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 돌진해 날아오는 축구공, 헤딩 할까 말까?

2016. 12. 12. 13:29글모음

Lipton 교수의 연구 결과는 2013년 10월 정식으로 발표되었다.

https://www.ncbi.nlm.nih.gov/pubmed/23757503



[3] 헤딩이 뇌에 끼치는 영향


공이 머리에 가하는 충격 때문에 ‘헤딩 위험론’은 의과학 분야에서도 오랜 관심 대상이었다. ‘위험하다’ ‘아니다’가 엎치락뒤치락하는 논쟁의 과정을 돌아보면 안전한 헤딩의 기술이 보인다.


» 2004년 올림픽축구 A조 예선 당시에 말리와 벌인 경기에서 한국대표팀 조재진이 머리받기슛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테살로니키=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산 현대축구단에 김신욱 선수가 있다. 196cm, 93kg의 건장한 체격을 지닌 이 선수는 큰 키를 앞세워 경기 중에 머리받기, 즉 헤딩을 자주 하지만 이밖에도 좋은 발재간과 정확한 슛팅 능력, 그리고 넓은 활동량 등 다른 장점도 많이 갖고 있다. 김 선수는 울산 현대가 ‘철퇴 축구’로 2012년 아시아 최고의 축구클럽을 가리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 리그’를 정복할 때 공격진의 선봉으로서 팀에 많은 기여를 했다. 이런 맹활약에 힘입어 그는 2011년에 이어 2012년 국가대표에 다시 발탁되었고 현재까지 울산 현대와 대표팀에서 열심히 뛰고 있다.


올해 3월26일 김신욱은 태극 마크를 달고서 브라질 월드컵에 나가기 위한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에서 카타르와 벌인 경기에 출전했다. 축구를 좋아하지 않지만 남편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묵묵히 경기를 지켜보던 아내가 전반전이 끝난 뒤 김신욱을 가리키며(물론 이름이 아닌 그냥 ‘키 큰 선수’라며) 질문을 던졌다. 공격할 때 높은 공의 대부분을 김신욱이 처리하는데 그렇게 헤딩을 자주 하면 뇌에 좋지 않은 영향이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할 때 아내의 눈에 스쳐 지나가던 한 줄기 실망의 분위기. 그래서 오늘은 개인적으로는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헤딩의 위험성을 염려하는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 헤딩이 뇌에 끼치는 영향을 알아보려고 한다.



00heading4_ball.jpg 만성 외상성 뇌병변과 헤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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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딩의 위험과 관련해 자주 언급되는 사례로 영국의 제프 애슬(Jeff Astle)이란 선수가 있다. 그는 영국 프로축구의 웨스트 브롬위치 팀에서 모두 361차례 경기에 나서 174골을 넣었으며, 1969~70년 시즌에서는 25골을 기록해 당당히 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팬들 사이에서는 “왕”(the King)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인기를 차지했고,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잉글랜드 대표팀 선수로 선발되었던 그는 특히 헤딩 잘 하는 선수로 유명했다.


제프 애슬은 2002년 59세의 다소 이른 나이에 치매로 사망했는데 이미 5년 전부터 쉽게 불안해 하는 등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숨지기 직전에 그는 자식들마저 알아보지 못했고,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해 그저 안락의자에 앉아 있어야 하는 상태였다고 한다. 유족은 그의 질환이 20여 년 간 축구 선수 생활로 인한 것이라 주장했고, 부검 결과에서 그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왜냐하면 그의 뇌에서 발견된 광범위한 퇴행성 뇌 질환(extensive degenerative brain disease)과 타우병증(taupathy)이 만성 외상성 뇌병변(chronic trauma encephalopathy; CTE)과 일치하는 소견을 보였기 때문이다.[1]


만성 외상성 뇌병변은 반복적인 외상으로 인해 생기는 뇌의 점진적 퇴행성 변화를 일컫는 것으로 과거에는 권투 선수 치매(dementia pugilistica)라고도 불렸다. 옛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임상 소견이 알츠하이머형 치매와 겹치는 부분이 있고, 성격이나 행동의 변화, 기억 장애, 파킨슨병, 언어와 보행 장애 등이 주요 증상이다. 이와 연관된 선수가 바로 1996년 미국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마지막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선 무하마드 알리(Muhamad Ali)이다. 성화 봉송 당시에 텔레비전 중계를 보면서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던” 그의 날렵하고 민첩했던 젊은 시절의 모습을 떠 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위 동영상에서 볼 수 있는 알리의 신체 특징은 안정시 진전(resting tremor: 쉬고 있을 때 나타나는 떨림. 몸을 움직이면 사라짐), 근육의 강직, 그리고 몸 동작이 느려지는 서동(徐動)인데, 이 세 가지 증상은 파킨슨 병의 임상적 진단 기준이다. 따라서 알리의 질환은 선수 시절 머리에 수없이 맞은 주먹의 충격에 의해 발생한 만성 외상성 뇌병변의 일부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확진을 위해서는 사후에 뇌조직 검사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제프 애슬의 예처럼 만성 외상성 뇌병변이 헤딩과 연관성이 있어 보이지만 이를 모든 축구 선수에 적용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당시의 축구공은 지금의 축구공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전의 축구공은 가죽으로 만들어져 경기를 하는 동안에 수분을 빨아들여 무게가 최대 20%까지 증가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축구공의 무게가 증가할수록 헤딩하는 선수의 머리에 가해지는 충격은 커지기 마련이다. 축구공의 방수 코팅은 1970년대 중반에야 가능해졌고, 현재는 소수성(疏水性, hydrophobic) 합성 재질로 축구공을 만들기 때문에 더 이상은 축구공에 수분이 스며들지 않는다.



00heading4_ball.jpg 급성 외상성 뇌손상과 헤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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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딩과 관련된 또 다른 걱정은 뇌진탕(concussion)처럼 급성으로 발생하는 외상성 뇌손상(traumatic brain injury: TBI)이다. 실제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축구공에 머리를 부딪히면 당연히 머리에 충격을 받고, 심하면 뇌진탕이 발생할 수 있다.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프랭크 부르노(Frank Bruno)의 주먹 한 방의 가속도가 53g(여기에서 g는 중력가속도)로 알려져 있는데[2], 약 27m 거리에서 시속 56km로 찬 축구공을 정면으로 헤딩할 때 공의 가속도가 49.3g에 이르니[3] 헤딩할 때 머리가 받는 충격은 권투 선수에게 머리를 맞는 것과 거의 비슷해 보인다.


뇌진탕이 발생하면 두통, 압박감, 어지러움, 이명, 오심, 구토와 같은 가벼운 증상부터 일시적 의식 상실, 외상 전후의 기억 상실, 집중력 장애, 이자극성, 광과민성, 우울감, 피로와 같은 신경학적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 문화방송(MBC)의 인기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출연진이 프랑스의 유명 축구 선수 티에리 앙리를 초청해 진행한 물공 헤딩쇼에서 과장되지만 축구공으로 인해 발생한 뇌진탕의 증상 일부를 간접 경험해볼 수 있다.

[무한도전 출연진의 '물공' 헤딩]


권투 경기 도중에 상대의 센 주먹을 맞은 선수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대는 ‘그로기(groggy)’ 상태를 보일 때가 있다. 자세를 조절하기 힘들어하는 것은 뇌손상 뒤에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인데, 헤딩은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칠까? 한 연구 결과를 보면, 헤팅은 머리에 충격을 주기는 하지만 자세 조절(postural control)에는 영향을 그다지 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4] 실험에 참가한 축구 선수들이 남녀 대학 축구 선수들의 코너킥의 평균 속도인 시속 88km의 축구공을 20분 동안 20회 헤딩하게 한 뒤에 이들의 자세 조절을 측정했다. 실험 결과에서 정면으로 한 헤딩이든 코너킥 상황처럼 공의 방향을 90도 바꾸는 헤딩이든 대조군과 비교해 자세 조절의 차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 결과는 헤딩으로 인해 급성 뇌손상이 발생하지 않음을 시사하고 있다.


실험실이 아닌 실제 축구 경기에서는 어떨까? 1998년부터 2004년까지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한 20개 경기를 분석해보니, 248개의 머리·목 부위 부상이 보고되었지만 대부분 부상은 타박상(53%)과 열상(20%)이었고 뇌진탕은 11%에 불과했다.[5] 그리고 외상의 대부분은 공중 공 다툼, 또는 팔과 머리의 사용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었다. 우려와 달리 헤딩에 의한 부상은 한 번 발생했고, 이마저도 뇌가 아닌 목 근육의 염좌(捻挫, strain)였다. 또한 2년 동안 추적 관찰을 시행한 다른 연구에서도 의도적으로 헤딩을 한 경우에는 단 한 차례의 뇌진탕도 보고되지 않았다.[6]


결국 중요한 점은 헤딩을 하기 전의 준비 여부이다. 위에서 언급한 실험이나 경기 분석 결과에서 공통적인 부분은 참가자나 선수들이 미리 준비한 상태에서 머리받기를 한 점이다. 즉 축구 선수가 헤딩을 하기 전, 날아오는 공을 보면서 미리 준비하기 때문에 헤딩 때 머리가 받는 충격이 완화된다. 반면에 권투 선수는 상대 선수의 주먹이 다가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미리 목 근육을 수축시키는 등의 준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뇌 손상의 정도가 증가한다. 물론 실제 축구 경기에서도 준비 없이 헤딩을 하면 뇌진탕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면 헤딩으로 인해 뇌진탕과 같은 급성 뇌손상은 발생하지 않는다.



00heading4_ball.jpg 헤딩을 둘러싼 끊이지 않는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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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는 물이 돌을 뚫는다’란 뜻의 수적천석(水滴穿石)이라는 한자 성어가 있다. 작은 힘이라도 꾸준히 계속되면 큰 일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인데 혹시 헤딩이 뇌에 끼치는 영향도 이처럼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즉 헤딩 한 번으로는 급성 뇌손상을 일으키지 않지만 반복적으로 이뤄지면 충격의 여파가 쌓여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의학적으로 표현하면 반복적인, 뇌진탕의 역치를 넘지 않는 외상(repetitive subconcussive trauma)으로 인해 뇌손상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축구는 한국과 미국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가장 인기 높은 스포츠이기 때문에 헤딩의 위험성을 보고하는 연구들은 늘 언론과 대중의 큰 관심을 받아왔다. 그러나 헤딩의 위험성 주장이 제기되면 이어서 이를 반박하는 주장이 제기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유사한 논쟁이 다시 반복되어 왔다. 다시 말해 헤딩의 위험성을 둘러싼 논쟁은 밀물과 썰물처럼 정반대의 입장 차이 사이를 밀려 왔다가 빠져 나가며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해왔다.


밀물과 썰물 1. 신경심리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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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의견이 상충하는 헤딩의 위험성을 확인하기 위한 방법으로 먼저 신경심리검사(neuropsychological test)가 있다. 신경심리검사는 뇌가 손상되었을 때 행동에 나타나는 심리 기능 손상 여부와 그 정도를 평가하는 검사로 지능, 기억력, 언어능력, 읽기, 쓰기, 운동영역, 수행 기능, 촉각, 시공간 능력 등의 항목을 측정한다.

00heading11.jpg » 신경심리검사 항목 중 하나인 레이-오스테리스(Rey-Osterreith) 복합그림검사와 이상 소견. 출처/ [7]

1990년 전후 노르웨이의 프로 축구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은퇴한 선수들의 81%에서 주의력, 집중력, 기억력, 판단력에 결함이 관찰되었다.[8] 이 논문의 연구진은 신경심리검사 외에도 뇌파 검사(EEG)와 컴퓨터 단층촬영(CT)을 통해 은퇴한 선수들한테 뇌 이상 소견이 있음을 보고했는데, 이러한 일련의 연구 결과에 1998년 피파(FIFA)는 헤딩에만 초점을 맞춘 훈련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9]


그러나 당시의 연구 결과들은 몇 가지 한계를 안고 있었다. 먼저 헤딩 외에도 뇌손상의 원인일 수 있는 선수 간 충돌, 선수와 운동장의 충돌, 그리고 드물게는 선수와 골대의 충돌 등이 구분되지 않았다. 또한 시대적으로도 당시에는 외상에 대한 인식이 낮아 뇌진탕 같은 급성 손상이 실제보다 낮게 보고되었고, 축구공은 앞서 언급했듯이 수분을 빨아들이는 가죽공이 사용되었다. 실제 2003년 8월 영국의학협회지(British Medical Journal; BMJ)는 사설에서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며 헤딩으로 인해 신경심리검사의 수행 손상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10]


밀물과 썰물 2. 생물학적 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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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딩의 위험성을 살펴보는 다른 방법으로 생물학적 지표(biological marker)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여러 지표 중 S100B 단백질이 많은 관심을 받아왔는데, 이 물질은 인간 신경 조직의 아교세포(glial cell)의 막에 주로 부착하는 칼슘-결합 단백질(calcium binding protien)로 체내에서 농도가 증가하면 뇌 조직의 손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스웨덴에서 이뤄진 예비 연구에서 반복적인 헤딩으로 인해 S100B 단백질의 체내 농도가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되자[11] 다시 헤딩의 위험성에 대한 걱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같은 해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로드 마켐(Rod Marhkam)이란 신경심리학자는은 축구 선수들의 헤딩이 급성 또는 만성 뇌손상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피파가 모든 축구 경기에서 헤딩을 금지해야 하다는 다소 과격한 주장을 해 화제가 되었다.[12] 아울러 그는 헤딩을 금지할 수 없다면 뇌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헤드기어 같은 보호구를 착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 헤딩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는 더욱 증폭되었다.

00heading2.jpg » 축구 경기에서 헤딩을 금지해야 한다는 로드 마켐의 주장을 보도한 2004년의 뉴스. 출처/ Mail Online

그러나 2007년 영국의 한 연구에서 헤딩을 실제 하면서 측정한 S100B의 농도는 헤딩 전후로 변화가 없었고, 그 외 외상성 뇌손상과 관련된 다른 생물학적 지표 역시 별 다른 차이를 나타내지 않았다.[13] 아울러 로드 마켐의 경우 당시 피파(FIFA)에서는 그의 경력이 불분명하고, 주장의 근거 역시 희박한 것으로 판단해 그의 주장을 무시했다. 실제 그가 언론의 주목을 다시 받은 것은 3년 뒤 정체 불분명의 약을 팔다가 발각되어 오스트레일리아 의사협회에 의해 엉터리 전문가의 정체가 드러났을 때이다.[14] 그가 헤딩과 관련해 일으킨 논란은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언론 보도의 한 예라 할 수 있다.


밀물과 썰물 3. 뇌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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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딩의 위험성과 관련된 논란과 언론의 관심은 잠잠해지나 싶었는데 2011년 가을 미국의 립튼(Lipton) 교수가 시카고 학회에서 발표한 내용으로 인해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15] 연구진은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해온 32명의 아마추어 축구 선수를 대상으로 일년에 얼마나 자주 헤딩을 하는 지를 물어본 뒤 1320회 이상 헤딩을 하는 집단과 그 이하의 횟수로 헤딩을 하는 집단으로 나누었다. 연구진은 이어서 확산텐서영상(Diffuse Tensor Image; DTI)을 이용해 두 집단의 뇌 백질(white matter)을 비교해봤다.


실험 결과에서는 헤딩을 자주 하는 선수들의 전두엽(frontal lobe)과 측후두 지역(temporooccipital region)에서 분할 비등방도(fractional anisotropy: 물분자가 생체 내에서 모든 방향으로 자유로이 확산하지 않고 특정한 방향으로 확산하는[비등방성] 정도를 측정하는 확산텐서영상에서, 뇌 백질의 구조적인 방향성과 연결도를 반영하는 수치)가 유의하게 낮게 나타났다. 이러한 소견은 가벼운 외상성 뇌손상(mild traumatic brain injury) 환자에서 관찰되는 소견이기 때문에 축구 선수의 빈번한 헤딩이 위험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구체적인 횟수를 살펴보니 일 년에 1000-1500회 이상의 헤딩이 가벼운 뇌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00heading22.jpg » 약 1000회 이상 헤딩하는 경우 급격히 낮아지는 분할 비등방도. 출처/ [15]

그러나 앞서 언급한 많은 연구 결과처럼 이 연구 역시 여러 제한점을 지니고 있다. 일단 참여한 선수들의 수가 적었고, 신체적으로 약한 여성이나 어린이의 참여가 적었으며, 헤딩의 빈도는 선수 개인의 기억에 의존해 후향적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뇌영상 이상 소견이 실제 신경인지기능의 변화와 관련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추가 연구도 필요하다. 립튼 교수 연구진이 올해 초 미국 국립보건원(NIH)로부터 받은 약 33억 원의 연구비로 400명의 남녀 성인 축구 선수를 모집하는 대규모의 연구를 진행 중에 있으니[16] 뇌영상을 통해 헤딩으로 인한 뇌손상 여부를 알기 위해서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00heading4_ball.jpg 헤드기어: 헤딩 위험을 줄일 대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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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0년 동안 언론과 학계의 관심을 받아온 헤딩의 위험성과 관련된 여러 연구 결과를 톺아봤는데 기대와 달리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는 것 같다. 앞서 헤딩과 관련해 신경심리검사에서 이상 수행의 소견이 없었다고 언급했지만, 과거처럼 종이와 연필 혹은 컴퓨터가 아닌 첨단 기기인 아이패드(iPad)를 이용해 인지 기능을 평가한 최근의 한 연구에서는 헤딩 직후 이상 소견이 보고되었다.[17] 또한 뇌영상 분야에서는 확산텐서영상을 이용한 다른 연구에서 앞서 언급한 실험과는 달리 분할 비등방도의 감소 소견은 관찰되지 않았다.[18]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다 보니 일단은 안전하게 가보자는 생각으로 앞서 언급한 로드 마켐의 검증되지 않았던 주장처럼 일단 헬멧 혹은 헤드기어를 착용하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실제 이미 시중에서 축구 선수용 헤드기어가 판매되고 있고, 축구 선수들이 부상의 우려 때문에 보호 장구를 착용한 채 종종 경기에 출전한다.


00heading41.jpg » 헤딩과 관련한 복잡한 물리학. 출처/ [19] 사실 물리학적인 힘의 양상을 고려해보면 헤드기어를 착용한 채 헤딩을 하는 것은 매우 타당해 보인다. 부드러운 재질의 헤드기어가 헤딩 시 머리와 공의 접촉 시간을 늘리고, 머리의 무게 중심(center of gravity) 가속도를 낮춰 축구공의 운동 에너지를 흡수하기 때문이다. 즉 헤드기어를 착용하면 머리에 충격이 가해질 때 두개골 및 목과 같은 지지 구조로 전달되는 에너지를 감소시켜 설령 헤딩을 예측하지 못해도 이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가 있다.


이와 관련해 2005년 캐나다의 위드널(Withnall) 교수 연구진은 헤드기어가 머리에 가해지는 충격을 실제 완화시키는 지를 살펴봤다.[20] 연구진은 세 종류의 헤드 기어와 충격의 정도를 측정하는 고속카메라, 힘의 세기를 잴 수 있는 기계를 사용했다. 실험 결과 헤딩을 할 때 헤드기어를 착용해도 착용하지 않을 때에 비해 머리를 보호하는 효과는 크지 않았다. 반면 머리와 머리가 부딪힐 때에는 헤드기어가 그 충격을 33%까지 줄였다.

00heading42.jpg » 연구 당시 북미 시장에서 살 수 있었던 세 종류의 헤드기어. 출처/ [20]

예상과 달리 헤딩을 할 때 헤드기어의 보호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친 이유는 축구공의 형태가 변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물리학적 입장에서 보면 내부가 공기로 채워져 있는 축구공이 헤딩 시 머리에 부딪히는 순간 수축되면서 발생하고 있는 충격의 에너지를 흡수하게 된다. 축구공이 머리에 닿는 순간 축구공 자체의 변형에 의해 충격이 완화되기 때문에 헤드기어를 착용해도 효과가 제한되는 것이다. 반면에 외형의 변형이 거의 없는 딱딱한 물체(예. 다른 선수의 머리, 운동장, 골대)에 머리를 부딪히면 충격의 흡수 없이 곧바로 머리에 에너지가 전해지기 때문에 헤드기어를 착용하면 효과적으로 머리를 보호할 수 있다.


그러나 2005년 미국 축구 협회는 헤드기어를 착용하는 것이 이로운 측면이 없으며 오히려 더 많은 부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21] 왜냐하면 축구를 포함한 여러 운동 경기에서 뇌진탕은 충격 자체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단한 머리뼈의 내부 충격과 함께 충격 후에 목과 머리가 접히는 힘에 의해 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충격 자체를 완화시키는 헤드기어는 이러한 종류의 부상을 줄이는 데에 효과적이지 않다. 아울러 선수들이 헤드기어를 착용하면 지나치게 안전성을 낙관해 공격적으로 경기에 임하고, 적절한 기술 습득을 게을리 해 역설적으로 뇌진탕의 빈도가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00heading4_ball.jpg린아이의 헤딩,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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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팬으로서는 아쉽지만 요즘의 사회적 대세는 야구인 것 같다. 그러나 단순한 경기 관전이 아닌 경기 참여를 고려한다면 여전히 축구는 야구에 비해 접근성이 높다. 실제 경기를 하려면 많은 장비를 갖춰야 하는 야구에 비해 축구는 공만 있어도 제한적이나마 경기가 가능하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면 야구 교실은 41개, 축구 교실은 208개로 거의 5배의 차이가 난다. 이처럼 많은 어린이가 연습과 경기를 통해 축구를 접하고 있는데 어린이에게 미치는 헤딩의 영향은 어떨까? 개인적으로 많이 염려가 되는 것은 어릴 적 키가 크고, 머리도 크다는 이유로 축구를 할 때마다 헤딩을 도맡았던 나의 과거력 때문이다. 혹시 의대 본과 시절 재시험에 걸렸던 것은 어릴 적 헤딩을 많이 해서는 아니었을까?

00heading3.jpg » 축구 황제 펠레도 강조한 '이마로 헤딩 하기'의 중요성. 출처/ [23]

어린이는 성인에 비해 신체 조정(coordination) 능력이 부족하고, 목 근육의 강도가 낮고, 머리가 작기 때문에 헤딩으로 인한 위험이 증가한다. 실제 미국 청소년 축구 협회에서는 10세가 될 때까지는 헤딩을 가르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22] 따라서 아주 어린 아이의 경우 가급적 공중에서 공 다툼을 하지 않도록 적극 권장하고, 대신 공을 다루는 기술이나 발 동작 등을 발달시키는 데에 훈련의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또한 헤딩을 할 때 눈을 감지 않고, 목 근육을 긴장시키고, 정수리가 아닌 이마로 공을 치는 등의 정확한 헤딩 기술의 습득이 필요하다.[23]



아직까지는 안전해 보이는 헤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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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의 8회 연속 월드컵 진출을 결정할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의 마지막 세 경기가 연달아 펼쳐질 예정이다. 앞서 언급한 김신욱 선수는 이동국 선수와 함께 공격진에 발탁되었기에 선발이든 조커이든 경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비록 직접 경기강에 나가서 관전은 못 해도 반드시 집에서 중계 방송을 볼 텐데 김신욱 선수가 헤딩을 꼭 하기 바란다, 꼭! 그래야 석 달 전 아내에게 정신과 의사로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미리 준비해두었다는 내색은 절대 보이지 않으면서 넌지시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전에 헤딩 물어봤잖아. 일단 축구공의 발전 덕분에 만성 외상성 뇌병변의 발생 가능성은 낮아졌고, 준비를 하고 헤딩을 하면 뇌진탕 같은 급성 외상성 뇌손상은 발생하지 않을 거야. 문제는 헤딩으로 인해 뇌진탕을 일으키는 역치보다 낮은 충격이 머리에 반복적으로 가해지는 경우인데 아직까지는 유해와 무해의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이야. 애매하니까 일단은 헤드기어 착용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기대와 달리 헤딩으로 인한 충격 완화에 그다지 효과는 없다는군. 아, 그리고 어린이는 적절한 공을 사용하고 헤딩 기술을 잘 배울 필요가 있어.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그래서 앞으로도 대규모의 장기 연구나 사후 뇌 조직 검사, 외상에 취약한 유전자 등의 추가 연구가 필요해. 종합해서 이야기하면 결론 내리기는 어렵지만 아직까지는 축구 경기 중에 헤딩은 큰 위험이 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아."


왠지 최종예선 경기가 기다려진다.



[주]


[1] http://www.guardian.co.uk/uk/2002/nov/12/football.stevenmorris.

[2] Atha, J., et al., The damaging punch. Br Med J (Clin Res Ed), 1985. 291(6511): p. 1756-7.

[3] Lewis, L.M., et al., Do football helmets reduce acceleration of impact in blunt head injuries? Acad Emerg Med, 2001. 8(6): p. 604-9.

[4] Broglio, S.P., et al., No acute changes in postural control after soccer heading. Br J Sports Med, 2004. 38(5): p. 561-7.

[5] Fuller, C.W., A. Junge, and J. Dvorak, A six year prospective study of the incidence and causes of head and neck injuries in international football. Br J Sports Med, 2005. 39 Suppl 1: p. i3-9.

[6] Boden, B.P., D.T. Kirkendall, and W.E. Garrett, Jr., Concussion incidence in elite college soccer players. Am J Sports Med, 1998. 26(2): p. 238-41.

[7] Feldmann, A., et al., Atrophy and decreased activation of fronto-parietal attention areas contribute to higher visual dysfunction in posterior cortical atrophy. Psychiatry Res, 2008. 164(2): p. 178-84.

[8] Tysvaer, A.T. and E.A. Lochen, Soccer injuries to the brain. A neuropsychologic study of former soccer players. Am J Sports Med, 1991. 19(1): p. 5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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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http://www.einstein.yu.edu/news/releases/870/einstein-receives-$3-million-to-study-impact-of-soccer-heading-on-the-b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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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http://www.ayso.org/resources/safety/is_heading_safe.as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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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6.4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http://scienceon.hani.co.kr/?mid=media&category=90222&page=3&document_srl=106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