려움을 갖게 되고 나아가 해리 증상까지 경험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심리적 외상을 경험한 뒤에 사건의 재경험이나 과다각성이 나타나는 이유는 활성화된 변연계(뇌에서 주로 감정과 행동, 욕망 등의 조절과 기억에 관여하는 부위)를 뇌의 피질이 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경우에는 이 피질-변연계 억제(corticolimbic inhibition)가 지나치게 일어나 해리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12]

00torture6.jpg » 감정의 조정 부족과 과잉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재경험과 해리 증상. 출처/주 [12]

다시 말해 해리 증상은 공포와 고통으로 점철된 기억에서 발생한 부정적 감정을 자신의 의식에서 떨쳐버리려는 뇌의 필사적인 노력이다. 이를 통해 고문 같은 참혹한 심리적 외상을 경험한 사람이 이후에 다가오는 충격의 여파를 버텨내는 것이다. 그러나 해리 증상으로 인해 정신적 피해가 즉시 발견되지 않거나 외상의 충격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다행히 최근 개정판이 발간된 <정신질환 진단과 통계편람(DSM)>에서 해리 증상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아형(亞型)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많은 환자들이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고문과 미세한 뇌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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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이 끝난 뒤 많은 남부 베트남인은 새로운 공산주의 정부 체제를 배운다는 명목 아래 일종의 정치범 수용소인 ‘재교육 캠프’에 들어갔다. 실질적으로는 감옥과 같았던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수 년 간 고문 등의 비인도적 대우를 받은 뒤에야 풀려나거나 미국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이때 수감자들은 ‘하버드 피난민 외상 프로그램(Harvard Program in Refugee Trauma; HPRT)’을 통해 각종 의학적 검사를 받았고 이 과정에서 자기공명영상(MRI)를 이용한 뇌 검사도 이뤄졌다. 2009년 미국의 몰리카(Mollica) 교수와 한국의 류인균 당시 서울대 교수(현 이화여대 석좌교수) 연구진은 이 뇌영상 자료를 분석해 외상성 머리 손상(traumatic head injury)과 정신 질환과의 연관성을 밝혀냈다.[13]


연구진은 머리를 구타당한 수감자 16명과 그렇지 않은 수감자 26명, 그리고 베트남 일반 재정착자 16명의 뇌영상 자료를 ‘대뇌 피질 두께 분석법(cortical thickness analysis)’와 ‘용적 측정술(volumetric morphometry)’과 같은 최신 뇌영상 기법을 이용해 분석했다. 고문시 머리를 구타하는 경우는 흔하지만 뇌에 흔적이 잘 남지 않고 자기공명영상 촬영에서도 뚜렷한 손상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에 연구진은 촬영한 자기공명영상 사진을 컴퓨터로 확대해 해상도를 높여 미세한 수준의 뇌손상을 살펴봤다.


00torture7.jpg » 노란색이 고문 때 머리를 구타당한 수감자의 뇌 피질에서 얇아진 부위를 나타냄. 출처/주 [13] 구 결과에서 머리를 구타당한 수감자들은 그렇지 않은 수감자들에 비해 뇌의 좌측 배외측 전전두피질(dorsolateral preforntal cortex)과 양측 상측 측두피질(superior temporal cortex) 부위가 더 얇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 부위의 두께가 감소할수록 수감자들이 겪고 있는 우울 증상은 증가하고 있었다. 머리에 충격이 가해지는 고문을 받은 사람들은 많은 정신과적 증상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연구 결과는 머리 손상과 뇌의 피질 두께의 구조적 변화, 그리고 우울 증상의 실제적 연관성을 처음으로 밝힌 측면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머리에 충격이 가해질 때 뇌의 바깥 부위는 두개골 내부와 충돌해 손상이 발생한다. 그러나 손이나 발로 머리를 구타당하는 고문을 받더라도 뇌에 출혈이 생기지 않는다면 이 경우에는 자기공명영상 검사에서 뇌손상이 확인되지 않는다. 이 연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출혈이 없는 미세한 수준(이 연구에서는 밀리미터)에서 뇌손상도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고문 피해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서 고문 피해자의 많은 수(23.1%)가 이 질환으로 고통 받았을 수 있다. 설령 정교한(?) 고문에 의해 눈에 띌만한 뇌손상이 없었더라도 말이다.



고문은 효과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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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미국 법무부는 부시 정부 때 테러리스트 용의자에게 사용한 ‘강화한 심문 기술(enhanced interrogation techniques)’이 상세히 열거된 메모를 공개했고 이는 큰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14] 심문 기술에 수면 박탈이나 물고문도 포함되어 있었으니 이쯤 되면 ‘강화한 심문 기술’이라는 멋진 용어는 단지 고문의 세련된(?) 표현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이처럼 고문을 둘러싼 상반된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문이 널리 자행되는 것은 일반 조사나 심문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에서 출발한다. 조선시대 때 용의자의 자백을 받기 위해 주리를 트는 것처럼 말이다.


00torture8.jpg » 기산 김준근의 ‘기산풍속도’ 중 ‘포청에서 적툐맛고’. 출처/문화콘텐츠닷컴문을 둘러싼 윤리적 논쟁과는 별도로 그 효용성은 어떨까? 2009년 아일랜드의 오마라(O‘Mara) 교수는 한 논문을 통해 극도의 스트레스를 가하는 강압적 심문을 시행해도 심문 받는 사람한테서 믿을만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음을 밝혔다.[15] 그는 실제 실험을 시행하지는 않았지만 관련된 신경생물학적 정보를 논리적으로 정리해 ‘왜 고문 받는 두뇌를 믿을 수 없는지’를 설명했다.


오마라 교수의 주장을 보기에 앞서 먼저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자. 외부에서 스트레스가 발생하면 우리 몸은 이에 대한 반응으로 스트레스 호르몬(코티졸/cortisol과 카테콜라민/catecholamine)을 분비한다. 이 호르몬은 스트레스 상황에 대항할지 회피할지 결정해 우리 몸과 두뇌가 외부 위협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스트레스 호르몬이 장기간 분비되어 ’과각성(過覺醒, hyperarousal: 자극에 대해 정상보다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 상태가 지속되면 오히려 신경세포의 생리적 기능이 떨어지고 심한 경우에는 조직 손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00torture9.jpg »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HPA axis)에 의해 조절되는 인체 내 스트레스 반응. 출처/주 [15] 뇌에서 기억과 실행 기능에 관여하는 부위인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과 해마(hippocampus)에는 스트레스 호르몬에 의해 활성화되는 수용체가 많이 존재한다. 따라서 스트레스가 장기간 지속되면 이 영역이 담당하는 인지 기능의 손상이 유발된다. 실제 미국의 특수전 부대 군인이 음식이나 수면 박탈, 심한 스트레스성 심문을 포함한 생존 훈련을 받은 뒤 시공간 능력(visuo-spatial capacity)과 작업기억(working memory)의 손상 소견을 보이기도 했다.[16]


고문 받는 사람은 극도의 스트레스에 노출된 상태에서 잘 알지 못하는 사건을 반복해서 말하도록 강요된다. 이로 인해 컴퓨터 파일에 새로운 내용을 덧칠하면 과거의 내용이 없어지는 것처럼 고문자가 제공한 정보는 고문 당하는 사람의 기억이 될 수 있다. 즉 고문을 당하는 사람은 진실된 정보가 아닌 고문자의 암시를 앵무새처럼 흉내 내거나 각색해 정보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스트레스 호르몬에 의해 전두피질 기능이 손상되면 고문 당하는 사람은 작화(作話; confabulation: 이야기나 세부 사항을 꾸며내어 기억의 틈을 메우는 것) 증상을 보여 고문 당하는 사람의 진술에서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어렵게 된다. ’강화한 심문 기술‘은 실제로는 ’강화‘되지 않는 것이다.



고문 피해자를 위한 성숙한 사회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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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민주화가 많이 진행된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고문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불행한 현대사에서 수 많은 사람이 고문을 받았고, 지금도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박원순은 저서 <야만시대의 기록>에서 ’고문을 만드는 사회도 반문명 국가이지만, 이미 드러난 고문 피해자를 위해 치유와 배상의 가능성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회는 더욱 반문명적인 사회이다‘라고 지적했다.[17] 고문이 국가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인데도 피해자들을 책임지지 않는 우리의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영원한 동지이자 짝꿍‘인 부인 인재근 국회의원 등이 지난해 12월10일 입법 발의한 ’고문방지와 고문피해자 보상 구제법안‘은 아직도 국회에서 심의 중이다. 또한 현재 국가에서 운영하는 치유센터는 ’광주 정신건강 트라우마 센터‘ 하나뿐이다. 더욱이 최근 정치 지형의 보수화(라고 쓰고 왜곡으로 읽음)로 인해 과거에 자행된 국가 폭력이 정당화되곤 해 국가 폭력 피해자와 가족은 이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척박한 현실에서 ’김근태 치유 센터‘의 개소가 고문 피해자를 비롯해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정신적 고통을 달래주고 나아가 그들을 향한 일반 국민의 이해와 배려가 많아지는 시발점이 되길 희망해본다.



[주]


[1]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93235.html.

[2] http://www.un.org/en/documents/udhr/index.shtml.

[3] http://www.law.go.kr/lsInfoP.do?lsiSeq=61603#0000.

[4] http://www.icc-cpi.int/en_menus/asp/states%20parties/Pages/the%20states%20parties%20to%20the%20rome%20statute.aspx.

[5] 인권의학연구소, <고문피해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2011.

[6] http://www.dsm5.org/Documents/PTSD%20Fact%20Sheet.pdf.

[7] Lanius, R.A., et al., A review of neuroimaging studies in PTSD: heterogeneity of response to symptom provocation, J Psychiatr Res, 2006. 40(8): 709-29.

[8] Lanius, R.A., et al., The dissociative subtype of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rationale, clinical and neurobiological evidence, and implications. Depress Anxiety, 2012. 29(8): 701-8.

[9] Ray, W.J., et al., Decoupling neural networks from reality: dissociative experiences in torture victims are reflected in abnormal brain waves in left frontal cortex. Psychol Sci, 2006. 17(10): 825-9.

[10] Kolassa, I.T., et al., Altered oscillatory brain dynamics after repeated traumatic stress, BMC Psychiatry, 2007. 7: p. 56.

[11] Brady, N., M. Campbell, and M. Flaherty, My left brain and me: a dissociation in the perception of self and others. Neuropsychologia, 2004. 42(9): 1156-61.

[12] Lanius, R.A., et al., Emotion modulation in PTSD: Clinical and neurobiological evidence for a dissociative subtype. Am J Psychiatry, 2010. 167(6): 640-7.

[13] Mollica, R.F., et al., Brain structural abnormalities and mental health sequelae in South Vietnamese ex-political detainees who survived traumatic head injury and torture. Arch Gen Psychiatry, 2009. 66(11): 1221-32.

[14] http://www.aclu.org/accountability/olc.html.

[15] O’Mara, S., Torturing the brain: on the folk psychology and folk neurobiology motivating ‘enhanced and coercive interrogation techniques’. Trends Cogn Sci, 2009. 13(12): 497-500.

[16] Morgan, C.A., 3rd, et al., Stress-induced deficits in working memory and visuo-constructive abilities in Special Operations soldiers. Biol Psychiatry, 2006. 60(7): 722-9.

[17] 박원순, <야만시대의 기록>, 2006.


2013.7.15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http://scienceon.hani.co.kr/?mid=media&category=90222&page=3&document_srl=112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