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 금연 결심한 당신을 돕는, 최신연구 정보 보따리

2016. 12. 23. 11:43글모음

[19] 금연


 » 흔하디 흔한 새해 목표, 담배 끊기. 출처/ 한겨레 자료사진


헉. 숨이 차 오른다.

가볍게 준비한 배낭이지만 체력이 고갈될 때에는 더 무겁게 느껴진다. 뒤따라 오는 이의 숨소리가 너무 가깝다. 잠시 등산로 옆으로 빠져 나와 하얗게 언 나무에 몸을 기댄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채 걸리지 않은 제석봉(天王峰)의 겨울바람은 평소보다 더 차다. 조금 편안해진다. 하지만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된다. 조금 더 걸어 통천문(通天門)만 지나면 더 오를 곳이 없으니 거기에서 쉬면 된다.


아직 어둡지만 여기저기 소란스럽다. 이런 번잡함을 기대한 건 아니었는데. 어쩔 수 없다. 사람마다 새해 첫 날 천왕봉(天王峰)에 오른 이유는 다 다를 테니까. 춥다. 도시의 추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나는 올해의 첫 태양을 좀 더 일찍 만나려고 온 것이니까. 문득 지난 한 해가 망막을 스쳐 지나간다. 주로 후회되는 장면들이다. 빛 받은 필름을 인화한 사진이 새하얀 것처럼 나의 어두운 기억도 잠시 뒤 다가올 가시광선에 밝게 소멸될 수 있을까?


어두컴컴한 동녘 하늘이 조금씩 밝아오고 있다. 일출이 임박한 것이다. 조금 전과 달리 주변이 고요하다. 아니 경건하기까지 하다. 주황빛으로 밝아진 하늘에 다시 더 밝은 실금이 생긴다. 조금 전의 정적을 한순간에 뒤엎는 큰 환호성이 들린다. 올해의 첫 일출이다. 한 영화의 시작 장면처럼 사방에 먹물처럼 풀려 있던 어둠이 휘휘 감아 삼켜버리는 태양 앞에서 힘을 잃는다. 그래.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굳은 결심으로 새롭게 한 해를 걸어보자. 주먹으로 쥐면 단단히 뭉쳐지는 눈처럼.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의 시작 장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짜라투스

 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첫 곡인 '일출'을 배경으로, 우주에서 해 뜨는 장관이 펼쳐짐]



올해는 내 기필코, 반드시,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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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1일에도 어김없이 태양이 떠올랐다. 많은 사람이 첫 일출을 보며 새해 결심을 다짐했으리라. '새해 해맞이' 하면 내게는 과거에 연애 후유증을 떨쳐내고 새로운 다짐을 하고자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던 일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유치하긴 했지만 그래도 당시에는 나름 진지하고 비장했다. 비록 올해에는 첫 해돋이를 보지 못했지만 새해 첫날 ‘지난해보다 더욱 성실하게 사이언스온 연재를 하자’를 포함한 몇 가지 새해 결심을 세워 봤다.


해 결심을 하기는 쉽지만 일 년 내내 지키기는 어렵다. 나 역시 ‘살을 빼자’란 작년 새해 목표를 지키지 못했다.[1] 한 연구에 따르면 새해 결심을 6개월 동안 지킨 사람의 비율은 절반도 채 되지 않는 46 퍼센트에 불과했다.[2] 생각보다 많은 걸! 하지만 1년 동안 사람들의 결심 여부를 관찰한 다른 실험에 따르면, 참가자의 52 퍼센트가 자신의 성공을 확신했지만 겨우 12퍼센트만이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3] ‘작심삼일’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새해 결심의 내용은 사람마다 다르다. 일 줄이기, 술 덜 마시기, 패스트푸드 덜 먹기, 빚 갚기, 악기 배우기, 인내심 키우기, 행복하기, 책 많이 읽기, 외향적으로 성격 바꾸기, 자원봉사 활동, 운동하기, 몸무게 줄이기, 더 많이 공부하기, 성적 올리기, 승진하기, 친절하기, 이성 친구 사귀기, 금연, 여행, 덜 미루기, 많이 웃기 등등.[4] 그 중 올해는 흡연자의 결심이 남다를 것 같다. 올해 1월 1일부터 2500원 안팎 하던 담배 가격이 거의 두 배로 껑충 뛰고 금연구역도 늘어나 점점 담배 피우기 힘든 환경이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연 결심을 지키기는 매우 어렵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흡연자 중 약 70 퍼센트가 금연에 관심이 있고, 약 50 퍼센트는 1년에 하루 이상 담배를 피우지 않는 시도를 해보지만 실제 6개월 이상 금연에 성공하는 사람은 불과 6 퍼센트에 불과하다.[5]


“끊는다 안 피운다 말해놓고 건강에도 안 좋은 걸 왜 자꾸  피우시나” 하는 건아들의 타박을 ‘오토 리버스’로 무한반복 하며 다짐해 봐도 대부분의 흡연자가 금연에 실패하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 '금연송'의 효시, 건아들의 <금연>]



금연 실패 = 의지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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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끊기가 어려운 이유는 니코틴이 일으키는 금단 증상 때문으로, 보통 마지막 흡연 2시간 뒤부터 나타난다.[6] 회식 자리가 생각보다 길어질 때 흡연자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 받으며 밖으로 사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흡연자들은 금연을 시작한 뒤 니코틴 갈망, 긴장, 짜증, 집중력 저하, 졸음 혹은 불면, 심박수와 혈압의 저하, 식욕 증가, 근육 수행 능력 저하, 근육 긴장 증가 등을 경험한다. 니코틴 공급이 계속되지 않으면 증상은 더욱 심해져 2-3일 뒤 최고조에 이르는데, 이때 많은 흡연자가 고비를 넘지 못하고 금연에 실패한다.


단 증상은 매우 불편한 만큼 이를 이겨내고 금연에 성공한 사람은 주변에서 ‘독한 놈’이란 소리를 듣곤 한다. 반면 어느 순간 금단 증상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의지 부족을 탓하게 된다. 이렇게 보면 ‘악으로, 깡으로’를 외치며 독기를 품는 것이 금연의 방책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2014년 발표된 한 뇌영상 연구결과에 따르면, 금연에 실패하는 이유가 꼭 의지 부족 때문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금연하는 동안 니코틴 갈망과 관련해, 자신을 조절하는 뇌 기능에 이상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7]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금연이란 새해 목표를 지키지 못한 사람들이 벌써 있을 수 있는데, 자책하며 금연을 포기하기 전에 이 연구결과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연구진은 6개월 이상 하루 10개비 이상 담배를 피운 흡연자 37명을 대상으로 이들이 하루 동안 금연했을 때와 평소처럼 흡연했을 때의 뇌를 비교했다. 그 결과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았을 때 뇌에서 여러 회로들 간의 연결이 약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이런 연결성 약화는 흡연 갈망의 증가, 부정적 기분, 금단 증상과 연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00nosmoking2.jpg » 연구진이 주목한 대규모회로(large-scale networks)는 기본상태회로(default mode network; DMN), 실행조절회로(executive control network; ECN), 현저성 회로(salience network; SN)로 이뤄짐. 흡연할 때(왼쪽 타원 안)에 비해 금연할 때(오른쪽 타원 안) 회로들의 연결 정도를 반영하는 수치(RAI)가 더 낮은데, 이는 각 회로를 연결하는 선(적색과 청색)의 굵기로 표현됨. 출처/각주[7]>

구진이 주목한 연결된 세 가지 회로 각각이 하는 기능을 짧게 정리해보자.

먼저 '실행조절 회로'는 인지기능이 필요한 과제의 수행을 담당한다. 금연과 관련해 이 회로의 역할은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구가 넘쳐날 때 어떤 방법을 사용할지 결정하는 것이다. '기본상태 회로'는 우리가 쉬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 활성화하는 곳이다. 이 회로의 역할 중 하나는 자신을 되돌아보고 고민하는 것이다. 이처럼 상반된 두 회로의 상대적 활동을 상황에 맞춰 조절하고 분배하는 역할은 다른 회로인 '현저성 회로'가 담당한다. 이 세 가지 뇌 기능 회로가 모여 '대규모 회로망'을 구성한다.


흡연자가 금연을 유지하려면, 뇌 기능은 기본상태 회로(자아성찰에 관여하는)가 아니라 실행조절 회로(흡연 갈망을 스스로 조절하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런데 금연 상태에서는 대규모 회로의 연결성 약화로 인해 실행조절 회로가 충분히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럴수록 흡연자는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구를 조절하지 못하다가 결국에 다시 흡연을 하게 된다. 요컨대 금연 실패의 원인이 뇌 기능 변화에 있는 만큼 무조건 의지 부족만을 탓할 일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담배를 끊기 위해서는 비장한 강철 의지가 아니라 적절한 의학적 도움이 필요하다. 실제 여타의 도움 없이 혼자 금연을 시도할 때의 성공률은 5 퍼센트에 불과하다.[6]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관련 책자를 읽거나, 전문가(정신과 의사!)와 상담하거나, 부프로피온(bupropion)이나 바레니클린(varenicline)과 같은 약물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여러 노력이 병행되면 성공률은 30-40 퍼센트까지 올라간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금연 치료 약물에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질병을 직접 치료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급여 대상으로 분류되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담배 사용 장애(tobacco use disorder)’는 <정신질환 진단 통계와 편람(DSM-5)>에 엄연히 포함되는 질병이다. 다행히 올해 하반기부터 보험 적용이 된다고 하나,[8] 금액(30-70 퍼센트 지원)이나 기간(4주 이내)이 제한적이어서 다소 실망스럽다. 이번 담뱃값 인상이 세수 확보가 아닌 국민건강 증진이라는 정부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정부의 증가한 수입을 금연 치료에 대폭 투여하는 진정성이 필요해 보인다.



전자담배는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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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부터 껑충 뛴 담배 가격은 국내 흡연 환경을 바꾸고 있다. 외국 여행 떠나는 사람에게 면세점 담배 구입을 부탁하고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던 '개비 담배'가 등장하고 가격 인상이 미처 반영되지 않은 양담배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9] 이런 분위기 속에 전자담배 판매량이 빠르게 증가하는 중이다. 본체를 사서 용액만 교환하는 방식으로 담배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거나 당장 금연하기가 쉽지 않으니 전자담배를 일종의 금연 보조제로 사용하려는 분위기 때문으로 보인다.

00nosmoking3.jpg » 최근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는 전자담배. 출처/한겨레 자료사진

사실 전자담배의 인기는 국내에만 있는 게 아니다. 영어권 국가에서는 ‘전자담배를 피우다’를 뜻하는 ‘vape’라는 새로운 단어가 널리 쓰이고 있다. <옥스포드 사전>이 ‘증기(vapor)’ 혹은 ‘증발하다(vaporize)’에서 유래된 이 단어를 2014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10] 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전자담배의 인기는 전세계적이다. 많은 흡연자가 종이 담배를 피울 때의 느낌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도 금연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을 전자담배의 장점으로 손꼽는다. 그런데 정말 전자담배는 금연에 효과적일까? 안전성은 검증된 것일까? 


전자담배의 금연효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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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전자담배가 금연에 효과적이라는 주장을 살펴보자. 2013년 뉴질랜드 연구진이 657명 흡연자를 니코틴 패치 사용 집단, 전자담배 사용 집단, 니코틴이 없는 전자담배 사용 집단으로 나눈 뒤 금연 효과를 비교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11] 6개월 동안 추적 관찰한 결과 전자담배가 니코틴 패치만큼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연구는 실제 전자담배 사용 여부를 면밀히 확인하지 못했고, 참가자가 니코틴 패치를 구하는 데엔 더 많은 노력을 들여야 했기에, 일정한 약점을 지니고 있다.


금연 효과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비교-대조군 연구가 많지 않으니 인터넷으로 자료를 수집한 영국 연구진의 2013년 연구를 살펴보자. 이 연구에서는 33개 국가의 1347명을 살폈더니 전자담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잠자기 전 마지막 담배를 피운 뒤 아침에 첫 담배를 피우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종이 담배를 피울 때에 비해 더 긴 것으로 나타났다.[12] 연구진은 니코틴을 공급받지 못한 상태가 상대적으로 오래 지속된 것을 니코틴 의존성이 감소한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이 연구 방법을 바탕으로 전자담배가 효과적이라고 주장하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반면에 전자담배가 금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난 연구 결과도 있다. 949명 흡연자를 인터넷으로 조사해 2014년에 발표된 미국의 한 연구에서는 흡연자가 전자담배를 사용하건 사용하지 않건 1년이 지난 뒤의 금연 성공률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13] 이에 대해 전자담배를 금연 보조제로 찬성하는 쪽에서는 담배를 많이 피우는 사람일수록 전자담배에 더 매력을 느끼기 때문에 나타난 왜곡된 결과라 반박했다.


미국의 다른 연구진은 2014년 청소년의 흡연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분석해 전자담배를 사용하는 청소년이 담배를 많이 피우며 금연을 덜 시도하므로 전자담배가 흡연을 줄이지 않고 오히려 늘린다고 주장했다.[14] 이 결과는 몇몇 언론에서 전자담배가 청소년을 종이 담배와 니코틴 의존증으로 인도하는 '관문(gateway)'으로 소개되면서 전자담배 찬성론자들이 크게 반발한 바 있다. 실제 논문에서 상관관계와 인과관계가 뒤섞여 해석된 것을 고려하면 이들의 비난이 어느 정도 타당해 보인다.


사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전자담배가 상용화된 것은 불과 10년 남짓이고, 이 기간에도 기계 자체의 진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로 인해 관련 연구가 많지 않은 현 시점에서 전자담배가 금연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에 대해 명확하게 답하기는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의학적 결론이 확실하게 나지 않은 만큼 금연 방법의 일환으로 전자담배의 사용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 의학적으로 검증된 다른 방법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전자담배의 안전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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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담배의 안정성 여부도 살펴보자. 담배가 인체에 해롭게 여겨지는 대표적인 이유는 주지하다시피 암에 걸릴 위험성을 크게 높이기 때문이다. 흔히 코미디언 고(姑) 이주일의 금연 광고를 떠올리며 담배가 폐암만 유발하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연기를 몸 안으로 들여보내는 입부터 몸 밖으로 나가는 요로까지 흡연은 체내의 많은 기관에서 암을 일으킬 수 있다. 의대생 시절에 'OO암의 위험 인자를 나열하시오'란 문제를 만나면 일단 '흡연(smoking)'을 조건반사적으로 쓰지 않았던가.


전자담배는 이런 암 유발 논란에서 일견 자유로워 보인다. '니코틴 때문에 피우고 연기 때문에 죽는다'라는 말도 있듯이 기존 담배에서 발암 물질은 뇌를 즐겁게 해주는 니코틴이 아니라 타르, 벤젠 같은 첨가물질이기 때문이다. 반면 전자담배의 원리는 니코틴 용액을 가열해 기화시키는 것이므로 흡연자는 니코틴만 들이마실 수 있다. 실제 4개 회사 제품을 분석한 미국의 한 연구진은 전자담배가 인체에 끼치는 '명백한' 위험은 없다고 주장했다.[15] 이를 바탕으로 많은 회사들이 전자담배의 연기를 '무해한 수증기'로 소개하며 자신들의 제품을 광고했다.


[전자담배를 집안에서 피워도 무방하다고 표현한 영국의 전자담배 광고]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들을 살펴보면 전자담배 회사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미국의 한 연구에서는 5분 동안 전자담배를 피웠을 때 내뱉는 숨에서 기관지의 여러 생리 작용에 관여하는 산화질소(Nitric oxide)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16] 이런 양상은 기관지에서 염증이나 과민반응이 있을 때 나타날 수 있으므로 전자담배로 인해 폐 기능에 변화가 생긴 것으로 해석되었다. 비록 체내(in vivo)가 아닌 체외(in vitro)이긴 했지만 실제 전자담배 연기가 기관지 세포의 유전적 변형을 일으킨 것으로 보고한 연구도 있다.[17] 다만 이들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전자담배 용액에 포함된 프로필렌 글리콜(propylene glycol)도 인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 물질은 전자담배 내부에서 액체 상태인 니코틴이 기체 상태로 변할 때 미립자(에어로졸)를 만들어내는데, 음식이나 목욕용품에도 사용되는 만큼 고용량만 아니면 안전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전자담배를 사용할 때처럼 장기적으로 공기를 통해 노출되었을 때 인체에 끼칠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더욱이 기화기에 공급되는 전력이 높을 경우에는 프로필렌 글리콜이 발암 물질인 포름알데히드(formaldehyde)로 형태가 바뀌어 검출된 연구 결과[18]도 있으므로 향후 장기적인 연구가 시행되어야 한다.


아울러 니코틴 자체의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니코틴 60밀리그램이 체내에 들어오면 호흡마비가 발생해 치명적일 수 있다. 물론 니코틴 0.5밀리그램짜리 담배를 피운다면 이 담배를 단시간에 6갑이나 내리 피우지 않는 한, 심각한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전자담배의 경우 니코틴 용액을 마시거나 피부에 엎질러 과다용량이 몸으로 흡입될 가능성도 있으므로 사용할 때 주의할 필요가 있다. 전자담배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의견이 기우(杞憂)처럼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10개월 된 아기가 니코틴 용액을 마신 증례[19]가 최근에 학계에 보고된 만큼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리해보면, 암 유발 위험성과 관련해서는 순수하게 니코틴만 흡입하는 전자담배가 안전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제품의 경우에는 발암 물질이 검출되고 있으므로 좀 더 자세한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또한 전자담배가 폐 기능이나 호흡기에 의도하지 않는 변화를 초래할 수 있고, 니코틴 자체도 독성을 지니고 있는 만큼 전자담배가 안전하다는 주장을 선뜻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일단은 실내 사용을 제한하고, 향료 사용을 금지하며, 18세 이상 성인만 사용하도록 권장하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지난해 보고서 지침[20]을 따르면서 향후 관련 연구 결과를 기다려 보도록 하자.



금연을 위한 또 하나의 정책 : 경고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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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종합병원 내 편의점에서 담배를 팔았던 때가 있다. 환자들은 멀리 나갈 필요 없이 손쉽게 병원 안에서 담배를 사서 옹기종기 모여 흡연하며 입원생활의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혹 지나가던 담당 의사가 “담배 태우시면 안 되죠” 해도 건성건성 대답만 할 뿐이었다. 며칠 전 그 의사도 병원 뒤편 구석진 곳에서 담배를 태우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병원 역시 담배 판매나 흡연을 강하게 제지하지 않았다. 흡연자들이 담배를 많이 피울수록 병원 수익은 늘어나기 때문이었을까. 건강을 책임지는 병원에서 무책임한 일이 벌어지던 모순의 상황이었다.


작년 12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담뱃값 2000원 인상안이 통과되었을 때 ‘창과 방패’를 뜻하는 단어인 ‘모순’이 다시 떠 올랐다. 금연을 위해 ‘가격 인상’이란 창을 뽑은 정부의 다른 손에는 ‘경고그림 의무화 제외’라는 방패가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흡연자들이 경제적 부담을 늘리는 ‘가격 인상’에는 강하게 반발하지만, 담배갑에 경고그림을 부착하는 것에는 반발할 명분이 많지 않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이를 권고하는 세계보건기구(WHO)의 담배규제기본협약(FCTC)[21] 비준에 따라 2008년에 경고그림 의무화를 이미 도입했어야 했다. 강력한 금연 정책을 표방하면서도 시행은 미적거리는 정부의 우물쭈물 행보로 인해 이번 담뱃값 인상이 ‘꼼수 증세’란 냉소를 받고 있다.

00nosmoking4.jpg » 세계 여러 나라의 담배 경고그림. 출처/각주[22]

배갑의 경고그림은 어느 정도의 금연 효과를 발휘할까? 2001년 세계 최초로 이를 도입한 캐나다에서는 40퍼센트 이상의 흡연자가 경고그림이 금연을 시도하는 데에 동기 부여가 된다고 보고했다.[23] 실제 경고그림 도입과 함께 국가 차원의 담배 규제 정책(FTCS)을 도입한 캐나다에서는 2001년에 25퍼센트에 달했던 흡연율이 2012년에는 16퍼센트대로 감소했다.[24] 또한 경고그림은 사람들이 금연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금연 정책을 펼치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경고그림을 본 뒤 금연 상담 전화를 걸어오는 비율이 2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25]


물론 일부 흡연자들은 경고그림이 과도한 공포심을 조장해 아예 금연 문구를 거부하거나 경고그림을 회피하는 방어적 반응을 일으킬 수 있고, 나아가 일종의 ‘반발(defiance) 흡연’이 증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의 근거가 되는 연구는 소수에 불과하고, 자세히 살펴보면 비교 집단이 없거나 연구 방법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22]


또한 2012년 미국에서 5개의 담배회사들이 식품의약국을 상대로 한 재판에서 이긴 것을 근거로 경고그림이 효과적이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26] 당시 식품의약국은 경고그림으로 인한 금연 감소율이 0.088퍼센트라는 자료를 제출했는데, 법원은 이 수치는 일반적인 흡연 감소율인 0.4퍼센트와 차이가 없다며 담배회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2014년 미국의 한 연구진은 식품의약국 자료 해석의 오류를 지적하며 캐나다 자료를 바탕으로 경고그림이 실제 흡연을 12-20퍼센트 낮출 수 있다고 지적했다.[27] 이는 식품의약국 추정치의 33-53배에 해당하는 수치로 2012년에 원래 계획대로 경고그림이 도입되었다면 2013년에 약 500만-800만 명의 흡연자가 금연했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경고그림은 담배 포장지에 인쇄만 하면 되는 간편성과 여러 국가에서 시행되어 이미 검증된 효과를 갖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시행되지 않고 있다. 2002년부터 보건복지부가 경고그림 의무화 법안을 11차례나 올렸지만 정부와 국회는 뒷짐만 진 채 적극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다. 금연에 가장 효과적인 정책이 '가격 인상'과 '경고그림'인 만큼 향후 정부는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야 증세 논란에서 자유로워질 것으로 생각된다.



금연의 이유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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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Stephen King)의 단편소설 중에 ‘금연주식회사(Quitters, INC.)’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다.[28] 골초인 주인공이 우연히 공항에서 옛 동료를 만나는데, 주인공 못지 않게 흡연했던 친구가 담배를 끊었다며 자신을 도와준 회사를 소개했다. 이 회사의 금연 방법은 매우 간단했다. 고객의 흡연 장면이 발각될 때마다 고객의 부인, 고객, 부인과 고객이 함께, 고객의 아들 순으로 전기 충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혐오 훈련(aversion training)’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킹의 작품답게 예상치 못한 섬뜩한 결말로 끝을 맺는 이 소설에서 금연주식회사의 상담가는 주인공을 상담하면서 이런 말을 건넸다. “실용주의자로서 우리는 담배 의존을 치료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소설집의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킹 역시 흡연을 즐겼기에 이 문장은 소설 속 한 등장인물의 고백이 아닌 현실에서 흡연과 금연을 놓고 고뇌하는 한 애연가의 절규로 다가온다.


마다 1월 사람들이 품는 많은 새해 계획의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금연이다. 하지만 이전에도 여러 차례 경험했듯이 담배를 끊는 것은 매우 어렵다. 담배의 주성분인 니코틴이 의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의지를 아무리 다져봐도 몸 여기저기가 불편해지고 마음이 담배를 애타게 갈구하는 통에 금단 증상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금단 기간 중에는 뇌 기능마저 흡연 갈망을 줄이기 어려운 쪽으로 변하지 않던가.


흡연자들이 담배를 끊는 이유는 다양하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일 수도 있다. 또 담뱃값을 아끼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회사에서 주는 금연 보너스를 타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반면에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는 담배를 계속 피워야 할 이유를 찾기가 쉽지 않다. 혹 아직도 금연을 위한 그럴 듯한 이유를 찾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한 연구의 결론을 짧게 소개해본다. “금연에 성공한 사람들의 삶이 더 행복하고 만족스러웠다.”[29] 새해에 금연을 결심한 사람들의 건투를 빈다.


[주]


[1] http://scienceon.hani.co.kr/?mid=media&category=90222&document_srl=146052

[2] Norcross, J.C., M.S. Mrykalo, and M.D. Blagys, Auld lang syne: success predictors, change processes, and self-reported outcomes of New Year's resolvers and nonresolvers. J Clin Psychol, 2002. 58(4): p. 397-405.

[3] http://www.quirkology.com/UK/Experiment_resolution.shtml

[4] http://www.psychologytoday.com/blog/dont-delay/201312/new-years-resolutions-ringing-in-the-new-the-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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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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