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 아인슈타인의 뇌 -①

2016. 12. 26. 15:30글모음

[22] 아인슈타인의 뇌 ①- 과학자의 주관과 과학의 객관성


 » 무터 박물관에서 상설 전시 중인 아인슈타인 뇌의 얇은 조각들. 출처/무터 박물관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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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20대 초반까지 내 머리가 좋은 줄 알았다. 비록 한 차례의 대입 실패를 겪고 우여곡절 끝에 의대에 입학했고 예과 성적도 좋지 않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내가 안 해서 그렇지, 한 번 마음 먹으면 과 수석도 우스운 일이야’라는 생각이 늘 똬리를 틀고 있었다. 하지만 본과에 진학한 뒤에도 내 성적은 크게 오르지 않았다. 마음 속 호언장담과 달리 현실은 재시와 유급을 걱정해야 하는 일명 ‘저공 비행’이었다.


속상했던 점은 ‘공감각’까지 동원해 외운 내용들[1]이 정작 시험 볼 때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거듭된 실패에 하늘을 찌를 듯했던 자신감은 서서히 가라앉아 침몰의 위기에 봉착했다. 그래서 성적이 상위권인 동기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탐구를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간에 한 자라도 더 외웠으면 성적이 조금이나마 오르지 않았을까 한다). 몇 시에 등교하고 하교하는지, 식사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동기들과 같이 공부하는지 아니면 혼자 하는지, 몇 가지 색의 형광펜을 사용하는지 등을 흥신소 직원처럼 조사했다.


한동안 들인 노력에 비해 결과는 허망했다. 정식으로 통계를 낸 것은 아니었지만 상위권 동기들과 나 사이에는 별 다른 차이점이 없었다. 허탈해하는 내게 친구 정환은 지나가면서 한 마디 툭 던졌다. “걔들은 머리가 좋은 거야.” 그렇다. 사실, 조사 전부터 이미 답은 알고 있었다. 단지 인정하기가 싫었을 뿐. 물론 이렇게 결론 내리는 것이 동기들의 노력을 폄하하거나 나의 부족함을 합리화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다. 하지만 분명 ‘머리가 좋은 사람’은 분명 존재한다. 천재로 일컬어졌던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처럼 말이다.



명백히 천재였던 아인슈타인의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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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많은 천재들이 있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만큼 많은 관심을 받은 천재는 드문데, 그 이유는 아인슈타인의 뇌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미국 펜실베니아 주의 필라델피아에 있는 무터 박물관(Mutter Museum)을 방문하면 보존을 위해 크레실 바이올렛(cresyl violet)으로 염색된 아인슈타인 뇌의 얇은 조각들을 만날 수 있다. 그의 뇌가 남겨진 것은 후대의 학자들에게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 되었지만, 사실 이는 고인이 원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의 시신을 화장하도록 부탁했기 때문이다.[2]


00einstein1.jpg » 머리가 좋은, 아니 천재로 통하는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출처/Wikimedia Commons 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인슈타인이 세상을 뜬 60년 전으로 돌아가보자.[3] 1955년 4월 12일 그는 복부에 심한 통증을 느껴 뉴저지 주에 있는 프린스턴병원에 입원했다. 대동맥이 풍선처럼 부풀어오르는 질환인 대동맥류(arotic aneurysm)가 고통의 원인이었다. 담당 의사는 수술을 권유했지만, 그는 인위적으로 삶을 연장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우아한 죽음을 원했던 그는 결국 5일 뒤인 4월 18일 새벽 1시15분에 숨을 거뒀다.


7시간이 지난 뒤 아인슈타인의 시신은 차가운 철제 테이블에 놓였다. 화장을 하기 전에 사인(死因)을 밝히기 위해 통상적으로 이뤄지던 부검을 위해서였다. 부검은 당직 중이던 병리학 의사 토마스 하비(Thomas Harvey)에 의해 진행되었다. 그는 핀셋, 가위, 톱 등 여러 해부 도구를 이용해 아인슈타인의 몸속을 두루 살폈다. 사인은 예상했던 대로 부풀어 있던 대동맥류의 파열(rupure)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인을 알아낸 뒤에도 하비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두피를 한 쪽 귀에서 다른 쪽 귀까지 잘라낸 뒤 드러난 두개골에 전기톱을 댔다. 이어서 그가 두개골의 벌어진 틈에 끌을 박고 나무막대로 몇 번 두드리자 두개골은 큰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그러자 상대성 이론, E=MC2, 광전 효과 등의 혁혁한 과학적 성과를 냈던 아인슈타인의 뇌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서둘러 척수와 다른 조직을 잘라낸 뒤 아인슈타인의 뇌를 두개골에서 끄집어냈다.


하비는 아인슈타인의 뇌를 조심스럽게 저울에 올렸다. 천재였던 그의 뇌가 크고 무거울 것이라 기대했지만 예상과 달리 뇌의 무게는 1,200 그램 정도였다. 아인슈타인의 뇌는 일반인의 뇌보다 크기는커녕 오히려 조금 작고 가벼웠다. 그는 눈 앞의 결과를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일생일대의 기회를 이런 식으로 허망하게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하비는 포름알데히드(formaldehyde) 병에 아인슈타인의 뇌를 담은 뒤 훗날을 기약하기로 했다.



뇌의 크기와 지능을 둘러싼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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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는 왜 아인슈타인의 뇌가 일반인들의 뇌보다 클 것이라고 예상했을까? 앞서 소개한 무터 박물관에서 20분 정도 걸으면 도착할 수 있는 펜 박물관(Penn Museum)에서 실마리를 찾아보자. 이곳에는 19세기 미국 과학자이자 의사인 사무엘 조지 모턴(Samuel George Morton)이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여러 인종의 두개골이 보관되어 있다. 훗날 자료 수집가, 객관주의자, 정량화의 화신이라 불린 그는 1000개가 넘는 두개골을 하나하나 살펴가며 연구 자료를 축적했다.

00einstein3_skel.jpg » 모턴이 잉크로 표시를 남기면서 차곡차곡 정리했던 두개골들은 현재 무터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출처/각주[4]

의 크기를 측정하기 위해 모턴은 처음에 겨자씨를 이용했다. 기독교의 <성경>에서 예수가 작은 믿음을 겨자씨로 묘사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겨자씨의 크기는 매우 작다. 그는 체로 거른 겨자씨를 두개골 안에 채어 넣은 뒤 겨자씨를 다시 눈금이 새겨진 원통에 옮겨 담는 방법으로 뇌의 부피를 측정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겨자씨로는 일관된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을 깨달았고, 이후 그는 지름이 약 0.3 센티미터인 작은 납탄환을 사용하면서 오차를 줄여나갔다.


모턴은 객관적으로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뇌의 크기가 인종별로 차이가 있음을 밝혀냈다. 그는 백인의 뇌가 흑인의 뇌보다 약 10 퍼센트 정도 더 크며, 백인의 지능도 그만큼 더 높을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한 마디로 ‘머리가 클수록 머리가 좋다’라고 외친 것이다.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어림짐작의 수렁에서 미국의 과학을 구해낸 사람’으로 칭송받던 모턴의 연구 결과는 이후 오랫동안 반박할 수 없는 견고한 자료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는 1978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5]과 1981년에 발간한 책 <인간에 대한 오해 (원제: The Mismeasure of Man)>[6]를 통해 모턴의 주장이 객관적이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굴드에 따르면, 모턴은 뇌의 크기를 측정하고 분석해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니라 그 반대였다. 즉 ‘인종에 따라 지능에 차이가 난다’란 주관적인 결론을 먼저 내려놓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뇌의 크기를 ‘오측정(mismeasure)’ 한 것이었다.


인종을 분류할 때 모턴의 기준은 수시로 바뀌었고, 자료의 선택은 “그때 그때 달라요” 식으로 이뤄졌으며, 최종 결과물에는 잘못된 계산과 편의주의적인 생략이 종종 담겨 있었다. 굴드는 이를 모턴이 의도적으로 조작을 시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인종에 대한 편견이 무의식적으로 연구 결과에 담긴 것으로 해석했다. 이후 대중은 모턴을 생전에 떨친 명성과 반대되는 방향, 즉 자신들의 주관이 연구의 객관성을 왜곡시킨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7]로 인식하게 되었다.



한 세기를 건너 뛴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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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턴이 수집한 두개골을 둘러싼 논쟁은 2011년에 다시 타 올랐다. 시작은 굴드의 책 제목을 패러디한 “과학의 오측정 (The Mismeasure of Science)”[8]이라는 제목으로 과학저널 <플로스 바이올로지(PLos Biology)>에 발표된 논문이었다. 연구는 6명의 인류학자들이 펜 박물관에 보관중인 두개골들을 다시 측정한 뒤 이를 모턴과 굴드의 자료를 재분석한 결과와 비교하는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과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정반대였다. 굴드의 비판과 달리, 모턴의 두개골 측정은 대부분 정확하게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예를 들면 연구진의 측정치와 의미있게 차이가 난 모턴의 측정치는 불과 2 퍼센트에 불과했다. 더욱이 이 경우에도 모턴은 백인이 아닌 흑인의 뇌를 더 크게 측정했는데, 이는 모턴을 향한 굴드의 비판과 정반대인 결과였다. 다시 말해 모턴은 자신의 주관적 편향에 따라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두개골들을 측정한 것이었다.

00einstein4.jpg » 세기를 건너 뛴 논쟁의 주인공인 모턴(좌측)과 굴드(우측). 출처/각주[8]

반면 연구진은 굴드야말로 과학자의 주관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굴드 역시 분석 과정에서 자료를 선택적으로 수집했고, 통계를 잘못 사용했으며, 자신의 바람에 맞지 않는 불편한 표본을 무시하는 실수를 범했다. 연구진이 굴드의 자료에서 수학적인 오류를 수정한 결과는 놀랍게도 모턴의 연구 결과보다 더 그의 인종에 대한 가설에 부합했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진 중 한 명은 <뉴욕 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굴드야말로 ‘주관적 이념이 극단에 치우친… 사기꾼’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9]


연구진의 주장대로 모턴은 30년 넘게 자신을 따라다니던 오명을 떨쳐 버리고 ‘객관주의자’란 생전의 명성을 회복한 것일까? 하지만 그의 객관성을 입증한 연구 결과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몇 가지 제한점들이 눈에 띈다. 예를 들면 연구진은 모턴이 분석한 두개골 개수의 채 절반도 분석하지 않았으며, 뇌의 크기와 관련된 요인들(나이, 성별, 신장)을 분석 과정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쩌면 연구진도 부지불식간에 굴드를 비난하던 자신들의 덫에 걸린 것일 수 있다. 이들의 논문 제목을 다시 패러디한 <네이처>의 사설 “오측정을 위한 오측정 (Mismeasure for mismeasure)”[10]은 이들의 동기에 주목했다. 예를 들면 연구진의 일부가 펜실베니아 대학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에 모턴의 불명예를 지우려는 노력은 이들의 이해관계와 연결되어 있었다. 또한 연구진은 ‘과학은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벗어날 수 없다’란 굴드의 주장을 명확하게 반대하는 자신들의 주관성을 드러냈다.


뇌의 크기와 지능을 둘러싼 논쟁을 살펴보고 있노라니 천재적이지 않은 내 머리가 아파온다. 종지부를 찍기 위해 굴드의 책 제목을 패러디한 “인간의 재측정 (Remeasuring man)”이란 제목으로 2014년 발표된 논문[11]을 마지막으로 살펴보자. 저자 와이스버그(Weisberg) 교수는 모턴과 굴드의 자료를 재분석한 결과를 모턴을 옹호한 2011년의 논문과 비교해 봤다. 그 결과 굴드가 비록 실수를 범하고 사실을 과장하긴 했지만 그의 모턴에 대한 주장은 유효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시 말해 모턴의 주관적인 편견이 연구의 객관성에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아인슈타인 뇌의 여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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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턴과 굴드를 둘러싼 세기를 건너뛴 논쟁은 과학의 객관성을 곱씹어보게 한다. 연구자들이 많이 노력하고 주의를 기울이지만 이들의 무의식적인 오류와 미묘한 편견은 여전히 연구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뇌에서 천재성의 원인을 찾고자 했던 여러 연구들도 역시 이런 측면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런데 관련 논문이 처음 발표된 시점은 1985년으로 아인슈타인이 죽은 뒤 무려 30년이 지난 때였다.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토마스 하비가 포름알데히드 통에 담아 갔던 아인슈타인 뇌의 행방을 다시 추적해보자.


비가 천재의 뇌를 갖고 있다는 소식은 이내 여기저기 퍼져나갔다. 신문을 보고서 이를 알게 된 아인슈타인의 아들 한스 알버트는 크게 분노했다. 하비의 독단적인 행동은 화장과 조용한 장례를 원했던 고인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비는 과학적인 목적에만 쓰겠다며 유가족을 설득해 결국 정식으로 아인슈타인 뇌를 소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병원은 좀 다르게 생각해서 몇 달 뒤 하비를 해고했다 (일부 자료에서는 하비가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도 자료를 공개하지 않아 1960년에 해고된 것으로 보고한다).


직장을 잃었지만 하비는 굴하지 않았다. 그는 펜실베니아 주 필라델피아병원에서 아인슈타인의 뇌를 240개 조각으로 나누었고,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도록 수 천개의 얇은 표본을 만들었다. 그리고 남은 조직들은 두 개의 큰 병에 담아 집 지하실에 보관했다. 뇌 전문가가 아니었던 하비는 여러 학자들에게 뇌 조각을 보내면서 천재의 비밀을 밝히려 했다. 하지만 대부분 무응답이었고, 그나마 돌아온 답장들은 실망스럽게도 특별한 점을 찾을 수 없다는 내용뿐이었다. 하비는 애물단지가 된 아인슈타인의 뇌를 처리할 방법을 놓고 부인과 갈등을 빚다 결국 이혼까지 하게 되었다.


하비의 기대와는 달리 연구에는 진척이 없었고, 사람들의 관심도 점차 식어 갔다. 그리고 1978년 스티븐 레비(Steven Levy)라는 젊은 기자가 칸사스 주에서 그를 어렵게 찾아내 인터뷰를 할 때까지[12] 아인슈타인의 뇌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당시 놀랍게도 그는 여전히 천재의 비밀을 밝혀내는 중이라고 주장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인슈타인의 뇌가 그의 방 한 켠의 맥주 냉각기 밑에 자리 잡은 ‘코스타 사과주스’ 상표가 붙어 있는 상자 안의 병 두 개에 들어 있는 것이었다.


세간의 관심을 다시 받기 시작한 하비에게 1980년대 초반 캘리포니아 주의 마리안 다이아몬드(Marian Diamond) 교수한테서 연락이 왔다. 당시 생쥐의 뇌를 이용해 환경이 뇌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 중이던 그는 아인슈타인의 뇌에서도 자신의 발견을 확인하길 원했다. 이에 하비는 각설탕 크기의 아인슈타인의 뇌 조각 네 개를 ‘크래프트 마요네즈’ 병에 담아 다이아몬드 교수에게 우편으로 보냈다. 몇 년 뒤인 1985년 아인슈타인의 뇌를 통해 천재성을 설명하는 논문[13]이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하비는 네 번째 저자로 논문에 이름을 올리며 오랜 바람을 마침내 이루게 되었다.



객관적인 과학 연구, 정말 객관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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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교수가 하비에게 요청한 조각들은 뇌의 좌우측 배외측 전전두피질(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 브로드만 영역 9)과 각회(angular gyrus; 브로드만 영역 39)였다. 이 영역들은 뇌에서 여러 정보를 연합하는 곳으로 고차원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연구를 위해 아인슈타인과 일반 남성 11명 뇌의 4개 영역에서 신경세포(neuron)와 이를 감싸면서 지지하는 아교세포(glial cell)의 수를 센 뒤 서로의 세포 개수나 세포 간 비율을 비교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 브로드만 영역(Broadmann area): 독일의 해부학자 코르비니안 브로드만(Korbinian Broadmann)이 신경 세포의 구축에 따라 정의를 내리고, 번호를 매겨 나눈 뇌 영역.

00einstein5.jpg » 다이아몬드 교수의 연구에서 분석된 뇌 영역들. A: 배외측 전전두피질(브로드만 영역 9), B: 각회(브로드만 영역 39). 출처/각주[13] 구 결과에서는, 아인슈타인 뇌의 좌측 각회에서 ‘신경세포 대 아교세포’의 비율이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간단히 말하면 아인슈타인의 뇌는 일반인의 뇌보다 아교세포를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이전 연구에서 지적 자극이 풍족한 환경에서 생활한 생쥐의 뇌에서 그렇지 않은 생쥐의 뇌에 비해 아교세포가 많이 관찰된 것을 알고 있었다.[14] 이와 유사하게 아인슈타인의 뇌에서 ‘신경세포 대 아교세포’의 비율이 낮게 나타난 것은 아인슈타인이 뇌를 많이 사용함에 따라 신경학적 대사(metabolism)를 위해 아교세포가 증가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공개된 천재의 비밀은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덩달아 아인슈타인의 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비뿐 아니라 이미 학계에서 업적을 쌓고 있던 다이아몬드 교수까지 유명해졌다. 하지만 유명세와는 별도로 이 연구에는 많은 오류가 존재한다.[15] 예를 들면 대조군의 평균 나이가 64세로 아인슈타인의 나이 76세와 차이가 있었으며, 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소인 사회경제 상태나 사인에 대한 통제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또한 그 발견마저도 뇌 영역과 세포의 수 및 비율 별로 이뤄진 총 28개의 분석 중에서 유일하게 의미있는 결과였다.


객관성을 잃은 또 다른 중요한 예는 이중맹검(double blind)이 이뤄지지 않은 점이다. 즉 자료 수집을 위해 현미경으로 뇌 조각을 살피며 세포의 수를 세기 전에 연구자들은 이미 눈 앞의 뇌가 아인슈타인의 것인지 아닌지를 알고 있었다. 이럴 경우 연구자의 주관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관찰자 편향(observer bias)’을 배제하기 어렵게 된다.

이중맹검(double blind): 실험에서 주관성이 개입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실험 진행자와 참여자 모두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

이중맹검은 흔히 새로 개발된 약물의 효과를 검증할 때 많이 사용된다. 처방하는 의사와 복용하는 환자 모두 약물의 효과 유무를 알지 못할 때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위약 효과(placebo effect)’가 방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중맹검 역시 연구의 객관성을 완벽히 보장하는 ‘절대 반지’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 한 예로 이중맹검이 이뤄진 정신과 약물 임상 실험 162개를 조사한 연구[16]를 들 수 있다. 연구진이 제약 회사의 지원을 받은 경우 그렇지 않았을 때에 비해 해당 약물이 효과적이라 보고하는 확률이 4.9배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 뇌의 여행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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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의 인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더욱이 그는 1988년 자격 시험에 떨어지면서 더 이상 병리학 의사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은퇴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나이에 하비는 호구지책으로 플라스틱 공장에 견습생 대우를 받으며 취직했다. 하지만 그게 뭐 대수인가? 아인슈타인의 뇌가 여전히 그의 손에 있었는데. 아인슈타인의 뇌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하비는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을 것이다.


1994년 하비의 이름이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계기는 영국 방송 <비비시(BBC)>에서 제작한 “유물: 아인슈타인의 뇌(Relic: Einstein’s brain)” 제목의 다큐멘터리였다. 여기에는 아인슈타인에게 푹 빠진 일본의 수학 교수 스기모토(Sugimoto)가 아인슈타인의 뇌를 찾아 나선 여정이 담겨 있었다. 그는 중간에 하비가 죽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칸사스 주에서 오매불망 바라던 아인슈타인의 뇌와 조우하게 된다.


기모토 교수는 하비를 만난 자리에서 아인슈타인의 뇌를 조금 갖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을 찾아 이역만리에서 찾아온 아시아인이 고마워서였던지 하비는 스스럼 없이 스기모토 교수의 소원을 들어줬다. 그는 부엌으로 가서 오래된 병에서 아인슈타인의 뇌의 일부를 꺼내 도마에 올린 뒤 칼로 쓱쓱 썰어낸 부분을 스기모토 교수에게 건넸다. 스기모토 교수는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그가 자축하며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조금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그의 기쁨이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아인슈타인의 뇌를 좇는 스기모토 교수의 여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스기모토와 하비가 만나는 장면은 45분쯤부터 나온다. https://youtu.be/kbzVZUk__eI ]


2년 뒤인 1996년 하비는 앨라배마 주의 앤더슨(Anderson) 교수의 논문에 다시 이름을 올렸다.[17] 이 연구는 아인슈타인 뇌의 우측 배외측 전전두피질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아인슈타인 뇌의 신경세포의 수나 크기는 일반인 5명의 뇌와 차이가 없었지만, 더 좁은 공간에 밀집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앤더슨 교수는 아인슈타인의 뇌에서 세포와 세포 사이의 정보 전달이 보다 짧은 거리에서 이뤄지면서 정보 처리 역시 빨리 진행되는 것으로 추정했다.


00einstein6.jpg » 하비가 아인슈타인의 뇌를 절단한 방식을 간단히 보여주는 그림. 이 연구에서는 배외측 전전두피질(브로드만 영역 9)이 이용됨. 출처/각주[17]재의 뇌를 설명하는 또 다른 비밀이 발견된 것이었을까? 하비는 주관적으로 그렇게 바랐을지 모르지만, 객관적인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좁은 공간에 밀집되어 있는 신경세포 덕에 아인슈타인이 천재였다면, 뇌의 다른 영역에서도 이런 발견이 확인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논문에서는 이런 궁금증에 대한 답변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는 치우친 기준으로 자료를 선택해 결과를 의도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내는 ‘선택 편향(selection bias)’의 전형적인 예이다. 우측 배외측 전전두피질 한 곳이 아인슈타인의 전체 뇌를 대표할 수는 없는 법이다.


아인슈타인의 뇌에 관한 다이아몬드 교수나 앤더슨 교수의 연구 결과물은 당시 사회에 끼친 반향과는 달리 객관적인 요소가 많이 부족하다. 이는 ‘아인슈타인의 뇌는 일반인의 뇌와 당연히 차이가 있겠지’ 하는 연구자의 주관이 연구 전반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쳤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2006년 아인슈타인의 뇌를 조직학적으로 꼼꼼히 살핀 논문은 앞선 연구 결과들을 부정하고 있다.[18]


문득 정신과학을 공부하는 나의 뒤를 돌아본다. 다른 과에서는 일반적으로 피검사 혹은 엑스레이(X-ray) 등을 이용한 객관적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진단이 내려진다. 그러나 정신과에서는 주로 환자 혹은 보호자와의 면담이 진단 과정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정신과 의사의 주관이 상대적으로 많이 개입할 여지가 존재한다. 나 역시 객관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때 주관적인 편견의 영향을 받지는 않았던가? 그러고보니 아인슈타인의 뇌가 주는 교훈은 ‘어떻게 하면 머리가 더 좋아질까’가 아닌 ‘어떻게 하면 더 객관적일까’인 것 같다.


아인슈타인 뇌의 끝나지 않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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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아인슈타인의 뇌는 이제 미국 국경을 넘어 캐나다로 향하는데…. 

[②부에서 계속]   



[주]



[1] http://scienceon.hani.co.kr/?mid=media&category=90222&page=2&document_srl=133809.

[2] Burrell, B., Postcards from the Brain Museum: The Improbable Search for Meaning in the Matter of Famous Minds. 2006: Broadway Books.

[3] Bragg, G. and K. O‘Malley, How They Croaked: The Awful Ends of the Awfully Famous. 2011: Walker.

[4] Renschler, E.S. and J. Monge, The Samuel George Morton Cranial Collection. Expedition, 2008. 50(3): p. 30-8.

[5] Gould, S.J., Morton’s ranking of races by cranial capacity. Unconscious manipulation of data may be a scientific norm. Science, 1978. 200(4341): p. 503-9.

[6] Gould, S.J., The Mismeasure of Man. 1993: Norton.

[7] Broad, W.J. and N. Wade, Betrayers of the Truth. 1985: Oxford University Press.

[8] Lewis, J.E., et al., The mismeasure of science: Stephen Jay Gould versus Samuel George Morton on skulls and bias. PLoS Biol, 2011. 9(6): p. e1001071.

[9] http://www.nytimes.com/2011/06/14/science/14skull.html.

[10] Editorial, Mismeasure for mismeasure. Nature, 2011. 474(7352): p. 419.

[11] Weisberg, M., Remeasuring man. Evol Dev, 2014. 16(3): p. 166-78.

[12] http://www.stevenlevy.com/index.php/about/einsteins-brain.

[13] Diamond, M.C., et al., On the brain of a scientist: Albert Einstein. Exp Neurol, 1985. 88(1): p. 198-204.

[14] Diamond, M.C., et al., Increases in cortical depth and glia numbers in rats subjected to enriched environment. J Comp Neurol, 1966. 128(1): p. 1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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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8.5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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