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 겨울바람에 실려온 우울함, 이 기분 뭐지?

2016. 12. 28. 14:39글모음

[32] 겨울 우울증


 » 피트 몬드리안의 ‘회색 나무’. 출처/Wikimedia Commons



‘스노우버드(snowbird)’라는 영어 단어가 있다. 우리말로 피한객(皮寒客)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이 단어는 추위를 피해 따뜻한 곳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이들은 위도가 높은 캐나다나 미국 북부에서 살다가 날이 추워지면 미국의 애리조나, 플로리다, 텍사스, 캘리포니아, 하와이 같은 온화한 남쪽 지역으로 이동해 겨울을 보낸 뒤 봄이 되면 다시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온다.


매해 번거롭게 이동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북쪽의 겨울이 매우 춥고 길기 때문이다. 엄혹한 추위 탓에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감기와 같은 호흡기 질환에 자주 걸리고, 미끄러운 빙판에서 넘어져 다치고, 반복해서 집 앞의 눈을 치우다 탈진하고, 산책이나 운동 같은 외부 활동을 즐기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집을 떠나 남쪽으로 가면 따뜻한 햇살에 몸을 맡긴 채 부상이나 사고의 위험 없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일부 스노우버드는 겨울만 되면 찾아오는 우울증, 일명 ‘겨울 우울증(winter blues)’ 때문에 남쪽으로 행렬에 동참한다. 스산하고 을씨년스러운 곳에서 겨울을 보낼 때마다 축 처진 기분과 가라앉은 활력으로 고생하던 사람도 밝고 따뜻한 곳에서는 겨울이 아닌 때처럼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위도가 상대적으로 낮지만 우리나라의 겨울 역시 매서운 편이다. 두터운 외투를 챙기는 것 말고도 기분/활력의 변화를 알아보는 것도 괜찮은 월동 준비일 듯싶다.


이야기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한 정신과 의사에서 시작한다.




뉴욕에 온 남아공 출신 연구자의 뜻밖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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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먼 로젠탈(Norman Rosenthal)은 의과대학 졸업 후 정신과 수련을 받기 위해 1976년 여름 미국 뉴욕으로 건너왔다. 고향인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와 달리 뉴욕의 여름은 길고 뜨거웠다. 그는 활력이 넘쳤고 여러 일을 도맡아 했다. 그러나 날이 짧아지고 추워지면서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껏 상승했던 활력이 떨어지면서 ‘내가 미쳤었나? 지난 여름에 이 많은 일들을 다 어떻게 한 거지?’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힘들었던 겨울을 가까스로 버텨내자 다시 봄이 왔다. 신기하게도 다시 활력이 솟아났고, 업무량에 대한 걱정도 자연스럽게 줄었다.[1]


00winter_rosenthal.jpg » 현재 개업의이자 조지타운 의대에서 임상 교수로 활동 중인 노먼 로젠탈. 출처/ Wikimedia Commons 젠탈의 인상적인 경험은 수련을 마친 뒤 옮겨 간 미국 국립정신보건원(NIMH)에서 본격적인 연구 활동으로 이어졌다. 그 계기는 허브 컨(Herb Kern)이라는 63세 과학자였는데, 당시에 그는 사실 연구자라기보다는 환자였다. 컨은 오래 전부터 겨울이 되면 활력이 줄고, 결정을 잘 못 내리고, 흥미가 감소하고, 정신 활동이 느려지고, 잠을 못 자는 증상으로 고통 받아왔다. 자신의 직업에 걸맞게 이런 변화를 10여 년에 걸쳐 꼼꼼하게 기록하던 컨은 낮이 길어지면 증상이 호전되고, 짧아지면 악화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수소문 끝에 로젠탈이 속해 있던 연구진의 문을 두드렸다.


컨의 주장, 즉 “낮의 길이가 짧아지면 우울해진다”는 말을 확인하기 위해 연구진은 그의 증상이 심해지는 12월에 인위적으로 낮의 길이를 늘려보기로 했다.[2] 연구진은 해뜨기 전에 3시간, 해진 후 3시간 이렇게 총 6시간 동안 컨을 금속으로 제작한 상자 안에 들어가게 한 뒤 밝은 형광등 불빛에 노출시켰다. 밤을 줄이고 낮을 늘린 효과는 예상보다 빠르게 나타났다. 불과 4일 만에 컨의 기분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로젠탈은 연구를 확장해보기로 했다. 한 기자의 도움으로 “곰이라도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곰은 겨울잠이라도 잘 수 있지”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기사를 일간신문 <워싱턴 포스트>에 싣고는, 컨처럼 겨울에 우울해지는 사람들을 모집했다. 로젠탈은 주변의 정신과 의사들에게 비슷한 증례를 접한 적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연락이 드물 것이라 예상했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연구실의 전화기는 며칠 동안 계속 울려댔고, 2000명 넘는 사람이 관심을 보였다.


00winter3.jpg » 왼쪽: 참가자가 월별로 우울한 기분을 호소하는 빈도. 오른쪽: 위도 39도 지역의 월별 낮의 길이. 둘 사이에 높은 상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각주[3],변형 


체 기준으로 추려낸 29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는 1984년 발표되었다.[3] 환자의 수가 늘어나자 임상적 실체가 더 명확해졌다. 우울증은 주로 11월, 12월에 시작했다가 다음해 3월에 끝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19명(83%)은 우울증을 피하기 위해 위도가 낮은(따뜻한) 곳으로 여행을 간다고 말했다. 임상적으로 환자들은 우울한 기분 외에 불안이나 짜증을 많이 보고했고, 식욕이 증가해 체중이 불고 잠이 늘어나는 비전형적인 우울증의 특징이 자주 나타났으며, 집중력과 활력의 감소로 직장에서 불편을 겪고, 사회적으로 위축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00winter4.jpg » 밝고 하얀 광선에 먼저 노출될 때(왼쪽)와 흐릿하고 노란 광선에 먼저 노출될 때(오른쪽)의 우울증 점수의 변화. 밝고 하얀 광선 치료를 받을 때 우울증의 호전이 나타났다. 출처/각주[3]아울러 인공적인 빛을 통해 낮의 길이를 늘리는 치료, 일명 ‘광선 치료(light therapy)’가 효과적인지를 살피는 연구도 진행되었다. 연구진은 빛의 밝기를 중요한 것으로 생각해, 밝고 하얀 빛과 흐릿하고 노란 빛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준비했다. 환자들은 무작위로 2주 동안 밝은 광선 노출, 1주 동안 휴식, 다시 2주 동안 흐릿한 광선 노출 혹은 반대의 순서로 광선에 노출되었다. 그 결과 밝은 광선 치료를 받을 때 우울한 기분이 호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로젠탈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계절성 정동장애(seasonal affective disorder)’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었다. 아울러 (1)주요한 정동장애의 과거력이 있을 것, (2)가을, 겨울에 나타난 우울증이 봄, 여름에 호전되는 양상이 적어도 2년 이상 존재할 것, (3)다른 주요 정신질환이 없을 것, (4)특정 계절에 반복되는 실업과 같은 정신사회적 요소가 없을 것과 같은 진단기준도 제안했다. 날씨가 바뀐 곳에서 겪은 기분의 변화가 개인적 경험에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의학적 발견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연구 결과는 학계에 빠른 속도로 받아들여졌다. 로젠탈의 논문이 발표된 지 3년 만에 계절성 정동장애는 기분장애의 한 아형으로 정신질환의 진단기준(DSM-III-TR)에 포함되었고, 이후 개정판(DSM-IV, DSM-5)에서도 큰 변화 없이 유지되었다. 비록 독립된 별도의 정신질환으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로젠탈의 주장[4]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계절성정동장애는 여전히 정신의학의 한 영역으로써 자리잡고 있다.



겨울에 늘어지고 많이 자고 살이 붙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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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에 나타나는 우울증은 현저하게 무력해지고, 많이 자고, 과식해 몸무게가 늘어나고, 탄수화물을 갈구하는 임상적 특징을 띠고 있다.[5] 이런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면 겨울잠 자는 동물이 떠오른다. 계절성 정동장애의 원인을 찾으려는 연구자들도 역시 자연스럽게 1년 단위로 조절되는 생체 주기 리듬에 주목했다. 동물의 동면, 이주, 생식과 같은 행동이 생체 주기 리듬과 밀접하게 연관되기 때문이다.


00winter5.jpg » 겨울잠을 많이 자기로 유명한 겨울잠쥐. 출처/한겨레21

 

체에는 하루를 주기로 기상과 취침, 호르몬 분비, 온도 조절과 같은 행동과 생리 현상을 조절하는 일주기 리듬(circadian rhythm)이라는 것이 있다. 일종의 생체 시계인 일주기 리듬은 외부의 빛/어둠 주기와 동기화되어 있고, 이를 조정하는 뇌 부위는 시상하부(hypothalamus)에 있는 시신경교차상핵(suprachiasmatic nucleus; SCN)으로 알려져 있다.


동기화의 기전을 간략히 살펴보자. 밤이 되면 안구의 특정세포(melanosin)에서 이를 감지해 시신경교차상핵으로 신호를 보내고, 이어서 송과선(pineal gland)에서 멜라토닌(melatonin)이 분비된다. 멜라토닌은 수면 호르몬, 어둠 호르몬이라는 별명답게 우리 몸에 자야 할 시간임을 알려 준다. 반대로 아침이 되면 반대의 기전으로 멜라토닌의 생성이 억제되면서 이제 일어나야 할 때라는 신호를 보낸다.


00winter_brain.jpg » 어두워지면 생체 시계의 중추인 시신경교차상핵에서 송과선에 신호를 보내 멜라토닌이 분비되기 시작한다. 출처/각주[6]


겨울이 되면 새벽이 오는 시간이 점점 늦춰져 자연스럽게 일주기 리듬도 뒤로 밀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일어나기 때문에 실제 수면-각성 주기와 일주기 리듬 사이의 동기화가 깨지게 된다. 반대로 저녁에 바깥이 이미 어두워졌는데도 잠을 자지 않는 경우에는 일주기 리듬이 앞으로 당겨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처럼 일주기 리듬이 뒤로 밀리거나 앞으로 당겨지는 ‘위상 이동(phase shift)’이 계절성 정동장애의 원인으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7] 그리고 광선 치료도 단순히 많은 빛에 노출시키는 과거의 방식 대신 최근에는 위상 이동의 종류에 따라 시행된다.[8]


그런데 이쯤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일주기 리듬, 광선 치료, 계절성 정동장애의 관계는 비교적 자세히 밝혀졌지만 어긋난 생체 시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우울증을 유발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관련 연구가 생각보다 많지 않은 상황에서 올해 초 덴마크(위도가 높아 겨울밤이 긴 나라이다)의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9] 한 편은 궁금증의 실타래를 ‘겨울 바람’처럼 풀어 헤쳐줬다.


손열음이 연주하는 쇼팽의 ‘겨울바람(연습곡 작품번호 25-11)’.

[ https://youtu.be/B1yr7lOM27A ]


구는 계절성 정동장애 환자 17명과 일반인 23명을 대상으로 시행했는데, 여름과 겨울에 이들의 뇌를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Positron emission tomography; PET)을 통해 비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연구진의 관심사는 세로토닌 수송체(serotonin transporter; SERT)였다. 세로토닌 수송체는 시냅스(synapse; 신경세포의 접합부)에서 행복, 기쁨과 연관된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을 신경세포 안으로 다시 집어넣는 일종의 재흡수 펌프이다. 우울증 치료제인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가 바로 이곳을 억제해 시냅스에서 세로토닌의 농도를 증가시키고, 작용을 길게 만들어 항우울 효과를 얻는다. 반대로 세로토닌 수송체가 증가하면, 세로토닌의 재흡수가 빨라져 시냅스에서는 세로토닌의 농도가 감소한다.


00winter_brain22.jpg » 신경세포와 시냅스의 간략한 그림. 시냅스전(煎) 신경세포에서 분비된 세로토닌(노란색)은 여러 세로토닌 수용체(보라색)에 결합하고, 세로토닌 수송체가 사용된 세로토닌을 다시 시냅스전 신경세포 안으로 집어 넣는다. 출처/각주[10]  


연구 결과, 여름에는 계절성 정동장애 환자와 일반인의 뇌에서 세로토닌 수송체의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겨울철에는 달랐다. 일반인에 비해 계절성 정동장애 환자의 뇌에서 세로토닌 수송체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참가자의 성별, 나이, 유전자와 같은 요소를 추가해서 분석한 결과에서도 이런 차이는 여전했다. 아울러 세로토닌 수송체가 증가할수록 우울증도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00winter_brain3.jpg » 연구에 참여한 여성 계절성 정동장애 환자 뇌의 여름(왼쪽)과 겨울(오른쪽)의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 영상. 여름에 비해 겨울에 세로토닌 수송체가 증가했다. 출처/각주>[9]


리하면 날이 추워지고 낮이 짧아지는 겨울이라는 주변 환경의 변화로 인해 세로토닌의 재흡수에 관여하는 세로토닌 수송체가 증가하면서 활동할 수 있는 세로토닌이 감소해 계절성 정동장애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세로토닌 수송체와 우울증 사이의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세로토닌만으로 겨울 우울증의 임상적 특징이 모두 설명되지 않는 제한점도 있다. 추후 뇌영상을 포함한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겨울 우울증의 비밀이 더 드러나길 기대해본다.



겨울 날씨와 우울증에 대한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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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차창 밖에는 공중에 뜬 생선 가시처럼

놀란 듯 새하얗게 서 있는 겨울 나무들.

한때 새들을 날려보냈던 기억의 가지들을 위하여

어느 계절까지 힘겹게 손을 들고 있는가. 

-기형도의 ‘조치원’ 중에서. 출처/ 각주 [11]


그러고 보니 벌써 12월이다. 잠시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자. 쇠약해진 햇볕, 스산한 바람, 쓸쓸한 거리, 앙상한 나뭇가지. 모든 것이 활력을 잃은 듯한 겨울에 사람들의 기분도 역시 가라앉고, 몸이 무거워지는 것은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나 겨울 우울증을 앓고 있나 봐?”, “겨울 우울증을 어떻게 이겨내지?”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당연해 보인다.


런데 올해 초 한 논문[12]에서 ‘겨울 우울증’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사실 유명세와는 달리, 학계에서는 계절성 정동장애라는 진단명의 타당성에 대한 논쟁이 오랫동안 있어 왔다. 대표적인 예가 위도와 우울증 사이의 관계이다. 얼핏 생각하면 같은 겨울이더라도 위도가 높은 지역에서 낮의 길이가 더 짧기 때문에 이곳에서 계절성 정동장애 환자가 더 많아야 한다. 그러나 여러 연구 결과에서 위도와 우울증이 꼭 비례하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13]


논문을 발표한 미국의 스티븐 로벨로(Steven LoBello) 교수는 기존 연구들에서 주로 사용된 ‘계절성 양상 평가설문지(Seasonal Pattern Assessment Questionnaire; SPAQ)’에 주목했다. 이 방법에 따르면, 참가자가 계절에 따라 수면시간, 사회적 활동, 기분 상태, 체중, 식욕, 활력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점수를 매기게 한 뒤에 그것을 합산한 점수에 따라 우울증 진단 여부를 결정한다. 문제는 이 설문지에 진단 기준(DSM-5)에 따른 우울증의 다른 증상들(예컨대, 무가치감 혹은 죄책감, 집중의 어려움, 자살 사고)이 빠져 있는 점이다.


또 다른 문제는 설문지의 내용이었다. 참가자는 설문지 위의 ‘계절’이란 단어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자신에게 혹시 계절에 따른 기분의 주기가 있는지 재차 고민하게 되는데, 이는 신뢰도에 영향을 준다. 즉 ‘계절’ 언급이 없는 일반적인 우울증 설문지와 비교할 때 계절성 양상 평가설문지는 계절성 정동장애를 더 유도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 더구나 참가자가 자그마치 1년치 기억을 되짚는 과정을 거친다면 더욱 그렇다.


00winter6.jpg » 계절성 양상 평가설문지의 일부 질문. 1년 동안 어땠는지를 물어보는 질문도 포함된다. 출처/각주[14], 변형


벨로 교수의 연구는 어떻게 시행되었을까? 연구진은 미국 질병관리본부(CDC)에서 2006년 36개 주에서 무작위로 선정된 3만 4294명의 자료를 대상으로 했다. 참가자에게 물어본 질문의 내용은 우울증의 진단 기준에 부합하는 증상이 지난 2주 동안 어느 정도 있었는지였다. 조사는 1년 내내 이뤄졌기에, 연구진은 연중 특정 시점에 우울증이 어느 정도인지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그 외 미국 해군천문대(Naval Observatory)의 도움으로 모든 지역에서 1년 동안의 낮 길이와 위도를 파악한 뒤 우울증이 겨울을 포함해 계절성을 띄는지, 낮 길이 혹은 위도와 연관성이 있는지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는 기존의 통념을 벗어났다. 우울증이 겨울에 특별히 더 악화되는 경향이 나타나지 않았고, 다른 계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결과는 전체 참가자를 대상으로 하나 실제 우울증이 있는 1754명을 대상으로 하나 차이가 없었다. 아울러 참가자가 살고 있는 지역의 위도나 낮 길이도 역시 우울증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진은 ‘겨울철에 우울증이 심해진다’라는 통념이 일종의 견고한 ‘민속 이론(folk theory: 어떤 지역의 사람들이 사실이라고 믿는 인과 관계의 사고)’이라고 분석했다. 초창기에 많은 연구들은 스스로 계절성 우울증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기에 확증 편향(confirmation)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자신의 주관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면서 기존의 믿음이 강화된 것이다. 계절성 정동장애의 개념이 정립되고, 대중의 관심이 쏠리고, 많은 연구가 진행되는 것에 발맞춰 이에 대한 믿음 역시 더욱 굳건해져 온 것이다.


물론 이런 결과가 계절성 정동장애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계절성 정동장애(한 종류의 설문지에 의한)를 계절성을 동반한 우울증(체계적인 진단 기준에 의한)과 동일하게 바라보는 것을 주의해야 함을 의미한다. 우울증은 재발이 흔하기에 겨울에 우울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겨울이 꼭 우울증의 원인인 것은 아니다.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인데도 단순히 겨울 우울증 정도로 여겨 치료를 받지 않고 증상이 악화되는 사람들이 올 겨울에는 줄었으면 좋겠다.



본격 겨울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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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마틴의 작품 중에 <얼음과 불의 노래>라는 소설이 있다. 1996년 제1부 <왕좌의 게임>으로 시작해 현재 제5부까지 나온 이 작품은 2011년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인기에 걸맞게 유명한 대사도 많은 데 그 중 하나가 스타크 가문의 가언(家言)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ing)”이다. 소설 안에서는 미래에 닥쳐 올 시련을 준비하라는 의미로 쓰이지만, 소설 밖에서는 날이 추워지는 겨울의 초입에 식상할 정도로 많이 사용된다.


핀란드의 한 기상 캐스터의 일기 예보. “겨울이 오고 있다”.

[ https://youtu.be/8sS7-CfPn6Q]


울이 오면 떨어지는 마지막 잎새처럼 우울해질 수 있다. 움직이기 귀찮고, 주전부리만 생각나고, 동면하는 곰처럼 많이 잘 수 있다. 계절의 변화에 따른 기분/활력의 변화는 겨울 우울증 혹은 계절성 정동장애로 불린다. 그래서일까? 매해 이 맘 때면 신문이나 뉴스에서 관련된 기사를 겨울 철새처럼 만날 수 있다. 대부분 햇볕을 많이 쬐라, 운동을 해라, 좋은 음식을 먹어라 등과 같은 다소 천편일률적인 조언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최근 연구들에 따르면 계절성 정동장애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단순히 햇볕에 노출되는 양이 준다고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성별, 유전자, 가족력 등의 개인별 특성이 복합적으로 관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겨울철에 우울증 증상으로 일상 생활에서 어려움이 발생한다면 섣부른 자가 진단과 자가 치료 대신에 정신과 의사를 꼭 찾기 바란다. 본격적인 겨울이 오고 있다.



[주]


[1] Rosenthal, N.E., Winter Blues, Everything You Need to Know to Beat Seasonal Affective Disorder (Fourth Edition). 2012: Guilford Publications.

[2] Lewy, A.J., et al., Bright artificial light treatment of a manic-depressive patient with a seasonal mood cycle. Am J Psychiatry, 1982. 139(11): p. 1496-8.

[3] Rosenthal, N.E., et al., Seasonal affective disorder. A description of the syndrome and preliminary findings with light therapy. Arch Gen Psychiatry, 1984. 41(1): p. 72-80.

[4] Rosenthal, N.E., Issues for DSM-V: seasonal affective disorder and seasonality. Am J Psychiatry, 2009. 166(8): p. 852-3.

[5] Association, A.P.,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5®). 2013: American Psychiatric Publishing.

[6] Koch, B.C., et al., Circadian sleep-wake rhythm disturbances in end-stage renal disease. Nat Rev Nephrol, 2009. 5(7): p. 407-16.

[7] Lewy, A.J., et al., The circadian basis of winter depression. Proc Natl Acad Sci USA, 2006. 103(19): p. 7414-9.

[8] Golden, R.N., et al., The efficacy of light therapy in the treatment of mood disorders: a review and meta-analysis of the evidence. Am J Psychiatry, 2005. 162(4): p. 656-62.

[9] Mc Mahon, B., et al., Seasonal difference in brain serotonin transporter binding predicts symptom severity in patients with seasonal affective disorder. Brain, 2016. 139(Pt 5): p. 1605-14.

[10] Stahl, S.M., Stahl‘s Essential Psychopharmacology: Neuroscientific Basis and Practical Applications. 2008: Cambridge University Press.

[11]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1991: 문학과지성사.

[12] Traffanstedt, M.K., S. Mehta, and S.G. Lobello, Major Depression With Seasonal Variation: Is It a Valid Construct? Clin Psychol Sci, 2016. 4(5): p. 825-34.

[13] Magnusson, A., An overview of epidemiological studies on seasonal affective disorder. Acta Psychiatr Scand, 2000. 101(3): p. 176-84.

[14] Rosenthal, N.E., et al., Seasonal Pattern Assessment Questionnaire. 1987, Washington, DC: National Institute of Mental Health.

2016.12.9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http://scienceon.hani.co.kr/?mid=media&category=90222&document_srl=461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