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과학] ‘1시간 멀리타기’ 기록을 7km 늘려준 첨단 자전거

2020. 4. 9. 11:30글모음

22화 기술 도핑 ③ 아워 레코드 논란

 

1974 년 에디 메르크스가 국제자전거연맹(UCI) 로드월드챔피언쉽에서 역주를 펼치고 있다. 그는 이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도로 자전거 경주 역사상 처음으로 한 해 3관왕(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에디 메르크스(Eddy Merckx)는 자전거 역사에서 전설적인 선수이다. 1965년 프로 선수로 전향해 1978년 은퇴할 때까지 무려 525회의 우승을 차지했으며, 3대 도로 일주 대회(그랜드 투어) 종합 우승만으로도 투르 드 프랑스 5회, 지로 디 이탈리아 5회, 부엘타 에스파냐 1회를 기록했다. 그의 별명은 '식인종(The Cannibal)'이었다. 1969년 한 대회에서 팀 동료가 그의 활약을 딸에게 이야기하자, 딸이 의미심장하게 남긴 말에서 별명이 탄생했다.

 

"그 벨기에 아저씨는 아빠에게 부스러기 하나도 안 남겼네요…그 아저씨는 식인종이에요."[1]

 

메르크스는 1972년 가을 한 시간 동안 가장 멀리 타기에 도전했다. 흔히 뛰어난 자전거 선수임을 입증하는 세가지 지표로 3대 도로 일주 대회 중 하나 우승하기, 월드 챔피언십 우승하기, 한 시간 동안 가장 멀리 타기 신기록 세우기가 언급되는데, 그는 이미 1971년 말까지 지로 디 이탈리아 우승 2회, 투르 드 프랑스 우승 3회, 월드 챔피언십 우승 2회란 걸출한 기록을 거두고 있었다. 이제 선수로서 한 단계 더 오르기 위해서는 순수하게 신체 능력만 평가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한 시간 동안 멀리 타기 기록, 일명 ‘아워 레코드(hour record)’에 도전해야 했다.

 

1972년 11월25일 아침 토스트, 햄, 커피, 치즈로 아침 식사를 마친 뒤 8시46분, 그는 60분의 대장정에 나섰다. 한 시간 뒤 그는 49.431킬로미터를 타며 많은 팬과 기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전 기록보다 778미터나 더 탄 기록이었다. 경주를 마친 직후 그는 너무 힘들었다면서 이보다 더 멀리 달리는 것은 불가능하고, 다시는 도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 기록은 한동안 깨지지 않았고, 49.431킬로미터는 인간 신체 능력의 한계치로 여겨졌다. 그럴 만도 했다. 다름아닌 ‘식인종'이 세운 기록이었으니까.

 

1972 년 에디 메르크스가 한 시간 동안 가장 멀리 타기에 도전하는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Ly7Qycj3rgE

 

한 시간 동안 가장 멀리 타기

 

영원할 것 같던 에디 메르크스의 아워 레코드는 12년이 지난 1984년 1월19일 프란체스코 모서(Francesco Moser)에 의해 깨졌다. 그의 기록은 메르크스보다 720미터 더 멀리 탄 51.151킬로미터였다. 난공불락으로 보이던 기록을 깼을 때 모서의 나이는 선수로서는 적지 않은 32세였다. 하지만 그는 생물학적인 불리함을 첨단과학으로 뛰어 넘었다.

 

모서의 자전거는 한마디로 공기역학, 그 자체였다. 바퀴살(스포크)을 렌즈 모양의 탄소 섬유 원반으로 덮은 일명 ‘디스크 휠(disc wheel)'은 무게가 4.6킬로그램이나 나갔지만, 회전 속도를 고르게 해 안정감을 주는 무거운 바퀴인 플라이휠(flywheel) 역할을 했다. 시트 튜브(seat tube)가 둥근 호(弧)를 이루면서 뒷바퀴가 거의 그의 아래 쪽에 위치한 반면에 앞바퀴는 상대적으로 작아서 헤드 튜브(head tube)가 짧아졌고, 소뿔 모양의 작은 핸들바(bullhorn bar)가 사용되면서 자전거에 오른 그의 자세는 자연스럽게 웅크리는 모습이 되어 공기 저항을 줄일 수 있었다.[2]

 

시트 튜브 : 자전거의 프레임은 크게 앞쪽 삼각형과 뒤쪽 삼각형으로 나뉘는데 앞쪽 삼각형의 뒷부분을 시트 튜브라 부름

헤드 튜브 : 자전거 프레임의 앞쪽 삼각형에서 윗부분인 탑 튜브와 아랫부분인 다운 튜브가 만나는 꼭지점 부분을 뜻함

1984년 프란체스코 모서가 한 시간 동안 가장 멀리 타기 신기록을 작성할 때 탔던 자전거의 기본 형태. 플리커(Flikr)에서 팀 노크스(Tim Noakes)  

그의 자전거는 소재도 특별했다. 바퀴는 무거웠지만 타이어의 뼈대(carcass)는 100그램의 순수한 견사(silk)로 매우 가볍고 폭이 좁게 만들어졌다. 또한 발판, 크랭크, 허브, 체인링과 같은 부품은 티타늄과 마그네슘으로 매끄럽게 제작되어 공기역학적인 이점을 제공했다. 실낱 같은 공기 저항까지 줄이기 위해 그는 몸에 달라 붙는 스판덱스로 제작한 스킨수트(skinsuit)를 입었고, 끈이 없는 특수 제작 신발을 아예 발판에 붙여 불필요한 다리 힘의 손실을 차단했다.

 

새로운 영웅의 등장에 사람들은 환호했지만 12년 동안 기록을 보유했던 메르크스는 탐탁지 않았다. 자전거 경기의 여러 돌발 변수를 배제하고, 오롯이 선수의 신체 능력으로만 결정되는 아워 레코드의 가치가 손상되었다고 느꼈다. 현역 시절 모서를 만날 때마다 승리했던 메르크스에게 새로운 아워 레코드는 첨단 소재와 혁신 기술의 도움을 받은 불공정의 산물이었다.

 

"한 시간 동안 가장 멀리 타기 역사상 처음으로 약한 사람이 강한 사람을 이겼네요."[3]

 

극단적으로 몸을 웅크린 채 직접 제작한 자전거 올드 페이스풀을 타고 있는 그레이엄 오브리.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하지만 이후에도 한 시간 동안 가장 멀리 타기는 메르크스의 투덜거림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특히 1990년대 중반 그레이엄 오브리(Graeme Obree)와 크리스 보드만(Chris Boardman)을 필두로 하는 선수들이 더욱 공기역학적인 자전거와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자세를 무기 삼아 도전에 나서면서 기록이 크게 요동쳤다.

 

포문은 그레이엄 오브리가 먼저 열었다. 무명의 아마추어 선수였던 그는 직접 제작한 ‘오래된 믿음직한 친구(Old Faithful)’를 타고 도전에 나섰다. 드럼 세탁기의 고속 회전에서 영감을 얻은 실드 베어링(shield bearing)과 산악 자전거에서만 사용되던 일자형 핸들바(flat bar)를 도로 자전거에 최초로 도입한 과감성 못지 않게 타는 자세 역시 파격적이었다. 손을 가슴에 붙이고 팔꿈치는 안으로 바짝 집어 넣으며 몸을 둥글게 웅크리는 자세에는 ‘계란’ 혹은 ‘기도하는 사마귀’란 별명이 붙었다. 1993년 7월17일 그는 공기 저항을 줄이는 유선형 헬멧까지 쓰고 새로운 기록 51.596킬로미터를 타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오브리의 기록은 불과 6일만에 깨졌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크리스 보드만이 그 주인공이었다. 그의 무기는 바르셀로나에서 탔던 첨단 자전거 ‘로터스 108(Lotus 108)’을 도로용으로 개량한 ‘로터스 110’이었다. 자전거의 차체는 탄소 섬유 모노코크(monocoque; 갑각류의 단단한 껍질처럼 한 덩어리로 제작된 형태)여서 혁신적으로 가볍고, 공기역학의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996년 9월16일 오브리가 처음 시작한 일명 ‘슈퍼맨 자세(하늘을 나는 슈퍼맨처럼 두 팔을 앞으로 쪽 펴서 공기 저항을 줄이는 자세)’로 56.375킬로미터를 타며 새로운 기록을 작성했다. 24년 전 에디 메르크스보다 무려 7킬로미터 가까이 더 탄 기록이었다.

 

로터스 108. 모노코크 차체 외에도 바퀴는 공기 저항을 줄이는 디스크 휠과 측면 바람에 취약한 디스크 휠의 약점을 보완한 트리-스포크(tri-spoke) 휠로 이루어져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맹 기록? 인간 최고의 노력 기록? 통합 기록?

 

아워 레코드가 연달아 갱신될 때 세계자전거연맹(UCI)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선수의 신체 능력을 순수하게 평가하는 한 시간 동안 가장 멀리 타기가 첨단 과학기술의 장으로 변질된 상황이 불편했다. 이런 분위기는 1996년 10월 UCI 운영위원회가 ‘루가노 헌장(Lugano Charter)’을 발표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헌장은 당시 분위기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자전거의 기술적인 측면을 통제하지 못하면서 나타난 잠재적인 위협과 문제를 인식했기에 여러 조치를 취할 것이며, 이를 통해 선수들이 대등한 위치에서 경쟁하면서 신체적으로 누가 뛰어난지 가리는 자전거 경기의 진정한 의미를 상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4]

 

과학기술을 신체의 가치를 격하시키는 걸림돌로 여기던 UCI는 2000년 9월 순순한 신체 능력과 동일시되던 ‘아워 레코드’를 새롭게 정의했다. 1972년 에디 메르크스의 49.431킬로미터를 ‘UCI 기록’으로 명명하고, 이후 작성된 기록은 모두 ‘인간 최고의 노력(best human effort) 기록’으로 옮겼다. 결과적으로 메르크스의 기록과 첨단 자전거를 타고 세운 기록 사이에 명확한 선이 그어졌다.

 

메르크스의 기록에 연맹의 이름을 붙인 것은 UCI가 인정하는 공식 기록이라는 의미였다. 여기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그가 탄 것과 유사한 자전거만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러한 결정을 통해 메르크스는 과학기술에 빛이 바래지 않으면서 순수한 신체 능력을 십분 발휘한 표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운동경기에서 도구나 기계가 아무리 발전해도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전통적인 믿음을 다시 세우려는 UCI의 노력이 반영된 결과였다.

 

하지만 ‘아워 레코드’를 작성할 때 메르크스가 탔던 것은 평범한 자전거가 아니었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자전거 제작자 에르네스트 콜나고(Ernesto Colnago)가 진두지휘하며 만든 자전거였다. 그는 경량화에 초점을 맞추고 자전거가 메르크스를 싣고 한 시간 동안 겨우 버틸 수 있는 수준까지 무게를 줄여 나갔다. 각종 부품에 구멍을 최대한 뚫고, 앞바퀴에는 90그램, 뒷바퀴에는 110그램의 초경량 타이어를 단 자전거의 최종 무게는 5.5킬로그램이었다. 당시 일반적인 도로 자전거의 무게인 11킬로그램의 반에 불과한 무게였다.

 

1972년 에디 메르크스가 아워 레코드를 세웠을 때 탄 자전거. 전통적인 디자인을 따르고 있지만 경량화를 위한 첨단 과학기술이 사용되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콜나고는 무작정 경량화만 추구하지 않았다. 당시로서는 첨단 기술인 티타늄 용접이 이탈리아에서 가능하지 않자 미국까지 건너가 작업을 진행하며 내구성을 강화했다. 또한 공기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도전의 장소로 공기 밀도가 낮은 고지대 멕시코시티를 장소로 선택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그가 세운 계획 중 유일하게 실패한 것은 도전 당일 타이어를 일반 공기보다 가벼운 헬륨으로 채우지 못한 것이었다.

 

아워 레코드가 재정립되면서 메르크스는 ‘순수한 신체 능력의 화신'으로 소환되었지만, 사실 그는 신체 단련 못지않게 자전거 제작에도 관심이 많았다. 당시 첨단 기술은 자전거의 경량화에 주로 적용되었다. 콜나고가 지지대의 돌출부를 줄로 다듬으면 몇그램 줄일 수 있다고 하자 신이 나서 “그렇게 하세요!” 외칠 정도로 그는 과학기술의 신봉자였다.[5] 이런 그를 UCI가 포장한 속내는 따로 있었다. 1990년대 후반 각종 불법 약물 파동으로 곤두박질친 자전거 종목의 권위를 만회하는 것이었다. UCI는 '평범한 자전거와 비범한 신체'를 내세우면서 자신들이 약물 혹은 기계보다 인간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어했다.[6]

 

하지만 2014년 UCI는 한 시간 동안 가장 멀리 타기 규칙을 다시 개정했다. UCI 기록과 인간 최고의 노력 기록을 하나로 합쳐 ‘통합(unified) 기록'을 만들었고, 사용하는 자전거에 대한 제한 항목도 대폭 줄였다. UCI는 규칙의 단순화와 현대화를 통해 아워 레코드, 나아가서는 자전거 종목 전반에 대한 인기가 회복되길 소원했다. 바람대로 많은 선수들이 새롭게 도전에 나서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왜 14년 전 굳이 그렇게 복잡하게 기록을 나눴는지 별 다른 해명은 없었다. 하긴 스포츠에서는 종종 결과만 좋으면 다이긴 하다.

 

 

승부의 추는 누가 쥐어야 할까

 

2016년 세계 사이클로크로스(Cyclo-cross; 비포장 험지에서 펼쳐지는 자전거 경기) 선수권이 열릴 때 벨기에 선수 펨케 반 덴 드리슈(Femke Van den Driessche)의 자전거에서 모터가 발견되었다. 일부 선수들이 불법적으로 모터를 장착해 경기력을 끌어 올린다는 풍문이 사실로 확인된 순간이었다. UCI는 2010년부터 경기에 사용될 자전거를 검사하고, 확인하는 대책을 시행해 왔지만, ‘기계 도핑(mechanical doping)'의 도래를 막을 수 없었다.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여러 운동 종목에서 도구나 기계의 개선 속도를 규칙이 따라가지 못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근래에 케냐의 마라톤 선수 엘리우드 킵초게가 비공식 기록이지만 사상 최초로 2시간 벽을 깼을 때에도 신었던 신발이 논란이 되었다. 특수 제작한 탄소 섬유 밑창이 용수철처럼 뛰는 힘을 10퍼센트 이상 증가시킨다면 약물과 다를 바가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약물 도핑이 불법이라면 기계 도핑도 당연히 불법이다. 하지만 적법과 불법의 기준은 오히려 기계나 도구에서 더 정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도외시한 채 인간의 신체 능력만을 강조하면 아워 레코드를 다루던 UCI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반면에 첨단 과학기술만 칭송하면서 무분별하게 스포츠에 도입하면 공정한 경쟁이란 기본 정신은 사라지고, 도구와 기계가 승패를 좌우하는 인간미 없는 승부가 펼쳐질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우리의 삶을 급격하게 바꾸고 있다. 덕분에 편리한 삶을 살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이 과학기술에 함몰되어 간다는 불안과 공포도 있다. 그래서 <터미네이터>, <매트릭스> 같은 공상과학 영화가 꾸준히 인기를 얻는지 모른다. 이제 도구를 이용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도구와 한 몸이 되어 운동장을 달리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를 만나보자(④부에 계속).

 

 

참고 자료

1. MacLeary, J., Tour de France poised to pay homage to Eddy Merckx – the greatest ever. The Telegraph, 2019. http://www.telegraph.co.uk/cycling/2019/07/05/tour-de-france-poised-pay-homage-toeddy-merckx-greatest-ever/.

2. Boardman, C., Chris Boardman: The Biography of the Modern Bike: The Ultimate History of Bike Design. Octopus, 2015: p. 34-5.

3. Mulholland, O., Eddy and the Hour. Bicycle Guide, 1991. 8.

4. UCI, The Lugano charter. 1996.http://62.50.72.82/imgArchive/Road/Equipment/The%20Lugano%20charter.pdf.

5. Maloney, T., Ernesto Colnago 50th Anniversary Interview: Part four. Cyclingnews, 2004. http://autobus.cyclingnews.com/sponsors/italia/2004/colnago/?id=colnago4.

6. Fouché, R., Game Changer: The Technoscientific Revolution in Sports. 2017: p. 92.

www.cyclingnews.com news and analysis

 

2020.3.24 한겨레 미래과학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93388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