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 살빼기를 권하는 사회, 거식증의 정신의학

2016. 12. 12. 17:31글모음

[5] 신경성 식욕부진증(거식증)의 원인과 대안 찾기


섭식장애에는 흔히 거식증과 폭식증이라는 두 유형이 있다. 거식증 환자는 식사를 거부하고 체중 감소를 추구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음식과 식사에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여러 연구에선 거식증 환자가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지 못하고, 자기 몸의 이미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장애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난다. 거식증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회적으로 돕는 방법이 모색돼야 한다.

» 섭식장애 환자의 일부는 실제로는 말랐으면서도 거울에 비친 자신을 뚱뚱하다고 인식한다. 출처/ 스웨덴의 섭식장애 캠페인 광고 영상 갈무리


렬한 록 음악이 대세였던 1970년대에 이와는 정반대 분위기의 곡으로 대중 앞에 나섰던 ‘카펜터스(The Carpenters)’라는 팝 그룹이 있다. 오빠 리처드와 여동생 카렌, 이렇게 남매로 구성된 듀오는 순수하고 부드러우면서 건전한 음악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3번의 그래미상, 8회의 골드 앨범, 10회의 골드 싱글, 5개의 플래티넘 앨범의 기록을 갖고 있는 카펜터스의 음반은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10억 개 넘게 팔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인기는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2001년 문화방송(MBC) 라디오에서 18만6673명의 많은 인원이 참여한 투표 결과를 바탕으로 선정된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 베스트 100’ 중에서 ‘탑 오브 더 월드(Top of the World)’가 9위, ‘예스터데이 원스 모어(Yesterday Once More)’가 31위에 올랐다. 카펜터스의 이러한 전지구적 인기에는 아름다운 곡을 만들어낸 오빠 리처드의 뛰어난 음악 역량이 한 몫 한다. 그러나 카펜터스의 진정한 매력은 동생 카렌의 다소 낮은 음역의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악관에서 라이브로 ‘탑 오브 더 월드’를 부르고 있는 카펜터스의 카렌 카펜터]


카렌의 매력적인 목소리를 더 이상 듣지 못하게 된 때는 그가 신경성 식욕부진증으로 사망한 1983년이다. 청소년 시절에 몸매가 통통했던 카렌은 1975년부터 체중 감량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때 체중을 40kg까지 줄인 그는 마른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굶는 것뿐 아니라 설사약, 구토약, 심지어 갑상선 호르몬제까지 복용했다. 점차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카렌은 공연할 때 중간중간 무대 뒤에서 휴식을 취해야 했고, 공연 도중 실신한 뒤에는 심각성을 인식해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치료 후에는 일시적으로 체중이 증가해 사람들은 카렌이 회복된 줄 알고 있었지만, 그의 극단적인 소량 식사와 살을 빼기 위한 약물 오남용은 계속되었다. 숨지기 6개월 전인 1982년 9월, 체중이 35kg까지 감소했던 그는 병원에 입원했고 경정맥 영양 공급을 통해 45kg까지 체중을 가까스로 회복했다. 그러나 이듬해 2월, 집 안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그는 결국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공식 사인은 토근(吐根, ipecac. 브라질산 식물의 뿌리에서 채취한 성분을 이용한 약물로 고용량 복용시 구토를 유발하며 장기복용시 심장 근육의 손상을 유발함) 중독으로 인한 심부정맥이었다. 그의 죽음은 당시 대중에게 낯설었던 ‘신경성 식욕부진증’이란 병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다이어트를 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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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카펜터가 사망한 지 30년이 지난 요즘, 섭식장애는 우리나라에서도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건강보험 심사공단에 의하면 섭식장애로 진료를 받은 인원은 2008년 1만940명에서 2012년 1만3002명으로 5년 사이에 18.8% 증가했고, 같은 기간에 총 진료비는 약 25억 6천만 원에서 약 33억 9천만 원으로 32.4%가량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1]

00EatDisorder2.jpg » 섭식장애 진료인원 및 총 진료비 추이(2008~2012년. 출처/ 각주[1]

섭식장애를 앓는 사람들이 증가 추세에 있는 이유로는, 날씬함을 미의 기준으로 제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나 압력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대중매체에서 선보이는 미인들은 한결같이 날씬한 반면에 뚱뚱한 사람은 코미디 프로에서 게으르거나 미련한 존재로 희화화된다. 또한 한창 잘 먹고 성장해야 할 청소년이 살찌는 것을 두려워해 식단을 조절하고, 젊은 구직자는 관련 업무 지식을 갖추는 대신 살을 빼 예뻐지려 노력하고, 직장인은 상사에게 날씬해 보인다며 아부해 점수를 따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그렇기에 뚱뚱한 여자 주인공이 날씬한 미녀가 된 뒤 삶이 180도 바뀌는 내용의 영화 <미녀는 괴로워>가 한때 사람들의 많은 공감을 얻어 흥행했다.


실제 서태평양의 피지공화국에서 시행된 연구결과를 보면 체중과 관련된 사람들의 인식이 사회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2] 전통적으로 피지 사람들은 왕성한 식욕과 풍만한 몸매를 선호했고, 운동이나 다이어트를 통해 체중을 줄여 날씬해지는 것은 사회적으로 권장되지 않았다. 그런데 1995년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되었고, 사람들이 서구 방송국에서 제작된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3년이 지난 1998년에 여자 청소년의 체질량지수(BMI; Body Mass Index -체중[kg]을 키의 제곱[m2]으로 나눈 값으로 18.5~25가 정상으로 여겨짐)는 아직 차이를 나타내지 않았지만, 3년 전에는 전혀 없던 것으로 보고되었던 체중을 줄이기 위한 구토 유발(self-induced vomiting)이 11.3%로 보고되었다. 또한 74%가 자신이 너무 크거나 뚱뚱하다고 스스로 느끼고 있었으며, 69%가 체중 감량을 위한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집에 텔레비전을 갖춘 집단은 섭식 태도 검사(Eating Attitude Test; EAT)에서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3배의 '이상 소견'을 보였다. 이런 상황을 현진건의 소설 <술 권하는 사회>에서 주인공 아내의 탄식조 목소리를 빌려와 표현하면 다음과 같겠다. “그 몹쓸 사회가, 왜 다이어트를 권하는고!”.



신경성 식욕부진증과 신경성 폭식증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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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해서 섭식장애의 유형을 조금 자세히 나눠어 살펴보도록 하자. 흔히 거식증과 폭식증으로 표현되는 섭식장애의 두 유형의 의학적 명칭은 신경성 식욕부진증(Anorexia Nervosa)과 신경성 폭식증(Bulimia Nervosa)이다.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는 식사를 거부하고, 체중 감소를 추구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음식과 식사에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또한 극도로 말랐는데도 왜곡된 신체 이미지를 지녀 자신을 뚱뚱하다고 여기며 자신의 저체중을 인정하지 않는다. 한편 신경성 폭식증 환자는 체중은 정상이거나 정상을 약간 넘긴 경우가 많은데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양의 음식을 섭취하고 먹는 동안 조절을 하지 못하는 양상으로 반복적 폭식을 한다. 아울러 늘어난 체중을 보상하기 위해 구토를 유발하고 약물을 복용하며 굶고 과도한 운동을 하게 된다.


00EatDisorder4.jpg » 1900년 프랑스 의학 저널에 실린 신경성 식욕부진증 여자 환자의 모습. 출처/ Wikimedia Commons 그런데 두 섭식장애는 증상 외에 사회적 영향을 받는 정도에서도 차이를 나타낸다. 피지공화국처럼 왕성한 식욕과 풍만한 몸이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지는 곳인 네덜란드령 엔틸리스(Antilles)의 퀴라소(Curaco)에서 시행된 연구 결과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곳 역시 서구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섭식장애가 증가했지만, 신경성 폭식증만이 도시화와 같은 사회적 영향을 받았다.[3] 즉 신경성 식욕부진증의 발병률은 사회문화적 영향에서 자유로운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지금과는 다른 문화를 향유했던 과거에도 병적으로 마르는 것을 추구했던 사람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신경성 식욕부진증의 발병에는 생물학적 영향이 더 많이 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생물학적 측면을 시사하는 또 다른 부분은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기질과 성격이다. 이들은 흔히 불안, 부정적 감정, 완벽성 추구, 고지식함, 위험 회피, 강박 성향을 보인다.[4] 물론 이런 특성이 원인이 아닌 결과, 즉 극단적 영양 실조로 인해 뇌에 이상이 생겨 나타난 문제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여러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이런 문제는 발병 전인 소아일 때에도 관찰되고, 질환에서 회복된 뒤에도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내재하고 있던 심리적 특성이 신경성 식욕부진증의 발병에 취약성(vulnerability)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음식맛을 인식하는 뇌 섬엽 부위의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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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미국의 월터 케이(Walter kaye) 교수 연구진은 뇌영상 연구를 통해 신경성 식욕부진증이 지닌 생물학적 측면을 새롭게 보고했다.[5] 연구진은 신경성 식욕부진증에서 회복된 여성 16명과 일반인 여성 16명이 설탕물과 증류수를 맛보는 동안 뇌의 반응을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unctional MRI)를 통해 촬영했다. 이 때 사용된 설탕물 농도 10%는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달콤한 정도로 일반 청량음료의 흔한 농도였다. 뇌영상 촬영 뒤에는 실험 참가자들이 설탕물 혹은 증류수를 맛볼 때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와 불안했는지를 측정했다.


그런데 연구진은 왜 굳이 신경성 식욕부진을 앓고 있는 환자가 아닌 회복된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했을까? 신경성 식욕부진 환자들은 저체중과 영양 결핍으로 인해 이미 몸의 전반적 생리 체계에 문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에 이상 소견이 발견되더라도 이것이 병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던 원인인지 아니면 병에 의해 발생한 결과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신경성 식욕부진 환자들이 회복됨에 따라 이들의 생리체계도 회복되므로 이 때 관찰되는 이상 소견은 병의 결과가 아닌 원인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실험 결과에서, 신경성 식욕부진증에서 회복된 집단은 일반인 집단에 비해 설탕물과 증류수를 맛볼 때 뇌 부위에서 섬엽(insula), 선조체(striatum), 전측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이 덜 활성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일반인 집단에서 설탕물을 맛본 뒤 기분이 좋아지는 정도는 섬엽 활성도와 연관되어 있었지만, 신경성 식욕부진에서 회복된 집단에서 이런 양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00EatDisorder5.jpg » 신경성 식욕부진 환자 집단에서 낮은 활성도를 보이는 섬엽. 출처/ 각주 [5]

섬엽은 뇌의 외측 틈새(lateral fissure)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피질 부분으로, 전두엽, 두정엽, 측두엽에 의해 덮여 있다. 영어 명칭 ‘insula’는 라틴어에서 비롯된 것으로 한글 명칭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섬(island)을 의미하지만 실제로는 뇌의 많은 영역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섬엽은 뇌에서 많은 기능을 수행하는데 그 중 하나가 내수용성 감각(內受容性感覺: interoception - 신체 내부에 존재하는 감각기에서 생성되는 감각으로 온도, 촉감, 통증, 가려움, 근육과 내장의 감각, 호흡 곤란 등을 포함함)을 처리해 몸 전체 상태를 인식하는 것이다.[6]


음식을 먹을 때도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섬엽은 우리가 음식을 먹었을 때 맛을 인식하는 1차 미각 피질(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섬엽의 앞부분)로서 음식의 맛에 반응한다. 이어서 섬엽은 맛에 따라 얼마나 즐거운지 결정하고 이 신호는 뇌의 보상 영역으로 보내져 우리는 음식 맛에 따라 다양한 행동을 나타내게 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배가 고플 때 섬엽은 활성화되어 우리에게 배가 고픈 것을 알려준다. 또한 배 고픈 상태에서 섭취한 단 음식은 섬엽을 흥분시킨다.


그러나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에서는 섬엽의 기능 이상으로 인해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이런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최근 케이 교수 연구진은 설탕과 함께 수크랄로스(sucralose - 설탕보다 600배 단맛을 냄)를 사용해 단맛의 칼로리 관련 유무를 나눈 뒤 유사한 방법의 실험을 진행했는데 역시 전측 섬엽이 단 맛에 덜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7] 또한 다른 연구에 의하면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에서 섬엽의 이러한 기능적 이상 뿐만 아니라 구조적 이상도 시사되고 있다.[8]


종합적으로 보면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는 섬엽의 이상으로 인해 배고픔을 잘 느끼지 못하고, 음식의 맛을 인식하는 능력이 근본적으로 바뀌었고 나아가 음식에 다가가려는 동기 부여가 잘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마른 몸을 보면서, 뇌는 뚱뚱하다 잘못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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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발간된 '청소년 건강행태 온라인 조사' 결과에 의하면, 여학생의 ‘신체 이미지 왜곡율(평균 체질량지수의 85% 미만인 사람들 중에서 자신의 체형을 살이 찐 편으로 인지하는 사람들의 분율)’이 35.6%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9] 즉 매우 마른 여학생의 상당수가 자신을 뚱뚱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또한 43.5%의 여학생이 최근 한 달 동안 체중 감소를 위해 노력한 적이 있었고, 그 중 20.1%는 부적절한 방법(단식, 의사 처방 없이 마음대로 살 빼는 약 복용, 설사약/이뇨제 복용, 식사 후 구토, 한 가지 음식만 먹는 다이어트)을 통해 체중 감소를 시도했다. 이처럼 자신의 신체에 대한 왜곡이 극단적으로 표현되면 거식증(anorexia)을 좋아서(pro) 선택하는 ‘프로아나(Pro-ana)’족(族)이 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거울. 섭식장애 환자의 왜곡된 신체상을 잘 보여주는 스웨덴의 섭식장애 캠페인 광고]


자신의 신체에 대한 왜곡, 다시 말해 충분히 마른 체형인데도 자신을 뚱뚱하다고 여기는 모습은 신경성 식욕부진증의 진단 기준 중 하나이다. 2010년 독일 수찬(Suchan) 교수의 자기공명영상(MRI)을 이용한 연구 결과는 이런 특징이 뇌의 이상에서 비롯함을 시사한다.[10] 연구진은 신경성 식욕부진증을 앓고 있는 여성 환자 15명과 일반인 여성 15명을 대상으로 먼저 신체 이미지 평정척도(Contour Drawing Rating Scale)를 이용해 자신의 체형을 선택하도록 해 이들의 체형에 대한 주관적 평가 자료를 얻었다. 추가적으로 객관적인 평가 자료도 얻기 위해 연구진은 별도로 10명의 여성 평가단이 실루엣 처리된 참가자들의 앞모습을 본 뒤 역시 신체상 평정척도를 통해 평가하도록 했다.

00EatDisorder6.jpg » 신체상 평정척도 - “당신은 어떻게 보입니까?” 출처/ 각주[11]

실험 결과, 평균 체질량지수가 22였던 일반인은 자신의 체형을 과소평가 하고 있었다. 즉 일반 여성은 객관적 기준보다 자신을 더 마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는 다분히 그들의 날씬해 보이고 싶은 바람이 투영된 결과일 수 있다. 아니면 체형과 관련해 약간의 거짓말은 용서가 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실제 애인을 구하는 온라인 데이트에 올린 사람의 키, 체중, 수입 등을 직접 확인해본 연구에서 남성은 키를 높이고, 여성은 체중을 낮추는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12]


00EatDisorder7.jpg » 뇌영상에서 하얀 색이 선조외 신체영역에서 회색질이 감소한 부분을 나타냄. 출처/ 각주 [11] 반면 평균 체질량지수가 16이었던 신경성 식욕부진 환자들은 자신의 체형을 과대 평가하며 일반인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또한 객관적 기준보다 자신을 뚱뚱하게 판단하고 있는 이들이 자신의 신체 이미지에 대해 잘못 판단할수록 뇌의 좌측 '선조외 신체영역(Extrastriate Body Area; EBA)' 부위 안의 회색질 밀도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조외 신체영역이란 용어에서 '선조(線條)'는 후두엽 뒷부분에 있는 일차 시각 수용 영역인 선조피질(striate cortex)을 뜻한다.[13]


따라서 이 영역에서 생긴 구조적 결함으로 인해,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가 자기 몸을 바라볼 때 시각 정보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자신을 실제보다 뚱뚱하게 잘못 파악하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실제로 인지행동 치료를 받은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들에서 이 영역의 활성도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14] 이는 질환이 치료되는 과정을 통해 왜곡된 신체 이미지도 뇌의 변화로 호전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바비 인형, 걸그룹의 비현실적 체형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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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라 밀리센트 로버츠(Barbara Milicent Roberts). 1959년에 태어나 50년 넘게 세계 여자 아이들, 나아가 어른들의 사랑을 받아온 패션 인형 바비(Barbie)의 본명이다. 패션 인형의 상징이 된 바비 인형은 의사, 군인, 외교관, 스포츠 선수 등 능동적인 여성상을 제시해 소녀들한테 긍정적 영향을 줬다는 평가를 받지만, 동시에 비현실적으로 날씬한 몸매가 소녀들이 쫓아야 할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어 부정적 영향을 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바비 인형의 체형이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는지는 미국 연구자이자 예술가인 니콜라이 람(Nickolay Lamm)의 ‘정상적인 바비 인형 프로젝트’에서 여실히 확인된다.[15] 그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제공한 19세의 미국 여성 평균 체형 자료를 토대로 현실적인 몸매를 지닌 바비 인형을 제작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얻었다.

00EatDisorder8.jpg » 바비의 비현실적인 몸매와 평균 바비의 현실적인 몸매. 출처/ Nickolay Lamm of Mydeals.com

한낱 인형이 정말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해 회의적 시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바비 인형과 에미 인형(실제 16 크기의 옷을 입는 실제 패션모델 에미[Emmie]의 체형을 본 따 만든 인형)을 사용한 한 연구에서 바비 인형에 노출된 여자 어린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신체 자존감이 낮았고, 마른 체형이 되길 더욱 바라는 것으로 드러났다.[16] 물론 어린이가 나이를 먹으면 인형을 더 이상 닮고 싶은 대상으로 여기지 않게 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비정상적 체형의 인형에 노출되면 신체 이미지에 문제가 생겨 섭식장애나 체중의 빠른 변동 같은 위험성이 커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유치원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 아이들도 닮고 싶어하는 한국의 걸그룹 구성원의 체형은 어떨까? 인터넷으로 키와 체중을 확인할 수 있었던 82명의 체질량지수를 계산해보니 평균 16.8이었다.[17] 물론 어디까지나 실제가 아닌 프로필 기록의 키와 체중임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그 어느 누구의 체질량지수도 정상 범위인 18.5~25에 해당되지 않았다. 대중문화가 주는 큰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지나치게 마른 몸매가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것으로 인식되는 문화를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한 예로 이스라엘 정부는 올해 1월부터 체질량지수가 18.5 이하인 패션모델이나 광고모델은 자격을 잃게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아울러 모델이 더 날씬해 보이도록 사진을 수정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이런 수정 사실을 사진에 명기하도록 했다.[18] 비슷하게 우리나라에서도 걸그룹 구성원의 체질량지수를 규제하는 법을 만들도록 주장한다면 너무 앞서나가는 것일까? 아니면 일부 소속사처럼 프로필 기록에서 아예 키와 체중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겠다.


문화 영역에 법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마치 1970년대에 경찰이 여성의 짧은 치마의 길이를 재고, 남성의 장발을 단속하던 때처럼 말이다. 이런 우려도 있지만, 많은 나라에서 법안 제정을 비롯해 여러 가지 사회적 대응책을 마련하는 이유는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의 높은 사망률 때문이다.


연구 결과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이들의 사망률은 6-11%로 알려져 있다.[19] 정신과 단일 질환 중 사망률이 가장 높은 이유는 극단적인 체중 감량으로 인해 심각한 전신 쇠약이 발생해 신체 전체의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에서 다른 정신질환(특히 우울증 같은 기분 장애)이 많이 동반되고, 이로 인해 사망자 5명 중 1명 꼴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경성 식욕부진증에 대한 적극적 치료와 사회적 대안 마련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의 치료 현실은 어떨까?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는 식사와 행동의 면밀한 관찰을 위해 안정병동(병원에 따라서는 폐쇄병동으로 불림)에 입원해야 하는데 최근 몇 년 사이 일부 정신과 수련 병원에서 문자 그대로 ‘폐쇄’ 병동을 ‘폐쇄’했다. 2013년 3월31일 기준으로 국내 정신과 수련 병원 84곳 중 안정병동을 갖추지 못한 병원이 8개에 이른다.[20] 안정병동은 특성상 내부에 병실 외에도 면담실, 치료실, 프로그램실, 오락실 등 여러 공간이 추가로 필요한데 한정된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병원 경영진의 입장에서 안정병동은 반갑지 않은 존재인 것이다.


또한 보험과 관련된 제한도 많다. 섭식장애 치료 때 면담과 약물 치료에는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만 정작 치료적 효과가 높은 인지행동 치료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섭식장애 합병증으로 골다공증이 발생해도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골다공증 검사는 보험 비적용 대상이다. 아울러 쉽게 예측할 수 있듯이 민간 보험에서 섭식장애와 관련된 진단명은 보험 적용에서 제외되고 있다. 올해 3월 공립학교가 매년 5-12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에게 섭식장애에 대한 교육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법제화한 미국 버지니아 주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21] 섭식장애의 치료 환경 구축을 위한 정부 차원의 정책적 노력은 매우 중요해 보인다.



환자만의 노력으로 질환 극복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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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방송의 대세 중 하나는 일명 ‘먹방(먹는 방송의 약자)’이다. 그런데 먹을 것이 넘치고 음식이 많은 사람의 관심사가 된 사회에서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다이어트와 살 빼기에 열광하고, 나아가 일부는 섭식장애로 고통받고 있다. 옛말에 "과유불급"이라 했듯이 지나친 음식 섭취로 인한 비만도 문제이지만 반대로 극도의 식사 거부로 인한 신경성 식욕부진증도 역시 문제이다


특히 신경성 식욕부진증에는 다른 정신질환이 동반되고, 신체적 합병증까지 발생하는 경우도 많아 심각성이 더 크다. 따라서 사회적인 노력과 함께 질환에 대해 제대로 알고 환자를 대하는 주변 사람의 노력이 필수적이다. ‘그 쉬운 것을 왜 못해’ 하며 환자를 비난하거나, ‘저러다 말겠지’ 하며 방치하거나, ‘뚱뚱한 것보다는 낫지’ 하며 조장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


사실 신경성 식욕부진증의 치료 반응은 썩 좋지 않고, 입원 치료 뒤에 체중을 회복해도 재발해 다시 저체중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긍정적인 부분은 최근 정신의학의 발전으로 기존에 몰랐던 많은 부분이 밝혀졌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신경성 식욕부진증과 관련된 여러 뇌영상 연구와 다른 생물학적 연구 결과를 토대로 환자에게 좀더 도움이 되는 치료 방법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하더라도 한 논문의 제목처럼 뇌영상학은 많은 환자와 가족을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다.


“부모 잘못이 아니라 딸의 섬엽 잘못입니다(The fault is not in her parents but in her insula)”[22]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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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건강보험심사평가원, http://www.hira.or.kr/dummy.do?pgmid=HIRAA020041000000&cmsurl=/cms/notice/02/1319003_13390.html. 2013.

[2] Becker, A.E., et al., Eating behaviours and attitudes following prolonged exposure to television among ethnic Fijian adolescent girls. Br J Psychiatry, 2002. 180: p. 509-14.

[3] van Son, G.E., et al., Urbanisation and the incidence of eating disorders. Br J Psychiatry, 2006. 189: p. 562-3.

[4] Kaye, W.H., et al., Nothing tastes as good as skinny feels: the neurobiology of anorexia nervosa. Trends Neurosci, 2013. 36(2): p. 110-20.

[5] Wagner, A., et al., Altered insula response to taste stimuli in individuals recovered from restricting-type anorexia nervosa. Neuropsychopharmacology, 2008. 33(3): p. 513-23.

[6] Craig, A.D., How do you feel? Interoception: the sense of the physiological condition of the body. Nat Rev Neurosci, 2002. 3(8): p. 655-66.

[7] Oberndorfer, T.A., et al., Altered Insula Response to Sweet Taste Processing After Recovery From Anorexia and Bulimia Nervosa. Am J Psychiatry, 2013.

[8] Frank, G.K., et al., Alterations in Brain Structures Related to Taste Reward Circuitry in Ill and Recovered Anorexia Nervosa and in Bulimia Nervosa. Am J Psychiatry,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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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8.13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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