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 "거짓말은 왜 할수록 늘까" -뇌과학 실험의 설명

2017. 3. 6. 09:15글모음

[34] 거짓말



» 출처 / 디즈니, <피노키오의 모험>.






달 전쯤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다. 대개 취임 연설의 내용이 주목을 받지만 이번에는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이란 생소한 단어가 많이 회자됐다.[1] 사연은 취임식을 찾은 시민들의 숫자 때문이었다. 8년 전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때와 비교하면 인파가 확연하게 줄었는데도 백악관 대변인은 “이번이 역사상 최대 취임식 인파”라고 주장했다. 다음날 백악관 선임 고문은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대변인의 거짓말에 대한 질문을 받고 “대안적 사실을 준 것이다. 거짓이 아니다”라고 두둔하면서 희귀한 용어가 널리 알려졌다.


1.jpg »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당시 사진(왼쪽)과 2017년 1월2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사진(오른쪽). 출처/한겨레 자료사진


정치인의 거짓말이야 딱히 새삼스럽지 않지만 태평양 건너 대한민국의 국민은 많은 관심을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9월 <한겨레>가 최초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보도한 뒤 많은 정치인과 관련 인사의 거짓말 향연이 계속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사실 호도와 천연덕스러운 말 바꾸기를 계속 접하다 보면 ‘내가 이러려고 관심을 가졌나 자괴감이 든다’. 하지만 뇌과학의 측면에서 거짓말을 살펴보는 것도 요즘 시국에 의미가 있을 듯싶다.



인간은 언제부터 거짓말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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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 소년과 조지 워싱턴.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양치기 소년은 “늑대가 나타났다”고 반복적으로 외치다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고, 조지 워싱턴은 벚나무를 베어놓고도 거짓말을 하지 않아 오히려 아버지에게 칭찬을 받았다. 권선징악의 교훈이 동화책에 등장하는 이유는 어린이 역시 순진한 외모와 달리 거짓말을 제법 잘 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린이는 얼마나 어릴 때부터 거짓말을 할까? 어린이의 부정직을 다루는 연구는 대개 ‘유혹 견디기’ 형태로 이뤄진다.[2] 예를 들면 어린이에게 카드 뒷면의 내용을 맞추면 상을 주기로 하고 연구자가 밖으로 나간다. 어린이는 달콤한 유혹 앞에서 갈등하게 되는데, 잠시 뒤 어린이가 답을 할 때 카드 뒷면을 몰래 봤는지 여부를 직접 물어보는 방식이다. 보통 2-3세 어린이 상당수는 자신이 규칙을 위반했다고 고백하지만, 4-5세 이후에는 대부분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jpg » 2세 어린이는 약 30퍼센트, 3세 어린이는 약 55퍼센트만이 거짓말을 하지만, 4-5세 이후부터는 약 80-85퍼센트가 거짓말을 한다. 출처/각주[2]


어린이의 거짓말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뇌에서 만들어진다. 발달하고 있는 어린이의 뇌는 과잉생산(overproduction)과 가지치기(pruning)라는 특징을 보인다. 시냅스(synapse; 신경세포의 접합부)를 일단 많이 만들어낸 다음에 불필요한 부분만 솎아내는 것인데, 3살 때까지는 만들어내는 ‘생산’ 위주고, 10살 때까지는 균형을 잡다가 초기 청소년기 이후에는 ‘가지치기’가 우세해진다. 일련의 작업은 운동감각피질(sensorimotor cortex)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고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에서 가장 늦게 일어난다.


3.jpg » 어린이의 뇌 피질마다 다른 시점에 일어나는 신경인접부의 생산(synaptognesis) 및 가지치기(synaptic pruning). 출처/각주[3]


기본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영역(운동감각피질, 측두피질, 두정피질)이 발달하는 것 만으로도 어린이는 충분히 거짓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정교한 거짓말을 구분하거나 거짓말을 해야 할지 말지를 효과적으로 결정하지는 못한다. 뇌에서 고등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이 아직 덜 발달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전전두피질이 성숙함에 따라 점점 더 다양하고, 빈번하고, 정교하게 거짓말을 만들어 내고 사회 상황에 알맞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어른이 된다.



어떤 사람이 거짓말을 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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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정말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현란한 말솜씨 앞에 나도 모르게 무장해제 당하고 잠시 뒤에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거짓말의 피해자가 된다. 이처럼 ‘눈 뜨고 코 베이는’ 경험을 안겨주는 사람을 흔히 ‘병적인 거짓말쟁이(pathological liar)’라 부른다. 반복적으로 그리고 강박적으로 엉터리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의 거짓말 역시 뇌에서 만들어진다.


‘밥 먹듯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뇌에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연구를 하려면 일단 거짓말에 능숙한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한 연구진은 정치인이 모여 있는 워싱턴의 국회의사당 대신에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임시직 직업소개소를 찾아갔다.[4] 아마도 연구진은 일상적으로 상대를 속이는 거짓말쟁이가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일하기 어렵기에 이곳에서 거짓말쟁이 찾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리라고 추정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임시직 직업소개소를 찾는 사람 모두에게 이런 추정을 일괄 적용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연구진은 최종적으로 추려낸 병적인 거짓말쟁이 12명을 일반인 21명, 거짓말 성향이 관찰되지 않는 반사회성 인격장애 환자 16명과 비교했다.[5] 관심을 기울인 영역은 생각, 추론, 도덕성에 관여하는 뇌의 앞부분이었다.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촬영하니 병적인 거짓말쟁이의 전전두엽에서 백질(white matter)의 양이 일반인에 비해 22.2퍼센트, 반사회성 인격장애 환자에 비해 25.7퍼센트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회색질(gray matter)의 양은 일반인에 비해 14.2퍼센트 부족했다.


4.jpg » 병적인 거짓말쟁이(검정 막대), 일반인(하얀 막대), 반사회성 인격장애 환자(회색)의 전전두엽에서 회색질(좌측)과 백질(우측)의 양을 비교한 결과. 출처/각주[5]


인간의 뇌에서 회색질은 신경세포가 밀집한 겉 부분이고, 백질은 신경세포를 서로 연결하며 통로 역할을 하는 속 부분이다. 병적인 거짓말쟁이의 전전두엽에서 회색질이 감소한 것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신경세포가 부족해 도덕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이들은 백질을 더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뇌 속 정보가 더 빨리 처리되면서 여러 기억과 생각을 잘 연결할 수 있기에 거짓말에 탁월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란 속담은 거짓말을 그럴듯하게 만드는 것에도 잘 들어맞는 셈이다.



거짓말은 하면 할수록 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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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과 겨울 박근혜 대통령의 세 차례 대국민 담화와 일곱 차례의 국정농단 청문회가 있었다. 아직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이어서 단정할 수는 없지만 대중에 공개된 발언의 상당수는 거짓말로 드러났다. 그 광경을 보면서 화도 났지만 한편으로는 의문도 들었다.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심지어 생중계 되는 상황에서 어쩌면 저렇게 태연할 수 있지? 보통 거짓말 할 때 동공이 흔들리고, 땀이 나고, 혀가 꼬이지 않던가.


교한 설계로, 실험 참가자의 거짓말을 자연스럽게 유도한 연구[6]에서 실마리를 찾아보자. 연구진은 80명의 참가자(A라고 하자)에게 약 2만 원부터 5만 원까지 다양한 금액의 동전을 담고 있는 고해상도의 유리병 사진을 3초 동안 보여준 뒤에 옆 방의 다른 참가자(B라고 하자)는 같은 사진을 저해상도로 1초 동안 볼 것이라고 말했다. 실험은 참가자(A)가 동전의 양을 짐작해 참가자(B)에게 알려주면 그가 둘을 대표해 최종 금액을 평가하는 방식이었다.


5.jpg » 실험의 기본적인 틀. 고해상도의 사진을 보는 참가자(A)는 조언자(advisor), 저해상도의 사진을 보는 참가자(B)는 평가자(estimator) 역할을 담당한다. 출처/각주[6],변형


실험이 끝나면 연구진이 결과에 따라 참가자 모두에게 보상을 제공하기로 했다. 기본 방식은 참가자 양측이 금액을 정확하게 평가할수록 더 많은 이득을 보는 것이었지만 연구진은 장려금 규칙을 추가했다. 이후 참가자(A)가 평가 금액을 높이거나 낮추는 정도에 따라 둘 모두 이득을 보거나, 한 쪽은 손해를 볼 때 다른 쪽이 이득을 보는 상황이 발생했다. 참가자(B)는 장려금을 모르는 것으로 설정되었지만 사실은 연구진이 실험을 위해 고용한 배우였다(거짓말 연구에서 사용된 거짓말!).


다양한 조건에서 금액 평가를 60회씩 반복하자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참가자가 이득을 보는 상황에서는 평가 금액이 점점 늘어났지만, 자신이 손해를 보는 상황에서는 별 다른 변화가 없었다. 즉 참가자가 어림짐작보다 조금 높여서 금액을 평가할 때 장려금을 받는 상황에서는 조금씩 평가 금액을 더 올리는 식으로 거짓말을 한 것이다. 처음에 작게 시작한 거짓말도 하다 보면 점점 커져 나중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법이다. 반면에 참가자가 정확하게 금액을 측정하지 않으면 손해가 발생하는 상황에서는 금액을 높게 평가하는 거짓말을 굳이 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6.jpg » 자신이 이득을 보고 상대가 손해를 볼 때에는 거짓말이 점차 증가했지만(좌측) 평가자가 손해를 보고 상대가 이득을 볼 때에는 이런 경향이 나타나지 않았다. 출처/각주[6],변형


가적으로 연구진은 참가자 25명이 금액을 평가할 때 편도체(amygdale)의 반응을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살폈다. 편도체는 뇌에서 감정을 처리하는 곳이므로 참가자가 거짓말을 할 때 이 영역이 활성화했다. 그러나 참가자가 거짓말을 반복함에 따라 편도체의 활동이 점차 감소했다. 특히 금액평가와 관련해 이전 단계에서 편도체의 활동이 많이 감소하면 다음 단계에서 거짓말을 하는 정도가 크게 증가했다.


7.jpg » 참가자가 이전 단계에서 거짓말을 할 때 감소한 편도체의 활동(가로축)은 다음 단계에서 거짓말 늘어나는 정도(세로축)를 예측한다. 출처/각주[7],변형


거짓말을 할 때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거나 불안해지는 것은 편도체가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편도체가 보내는 신호는 거짓말을 주저하게 만드는 일종의 제어장치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거짓말을 하면 편도체 역시 적응을 하면서 활동이 감소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거짓말의 증가로 이어진다. 제어장치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기에 작게 시작한 거짓말도 점점 커지고 마음의 부담은 점점 줄기에 태연할 수 있게 된다.


8.jpg » 하면 할수록 느는 거짓말. 출처/한겨레


론 동일한 내용을 60번 반복하면서 관찰된 현상을 현재 상황에 기계적으로 대입할 수는 없다. 참가자는 거짓말을 해도 법적 처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고, 현실에서 거짓말은 실험 조건과 달리 복잡하고 불규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다 밝힐 수는 없어도 거짓말을 하면 할수록 느는 것은 분명하다. 다른 사람을 속일 때 찔리던 마음도 반복하다 보면 점차 사라지고 거짓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으니 처음부터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마음 가짐이 중요해 보인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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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파마를 했다. 출근을 하니 동료들이 알아보며 “머리가 멋있다”, “잘 어울린다”란 말을 던졌다. 진심이 아니라 예의상 던진 ‘하얀 거짓말(white lie)’일 수도 있었지만 여하튼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반대로 “머리도 큰 사람이 웬 파마?”, “너무 남사스러운데?”라는 ‘팩폭(팩트 폭력)’을 당했다면 언짢았을 듯하다. 때로는 지나친 솔직함보다 상대를 배려한 악의 없는 거짓말이 사회 공동체에 더 도움이 되는 법이다.[8]


지만 개인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하는 거짓말은 필연적으로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 특히 나라를 이끌어가는 정치인과 이른바 사회지도층의 거짓말은 사회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이 상당하기에 크게 염려된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란 제목의 책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의 유혹이 몰려올 때는 어릴 적 읽었던 동화 속 주인공을 떠올려 보자. 양치기 소년이 될 것인가? 아니면 조지 워싱턴이 될 것인가?


[각주]



[1]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779881.html

[2] Lee, K., Little Liars: Development of Verbal Deception in Children. Child Dev Perspect, 2013. 7(2): p. 91-6.

[3] Casey, B.J., et al., Imaging the developing brain: what have we learned about cognitive development? Trends Cogn Sci, 2005. 9(3): p. 104-10.

[4] Ariely, D., The Honest Truth About Dishonesty(번역판-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2012: HarperCollins.

[5] Yang, Y., et al., Prefrontal white matter in pathological liars. Br J Psychiatry, 2005. 187: p. 320-5.

[6] Garrett, N., et al., The brain adapts to dishonesty. Nat Neurosci, 2016. 19(12): p. 1727-1732.

[7] DePaulo, B.M., et al., Lying in everyday life. J Pers Soc Psychol, 1996. 70(5): p. 979-95.

[8] Barrio, R.A., et al., Dynamics of deceptive interactions in social networks. J R Soc Interface, 2015. 1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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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