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 너의 아픔은 나의 아픔, 거울-촉각 공감각

2016. 12. 27. 11:31글모음

[25] 다른 사람의 고통, 얼마만큼 느끼나요?


 » 다른 사람의 고통, 얼마만큼 느끼나요? 출처/각주[1]


련을 받던 시절, 한 전공의가 면담 중에 환자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다가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흘린 일이 있었다. 이를 알게 된 선배 전공의들은 치료자의 중립성(neutrality)을 지키지 못했다며 눈가가 채 마르지도 않은 전공의를 매섭게 몰아붙였다. 정신분석에서는 환자의 원활한 자유연상을 위해 치료자가 중립적이고 비간섭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신분석을 담당하던 교수님 한 분은 슬퍼하던 전공의가 아닌 비판하던 전공의들에게 쓴소리를 던지셨다. “너희들 이 친구처럼 환자 때문에 울어 본 적 있어? 기계적인 중립 대신 마음을 나누는 공감이 더 중요할 수도 있어” 당시 병아리(1년차) 전공의였던 내게 이 말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문제는 이후 면담 중에 아무리 노력을 해도 도통 눈물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주변에 공감을 잘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넌지시 그들의 언행을 관찰한 뒤 연습해봐도 그 때일 뿐 지속되지 않았다. 공감은 내게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었던 것이다. 한동안 ‘감정이 너무 메마른 나는 정신과 의사로서 자격 미달 아닐까?’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정신의학에 대한 배움이 깊어지면서 점차 이 질문에서 자유로워졌지만 요즘도 나의 공감 부족에 대한 아쉬움을 종종 느낀다. 그런 내게 최근 선망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거울-촉각 공감각’이다. 이런 공감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이들의 정체를 추적해보면 혹 오래 전 품었던 질문의 답을 얻을 수 있진 않을까?



■ 아프냐? 나도 아프다, 거울-촉각 공감각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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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7월 영국의 젊은 연구자 사라-제인 블레이크모어(Sarah-Jayne Blakemore)는 강의 중에 공감각을 언급하면서 한 일화를 소개했다.[2] 다른 사람의 몸에 누군가 손을 대는 것을 볼 때 자신의 몸에도 같은 느낌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청중에서 한 여성이 질문을 던졌다. “다들 그렇지 않나요? 그러는 것이 지극히 정상 아닌가요?” 그는 39세가 되어서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각이 흔하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레이크모어는 2년 뒤인 2005년 이 여성(논문에서 ‘시(C)’로 소개됨)과 일반인 12명의 뇌를 비교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3] 그는 앞에 있는 사람이 왼쪽 볼을 만질 때 마치 거울 속 자신을 보는 것처럼 그의 오른쪽 볼이 만져지는 것을 느꼈다. 반면 다른 사람이 자신의 옆에 서서 오른쪽을 만질 때에는 그 역시 오른쪽에서 촉각을 느꼈다.


00synaesthesia1.jpg » 사람이 만져지는 것을 볼 때, 일반인에 비해 거울-촉각 공감각자의 뇌에서 더욱 활성화한 영역들. 양쪽 일차체감각피질(SI), 이차체감각피질(SII), 전측 뇌섬(anterior insula), 전운동피질(premotor cortex). 출처/각주[3],변형

연구진은 사전에 섭외한 배우가 다른 배우의 얼굴과 목, 그리고 전등, 선풍기, 큰 스피커와 같은 사물을 만지는 장면을 촬영해 참가자들에게 보여주면서 이들의 뇌 반응을 살폈다. 거울-촉각 공감각자인 C와 일반인의 뇌 반응을 비교한 결과 뇌의 몇몇 영역에서 차이가 나타났다. 사물이 만져질 때에 비해 사람이 만져지는 것을 볼 때 C의 뇌에서 이 부위들이 더 활성화하고 있었다.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진은 ‘거울-뉴런(mirror neuron)’이란 신경 조직의 과도한 활성화를 원인으로 추정했다. 거울 뉴런은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마치 자신이 직접 경험하는 것처럼 반응하고 느끼게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4] 예를 들어 앞서 걷던 사람이 헛디디면서 발목이 삐끗하는 것을 보면 뒤에 가던 우리도 순간 움찔하지 않던가? 촉각도 마찬가지인데, 거울-촉각 공감각자의 뇌에서는 일반인보다 이런 반응이 훨씬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2년 뒤인 2007년 이전 연구에 참여했던 영국의 제이미 워드(Jamie Ward) 교수는 대학원생 마이클 배니시(Michael Banissy)와 함께 더 많은 거울-촉각 공감각자 실험에 참여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5] 이 연구에서는 추가적으로 찾아낸 거울-촉각 공감각자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식별 방법과 함께 이들의 공감 능력 여부가 다뤄졌다.


연구진은 거울-촉각 공감각자 10명과 일반인 20명의 볼을 가볍게 만지면서 어느 쪽에서 촉각을 느끼는지 맞추도록 했다. 동시에 이 과제를 수행하는 참가자들의 앞에는 배우의 볼이 만져지는 영상이 흘러나오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거울-촉각 공감각자에게는 실험 과제가 자신의 볼과 영상 속 배우의 볼이 만져지는 위치가 일치하거나(congruent) 일치하지 않는(incongruent) 두 가지 조건으로 나뉘게 된다.


일반인의 경우, 화면 속 배우의 볼이 만져지는 것을 봐도(시각) 내 볼의 어느 쪽이 만져졌는지를 맞추는 것(촉각)이 어렵지 않다. 시각은 시각이고 촉각은 촉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울-촉각 공감각자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시각과 촉각이 공유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실제로는 왼쪽 볼에 촉각이 느껴지더라도 화면 속 배우의 왼쪽 볼이 만져지는 것을 보면 거울 속 자신을 보는 것처럼 오른쪽 볼에도 촉각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답을 맞추는 데에 주저하게 되고, 틀린 답을 제시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동영상 https://youtu.be/aoUdvuLrawE 참가자들의 앞에 흘러나오는 영상의 한 장면]


00synaesthesia2.jpg » [왼쪽] 참가자가 실제 느끼는 촉각의 위치와 화면 속 촉각의 위치가 다른 비일치 조건. 그림에서 정답은 좌측이지만 거울-촉각 공감각자는 오답(오른쪽 혹은 양쪽)을 제시할 수 있다. [오른쪽] 참가자가 실제 느끼는 촉각의 위치와 화면 속 촉각의 위치가 동일한 일치 조건. 출처/각주[5]

실험 결과, 거울-촉각 공감각자들은 일치 조건일 때에 비해 비일치 조건에서 답을 맞추는 시간(반응 시간)이 더 걸리고, 답을 맞추지 못하는 비율(오답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거울-촉각 공감각자들에게는 시각 자극이 촉각까지 유발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들은 일반인이나 거울-촉각 공감각이 아닌 다른 공감각을 지닌 사람들에 비해 정서적 공감 능력이 더 뛰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보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의 아픔을 직접 느낄 수 있으니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 환자 고통을 자기 고통으로 느끼는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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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울-촉각 공감각을 갖고 있을까? 영국의 대학생 567명을 대상으로 한 2007년 연구를 살펴보자.[6] “다른 사람의 몸에 가해지는 촉각을 당신의 몸에서도 느끼나요?”라는 질문에 처음에는 61명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시각과 촉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식별 방법(위 그림 참고)을 적용해보니 그 수는 9명으로 줄었다(혹시 일부 학생들은 나처럼 공감 부족을 느낀 나머지 자신의 바람을 담아 질문지에 답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다시 말해 일반 인구에서 약 1.6퍼센트(%)의 사람들이 거울-촉각 공감각을 지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00synaesthesia4.jpg » 연구에 사용된 과제들 중 일부. 참가자들은 사진 속 인물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를 맞추거나(위),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된 인물의 사진을 본 뒤 변형된 조건에서 동일인인지 여부를 맞추는(아래)을 과제를 수행한다. 출처/각주,[9] 변형 사들의 수에 이를 대입시켜보면 어떨까? 우리나라 의사면허번호가 10만 번을 넘어선 지 오래이기 때문에 대충 계산해보면 약 2,000명 정도의 의사가 거울-촉각 공감각자일 수 있다. 하지만 내 인간관계의 폭이 넓지 못해서일까? 주변의 의사들은 내 질문에 다들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들은 해당 사항이 없다고 한다. 환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는 의사는 정녕 존재하지 않는단 말인가?


미국의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신경과 의사 조엘 살리나스(Joel Salinas)가 이에 해당된다.[7] 그는 환자의 몸을 직접 살펴보는 진찰에 뛰어났다. 한 예로 몸 여기저기에 있는 양성 종양 탓에 자신의 통증을 제대로 느끼지도 표현하지도 못하던 환자를 그가 만났을 때를 들 수 있다. 그가 검사용 망치로 환자의 왼쪽 무릎을 살짝 쳤을 때 이미 위축된 환자의 다리에서는 반응이 거의 없었다. 나처럼 둔한 의사라면 ‘반응 없음’으로 기록을 남겼겠지만, 살리나스는 그렇지 않았다. 그의 왼쪽 다리에서 미묘한 촉각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눈으로 환자를 관찰하는 시진(視診)이 두드려보는 타진(打診)을 보완한 셈이다.


살리나스의 공감각은 사람들의 통증뿐만 아니라 불편함도 망라했다. 그는 증상이 좀처럼 낫지 않아 속상해하는 환자의 우울함과 뇌의 오작동으로 흥분 상태에 빠진 환자의 분노를 자신의 감정처럼 느낄 수 있다. 심지어 환자가 사망할 때 그 역시 자신의 몸이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텅 비는 듯한 느낌을 갖곤 했다. 살리나스의 공감각은 경미한 시각 자극에도 뇌의 거울 뉴런이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8] 이렇게 거울-촉각 공감각을 설명하는 입장은 흔히 ‘역치 이론(threshold theory)’으로 불린다.


살리나스가 환자의 아픔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는 것은 그가 거울-촉감 공감각자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보인다. 하지만 환자의 감정까지 공유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배니시 교수의 2011년 논문에서 실마리를 찾아보자.[9] 연구진은 8명의 거울-촉각 공감각자와 20명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얼굴 표정 인식과 안면 지각에 관한 과제를 풀도록 한 뒤 그 결과를 비교해봤다.


00synaesthesia5.jpg » 거울-촉각 공감각자는 일반인에 비해 얼굴 표정을 잘 인식하지만(왼쪽), 얼굴을 기억하는 능력에는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각주[9], 변형 구 결과를 보면, 거울-촉각 공감자는 일반인에 비해 크게 웃기, 찡그리기, 노려보기, 감동하기와 같은 얼굴 표정을 더 잘 인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거울-촉각 공감각자가 얼굴 표정이란 맥락을 통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읽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사진 속 얼굴이 누구인지를 맞추는 과제 수행에서는 두 집단 간에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다. 정리해보자. 거울-촉각 공감각자는 처음 만난 자리에서도 당신의 얼굴 표정을 읽으며 놀랄 만큼 공감을 잘 할 것이다. 하지만 다음 번 만남에서는 당신을 아마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너무 상처받진 말라.


얼굴 표정을 잘 읽는 것 역시 살리나스의 병원 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한 예로 그가 회진을 도는 장면을 살펴보자. 보호자에게 치매 환자의 경과를 설명한 뒤에 방을 떠나려 할 때 그는 보호자의 얼굴에서 입꼬리가 살짝 팽팽해지는 것을 감지했다. 그는 불만족스러운 감정을 느꼈고, 자신의 기분이 호전될 때까지 추가적으로 보호자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모든 설명이 끝났을 때 보호자의 입꼬리는 부드러워졌고, 살리나스 역시 안도할 수 있었다.


병원에서 정신과 의사인 나의 주된 일은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하지만 대화에서 말로 표현되는 부분은 채 반도 되지 않는다. 대화의 60-65퍼센트(%)는 비언어적인 방법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10] 그 중 상당수는 환자의 얼굴에 드러나는 표정이다. 만약 내게 살리나스처럼 거울-촉각 공감각이 있다면 환자 표정의 미세한 차이를 읽고, 이를 바탕으로 정서적 고통을 조금이나마 더 깊고 폭넓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 주먹 한 방을 보기만 해도 의식을 잃는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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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특별한 능력은 사실 동전의 양면과 같다. 거울-촉각 공감각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번에는 영국 리버풀에서 살고 있는 피오나 토랜스(Fiona Torrance)를 만나보자.[11] 그는 여러 공감각을 갖고 있는데, 특히 거울-촉각 공감각이 매우 강력해서 사람뿐만 아니라 곤충, 동물 심지어 조각상 같은 무생물과도 감각을 공유할 수 있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며 사려 깊은 모습을 보이는 토랜스는 인기가 많다. 하지만 사실 그의 삶은 지난함의 연속이었다.


랜스가 어릴 적 처음 거울-촉각 공감각을 느꼈던 것은 여섯 살 때 정원에서 서서 때까치가 쥐를 잡아 울타리의 철조망에 매다는 것을 봤을 때였다. 그는 자신이 마치 무엇인가에 걸려 있는 것처럼 목과 허리에서 강하게 당겨지는 느낌을 받았다. 울면서 엄마에게 달려가 방금 경험한 것을 이야기 했지만 엄마로부터 돌아온 답은 “네가 단지 너무 예민한 거야”였다.


청소년기에 토랜스는 사람들과 동떨어져 외롭고 쓸쓸한 시간을 보냈다. 만나는 사람들의 통증이나 우울한 감정을 매번 경험하는 것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었다. 20살에 처음 만난 남자와 결혼도 했지만 이번에는 남편과의 성생활이 문제였다. 관계가 끝난 뒤에도 불규칙적으로 당시의 느낌에 사로잡히는 불편을 겪은 것이다. 그가 만난 많은 사람들처럼 남편 역시 토랜스가 너무 예민한 것으로 여겼지만, 결혼 생활은 2년 만에 끝이 났다.


또한 토랜스는 늘 저체중과도 씨름을 했다. 다른 사람들이 먹는 것을 보면 그 역시 음식을 입 안에서 느끼고, 맛을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먹은 것처럼 늘 포만감을 지녀, 먹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고역이었다. 그의 거울-촉각 공감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차 안에서 다른 사람들이 싸우는 장면을 보다가 한 사람이 주먹 한 방을 맞는 것을 본 뒤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 일이었다. 그는 싸움 도중 회심의 일격을 맞은 것이 자신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인지를 구분하지 못했던 것이다.


00synaesthesia6.jpg » 3차원 화소 기반 형태측정법(voexl-based morphometry; VBM)을 이용해 두 집단을 비교한 결과, 일반인에 비해 거울-촉각 공감각자의 뇌에서 내측 전전두피질(좌측 파란 영역)과 우측 측두두정엽 경계 영역(우측 파란 영역)의 회색질이 감소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각주[12] 토랜스가 겪었던 어려움을 살펴보면 피아 식별, 즉 타인과 자신을 구분해 인식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8] 이런 관점에서 거울-촉각 공감각을 설명하는 것은 ‘피아 이론(self-other theory)’으로 불리는데, 뇌영상 연구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일반인에 비해 거울-촉각 공감각자의 뇌에서 우측 측두두정엽 경계 영역(right temporo-parietal junction; rTPJ)과 내측 전전두피질(medial prefrontal cortex; mPFC)의 회색질(gray matter; GM)이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12]


두 영역은 뇌에서 다른 사람과 자신을 구분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13]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음 속에서 자신이 억제되고, 타인이 부각되어야 한다. 반면에 다른 사람을 따라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대로 타인이 억제되고, 자신이 부각되어야 한다. 신경과학적으로는 거울-촉각 공감각자가 자신과 타인의 표상(表象)을 적절하게 나누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이 경험한 것을 다시 경험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타인과 자신의 경계가 모호해진 거울-촉각 공감각자의 피곤한 삶의 무게를 덜어 줄 방법은 없을까? 토랜스는 약물을 복용해 예민함을 줄이는 방법을 취하면서 자신의 삶에 만족하게 되었다. 앞서 살폈던 살리나스의 경우에는 주변에서 자극이 많아질 때 가장 차분한 사람이나 사물에 주의를 돌리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래서 아파하는 환자, 공포에 찬 보호자, 분주한 치료진으로 가득 찬 응급실에서도 진료를 잘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까지 살피고 보니 거울-촉각 공감각이 마냥 좋아 보이진 않고, 오히려 둔감한 내 자신이 나름 괜찮아 보인다.



■ 나는 당신의 고통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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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미국 대선 후보 토론회에 중립적인 유권자가 직접 질문을 하는 형식이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지금도 많이 회자되는 순간은 한 흑인 여성이 후보자들에게 불경기가 개인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물어봤을 때였다.[14] 그 자신이 빚을 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 역시 해고를 당하고 주택대출금을 갚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경험이 없는 후보자들이 어떻게 일반 국민의 고통을 느끼고 도울 수 있겠냐는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때 공화당 후보 부시와 민주당 후보 클린턴은 사뭇 다른 모습을 보였다. 부시는 여성의 질문이 시작될 때 그를 바라보지 않고, 손목 시계를 보면서 자신의 옷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답변을 할 때에도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채 동문서답을 하다가 질문자와 사회자가 ‘개인적으로’를 재차 강조하자 워싱턴 근교의 흑인 교회에 가 본 경험을 언급하며 궁색하게 대답을 이어 나갔다.


반면 클린턴은 자리에서 일어나 질문했던 여성 쪽으로 가까이 다가 간 뒤 그의 눈을 지그시 응시하면서 대답을 시작했다. 클린턴은 먼저 질문자가 불경기 중에 겪었던 여러 일을 상기시킨 뒤 주지사로서 자신이 경험했던 내용과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차분하지만 확신에 찬 어조로 전달했다. 당시 클린턴 진영의 구호 중 하나였던 “나는 당신의 고통을 느낍니다(I feel your pain)”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동영상 https://youtu.be/7ffbFvKlWqE 1992년 미국 대선 중 일부 장면.

부시와 클린턴의 상반되는 태도가 나타난다]


당시의 토론 장면을 보면 철자가 비슷해 종종 혼용되는 영어 단어 두 개가 연상되었다. 나도 이런 것 해봤다며 불경기를 이해하려 애쓰던 부시의 모습이 동정(sympathy)에 가깝다면 역지사지의 영어 표현처럼 ‘질문자의 신발에 자신을 발을 넣어보려(putting yourself in a person’s shoes)‘ 애쓰던 클린턴의 모습은 공감(empathy, 감정이입)으로 다가왔다.


감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내 입장에서 타인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다. 물론 거울-촉각 공감각자처럼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의 아픔을 똑같이 느낄 수는 없다. 하지만 단순히 내 입장에서 상대를 측은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의 관점을 수용하고 그의 마음이 어떤지를 상상하는 노력을 통해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는 첫걸음을 뗄 수 있다.


요즘 우리 사회는 ’헬조선‘으로 불린다. 이 땅에서 사는 것이 그만큼 힘들고 어려워졌기 때문이리라. 전투적으로 살면서 발생하는 삶의 무게를 ’흙수저‘끼리 전가하며 고통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공감이지 않을까? ’나는 당신의 고통을 느낍니다‘하며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며 연대할 때 각자도생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믿어본다.


[주]


[1] Fitzgibbon, B.M., et al., Shared pain: from empathy to synaesthesia. Neurosci Biobehav Rev, 2010. 34(4): p. 500-12. 그림 출처는 http://pixabay.com

[2] http://www.livescience.com/1628-study-people-literally-feel-pain.html

[3] Blakemore, S.J., et al., Somatosensory activations during the observation of touch and a case of vision-touch synaesthesia. Brain, 2005. 128(Pt 7): p. 1571-83.

[4] Rizzolatti, G. and L. Craighero, The mirror-neuron system. Annu Rev Neurosci, 2004. 27: p. 169-92.

[5] Banissy, M.J. and J. Ward, Mirror-touch synesthesia is linked with empathy. Nat Neurosci, 2007. 10(7): p. 815-6.

[6] Banissy, M.J., et al., Prevalence, characteristics and a neurocognitive model of mirror-touch synaesthesia. Exp Brain Res, 2009. 198(2-3): p. 261-72.

[7] http://www.psmag.com/health-and-behavior/is-mirror-touch-synesthesia-a-superpower-or-a-curse

[8] Ward, J. and M.J. Banissy, Explaining mirror-touch synesthesia. Cogn Neurosci, 2015. 6(2-3): p. 118-33.

[9] Banissy, M.J., et al., Superior facial expression, but not identity recognition, in mirror-touch synesthesia. J Neurosci, 2011. 31(5): p. 1820-4.

[10] Burgoon, J.K., L.K. Guerrero, and K. Floyd, Nonverbal Communication. 2016: Taylor & Francis.

[11] http://www.liverpoolecho.co.uk/news/liverpool-news/living-synaesthesia-meet-liverpool-woman-10679323

[12] Holle, H., M.J. Banissy, and J. Ward, Functional and structural brain differences associated with mirror-touch synaesthesia. Neuroimage, 2013. 83: p. 1041-50.

[13] Van Overwalle, F., Social cognition and the brain: a meta-analysis. Hum Brain Mapp, 2009. 30(3): p. 829-58.

[14] http://www.nytimes.com/1992/10/16/us/the-1992-campaign-transcript-of-2d-tv-debate-between-bush-clinton-and-perot.html?pagewanted=all


2015.2.8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http://scienceon.hani.co.kr/?mid=media&category=90222&document_srl=363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