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의 '대형교회와 웰빙보수주의'

2020. 9. 14. 10:37되새김질

출처 : 교보문고

예전에 환자와 부모님이 진료실을 방문했다. 주된 이유는 젊은 환자가 부모를 계속 때려서였다. 가끔 있는 일이기는 해서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봤다. 자세한 사정이 당황스러웠다. 이전에 방문했던 병원에서 “환자가 부모에 대한 화가 너무 많이 쌓여 있다. 당분간 어지간하면 맞아줘라. 그러면 환자의 화가 다 풀리면서 괜찮아질 것이다”라는 처방을 받고 부모는 그대로 해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계속 맞다 보니 몸이 성한 데가 없고, 너무 아프고, 이러다 죽을 것 같아서 병원을 옮긴 것이라고 했다. 허걱!

 

어느 집단이나 이상한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정신과 의사도 예외가 아니다. 최면으로 전생을 소환했던 사람도 있고, 성폭행 후 성치료라고 주장한 사람도 있고, 사주나 점을 진료와 섞어서 보는 사람도 있다. 뭐 그래도 정신과 의사 집단이 큰 무리 없이 돌아가는 이유는 그런 사람이 극히 소수이고, 다수의 정신과 의사는 비의학적, 비윤리적 주장이나 견해에 현혹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광훈은 이상한 사람이다. 어록을 살피면 끝도 없지만 작년 설교를 빙자한 집회에서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는 희대의 뻘소리만 상기해도 이상한 사람 맞다. 그런데 내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교계에서 전광훈이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 사실이다. 일반 신자들은 그럴 수 있다. 환자들이 이상한 의사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하지만 업계(?) 종사자는 다르지 않나? 누가 이상한지 아닌지 금세 파악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이번 8.15 집회에 상당수 교회의 목사와 장로가 참석을 독려한 까닭은 무엇일까?

 

의문이 들 때는 공부를 해야 한다. 신학자 김진호의 ‘대형교회와 웰빙보수주의’는 좁게는 전광훈에 대해, 넓게는 한국 기독교의 보수화에 대해 심도 있는 분석을 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의 변곡점이 된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이전의 대형 교회를 ‘선발 대형교회’로 이후의 대형 교회를 ‘후발 대형교회’로 나눈다. 전자가 카리스마적 리더십 하에 새신자 유입으로 성장한 교회라면, 후자는 설득적 리더십 하에 수평 신자의 유입으로 성장한 교회를 의미한다.

 

후발 대형교회는 바뀐 시대에 맞춰 등장한 ‘주권 신자’를 품기 위해 이성적으로는 ‘제자 훈련’, 감성적으로는 ‘경배와 찬양’을, 그 외에도 자기 계발, 아버지 학교, 결혼 예비학교 등의 프로그램과 시스템을 교양 있게 제공했다. 일정 수준의 자산과 고등 교육을 가진 신자들이 이를 뒷받침할 수 있었기에 교회는 주로 강남, 강동, 분당과 같은 특정 지역에 몰려 있게 되었다. 신자의 특성이 있기에 고향 교회를 포함해서 다른 지역의 교회가 그대로 따라하기에는 제약이 있다.

 

후발 대형교회에 자리잡은 웰빙 보수주의는 선발대형교회의 극우 보수주의와 분명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저자는 노골적인 배제나 차별 대신 부드러운 배제와 차별이 더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던지고 있다. 후발 대형교회가 일종의 롤모델이 된 상황에서 교회는 우아하게 변모했지만 정작 현실 감각을 놓쳐버린 것은 아닐까? 교회에 모여 세련된 찬양을 부르고, 격조 있게 교제해야 하는데, 이를 방해하는 정권을 규탄하기 위해 전광훈을 선한(?) 도구로 쓴 것일까? 이상한 사람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면 정말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