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 기인으로 비친 어느 수집장애 노인의 죽음

2016. 12. 9. 16:50글모음

DSM-5 한글 번역본에서는 hoarding disorder를 수집광으로 번역했다.

다른 강박관련 장애는 모두 OO 장애, 이렇게 번역했으면서.

이유는 잘 모르겠다. -_-



[1]소비와 소유를 통해 공허와 불안을 채우는...



»온갖 잡동사니로 둘러싸인 에드먼드 트레버스의 


2002 년 영국 헤링게이에 있는 요양원에서 한 노인이 83세로 숨을 거두었다. 그저 평범한 노인의 죽음이었을 수도 있지만 여러 일간 신문에 부고 기사가 실렸고, <비비시(BBC)> 방송에서는 한 시간 분량의 관련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노인의 이름은 에드먼드 트레버스(Edmund Trebus)로, 약 3년 전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기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다뤄져 유명해진 인물이었다. 당시 방송에선 침실이 다섯 개가 있는 자기 집과 정원을 오래된 냉장고, 부패한 옷, 두꺼운 판유리, 부서진 비스킷 상자, 그리고 동네에서 모은 잡동사니로 가득 채운 그의 기행에 소개됐다.


그가 모은 물건의 양은 일반의 상상을 초월했다. 예컨대 정원은 그야말로 쓰레기로 가득 차, 정작 집주인인 그는 사다리를 이용해 집에 드나들었을 정도였다. 잠깐만 상상해봐도,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에 눈살이 찌푸려지고, 진동하는 썩는 냄새로 코를 막게 되고, 들끓는 쥐떼 때문에 골치 아프게 되니 만약 이런 사람이 이웃에 산다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그를 다룬 방송은 <오물의 삶(A Life Of Grime)>이란 제목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아래 동영상)으로, 비비시가 1999년부터 2006년까지 방영했는데 트레버스는 이 프로그램이 낳은 가장 유명인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제목에서 떠올릴 수 있듯이 온갖 잡동사니를 수집하거나 엄청난 수의 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의 다소 불쾌하고 괴상한 삶을 다뤘는데, 진행 방식은 차이가 있지만 현재 미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는 <호더스(Hoarders)>나 <호딩: 산 채로 묻혀(Hoarding: buried alive)>같은 프로그램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시작할 때 루이 암스트롱이 매력적으로 부르는 ‘왓 어 원더풀 월드(What a wonderful world)’가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온다는 점이다. 이 얼마나 재치있는 반어적 도입부인가.





아직 낯선 질환: 수집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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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세상에 이런 일이> 또는 <긴급출동 SOS>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트레버스와 비슷한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보통 그 정도가 심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저 한 번 웃음을 자아내는 기인(奇人)으로 여겨지겠지만 일부 경우에는 일상 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끼쳐 여러 관계자들이 나서 문제를 해결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런 행동은 아직 낯선 개념이고, 모으고 거두어 들이는 행위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호딩(hoarding)’을 어떻게 번역할지조차 의견이 분분한 게 현실이다. 우리말 사전을 보면, 축장(蓄藏), 저장(貯藏), 비축(備蓄), 축적(蓄積), 수집(蒐集) 같은 여러 낱말들이 후보 물망에 오르는데 일단 이 글에서는 ‘수집’으로 번역하고자 하며, 그래서 병적인 소견을 의미하는 ‘hoarding disorder’는 자연스럽게 ‘수집장애’로 부를 계획이다.


수집장애의 사전적 정의는 여러 가지 물건을 쌓아놓고 버리지 못해 결국 쓸모 없는 잡동사니를 소유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식사, 수면, 청소와 같은 개인의 일상 생활에 제약이 발생하고, 위생 상태가 나빠져 건강이 위협받으며, 나아가 화재나 다른 응급상황 발생시 집에서 탈출하기가 어려워지는 문제가 생긴다. 이 질환의 발병률은 연구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나지만 대개 일반 인구의 약 5%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 여러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수집장애의 사례가 극단적이기 때문에 흔하지 않은 듯이 보이지만 사실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질환을 겪고 있다.

00brain13.jpg » 2013년 2월 7일 SBS ‘세상에 이런 일이’ 에서 방송된 ‘정글에 사는 가족’편의 일부 장면. 출처/ SBS



강박장애의 일종? 다른 정신질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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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수집장애가 강박장애의 아형(亞型)으로 여겨졌다. 강박장애 환자들이 반복적으로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체크하고 확인하는 것처럼 수집장애 환자들이 물건을 수집하고 저장하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실제 강박장애와 수집장애의 일부 증상은 겹치기도 하지만 최근 10여 년 간 수집장애에 관한 많은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점차 둘을 다른 두 질환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두 질환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강박장애 환자는 자신의 강박적 사고나 행동에 대해 괴로워하고 짜증스러워하는 반면에, 수집장애 환자는 수집 행위를 즐기면서 안도감을 느끼는 특성을 보인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강박 증상의 심각도는 변동하지만, 수집 행위는 점차 악화하는 경향이 있다. 인지적 측면에서도 강박장애 환자의 경우에는 공포, 책임감의 과대평가, 그리고 완벽주의가 특징이라면, 수집장애 환자는 정보 처리(예를 들어 의사결정, 범주화, 조직화 등)에서 어떤 결함을 보인다. 치료 반응에서도 차이를 보이는데, 강박장애의 약물 치료에 주로 쓰는 선택적 세로토닌 흡수 억제제(Selective Serotonin Uptake Inhibitor: SSRI)가 수집장애의 치료에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2)


00brain14.jpg » <DSM> 4판을 기준으로 하면 19년 만에 새로운 개정판이 발간되는 <DSM> 5판. 출처/ http://psychnews.psychiatryonline.org 이에 따라 한 달 뒤면 새롭게 발행될 <정신질환 진단과 통계 편람(DSM: Diagnostic and Sta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에서도 수집장애는 강박장애의 아형이 아닌 별도의 질환으로 등재될 예정이다. 정신과 질환을 치료하는 의사로서는 이런 흐름이 매우 긍정적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명확한 질환 명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는 이에 대한 진단과 치료도 역시 불명확해지는 경향이 있고, 환자나 가족들도 질환인지도 모른 채 잘못된 방법으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 앞에서 ‘hoarding’을 번역하는 용어를 선택할 때 의도적으로 현재 가장 많이 쓰이는 ‘저장강박’이란 말을 피한 것이다.






수집장애 뇌영상: 의사결정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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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수집장애와 강박장애의 생물학적 차이는 뇌영상학을 이용한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2012년 미국의 톨린 교수 연구진은 수집장애의 핵심 병리인 의사 결정, 즉 물건을 버릴 것인지 말 것인지 의사결정할 때의 뇌 반응을 강박장애 환자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비교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3) 연구진은 먼저 광고를 통해 수집장애 43명, 강박장애 31명, 일반인 33명을 모집했고 연구실에 올 때 집에서 전단지나 신문을 가지고 오도록 했다. 또한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가 가지고 온 것과 유사한 종이 꾸러미를 준비했다.


실험은 참가자들이 자기공명영상(MRI) 기계에 누워 컴퓨터 화면에 나타나는 자신들의 전단지나 신문 또는 다른 사람들의 종이 꾸러미를 본 뒤 6초 이내에 이 물건을 간직할지 혹은 버릴 지 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미 예행연습을 거친 참가자들은 간직하기로 결정한 물건을 돌려받지만 버리기로 결정한 물건은 바로 눈앞에서 파쇄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아울러 참가자들은 뇌영상 촬영 전에 여러 질문이 담겨 있는 설문지를 직접 작성하는 자기보고식(自己報告式檢) 검사를 수행했고, 촬영 후에는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에 느꼈던 감정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실험 결과, 수집장애 환자들은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자기 물건을 덜 버리는 결정을 내렸고, 실험을 수행하는 동안 더 많은 불안, 슬픔, 우유부단을 느낀 것으로 보고했다. 또한 뇌영상 촬영 결과에서는 그들 두뇌의 전측 대상 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 ACC)과 섬엽(insula) 영역에서 독특한 형태의 활성화가 관찰되었다. 수집장애 환자들이 자기 것이 아닌 물건에 대해 결정을 내릴 때에는 두 두뇌 영역의 활성도가 낮았지만, 자기 물건에 대해 결정을 내릴 때에는 반대로 활성도가 높게 나타난 것이다.

00brain15.jpg » 실험 참가자들이 자신들 혹은 타인들의 물건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 나타나는 뇌의 활성화 양상. 출처/ [각주3]

전측 대상 피질은 두뇌에서 불확실성과 갈등을 추적 관찰하거나 의사결정, 범주화, 딱지(라벨) 붙이기 같은 인지 과정을 담당하고, 섬엽은 내부 감각, 불쾌한 기분의 인식, 위험 혹은 불확실성 평가, 정서 지각 등에 관여하는 영역이다. 이 두 영역은 함께 오류를 관찰하고, 위험을 평가하며, 분노나 혐오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처리하는 기능적 연결망(連結網)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이 영역들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수집장애 환자들은 자신의 물건을 간직할지 버려야 할 지 결정해야 할 때, 불확실성으로 인해 과장된 위험과 잘못된 결정을 내릴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공포를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즉 수집장애 환자는 ‘뭔가 잘못되고 있다’란 느낌과 함께 의사결정 과정의 결함으로 인해 물건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원인, 심리적 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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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심리학의 측면에서 보면, 수집하고 저장하는 행동은 사냥을 통해 음식을 구하던 시절에 남은 음식물을 비축하던 데에서 비롯한 인간의 생존 본능이다. 하지만 생존에 필수적인 저장과 불필요한 잡동사니의 수집 사이에는 분명 큰 차이가 있다. 과연 무엇이 수집장애 환자로 하여금 자신의 물건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하게 하는 것일까?


한 연구에 따르면 스트레스나 심리적 외상이 수집장애와 연관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일시적인 발병이나 악화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4) 심리적 외상이 다양한 정신과적 문제를 유발하는 것을 고려하면 수집장애 환자의 50.7%가 주요 우울증, 24.4%가 범불안장애, 23.5%가 사회 공포증 등 여러 다른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것은5) 어쩌면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앞서 소개한 영국인 에드먼드 트레버스를 통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그는 폴란드 태생으로 어릴 적에 그의 아버지가 얼어붙은 호수에서 숨지는 아픔을 겪었고, 이어 20대 초반에 히틀러가 이끄는 독일 군대가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 갖은 폭력과 고초를 당했다. 또한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방영된 여성의 경우(위 사진 참조), 첫째 아들이 증상이 심한 자폐아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이 아이엠에프(IMF)의 구제금융 시절에 실직하며 받은 퇴직금을 일순간에 날려버린 뒤 경제적 고통을 겪었다. 이외에도 많은 수집장애 환자들이 다양한 종류의 심리적 외상(예컨대, 부모-자녀 관계 단절, 성폭행,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보고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많은 수집장애 환자들이 자신들이 모아놓고 버리지 못하는 물건에 대해 큰 애착을 보이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열심히 모아놓은 물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지고, 이를 통해 심리적 외상으로 상처받은 자신의 삶이 치유된다는 것이다. 즉 물건이 자신의 지치고 공허한 마음을 위로하고 채워주기 때문에 수집장애 환자는 물건의 안녕과 복지에 책임감을 느끼게 되고, 나아가 자신의 감정을 물건에 이입하게 된다.



수집장애 뇌영상: 감정 이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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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해서 수집장애와 관련한 뇌영상 연구를 하나 더 살펴보자. 2008년 한국 연세대 안석균 교수는 영국 연구진과 함께 수집 증상이 있는 강박장애 환자 13명, 수집 증상이 없는 강박 환자 16명, 그리고 일반인 21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6) 연구진은 수집장애 환자들이 버리지 않고 모아온 오래된 잡지, 신문, 빈 깡통, 옷, 장난감 등의 사진을 실험 참가자들에게 보여줬다. 이어서 그들이 “당신 소유인 이 물건을 영구적으로 버려야 한다”라는 상상을 하는 동안 뇌 반응을 비교했다. 실험 결를 보면, 수집 증상이 있는 강박장애 환자들의 뇌에서 양쪽 복내측 전전두피질(ventromedial prefrontal cortex; VMPFC)의 앞부분이 수집장애가 없는 강박장애 환자나 일반인의 뇌에 비해 활성도가 높게 나타났다.

00brain16.jpg » 수집 증상이 있는 강박장애 환자가 물건을 버리는 상상을 할 때 활성화되는 복내측 전전두피질. 출처/ [각주6]
이 연구의 경우, 수집장애가 있는 환자나 없는 환자는 모두 일차적으로 강박장애 환자이기 때문에 수집장애를 강박장애와 별도의 질환으로 파악하는 최근의 관점으로 볼 때 연구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소 무리일 수 있다. 그렇지만 복내측 전전두피질의 기능 중 한 가지(사회적 맥락에서 자기-관련성(self-relevance)을 파악하는 것)는 수집장애와 관련해 또 다른 통찰을 제공한다.


수집장애 환자가 자기 물건을 버리는 상상을 할 때 복내측 전전두피질의 활성도가 증가하는 것은 물건에 대한 개인적 관련성 혹은 의미 부여가 증가했음을 의미한다. 즉 일반인에게 전단지나 신문은 쉽게 버릴 수 있는 그저 그런 종이더미에 불과하지만, 수집장애 환자에게는 바로 ‘자신’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수집장애 환자들은 물건을 버리는 것이 힘든 일일 수 있다. 입장을 바꿔보자. 당신은 당신의 팔이나 다리를 집 밖에 갖다버릴 수 있겠는가?



애정과 관심, 그리고 인지행동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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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가수 마돈나는 젊었을 때 ‘머티어리얼 걸(Material Girl)’이란 노래에서(아래 동영상), 물질이 넘쳐나는 사회의 남녀 사랑에 대한 노래를 불렀다. 사실 수집장애는 일단 수집해야 할 물건이 충분히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소비와 소유가 발달한 물질문명에서 더 많이 발생할 수 있는 질환이다. 모든 사물의 가치를 물질로 파악하는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소비와 소유를 통해 자신의 공허감을 채우고 정체성을 확인한다. 이런 경향이 극단적인 형태로 표현된 것이 수집장애일 수 있다. 그래서 수집장애라는 복잡한 실타래를 푸는 실마리도 역시 여기에서 찾는 데에서 시작할 수 있다.



특히 수집장애와 심리적 외상 사이의 관련성을 고려한다면, 먼저 주변에서 환자를 충분히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사랑과 인정을 통해 대인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낄 경우에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자신의 소유에 금전적 가치를 덜 부여한다.7) 즉 자신의 인간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대신에 물건 소유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운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집장애 환자들을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이상한 또는 게으른 사람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애정과 관심에 목마른 사람들로 대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수집장애 환자들을 보듬을 때 방법론적으로 주의할 점이 한 가지 있다. 주로 극명한 대비 효과를 보여줘야 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흔히 범하는 실수인데, 바로 많은 사람을 동원해 여러 잡동사니를 한 번에 정리하고 청소하는 일이 그것이다. 자신의 물건이 갑자기 사라지면 수집장애 환자들은 우울증에 빠져 이전 물건을 대신할 다른 물건을 과도하게 수집하고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생, 위험 문제로 인해 수집장애 환자의 집을 정리할 때에는 조금씩 조금씩 진행해 그들이 천천히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

00brain17.jpg » ‘호더스’에 시즌 5에 소개된 한 수집장애 환자 집 부엌의 변화 전(왼쪽)과 후. 출처/ A&E TV

과거에 수집장애가 강박장애의 아형으로 여겨지던 때에는 강박장애 치료 방법이 수집장애 환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곤 했다. 약물 치료의 경우 그다지 효과가 없었지만 인지행동 치료(잘못된 사고, 감정, 그리고 행동을 인식하고 변화시키는 치료)는 수집장애 환자들에게 크게 도움이 되었다.8) 이 방법은 예를 들면 수집장애 환자들로 하여금 평소 ‘집에 물건을 놓을 공간이 충분할까?, ’내가 이 물건이 정말로 필요할까?‘와 같은 질문 목록을 작성하게 한 뒤 실제 물건을 구매하거나 수집하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 때 이 질문 목록을 꺼내어 답하는 과정을 통해 조금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소규모 집단을 대상으로 한 연구이긴 하지만 실제 인지행동 치료는 수집 장애 환자의 두뇌 활성도를 변화시키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9)



제2의 에드먼드 트레버스 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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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며 소개한 에드먼드 트레버스는 공중 위생 문제를 염려한 법원이 그의 집을 청소하려 하자 사유재산인 자신의 집에서 원하는 대로 살 권리가 있다며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그는 텔레비전 방송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생각해 촬영에 적극 협조하며 약자에 대한 연민과 참전용사에 대한 배려심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호소했다. 그러나 법원의 청소집행 명령은 시행되었고, 청소하려는 지역 공무원을 온몸으로 저지하며 방해하던 그는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몇 차례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결국 죽기 1년 전 그는 모든 다툼을 포기하고 요양원에서 사는 것을 받아들여 대략 40년 만에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지내게 되었다.


여러 종류의 시도가 있었겠지만 트레버스에게 조금 더 일찍 적절한 의학적, 심리적, 사회적 접근이 있었다면 가족마저 외면한 그의 지난하고 외로운 삶은 조금 더 평온하고 행복했을 수 있다. 수집장애는 곧 출간될 <DSM 5>에 공식적으로 독립된 질환으로 등재된다. 그러니 이제 다양한 종류의 연구와 함께 뇌영상학으로 밝혀진, 그리고 앞으로 밝혀질 많은 부분을 통해 우리 옆에서 함께 호흡하며 살고 있는 많은 수집장애 환자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더 넓어지길 기대해 본다.




1) Samuels, J.F., et al., Prevalence and correlates of hoarding behavior in a community-based sample. Behav Res Ther, 2008. 46(7): p. 836-44.

2) Mataix-Cols, D., et al., Hoarding disorder: a new diagnosis for DSM-V? Depress Anxiety, 2010. 27(6): p. 556-72.

3) Tolin, D.F., et al., Neural mechanisms of decision making in hoarding disorder. Arch Gen Psychiatry, 2012. 69(8): p. 832-41.

4) Tolin, D.F., et al., Course of compulsive hoarding and its relationship to life events. Depress Anxiety, 2010. 27(9): p. 829-38.

5) Frost, R.O., G. Steketee, and D.F. Tolin, Comorbidity in hoarding disorder. Depress Anxiety, 2011. 28(10): p. 876-84.

6) An, S.K., et al., To discard or not to discard: the neural basis of hoarding symptoms in obsessive-compulsive disorder. Mol Psychiatry, 2009. 14(3): p. 318-31.

7) Clark, M.S., et al., Heightened interpersonal security diminishes the monetary value of possessions. J of Exp Soc Psy, 2011. 47(2): p. 359-64.

8) Steketee, G., et al., Waitlist-controlled trial of cognitive behavior therapy for hoarding disorder. Depress Anxiety, 2010. 27(5): p. 476-84.

9) Tolin, D.F., et al., Neural mechanisms of cognitive behavioral therapy response in Hoarding Disorder: A pilot study. Journal of Obsessive-Compulsive and Related Disorders, 2012. 1(3): p. 180-8.



2013. 04. 05 한겨레 과합웹진 사이언스온

http://scienceon.hani.co.kr/?mid=media&category=90222&page=4&document_srl=90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