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데이비스와 애더럴, 그리고 암페타민

크리스 데이비스가 공을 헛치는 장면. 출처: 플리커(Flicker)에서, 케이스 알리슨(Keith Allison) 제공

미국프로야구(MLB)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1루수 크리스 데이비스(Chris Davis)에게 2013년은 최고의 해였다. 타율 0.286, 출루율 0.370, 장타율 0.634, 53 홈런, 138 타점의 성적으로 ‘주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러나 이듬해 성적은 같은 선수의 기록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하락했다. 타율 0.196, 출루율 0.300, 장타율 0.404, 26 홈런, 72 타점으로 일명 ‘멘도사 라인(규정 타석을 채우고도 2할 언저리에 있는 타자를 지칭)’ 성적에 그쳤다.

더 큰 문제는 그해 9월 데이비스가 25 경기 출장 정지를 받은 것이었다. 당시 오리올스는 선두를 달리며 17년 만의 아메리카리그 동부 지구 우승까지 단 5차례의 승리(매직 넘버 5)만 남겨두고 있었다. 그가 정규 리그 잔여 경기와 포스트시즌 일부 경기까지 뛰지 못하게 되면서 좋은 흐름을 타던 팀 분위기가 크게 가라앉았다. 오리올스는 우여곡절 끝에 동부 지구 1위를 차지했지만, 아메리칸리그 결승전(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캔자스시티 로열스에게 4연패를 당하며 씁쓸히 가을 야구를 접었다.

출장 정지를 받았을 때 데이비스는 다음과 같은 사과문을 발표했다.

“동료들, 코치들, 구단, 특별히 팬들에게 사과 드립니다. 애더럴(Adderall)을 복용하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과거에는 허가를 받고 복용했지만, 올해는 치료 목적 사용면책(therapeutic use exemption; TUE)을 받지 못했습니다. 처벌을 받을 것이며, 즉시 출장 정지를 이행하겠습니다”[1]

흔히 도핑이라면 모두 나쁜 목적으로 여기고, 불법적인 사용을 떠올린다. 하지만 위의 사과문에서 엿볼 수 있듯이 약물은 쓰기 나름이다. 도핑 목록에 오른 약물도 얼마든지 치료 목적 하에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말이다.


마약? 치료제? 암페타민의 두 얼굴

2014년 7월 그룹 투애니원의 구성원 박봄이 마약류 밀수 혐의로 의혹에 휩싸였다.[2] 처음 소식을 전한 <세계일보>는 4년 전에 박봄이 해외 우편을 통해 강력한 흥분제인 암페타민이란 마약을 들여오려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소속사 와이지(YG)는 수 년간 정신과 치료를 받던 박봄이 미국에서 복용하던 애더럴을 반입하는 과정에서 양국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해 발생한 사건이라고 해명했다.

어느 쪽의 말이 맞는 것이었을까? 약물 자체에만 초점을 맞춰 답변하자면, 사실 둘 다 맞다.

애더럴은 정신의학에서 주의력결핍 과다행동 장애(ADHD)나 기면증의 치료에 사용되는 약물인데, 주성분은 놀랍게도 마약으로 알려진 암페타민이다. 화학적으로 살펴보면, 암페타민은 광학이성질체(화학구조식은 동일하지만 분자 배열 모양은 거울에 비춘 것처럼 대칭인 물질)로 좌향(left handed)인 레보암페타민과 우향(right handed)인 덱스트로암페타민으로 이뤄진다. 애더럴은 레보암페타민 25퍼센트와 덱스트로암페타민 75퍼센트로 구성되어 있다.

암페타민의 화학 구조. 레보암페타민(왼쪽)과 덱스트로암페타민(오른쪽)은 오른손과 왼손처럼 똑같은 입체 구조를 갖고 있지만 오른손에 왼손 장갑을 낄 수 없는 것처럼 결코 겹쳐지지 않는 다른 물질이다(그림은 3차원 화학구조를 2차원으로 그린 것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암페타민의 화학 구조. 레보암페타민(왼쪽)과 덱스트로암페타민(오른쪽)은 오른손과 왼손처럼 똑같은 입체 구조를 갖고 있지만 오른손에 왼손 장갑을 낄 수 없는 것처럼 결코 겹쳐지지 않는 다른 물질이다(그림은 3차원 화학구조를 2차원으로 그린 것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레보암페타민은 뇌에서 노르에피네프린과 도파민을 빠르게 분비시켜 초기 황홀감(initial rush)이나 단기간의 집중과 각성을 유발한다. 이는 보통 마약 중독자가 선호하는 효과이다. 반면에 덱스트로암페타민의 경우, 초기 황홀감은 덜하지만 뇌의 신경접합부에서 수 시간 동안 두 신경전달물질의 공급을 증가시킨다. 집중과 각성이 오래 지속되는 효과는 지나치게 산만하고, 충동적이며, 부산스러운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 애더럴을 개발한 제약회사는 두 광학이성질체를 1:3의 비율로 혼합해 초기 황홀감이 과하지 않으면서 각성과 집중을 극대화시키는 ADHD 치료제를 만들어냈다.

미국프로야구 사무국은 2006년 암페타민을 금지 약물에 포함시켰다. 선수들이 대기석에서 ‘그리니스(greenies)’라 불리던 암페타민을 주전부리처럼 복용하던 관행에 제동을 거는 조치였다. 그러나 여전히 애더럴, 즉 암페타민을 합법적으로 섭취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사무국이 인증한 정신과 의사에게 ADHD를 진단 받은 뒤에 사무국과 선수 노조가 선정한 세 명의 정신과 의사에게 승인을 받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2006년을 기점으로 ADHD의 치료 약물인 흥분제의 치료 목적 사용면책이 급증한 부분이다. 사무국의 승인 아래 흥분제를 복용하는 선수가 2006년에는 28명이었지만, 이듬해에는 103명으로 늘어났다. 2013년에 119명으로 정점에 이르렀고, 이후 조금 감소해 2017년에는 103명이었다. 이는 미국프로야구 40인 명단에 들어가는 전체 선수의 약 9퍼센트 정도인데, 일반 인구에서 성인 ADHD의 유병률인 4.4퍼센트의 두 배에 해당하는 수치이다.[3] 뭔가 미심쩍지 않은가?

물론 부주의하고 과다행동을 보이던 어린이가 운동을 통해 자존감을 높이고 또래와 어울리는 유익한 경험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운동 선수의 길을 더 많이 선택했을 수 있다. 아니면 프로 야구 선수가 개인 성적과 팀 승패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강하게 받으면서 더 많은 정신질환을 갖게 된 것일 수 있다. 혹 암페타민이 금지된 뒤 치료목적 사용이 급증한 것은 그저 단순한 오비이락일지도 모른다. 진실은 무엇일까?

2014년 한 해를 죽 쑤었던 크리스 데이비스는 2015년 초 다시 치료 목적 사용면책을 받았다. 허가된 약물은 바이반스(Vyvanse)로 덱스트로암페타민의 전구체(precursor; 일련의 반응에서 특정 물질이 되기 전 단계의 물질)가 주성분이었다. 기존에 복용했던 애더럴보다 효과가 나타나는 데 시간이 더 걸리긴 하지만, 암페타민은 역시 암페타민이었을까? 그는 2015년 47개의 홈런을 날리면서 또 한 번 홈런왕에 올랐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역사상 홈런 1위에 두 차례 오른 선수는 데이비스가 처음이었다. 이듬 해 그는 소속 팀과 7년 1억 6100만 달러의 초대형 계약을 맺게 된다.


머리가 좋아지고 똑똑해지는 약?

2015년 7월 북미/유럽 이(e)스포츠 리그인 이에스엘(ESL)은 프로 게임 선수를 대상으로 경기력 향상 약물 검사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파격적인 결정이 내려진 배경에는 약 2주 전 코리 프리슨(Kory Friesen)이라는 선수의 인터뷰가 있었다. ‘카운터 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 종목에 참가한 그는 ‘콜러(caller; 전략과 위치에 관해 같은 팀 선수들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로서의 능력에 대한 질문을 받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 생각에 선수들과의 대화는 꽤 웃겨요. (잠시 뜸을 들인 뒤) 하지만 상관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다 애더럴을 복용하니까요. 난 신경 안 써요.”

프리슨이 나눈 인터뷰. 애더럴 복용과 관련된 이야기는 7분 40초경부터 나온다. 유튜브

1937년 미국의 정신과 의사 찰스 브래들리(Charles Bradley)가 벤제드린(Benzedrine; 덱스트로암페타민과 레보암페타민을 1:1로 혼합한 약물)으로 제멋대로인 아이들을 조용하고 학구적인 아이들로 변화시켰다는 논문을 처음으로 발표했다.[4] 이후 암페타민과 같은 흥분제가 ADHD의 증상을 호전시킬 수 있다는 근거가 체계적으로 입증되었다. 흥분제는 뇌의 전전두피질에서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농도를 높여 집중력과 자제력을 향상시킨다. 프로 게임 선수가 애더럴을 애용하는(프리슨의 주장에 따르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프로 게임 선수 말고도 많다. 흔한 예로 시험을 앞두고 많은 양을 짧은 시간 안에 외워야 하는 학생들이 있다. 시험 공부에 집중하고 싶은 이들에게 애더럴은 일명 '머리 좋아지는 약(smart drug)'으로 통한다. 향상된 집중력에 추가적으로 암페타민의 각성 효과 덕분에 공부하느라 식사를 건너뛰어도 배 고프지 않고, 밤 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있어도 피곤을 느끼지 않게 된다. 와우!

그런데 애더럴은 정말 복용하는 사람을 똑똑하게 만들어주는 것일까? 미국의 마샤 파라(Martha Farah)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암페타민의 인지기능 상승 효과는 일종의 착시로 보인다.[5] 위약에 비해 애더럴이 인지기능에 미치는 효과가 미미한 반면에, 애더럴을 복용한 사람은 이를 매우 크고 효과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설령 단기적으로 애더럴이 도움되더라도 장기적으로 복용하면 별 다른 효과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질병의 치료가 아니라 인지기능 향상을 목적으로 애더럴을 섭취하는 경우, 의학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장기간 복용하면 암페타민 의존증이 발생할 수 있고, 남용하는 경우에도 여러가지 부작용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두통, 오심, 구토, 심계 항진, 손떨림과 같은 가벼운 증상부터 심근경색, 뇌혈관 질환, 허혈성 대장염처럼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까지 발생할 수 있다. 정신과적으로도 불안, 편집증, 피해 망상, 환각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요즘처럼 경쟁이 심한 사회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좋은 점수를 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패자부활전이 드문 사회에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시험이나 발표를 망칠 것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힐 때 자칫 머리 좋아지는 약에 눈길이 갈 수 있다. 하지만 애더럴의 경우 인지기능 향상에 크게 도움되지 않고, 몸과 마음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유혹에 흔들리지 말길 바란다.


친구 따라 강남 정신과 간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훈련 도중에 미군 조종사 두 명이 캐나다의 엘리트 육군 부대에 폭탄을 투하하여 네 명이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사고의 원인으로는 조종사가 임무에 나서기 전에 복용한 일명 '출동 약물(go-pill)'이 지목되었다.[6] 각성 상태를 유지하고, 집중력을 높일 목적으로 군 당국이 강제적으로 보급한 암페타민이 오히려 판단력의 저하를 유발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극단적이지만 암페타민의 효과가 기대를 저버리는 방향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 예이다.

물론 암페타민 자체가 불법인 우리나라에서 애더덜과 관련된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크게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ADHD의 다른 치료 약물인 메틸 페니데이트가 본래의 목적을 벗어나 집중력을 높이는 약, 공부 잘하는 약으로 통하곤 한다. 하지만 메틸 페니데이트 역시 정상인이 복용할 경우 득은 하나도 없고 실만 경험하게 된다. 중앙대학교 이영식 교수의 쉬운 비유를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다.

"ADHD 치료제는 헐렁한 나사를 조이는 역할을 한다고 하면 이해가 편하다. 이미 꽉 조여져 있는 나사를 더 세게 조이려고 할 경우 부작용이 나타나는 건 당연지사다."[7]

사람마다 애더럴이나 메틸 페니데이트를 복용하는 이유가 다를 수 있다. 산만하고 충동적인 ADHD 환자는 차분해지기를, 크리스 데이비스 같은 운동 선수는 경기 중 집중력(혹은 운동 수행 능력)의 향상을, 시험의 압박에 시달리는 대학생은 인지기능의 호전을 기대한다. 그러나 의학적으로 입증된 경우가 아니라면 약물의 부작용과 뜻하지 않은 역효과에 부딪힐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치료 외의 목적으로 친구 따라 소아청소년 정신과가 몰려 있는 강남에 가는 일은 없어야겠다.


[1] Crasnick, J. Chris Davis banned 25 games

http://www.espn.com/mlb/story/_/id/11512445/baltimore-orioles-first-baseman-chris-davis-suspended-25-games-mlb. 2014.

[2] 원성윤. 2NE1 박봄 마약류 밀수 의혹 : 양현석 "미국서 처방받은 약" 항변

http://www.huffingtonpost.kr/2014/07/01/story_n_5545958.html. 2014.

[3] Kessler, R.C., et al., The prevalence and correlates of adult ADHD in the United States: results from the National Comorbidity Survey Replication. Am J Psychiatry, 2006. 163(4): p. 716-23.

[4] Strohl, M.P., Bradley’s Benzedrine Studies on Children with Behavioral Disorders. The Yale Journal of Biology and Medicine, 2011. 84(1): p. 27-33.

[5] Ilieva, I., J. Boland, and M.J. Farah, Objective and subjective cognitive enhancing effects of mixed amphetamine salts in healthy people. Neuropharmacology, 2013. 64: p. 496-505.

[6] Randall, D.K., Dreamland: Adventures in the Strange Science of Sleep(번역판<잠의 사생활>). 2012: W. W. Norton.

[7] 나건웅. 수능 앞둔 학생 ‘ADHD 치료제’ 주의보 공부 잘하는 약? 환각·불면증 부작용 우려

http://news.mk.co.kr/v2/economy/view.php?year=2017&no=767866. 2017.



한겨레 미래과학 2018.2.28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83405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