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교감신경 억제 성분, 프로프라놀롤

베이징 올림픽 남자 50m 권총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진종오(오른쪽)와 은메달을 획득한 북한의 김정수(왼쪽). 한겨레 제공.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남자 50m 권총 결선 경기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승부였다. 선두 다툼을 하던 대한민국의 진종오가 마지막 10번째 발에서 8.2라는 저조한 점수를 얻었다. 응원하던 우리 국민은 1위를 놓치는 것 아닌가 하며 긴장했다. 마침 북한의 김정수가 무려 10.5점을 쏘며 치고 올라왔다. 최종 점수는 진종오 660.4점, 김정수 660.2점으로, 진종오는 간신히 1위 자리를 차지했고 김정수는 안타깝게 2위에 그쳤다. 그래도 남한과 북한 선수가 시상대에 같이 서는 장면은 우리 국민의 마음을 뿌듯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감동은 오래 가지 못했다. 김정수의 도핑 검사에서 금지 약물인 프로프라놀롤(propranolol)이 검출되었기 때문이었다. 메달이 박탈되는 소식이 전 세계 언론에 전해지자 북한 내부에서는 격앙된 반응이 흘러나왔다. 한 관계자는 “중국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국가 망신을 시켰으니 우리(조선) 분위기에서는 그냥 넘길 수는 없는 문제”라며 “그렇지 않아도 위조 지폐니 마약이니 밖에서 공화국을 헐뜯으려고 혈안이 돼 있는데 약물 문제를 일으키니 안 좋은 인상만 더 키운 꼴이 됐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1]

올림픽에서 금지 약물 복용은 나름 흔한(?) 사건인데 왜 유독 김정수에게 세계적인 뜨거운 관심이 쏠렸을까? 이유는 검출된 약물의 독특한 특성 때문이었다. 프로프라놀롤은 도핑하면 흔히 떠올리는 흥분제(지금까지 살펴봤던 코카인, 암페타민, 에페드린, 클렌부테롤, 수도에페드린)와 정반대의 약리적 기전을 갖는 약물이다. 흥분시키지 않고도 운동 선수의 경기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니! 프로프라놀롤에 쏟아진 관심과 궁금증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빗나간 총알 한 발

미국의 매튜 에몬스(Matthew Emmons)는 진종오, 김정수와 함께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한 사격 선수이다. 그의 주 종목은 소총이었는데, 남자 50m 소총 3자세 결선에 진출하자 뜨거운 이목이 쏠렸다. 2004년에 아테네에서 올림픽이 열렸을 때, 같은 종목 결선에서 9번째 발까지 3점차 선두를 달리다가 마지막 한 발을 옆 선수의 표적에 쏘는 큰 실수를 저지르며 순식간에 꼴찌로 추락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2008년의 에몬스는 어땠을까? 세계 정상급의 실력을 갖춘 그답게 결선 9번째 발까지 2등과 3.3점차로 거리를 두며 선두를 달렸다. 운명의 마지막 발. 6.7점 이상만 쏘면 1위를 확정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총알은 동심원 바깥에 꽂혔고, 점수는 4.4점을 기록했다. 순식간에 순위는 1위에서 4위로 떨어졌다. 이를 계기로 그는 ‘새가슴의 대명사’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갖게 되었고, 잘 나가다가 마지막 한 순간에 무너지는 현상을 뜻하는 ‘에몬스 징크스’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베이징 올림픽 남자 50m 소총 3자세 결선 장면. 에몬스가 마지막 발에서 4.4점을 기록하자 관중은 탄식했고, 체코 국가대표 사격 선수인 아내는 눈을 크게 뜬 채 말을 잇지 못했다.

훗날 에몬스는 4년 전에 범했던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다 보니 다른 때보다 긴장했고, 손이 떨려서 방아쇠를 건드리자 곧바로 총이 발사되었다고 회상했다.[2]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또 하면 어쩌지’ 하며 부담을 느끼고, 자국 선수를 편파적으로 응원하는 관중의 함성에 압박을 받으면서 수행 불안(performance anxiety)이 발생한 것이었다. 마지막 발을 앞두고 엄습한 긴장은 그의 미세 운동 조절 능력에 결정적인 훼방을 놓았다.

불안을 느끼면 체내에서는 교감신경(sympathetic nerve)이 활성화 한다. 분비된 아드레날린은 산소와 포도당을 큰 근육 집단으로 보내서 세밀한 운동 능력을 방해한다. 혈류량이 줄면 손이 떨리고 땀으로 축축해진다. 심장 박동과 호흡은 빨라지지만 소화 기능과 타액 생성 기능이 중단되어 뱃속이 거북하고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게 된다. 몸의 움직임을 최소로 하고 생리적 평형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인 사격 선수에게 교감 신경의 활성화로 인한 일련의 변화는 가급적 피하고 싶은 상황이다.

자, 이쯤 해서 프로프라놀롤을 떠올려보자. 2008년 베이징에서 김정수가 복용한 이 약물은 교감신경의 베타 수용체를 차단하는 역할을 담당한다(교감 신경은 크게 알파(α)와 베타(β) 수용체로 나뉘어 작동한다). 프로프라놀롤은 베타 수용체가 자극되는 것을 방해해서 부들부들 떨리는 손과 쿵쾅쿵쾅 뛰는 심장을 안정시키고,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고 손을 축축하게 적시는 땀을 줄일 수 있다. 자연스럽게 수행 불안이 사격 선수에게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감소한다. 실제 스웨덴의 한 연구진은 베타(수용체) 차단제를 복용한 사격 선수들의 실력이 13.4% 향상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3]

차분함과 섬세함이 필요한 여타 다른 운동 종목에서도 프로프라놀롤이 종종 애용(?)된다. 백상어 그렉 노먼은 한 인터뷰에서 프로프라놀롤이 만연한 골프계를 다음과 같이 폭로했다.

“내가 젊었을 때에는 많은 선수들이 베타 차단제를 복용했습니다…. 선수의 성격이 바뀌곤 했죠. 한 선수는 연습하거나 친한 선수들과 경기할 때는 심적 부담의 영향을 받았지만, 실제 시합에서는 전혀 다른, 차분한 사람이 되었죠.”[4]

현재 국제반도핑기구(WADA)는 골프 외에도 양궁, 자동차 경주, 다트, 스키(프리스타일, 점프), 스노우보드(하프파이프, 빅에어)와 같은 종목에서 프로프라놀롤과 같은 베타 차단제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무대를 떠난 피아노 연주자

글렌 굴드(1932~1982)라는 캐나다 출신 피아노 연주자가 있다. 그는 23세의 젊은 나이에 녹음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으로 고전 음악계에 등장하자마자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연주 여행을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 들었지만 정작 그는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연주회장에서 내가 마치 경박한 희극 배우(vaudevillian)처럼 초라해진다.”[5] 결국 1964년 여전히 젊은 32세의 나이에 그는 연주회 무대에서 은퇴했다.

1963년 3월 뉴욕 맨해튼 컬럼비아 음반사의 녹음 스튜디오에서 연주 중인 글렌 굴드. 한겨레 제공.
1963년 3월 뉴욕 맨해튼 컬럼비아 음반사의 녹음 스튜디오에서 연주 중인 글렌 굴드. 한겨레 제공.

굴드는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기를 두려워하는 ‘무대 공포증(stage fright)’을 갖고 있었다. 고전 음악계에는 굴드처럼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는 무대에 설 때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평소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연주자가 종종 있다. 이들은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손이 떨리고, 땀이 나고, 입이 마르고, 어지럽고, 호흡이 가빠지고, 속이 미식미식해지는 신체적 변화를 겪으면서 집중에 곤란을 겪고, 외웠던 악보를 떠 올리지 못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회의에 빠지고, 공연의 실패를 예상하며 돌아올 비난에 대해 미리 염려하게 된다.

가만, 어디서 많이 들어본 증상 아닌가? 맞다. 체내에서 불안, 공포로 인해 교감 신경이 활성화 할 때 나타나는 변화이다. 그렇다면 앞서 살폈던 것처럼 교감 신경을 억제하는 프로프라놀롤이 무대 공포증을 겪고 있는 고전 음악 연주자도 도울 수 있지 않을까? 1970년대 중반 영국의 한 연구진은 현악기 연주자를 대상으로 베타 차단제의 효과를 살피는 연구를 처음 시행했다.[6] 연구진은 멋진 연주회장에 기자들을 초청하고 모든 연주 과정을 녹화하는 방식으로 연주자에게 심적 부담을 안긴 다음 베타 차단제와 위약을 각각 복용하고 연주하도록 했다.

연주자는 베타 차단제를 복용했을 때 손 떨림이 덜 했을 뿐만 아니라 연주도 더 잘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주가 향상되는 정도는 그리 크지 않았고 대체적으로 비슷했지만, 일부 연주자에서는 매우 극적인 효과가 있었다. 가장 불안해 하며 손을 많이 떨던 연주자 한 명은 위약을 복용했을 때에 비해 무려 연주가 73%나 향상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베타 차단제는 무대 공포증에도 효과적이었다.

이후 무대 공포증으로 고생하던 연주자들은 베타 차단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프로프라놀롤은 무대 공포증의 종언을 고하는 힘찬 팡파르였다. 1987년 미국에서 교향악단 연주자 221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27%가 프로프라놀롤이나 다른 베타 차단제를 복용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7] 2014년 호주에서 시행한 연구에서는 응답자의 31%가 무대 공포증을 줄이기 위해 베타 차단제를 복용한 적이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이런 목적으로 프로프라놀롤이 사용되는 것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무대 공포증이 있는 연주자는 자신이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로 보일까 봐 약물 복용을 쉬쉬하며 숨긴다. 발기가 잘 되지 않아 비아그라의 도움을 받는 중년 남성처럼 말이다. 떳떳이 밝히지 못하는 분위기는 자칫 의학적 조언을 거치지 않고 음성적으로 약물을 구해 복용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1987년 미국의 조사에서도 베타 차단제를 복용한 적이 있는 연주자의 70%가 의사의 처방전 없이 구했다고 고백했다.

무대 공포증을 치료하기 위해 처방하는 프로프라놀롤의 용량은 대개 5-20밀리그램으로 저용량에 속한다. 하지만 낮은 용량에서도 피곤함, 어지럼증, 손발의 감각 이상, 실신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또한 베타 수용체가 심장과 기관지에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부정맥이나 천식이 있는 경우에는 심장 박동이 느려지거나 기관지가 좁아지면서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니 무대 공포증으로 고생하는 연주자는 알음알음 구한 약물로 효과도 보지 못한 채 부작용에 시달리지 말고 꼭 정신과 의사와 상의하면서 도움 받기 바란다.


베타 차단제를 위한 변명

1980년 초반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일부 종목 선수들이 프로프라놀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올림픽이 열리고 있을 때 비공식적으로 검사를 시행한 결과 근대 5종(사격, 펜싱, 수영, 승마, 크로스 컨트리를 하루에 모두 진행하는 경기)에 참여한 선수 대부분이 베타 차단제를 복용했음이 드러났다. IOC는 운동능력 향상 효과가 있다는 판단 아래 이듬해부터 베타 차단제의 사용을 특정 종목에서 금지했다.

이런 결정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운동 경기의 생명은 공정성에 있기 때문에 프로프라놀롤을 복용해 운동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속임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프로프라놀롤 때문에 과녁을 더 잘 맞추는 것이 아니며 약물은 단지 교감 신경의 활성화를 차단해 선수의 온전한 실력 발휘를 ‘가능’하게 할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프로프라놀롤을 둘러싼 논쟁은 근본적으로 운동 경기에서 ‘불안과 긴장’을 어느 정도 중요한 요소로 포함시킬지 여부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과녁을 가장 정확하게 맞추는 선수가 금메달을 받아야 할까? 아니면 ‘관중 앞에서’ 가장 잘 쏘는 선수가 1위에 올라야 할까? 지금의 운동 경기 문화는 관중의 직접적인 참여보다는 관람이 더 흔한 분위기이다. 많은 관중 앞에서 촉발된 교감 신경을 잘 억제한 선수가 금메달을 받겠지만, 사실 그가 가장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는 아닐 수 있다. 사격 실력만 놓고 따지면 매튜 에몬스는 훨씬 더 많은 메달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운동 경기 이외의 분야에서는 프로프라놀롤의 사용이 훨씬 더 자유롭다. 많은 고전 음악 연주자가 약물의 도움으로 무대 공포증을 극복하고, 순위가 매겨지는 콩쿠르와 오디션에 임한다. 타인 앞에 서는 것을 힘들어하는 사람 역시 약물의 도움으로 연설이나 면접을 무사히 마칠 수 있다.[8] 특정 종목의 운동 선수가 복용하는 프로프라놀롤은 경력의 오발탄이 되겠지만, 일반인이 필요한 목적에 따라 적절하게 복용하는 프로프라놀롤은 인생의 축포가 될 수 있다. 아, 내가 전공의 시절 프로프라놀롤의 도움으로 첫 증례 발표를 무사히 마쳤다고 이러는 것은 결코 아니다.



[1] North Korean Doping Medalist in Danger? . Daily NK, 2008. http://english.dailynk.com/english/read.php?cataId=nk00100&num=3983.
[2] 테일러 클락, 너브. 2013: 208-9.
[3] Kruse, P., et al., beta-Blockade used in precision sports: effect on pistol shooting performance. J Appl Physiol (1985), 1986. 61(2): 417-20.
[4] Pennington, B., Heart Medications May Also Calm Nerves, Keeping Them Banned. The New York Times, 2012. https://www.nytimes.com/2012/11/15/sports/golf/heart-medications-may-also-calm-nerves-keeping-them-banned.html.
[5] http://www.glenngould.com/biography/.
[6] James, I.M., et al., Effect of oxprenolol on stage-fright in musicians. Lancet, 1977. 2(8045): 952-4.
[7] Fishbein, M., et al., Medical problems among ICSOM musicians:overview of a national survey. Medical Problems of Performing Artists. 3: 1-8.
[8] 최강, ‘사람들 앞에만 서면 식은땀…’ 불안?공포 바로보기. 한겨레 사이언스온, 2017. http://scienceon.hani.co.kr/?mid=media&category=90222&page=1&document_srl=483534.

한겨레 미래 과학 2018.5.24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8460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