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 인종차별의 뿌리와 극복 실마리, 뇌영상에서 찾아보니

2016. 12. 9. 17:30글모음

[2] 인종주의와 극복 노력


마찬가지로 우리가 뇌영상을 통해 사람을 볼 때의 뇌 반응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인종주의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면

 » 장-미셸 바스키아의 작품, '행렬(procession)'. 출처/ The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ADAGP, Paris, ARS, New York


'소리 없는 아우성' 인종차별의 분노

마 전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장-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의 작품 전시회가 열렸다. 바스키아는 20세에 화단에 혜성 같이 등장해 28세에 코카인 중독으로 세상을 뜬 미국 화가로, 짧은 기간에 활동했는데도 미국 미술계의 신표현주의 및 신구상 회화의 대표적인 작가로 꼽힌다. 그의 작품은 길거리 문화, 흑인 영웅, 인종의 평등, 만화 주인공, 해부학, 죽음 등을 주로 다루는데, 특히 인종과 관련된 주제에 보인 관심은 아이티인 아버지와 푸에르투리코인 어머니를 둔 그의 출생 배경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의 작품 ‘행렬’을 보고 있으면 미국 흑인이 겪어 온 인종주의의 분노가 강렬하게 느껴진다. 극심한 차별을 겪은 흑인의 두 눈은 분노로 하얗게 불타오르지만, 정작 그들에게는 이를 표현할 통로가 없었기에 바스키아는 역설적으로 작품 속 인물의 입을 그리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마치 시인 유치환이 힘차게 펄럭이는 깃발을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묘사했던 것처럼 말이다.


인종의 생물학적, 생리학적 차이에 따라 인간의 능력이 결정된다는 믿음에 근거를 둔 인종주의는 미국 외에도 많은 나라에서 사회적 폐해를 일으켜 왔는데 한국에서는 어떨까? 순수혈통을 강조하는 우리나라에서 인종주의는 큰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문제일까? 2012년 1월 기준으로 국내 거주하는 외국인 주민의 수는 140만 9577명으로 전체 인구의 2.8% 해당되며,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이다.1) 이는 이제 단일민족의 신화에서 벗어나 다문화주의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점차 중요해짐을 의미하며, 또한 그 과정에서 부딪히게 될 인종주의에 대한 준비도 역시 필요함을 시사한다.



다른 인종을 볼 때 증가하는 뇌 활동

00line.jpg

어릴 적에 지방 소도시에서 성장한 나는 지역 특성상 외국인을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외국인이란 그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드물게 길에서 외국인을 만나면 신기한 마음에 친구들과 그 뒤를 살금살금 밟다가도, 외국인이 우리를 쳐다보거나 말을 건네면 갑자기 무서워져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곤 했다. 그 시절 봉변(?)을 당한 외국인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의 철없던 행동은 익숙하지 않은 대상이 주는 호기심과 공포에서 비롯했던 것 같다.


요즘은 서울에 살다 보니 어릴 적에 비해 외국인을 만날 기회가 많다. 이제는 자랑스럽게도(?) 도망가지 않을 뿐더러 대화할 때 상대의 눈을 계속 응시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해낸다. 하지만 가끔 외국인 환자가 병원을 방문하면 '정동'을 살필 때에 어려움을 겪곤 한다. 정동(情動, affect)이란 환자의 생각이나 심리적 표상에 동반된 직접적이고 주관적인 정서 경험으로서, 정신과 영역에서 환자의 정신 상태를 평가할 때 주요 항목 중 하나이다. 아무래도 외국인 환자를 접한 횟수가 적기 때문에 환자를 파악할 때 정동의 적절성 여부나 둔화 정도를 살피는 것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것이다.


외국인의 표정을 읽는 것과 관련해 2008년 한국의 이경욱 교수 연구진은 한국 사람이 내국인과 외국인을 볼 때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봤다.2) 연구진은 13명의 실험 참가자들이 한국인과 서양인의 행복, 슬픔, 중립 얼굴 표정을 각각 30장씩 보는 동안에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unctional MRI, fMRI)을 이용해 뇌의 활성도를 측정했다. 실험 결과, 같은 인종의 행복하거나 슬픈 표정을 볼 때에는 편도(amygdale), 해마(hippocampus), 부해마(parahipocampus), 측두엽(temporal lobe)의 활성도가 증가했다. 반면에 다른 인종의 표정을 볼 때에는 중전두회(middle frontal gyrus), 설회(lingual gyrus), 중심후회(postcentral gyrus), 하두정소엽(inferior parietal lobule)의 활성도가 증가했다.

00brain2_2.jpg » 얼굴 표정을 볼 때 뇌의 활성도 차이. 좌측: 같은 인종, 우측: 다른 인종. 출처 /각주[2]

종합해 살펴보면, 같은 인종의 얼굴을 볼 때에는 편도, 해마 등 감정 처리에 관여하는 뇌 영역이 활성화한다. 반면에 다른 인종의 얼굴을 볼 때에는 전두엽, 후두엽 및 두정엽 등 인지, 시각, 운동에 관여하는 뇌 영역이 활성화한다. 즉 같은 인종을 볼 때에는 감정 반응이 자동적으로 나타나 쉽게 상대의 감정을 파악할 수 있지만, 다른 인종의 경우 상대의 감정을 읽기 위해 인지적 해석 과정이 추가로 필요한 것이다. 결국 다른 인종의 얼굴 표정을 읽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머리를 더 많이 써야 함을 의미한다. 내가 외국인 환자의 정동을 파악하기 어려웠던 것은 정신과 의사로서 자질 부족이 아니었다니 다소 안심이 된다.



다른 인종을 대하는 명시적/암묵적 태도

00line.jpg

요즘은 머리를 빡빡 밀고 다니는 스킨헤드(skin head)족이나 케이케이케이(KKK) 단원이 아니면 공개적으로 인종주의를 표방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는 인종주의 문제가 심각한 서구 사회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예를 들면 2010년 김태영 국방부 장관이 회의 도중에 내뱉은 ‘무식한 흑인’이란 표현은 큰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고, 이에 김 장관은 ‘부적절한 표현’이었다며 공식 사과를 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사적인 자리나 익명성이 보장되는 누리집에서는 여전히 인종주의가 여과 없이 표현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머리로는 인종주의를 배격하고 다른 인종에 대한 편견이 없다고 말하지만, 직접 다른 인종과 부딪히는 상황에 놓이면 인종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구체적인 예로 2006년 한 신문의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보자. 당시 미혼 남녀 347명 중 64.8%인 225명이 혼혈인과 결혼할 수 있다고 답했지만 인종에 대한 선호도에는 큰 차이를 나타냈다.3) 백인계 혼혈인에 대한 선호도는 64.3%였지만, 황인계에 대해서는 25.6%로 급격히 낮아졌고, 흑인계에 대해서는 백인계 선호도의 10분의 1에 불과한 6.1%에 지나지 않았다.


다른 인종에 대해 우리의 머리와 가슴이 다르게 반응하는 것을 심리학 용어로 바꿔 표현하면 명시적 태도와 암묵적 태도라 할 수 있다. 명시적 태도란 개인이 의식적으로 쉽게 외부로 드러내는 태도로서 직접적으로 표현되거나 질문에 공개적으로 답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반면 암묵적 태도란 개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자동적인 태도로서 쉽게 드러나지 않고 심지어 의식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특징을 갖는다.


앞서 언급한 설문조사에서 참여한 사람이 자기보고식(自己報告式) 질문지에 답변을 차례차례 해나가던 중 불현듯이 자신이 인종주의자로 비춰지는 것을 두려워해 방어적으로 응답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명시적 태도에 바탕을 둔 조사 결과는 인종주의에 대한 현실과는 동떨어진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최근 연구에서는 무의식적이고 통제되기 어려운 암묵적 태도를 암묵적 연합 검사(Implicit Association Test, IAT) 등을 이용해 함께 측정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인종과 관련된 뇌 반응의 기전

00line.jpg

인간의 뇌는 인종을 어떻게 인식하고 이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정하는 것일까? 2012년 발표된 한 논문은, 기존의 여러 논문을 살펴보니 대부분 방추상회(fusiform gyrus), 편도체(amygdala), 전측 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d cortex; ACC), 배외측 전전두피질(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 DLPFC)에서 뇌 활성도가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4) 뇌의 각 영역의 일부 기능만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방추상회는 사람 얼굴을 인식하는 역할을 하는데 예를 들면 친숙한 얼굴과 친숙하지 않은 얼굴을 구분하거나 사람 얼굴과 사물의 차이를 구별하는 데에 관여한다. 편도체는 감정 조절의 중추로, 특히 공포에 대한 학습 및 기억과 같은 공포 처리를 주로 담당한다. 전측 대상피질은 불확실하거나 갈등이 있는 상황일 때 이를 관찰하는 역할을 한다. 배외측 전전두피질은 정보에 의지해 주로 논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인지적 기능을 수행한다.
00brain2_3.jpg » 인종 관련 뇌영상학 연구에서 자주 언급되는 뇌 영역들. 출처/ 각주 [4]  
길을 가다가 반대쪽에서 걸어오는 사람을 보면(물론 뇌영상 실험에서는 MRI 기계에 누워 컴퓨터 화면에 나타나는 얼굴을 보는 것이지만) 먼저 방추상회가 활성화하면서 얼굴 인식과 함께 색채 정보도 처리해 그 사람이 같은 인종인지 또는 다른 인종인지 파악한다. 이어서 편도체는 뇌에 들어온 인종 정보를 자동적으로 평가하는데, 이때 활성화 정도는 암묵적 연합 검사를 통해 나타난 다른 인종에 대한 무의식적 평가와 연관성을 띈다.5) 즉 인종주의를 갖고 있는 사람이 다른 인종의 얼굴을 보면 평소의 편견으로 인해 불안, 공포와 같은 감정을 많이 느껴 편도체가 더 활성화하는 것이다.


자신과 다른 인종을 볼 때 자동적으로 의식 저 밑에서 솟아오르는 편향된 시각은 다른 인종에 대해 편견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의식적인 노력과 충돌하는데, 양자 사이의 갈등을 찾아내는 역할을 전측 대상피질이 담당한다. 또한 이렇게 반대되는 갈등이 인식되면 배외측 전전두피질이 부정적인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 활성화하고, 연결된 신경망을 통해 흥분해 있는 편도체의 활성도 조절에 관여한다.6) 결과적으로 다른 인종을 볼 때 의도하지 않게 활성화한 감정 반응이 이보다 상위에 있는 합리적, 이성적 조절을 통해 통제되는 것이다.



인종주의 극복의 실마리 찾기 

00line.jpg

어릴 적에 시계의 작동 원리를 알면 고장이 났을 때에도 쉽게 고쳤던 기억이 있다. 마찬가지로 뇌영상을 통해 사람을 볼 때의 뇌 반응을 이해하면 인종주의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면 편도체 활성화는 공포나 불안과 연관되므로, 이런 부정적 감정을 줄일 수 있다면 인종에 대한 편견도 감소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실제 불안장애에 흔히 처방되는 프로프라놀롤(propranolol)이란 약물을 복용하면 불안한 감(gut feeling)이 감소해 무의식적인 인종주의 편견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7)


그러나 인종주의 극복을 위해 모든 사람에게 약물을 처방하는 방법은 비현실적이므로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먼저 편도체 활성화를 조정하고 통제하는 것이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인지적 접근을 통해 암묵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인종주의를 의식적으로 조절하는 이 방법은 사회에 만연한 편견을 극복하려는 개인적 노력에 해당된다.


○ 개인적 노력 1 : 온전한 개인으로 대하기

2005년 미국의 휠러(Wheeler) 교수 연구진이 7명의 백인 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인지적 노력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8)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백인과 흑인의 사진을 보여주고 2초 동안 사진 속의 인물에 대한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도록 한 뒤 그들의 뇌 반응을 살펴봤다. 질문은 각각 사진 속의 인물이 21살 이상일지, 얼굴의 어디에 회색 점이 있는 지, 그리고 어떤 종류의 야채를 좋아할지 묻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실험 결과 참가자들이 사진 속 흑인의 나이를 고민할 때에만 백인을 볼 때에 비해, 편도체가 더 활성화했다.


사실 실험에서 각각의 질문이 의도한 바는 이러했다. 참가자들이 사진 속 인물을 나이로 구분하는 것은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분류하는 사회적 범주화(categorization)를 유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굴에서 점을 찾는 것은 참가자들이 얼굴에서 사회적 의미를 찾지 않고, 단지 단순한 시각 과제로 처리하도록 이끄는 것이었다. 아울러 좋아하는 야채를 물어보는 것은 참가자들이 사회적 개별화(individuation), 즉 사진 속 인물을 자신만의 기호와 선호를 갖고 있는 온전한 개인으로 대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00brain2_5.jpg » 범주화할 때 나타나는 편도체 활성화가, 개별화와 시각 과제에는 나타나지 않음. 출처/각주 [8]

사람을 봤을 때 성별, 나이, 빈부 등의 겉으로 보이는 객관적 기준으로 나누는 것은 사회적 범주화인데 인종도 이 기준에 해당된다. 이 경우에 평소의 편견이나 고정관념으로 인해 자신과 다른 대상에게는 부정적 감정을 느껴 편도체가 더 활성화한다. 그러나 사람의 외양이 아닌 내면(예를 들면 '어떤 야채를 좋아하는지')에 주목하는 사회적 개별화의 경우에는 편도체 활성화를 억제해 인종주의에 빠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물론 사람을 망막 세포에 인식된 단순한 시각적 자극으로 처리해도 편도체 활성화가 두드러지지 않겠지만 사람을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 개인적 노력 2 : 역지사지

또 다른 인지적 노력으로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수용(perspective taking)을 갖추는 것이 인종주의 극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한 연구에 의하면 인종 차별을 경험하는 사람의 비디오 영상을 시청할 때 상대방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수용하려 노력한 참가자들은 객관적으로 머무르려 노력한 참가자들에 비해 덜 편견에 치우쳤다.9) 아울러 이러한 관점 수용은 실제 일상 생활에서 다른 인종간의 상호관계를 호전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만, ‘관점 수용’이란 단어가 낯설다면 한자 성어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어떤가? 1960-70년대 많은 광부와 간호사가 독일에서 일을 하며 외화를 벌어오던 시절이 있었다. 독일인이 꺼려 하는 막장 작업이나 거즈로 시체 닦는 일을 하며 고생하던 그들을 더욱 힘들게 한 것은 다름아닌 인종 차별이었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 이주 노동자들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나? 우리의 이전 세대가 독일에서 인종주의 피해를 입은 것을 알면서도, 이주 노동자를 무시하고, 냉대하고, 차별하고 있다. 아픈 역사가 있기에 더 많이 역지사지할 수 있는데도 오히려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 못하듯이 더 많이 이주 노동자를 차별하고 있다.


최근 여성가족부에서 발행한 자료에 따르면 결혼 이민자와 귀화자의 41.3%가 사회적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10) 우려되는 부분은 차별을 경험한 정도가 국적에 따라 다르다는 점이다. 동남아시아 지역 출신은 50% 이상에서 차별을 경험한 반면, 미국과 일본 출신은 30% 이내에서 차별을 경험했다. 이는 국적 혹은 외모에 따라 사람을 달리 대하는 우리 사회의 비틀어진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로 인해 <케이비에스(KBS)> 프로그램 ’안녕하세요‘에서 한 청년이 자신은 순수(?)한국인인데도 자신의 외모로 인한 고민을 털어놓는 일도 있었다.

00brain2_6.jpg » 한 방송 출연자는 단순히 외모로 인해 이주노동자로 오해를 받고 사람들한테서 무시당했다고 말한다. 출처/ KBS



인종주의 해결, 사회적 접근의 필요성

00line.jpg

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9Karl Paul Reinhold Niebuhr)는 1900년 초반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등을 겪으면서 그의 책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도덕적 개인으로 구성된 사회가 왜 비도덕적으로 되는지 탐구했다. 그는 개인의 윤리의식을 고양할지라도 이것이 집단의 도덕성으로 발휘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차원에서 여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록 딱 들어맞지는 않지만 인종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인 차원의 노력뿐 아니라 사회의 노력도 필요함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인종주의 극복을 위한 사회적 노력과 관련해 일부에서는 회의론이 존재할 수 있다. 진화심리학의 입장에서 보면 다른 인종을 접할 기회가 제한되었던 과거와 달리 교통 수단의 발달로 가능해진 다른 인종과의 접촉이 불안, 공포를 유발해 편도체를 활성화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일부 사람들은 이를 바탕으로 유사한 인종과만 어울려온 인간이 다른 인종을 접하게 되면서 무서워하거나 불안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인종주의가 선천적이며 인간의 뇌에 내장되어(hardwired)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미국의 코미디센트럴 방송의 코미디쇼인 <키 앤 필(Key and Peele)>에서는 이미 죽은 좀비조차 인종 차별을 하는지도 모른다.


코미디이기에 더욱 공감을 자아내는 좀비의 인종주의. 출처/ Comedy Central


○ 사회적 노력 1 : 편견과 고정관념 줄이기

00brain2_7.jpg » 약 14세 이후부터 유의미하게 나타나는 흑인 얼굴에 대한 편도체 활성화의 양상. 출처/각주 [11] 그러나 2013년 미국의 텔처(Telzer) 교수 연구진에 의하면 다른 인종을 대하는 두뇌의 반응은 선천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11) 연구진은 다양한 인종으로 이뤄진 4-16세 어린이 및 청소년 32명이 백인과 흑인의 사진을 보는 동안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해 이들의 편도체 활성도를 측정했다. 실험 결과, 성인을 대상으로 한 이전의 여러 연구와 비슷하게 흑인 얼굴을 보는 동안에 편도체 활성화가 나타났지만, 그 활성화의 정도는 나이에 비례했다. 특히 신뢰 구간을 고려하면 나이별로 다른 편도체의 민감도는 어린이에서는 보이지 않고 청소년기 이후에만 나타났다.


이런 실험 결과는 다른 인종을 볼 때 무의식적으로 활성화하는 편도체의 반응이 출생 때부터 내재되어 있지 않음을 시사한다. 대신에 어린이가 성장하면서 사회적 관습을 내면화하는 중에 체득한 인종 편견과 고정관념이 편도체의 반응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를 뒤집어서 생각하면 사회에서 인종주의의 어두운 그늘을 걷어냄으로써 인간의 뇌를 편견 없는 밝은 상태로 빚어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인종주의는 사실 대중문화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대중문화에 깃들어 있는 편견은 대중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 예를 들면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깡패, 악당, 사기꾼이 주로 사용하는 전라도 사투리는 은연 중에 전라도 사람에 대한 편견을 조장한다.12) 물론 프로그램의 사실감을 살리기 위해 사투리가 쓰인 경우가 많았지만 이는 의도하지 않게 기존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보편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중문화에서 인종주의를 조장할 수 있는 내용은 특히 주의하고 지양할 필요가 있다.


○ 사회적 노력 2 : 인종간 접촉 늘리기

인종주의 극복을 위한 사회적 노력의 또 다른 일환으로 다른 인종과 어울리고 교제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야 한다. 앞서 언급한 텔처 교수의 연구에서 추가로 이뤄진 분석에 의하면 참가자들 친구의 인종 다양성이 증가할수록 흑인 얼굴에 반응하는 편도체의 활성도가 감소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어린이의 친구들이 동일 인종이 아닌 다양한 인종 집단일수록 어린이들은 다른 인종을 볼 때 편견에 덜 치우치게 된다.

00brain2_8.jpg » 친구의 다양성이 증가할수록 감소하는 흑인 얼굴에 대한 편도체 활성도. 출처/ 각주 [11]

주목할 부분은 이웃의 인종 다양성 자체가 편도체의 활성도에 영향을 주지는 못하는 점이다. 이는 아이들 주변에 다른 인종이 단순히 살고 있는 것만으로는 사회 관습을 받아들이면서 갖게 되는 인종적 편견에서 벗어나기 어려움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이들이 다른 인종인 친구와 직접 부딪히고, 교제하고, 어울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무려 515개의 연구 결과를 메타분석(meta analysis; 비슷한 주제에 대한 여러 연구들을 종합하고 비교하여 그 주제에 대한 종합적 결론을 내기 위해 사용하는 통계적 방법)한 연구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13) 다른 집단과 접촉이 잦을수록 집단 간 갈등이나 편견이 감소하지만 이는 단지 학교와 같은 한 장소에 학생들을 모아 놓는 것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대신에 학생들로 하여금 같은 목표를 갖고 이를 이루기 위해 서로 협력하고, 상대를 동등하게 대하며, 긍정적이고 비경쟁적인 관계를 맺어나가도록 이끄는 것이 필요하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

00line.jpg

처음 병무청에서 군복무를 하던 시절에 신체등급 판정 기준 중에서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다. 겉모습으로 쉽게 알아챌 수 있는 명백한 혼혈인은 징병검사를 실시하지 않고, 제2국민역(현역, 보충역, 예비군 복무 면제)으로 편입하는 내용이었다. 내부 기준을 알아보니 ‘외관상 식별이 명백한‘의 정의는 부모가 백인 혹은 흑인일 경우만 해당되었다. 즉 대한민국 국민으로 20년 동안 살았더라도 ’윤수일‘ 혹은 ’박일준‘ 같은 사람은 어느 건강음료 광고의 유명한 문구처럼 “꼭 가고 싶습니다”라 해도 국방의 의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시대적 요청에 따라 병역법이 개정되면서 2011년 징병검사 때부터 1991년 이후 출생한 혼혈인은 일반(?) 한국인 수검자와 동일한 징병검사를 받는 것으로 바뀌었다. 물론 법률이 통과되기까지는 혼혈인의 적응 여부와 군대의 통일성 저해에 대한 염려가 많이 있었다. 또한 명백한 혼혈 외모로 면제를 받는 사례가 해마다 10건 이하였기 때문에 법률 개정의 현실적 의미가 미미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군필‘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고려하면 단지 얼굴 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당연하게 여겨 온 차별 관행을 바로잡은 것은 인종주의의 극복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사회의 고정관념에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순수혈통, 단일민족을 강조하고, 백인으로 대변되는 서구 문명에 대한 동경이 다른 인종에는 상대적 차별로 표출되는 한국 사회에서 인종주의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꾸준히 증가하는 외국인 거주민과 빈번해진 다른 인종과의 접촉으로 설명될 수 있는 다문화사회와 국제화 물결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종주의라는 과거의 유령에 사로잡혀 있다면 이는 큰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여러 서구 국가들이 인종주의의 해결을 위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 왔다.

00brain2_10.jpg » 인종의 피부색은 달라도 심장 생김새는 같음. 출처/Benetton Group

인종과 관련해 흔히 간과하는 것은 비록 눈동자색, 피부색, 머리색, 외양은 달라도 모든 인간은 동등하고, 평등하며, 그 존재만으로 존엄성을 지니고 있는 점이다. 베네통 광고에서 볼 수 있듯 그 누구도 심장 만으로 인종을 구분할 수 없고, 이는 뇌영상을 통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의 얼굴을 볼 때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여주는 뇌영상학은 동시에 인종주의의 극복을 위한 해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가 다른 인종을 넉넉히 품고 배려하며 그들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1) 안전행정부, 2012년도 지방자치단체별 외국인주민 현황 통계. 2012.

2) Lee, K.U., et al., Distinct processing of facial emotion of own-race versus other-race. Neuroreport, 2008. 19(10): p. 1021-5.

3) http://news.donga.com/3/all/20060113/8265763/1

4) Kubota, J.T., M.R. Banaji, and E.A. Phelps, The neuroscience of race. Nat Neurosci, 2012. 15(7): p. 940-8.

5) Phelps, E.A., et al., Performance on indirect measures of race evaluation predicts amygdala activation. J Cogn Neurosci, 2000. 12(5): p. 729-38.

6) Cunningham, W.A., et al., Separable neural components in the processing of black and white faces. Psychol Sci, 2004. 15(12): p. 806-13.

7) Terbeck, S., et al., Propranolol reduces implicit negative racial bias. Psychopharmacology (Berl), 2012. 222(3): p. 419-24.

8) Wheeler, M.E. and S.T. Fiske, Controlling racial prejudice: social-cognitive goals affect amygdala and stereotype activation. Psychol Sci, 2005. 16(1): p. 56-63.

9) Todd, A.R., et al., Perspective taking combats automatic expressions of racial bias. J Pers Soc Psychol, 2011. 100(6): p. 1027-42.

10) 여성가족부, 2012년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 2013.

11) Telzer, E.H., et al., Amygdala sensitivity to race is not present in childhood but emerges over adolescence. J Cogn Neurosci, 2013. 25(2): p. 234-44.

12) 방송위원회, 방송언어 조사자료집. 2005.

13) Pettigrew, T.F. and L.R. Tropp, A meta-analytic test of intergroup contact theory. J Pers Soc Psychol, 2006. 90(5): p. 751-83.



2013. 04. 26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http://scienceon.hani.co.kr/?mid=media&category=90222&page=4&document_srl=95259#footnote_src_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