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 대구지하철 참사 11년...생존자 아픔은 계속된다

2016. 12. 19. 12:16글모음

[11] 2월18일 화재참사 11주기...아물지 않은 상처


대구 지하철 참사 때 살아남은 사람들은 목숨을 건졌다는 안도도 잠시뿐, 이후에 여러 고통과 어려움을 겪었다. 신체적으로는 대피와 구조 과정에서 몸 여러 곳에 상처를 입었고, 유독 가스를 마셔 후두와 호흡기에도 손상이 발생했다. 또한 정신적으로도 대부분 사람들에게서 다양한 문제가 나타났다. 아물지 않은 상흔인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당시 반대편 차선에서 중앙로역에 들어온 1080호 전동차의 한 객차 안에서 연기가 차오르자 승객들이 영문도 모른 채 손으로 코와 입을 막고 불안하게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이 공개됐다. 당시 이 전동차에 탄 사람들은 ‘잠시 기다리라’는 내용의 안내방송을 들은 뒤 전동차 출발이나 문 열리기를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이 사진을 언론 등에 제공한 류호정씨는 이 전동차를 타고 있다가 두 컷의 사진을 찍은 뒤 간신히 탈출에 성공했으나 연기에 질식돼 병원으로 옮겨졌다."(한겨레신문, 2003년 2월19일치) 사진/ 류호정


2003년 2월18일 오전 9시53분.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으로 진입하던 열차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처음에 불은 크지 않았고 열차의 승객 대부분은 문을 통해 빠져나갔다. 그러나 맞은 편에 멈춰 선 열차에 불이 옮아 붙으면서 이 화재는 대형 참사로 변하기 시작했다. 기관사들이 신속하게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사이에 역사 안의 전력 공급이 끊기고 출입문이 열리지 않으면서 참사가 커졌다.


사고 직후에 소방차 84대, 소방관·경찰 등 3200명이 긴급 출동했지만 피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구나 분진 마스크, 방독면, 방역복, 연기 강제배출 장비 등 구조장비는 턱없이 부족했고, 대규모 지하시설의 화재 경험이 없는 구조대는 효율적으로 인명 구조에 나서지 못했다. 그 결과 불과 20여 분의 화재로 두 열차에 타고 있던 약 450명 승객 중 192명이 숨지고 148명이 부상을 당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화재를 일으킨 범인의 심리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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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disaster2.jpg » 중앙로 역에서 뿜어 나오는 검은 연기와 몰려있는 구조대원. 출처/대구지하철 중앙역사 화재사고 백서, 각주[1] 화재의 원인은 당시 56세 김대한의 방화였다. 원래 개인택시 운전사였던 범인은 2001년 4월 뇌졸중 발병 이후에 오른 팔다리의 마비와 언어 장애를 겪게 되었다. 이로 인해 ‘뇌병변 2급’ 장애 판정을 받은 그는 일을 그만두고 치료에 전념했지만 큰 호전이 있지는 않았다. 이에 그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이렇게 살면 뭐하나”, “OO병원 의사 죽이고 나도 죽겠다” 같은 말을 자주 했으며, 실제 여러 차례 치료 받던 병원에서 소란을 피웠다고 한다. 그러던 중에 그는 혼자 죽기에는 억울하다는 생각에 미리 사둔 휘발유를 샴푸통에 담아 지하철에 탔다. 라이터를 꺼내 망설이던 중 맞은 편의 한 승객이 이를 나무라자 순간적으로 불을 붙이기로 결심했다. 이후 휘발유에 붙은 불길은 순식간에 전동차 안으로 퍼지면서 화재가 확산되었다.


사를 일으킨 범인은 어떤 심리 상태였을까? 2003년 대구가톨릭대학교 성한기 교수와 대구대학교 박순진 교수의 범죄심리학적 분석을 살펴보자.[2] 정신상태 평가에서, 범인의 사고 과정은 논리적이었으며 비정상적인 왜곡 양상은 보이지 않았다.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에는 대답을 피하거나 모른다고 했지만 그렇지 않은 질문에는 대답을 잘 했다. 그밖에 환청, 환시 같은 지각 이상은 관찰되지 않았고, 그가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말이 없고 잠을 깊이 못 자는 등 가라앉은 기분을 시사하는 소견이 관찰되었다.


또한 공주치료감호소에서 범인을 대상으로 지능검사, 다면적 인성 검사, 간이 정신진단 검사, 문장완성 검사 등의 심리검사가 시행되었다. 당시 그는 뇌졸중의 후유증으로 오른 팔을 잘 쓰지 못해 글을 잘 쓰지 못했고 글을 읽지 못한다고 해 문항을 읽어준 뒤 대답을 받아 적는 형식으로 검사가 진행되었다. 또한 범인이 선택적으로 대답하거나 아예 모른다고 답하며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해 객관적 검사가 이뤄지지는 못했다.


지능 검사 결과에선, 언어성 지능이 경도(가벼운) 정신지체에 해당되는 ‘64’ 정도로 측정되었는데 그가 보인 비협조적 태도를 고려할 때 실제보다 낮게 평가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인성 검사 결과에선 10개의 임상척도가 모두 정상 범위 내에 나타났고, 억압(suppression),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 부정(denial) 같은 방어기제를 흔히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간이 정신진단 검사 결과에선 신체화(somatization) 척도와 우울(depression) 척도의 상승 소견이 나타났다.

방어기제: 심리 불안이나 갈등이 있을 때 감정적 상처를 최소화하기 위해 비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심리 의식이나 행위

반동형성: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이나 충동이 있을 때 반대 행동을 함으로써 대항하는 것

체화: 심리적 자극으로 인한 영향이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현상


한편 미완성 문장을 피검사자가 직접 입력하는 문장완성 검사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00disaster3.jpg » 괄호 안의 부분이 범인이 직접 채워 넣은 부분. 출처/각주[2

전체 분석 결과에서 범인은 ‘기분 부전증(dysthimia)’를 지닌 것으로 진단되었다. 진단 기준에 따르면 기분 부전증은 주요 우울증에서 관찰되는 우울 삽화보다는 경미한 우울 상태로서, 적어도 2년 이상 우울한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더 많을 때 내릴 수 있는 진단이다. 범인의 기분 부전증 발병에는 뇌졸증 뇌졸중의영향이 컸던 것으로 판단되었다. 아울러 주변 사람에게 짜증을 많이 내고 다니던 병원에서 소동을 피웠던 것을 고려하면, 뇌졸중으로 인해 성격에도 변화가 생긴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로 인해 범인은 쉽게 화를 내고 충동 조절을 못하는 특성을 나타낸 것으로 추정되었다.


종합하면, 범인은 뇌졸중 이후 발생한 실직과 신체적 불편함으로 인해 기분 부전증을 앓으면서 발생한 분노와 적개심을 투사(投射; projection)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양상이 내부를 향하면 자살 시도처럼 자신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외부를 향하면 병원에서 소동을 피우고 불을 지르겠다며 위협하는 방식으로 표출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공격성은 일반의 불특정 다수로 확대되었고, 결국 불행히도 방화 행동을 통제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설명이 범인에 대한 의학적 변호일 수는 없다. 왜냐면 그의 현실 검증력이 손상되지 않았으며 계획적으로 자기 의지에 따라 불을 질렀기 때문이다.


당시 일부 언론은 사건 초기에 범인을 정신질환자, 정신장애인으로 보도하면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신과 환자는 위험하고 무서운 범죄자라는 편견을 갖는 데에 일조했다. 요즘처럼 활발한 정도는 아니지만 당시에도 관련 기사의 댓글이나 여러 누리집 게시판에서 정신질환자는 위험하기 때문에 사회에서 격리해야 한다고 말하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보도의 생명은 신속함이겠지만 조그마한 관심과 신중한 배려가 있었다면 정신과 영역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초래하지 않았을 것 같아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생존자의 정신적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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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때 살아남은 사람들은 목숨을 건졌다는 안도도 잠시뿐, 이후에 여러 고통과 어려움을 겪었다. 신체적으로는 대피와 구조 과정에 부딪히고 눌리고 찢기면서 몸 여러 곳에 상처를 입었고, 유독한 가스를 마셔 후두와 호흡기에도 손상이 발생했다. 또한 정신적으로도 대부분 사람들에게서 다양한 문제가 나타났다.


사고 뒤 2개월이 지난 2003년 4월, 부상자 12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면담에서 49.6퍼센트에 해당하는 64명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로 진단되었다.[3] 이 정도의 비율은 외상 후에 평균적인 발생율인 20-40퍼센트를 웃도는 것으로 대구 지하철 화재가 그만큼 심각한 참사였음을 반증한다. 그밖에 나타난 여러 정신과적 문제를 제외하면 심리적으로 정상 범주에 속하는 사람은 단 17명(13.2%)에 불과했다.

00disaster4.jpg » 화재 발생 2개월 뒤 생존자 129명에 나타난 정신질환의 빈도. 주요 우울증(MDD: Major depressive disorder), 적응장애(Adjustment disorder), 치매와 섬망(Dementia and delirium), 기억상실장애(Amnestic disorder). 출처/각주[3]

은 생존자가 겪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심리적 외상을 직접 겪거나 본 뒤에 발생하는 정신질환이다. 심리적 외상에는 자연재해, 화재, 전쟁, 신체폭행, 고문, 강간, 성폭행, 소아학대 등 심각한 신체 손상이나 생명 위협을 동반하는 사건들이 해당된다. 환자는 고통스런 사건 회상, 사건과 관련된 회피 행동, 과각성 같은 증상으로 많은 고통을 받는다.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의 생존자를 대상으로 약 1년 6개월 뒤(2004년 6-11월)와 약 2년 8개월 뒤(2005년 12월-2006년 1월)에 2차, 3차 연구가 추가로 진행되었다. 2차와 3차 평가 때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진단을 위해 임상에서 유용하게 사용되는 ‘임상가용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척도(Clinician Administered PTSD Scale; CAPS)’가 사용되었다. 그 결과 2차 연구에서 53명 중 37명(69.81%), 3차 연구에서 37명 중 21명(56.7%)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았다.[4]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부분 호전된 신체적 증상과 달리 정신적 고통은 상당수의 부상자에서 지속됨을 보여주는 결과이다.


주목할 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과 후속 연구에 참여한 사람의 숫자가 감소한 부분이다. 당시 연구진에 따르면 2차 연구 때에는 65명이 평가 받기를 원했지만 설문지가 누락돼 53명이, 3차 연구에서는 자기보고식(自己報告式檢) (自己報告式) 검사지가 누락되거나 면담에 협조하지 않은 사람을 제외한 23명만이 연구 대상이 되었다. 반면에 일반 검진, 호흡기내과 검진, 이비인후과 검진의 경우에는 각각 123명→ 99명, 118명→ 62명, 129명→ 88명으로 연구에 참여한 사람의 감소 폭이 정신과 연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00disaster5.jpg » 사망자는 20대에서, 부상자는 30대에서 가장 많이 발생했다. 출처/각주[1]

이런 결과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정신과 치료에 대한 편견과 정신과 환자로 낙인 찍히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많은 생존자가 정신적으로 힘들어 하면서도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치료를 받지 않았다.[5] 특히 화재 사고 당시가 봄방학, 계명대 졸업식이 있던 때라는 시기적 특성 때문에 젊은 층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이들이 정신과 치료로 인해 취직이나 결혼 같은 사회적 활동에 제약이 생길까봐 두려워했을 가능성이 높다.



쉽게 잊히지 않는 화재의 기억과 극복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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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사람이 많이 힘들어 하는 부분 중 하나는 공포스러운 기억이 반복적으로 엄습해오는 점이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사고와 관련된 부정적 기억은 아무리 노력해도 떨쳐버리기 힘들다. ‘시간이 약’이려니 생각하며 견디어 봐도 끝이 없어 보이는 이 증상은 사고 전의 평범했던 일상생활로 되돌아가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의 생존자 중 한 명을 중심으로 사고 이후의 삶을 살펴보자.[6] 그는 화재가 난 뒤 출구를 찾아 기어 올라가던 중 한 여인이 살려달라며 자신의 허리띠를 잡자 그 여성을 살리려다가 자신도 죽겠다는 생각에 허리띠를 풀어 버렸다. 화장실에서 소방대원들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된 그는, 이후 자신의 허리띠를 붙잡던 여인에 대한 기억 때문에 고통 받는다. 밤마다 여인이 꿈에 나타나 “혼자 살려고 뿌리치더니 얼마나 잘 사는지 두고 보자”며 저주를 퍼붓는 탓에 불면증에 시달린다. 낮에도 떠오르는 그 여인 때문에 굿도 해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고 건강은 점점 나빠진다.


사고와 관련된 부정적인 기억,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서로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들의 두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의 생존자를 5년 동안 추적하며 이들의 두뇌 반응과 변화, 그리고 생물학적 회복 과정을 연구해온 류인균 당시 서울대 교수(현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2011년 연구를 살펴보자.[7]


연구진은 화재 1년 뒤 생존자 중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고, 연구에 적합한(일례로, 한약을 복용하지 않은) 30명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후 5년 동안 약 1.3년 간격으로 이들에게 뇌영상(MRI) 검사와 신경심리 검사를 시행했다. 그리고 같은 기간에 비교 분석을 위해 나이와 성별을 맞춰 선별한 일반인 36명에게도 동일한 검사를 시행했다.


연구 결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존자 집단은 생명을 위협했던 화재라는 심리적 외상에서 천천히 벗어나며 회복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받는 사람 수가 점차 감소했고, 증상의 심각도를 반영하는 임상가용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척도의 총점수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00disaster6.jpg » 생존자 집단에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되는 수는 5년 뒤에 2명으로, 증상의 심각도를 반영하는 임상가용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척도의 총 점수는 35.1로 감소함. 출처/각주[7], 변형

영상 결과를 살펴보면, 첫 번째 비교 검사에서 생존자 집단은 일반인 집단에 비해 두뇌의 배외측 전전두피질(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 DLPFC) 영역이 두꺼워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 영역이 두꺼울수록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의 심각도가 줄어드는 폭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아울러 이 영역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두께가 점점 줄어 세 번째 비교 검사 때에는 두 집단 간에 별 다른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00disaster7.jpg » 생존자 집단과 일반인 집단의 검사 시점과 배외측 전전두피질의 두께가 감소하는 양상. 출처/각주[7], 변형

배외측 전전두피질은 두뇌의 맨 앞부분 바깥 쪽 상단에 자리 잡고 있는 영역으로, 부정적인 사건을 재평가하고 불쾌한 기억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나쁜 감정을 인지적으로 처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8]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의 생존자가 잊고 싶은 끔찍한 기억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은 공포라는 부정적 기억과 관련된 여러 두뇌 영역(예. 편도체, 해마)의 활동이 과도하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배외측 전전두피질은 과도하게 활성화한 공포 회로를 조정하느라 그 두께가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시간이 지나 생존자가 심리적 외상에서 벗어나면서 배외측 전전두피질은 점차 얇아지다가 일반적인 두께로 돌아가게 된다.



현재진행형인 '그날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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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 화재가 발생한 지 벌써 11년이 지났다. 사고 당시 정부는 다음날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하는 등 사고 수습을 위해 노력했고, 많은 국민이 자발적인 성금 모집과 봉사 활동으로 힘을 보탰다. 이후 중앙로역 일대의 보수공사가 끝나고 보상 등의 행적적 절차도 마무리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화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점차 줄어들었고 이제는 많은 사람의 기억에서 잊혀진 사건이 되었다. 그러나 이 비극적 사고는 화재와 관련된 사람들의 삶에 여전히 영향을 주고 있다.


화재 2개월 뒤(1차)와 6년 뒤(2차)의 검사 자료를 비교한 2009년의 한 연구는 생존자의 정신 건강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좋지 않음을 보여주었다.[5]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의 정신적 불편감(예컨대 상황 불안, 주관적 우울감 같은)은 호전되었지만 일부 증상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예를 들면 간이 정신진단 검사(SCL-90-R) *검사의 영문 약자는 빼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앞부분에서도 그냥 한글로만 언급했습니다 *의 편집증 척도나 여러 임상 척도 중 특성 불안 척도는 1, 2차 검사에서 차이를 나타내지 않았다. 이는 생존자들한테서 주변에 대한 불신감, 의심 등이 여전하고 평소 긴장하고 불안해하는 특성은 지속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6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받은 사람의 비율이 크게 줄지 않은 것(48.5%→ 46.6%)은 이런 심리적 특성 때문으로 보인다. 이후 생존자의 정신적 불편감을 추적 관찰한 연구는 더 없었지만 대신에 대구 지하철 화재 10주년을 전후한 여러 언론사의 기사에서 여전히 지속 중인 생존자의 정신적 고통을 엿볼 수 있다. 한 여성 생존자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직접 들어보자.


“요즘도 여전히 불을 끄면 잠들지 못합니다. 영화관에 가면 비상구부터 찾고, 어떻게 탈출할 것인지 계획합니다. 사고가 나면 자의로 탈출하기 힘든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기차나 비행기 등을 이용할 때면 큰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9년 동안 지하철을 두 번 이용했습니다. 부상자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사람들이랑 몰려가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탔죠. 하지만 그 이후에는 절대로 안 탑니다.” [9]


러나 생존자가 제대로 의학적 도움을 받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이들은 2006년 여러 종류의 보상금을 일시불로 받았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일을 못하게 되자 일단 급한 대로 보상금을 생활비로 사용했다. 당시에는 정신적 고통이 이렇게 오래 갈지 몰랐던 것이다. 이들은 평생 치료비를 받았다는 이유로 현재 건강보험 적용도 받지 못하고, 여러 후유증이 나타날 수 있다는 이유로 일반 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다.[10]


생존자가 개인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기 어렵다면 사회적으로라도 적절한 타개책이 마련되어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 보인다. 한 기사에 따르면 대구 사회 전체를 덮은 것은 ‘망각의 공기’이다.[11] 대구시는 화재 이후 생존자의 건강 상태에 대한 추적 조사를 시행하지 않고 있고, 생존자가 종합검진 시행을 요구해도 2006년에 보상이 완료되었다며 추가 지원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고 한다. 생존자의 정신과 진료를 담당했던 의료진도 뜻밖에 심리적 외상과 관련해 뚜렷한 의견을 내지 않고 있다. 당사자가 아니면 모두들 응답이 없는 것이다.


대구 지하철 화재보다 2년 먼저 발생한 9·11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 발생 이후에 보여준 미국 정부의 대응은 이런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12] 미국 정부가 시행한 건강 프로그램의 대상은 생존자와 경찰관, 소방수, 응급구조요원과 같은 구조 참여자뿐 아니라 인근 지역의 목격자까지 망라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뉴욕시의 각 지역에서 현재까지 다양한 심리 치료를 받고 있다. 단순히 경제적 보상으로 사고를 덮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들의 정신 건강을 주시하며 다시 온전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사회의 역할임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00disaster10.jpg » 화재로 그을린 벽에 쓰인 추모글. 출처/ http://ko.wikipedia.org, Wikimedia Commons



지속적 관심과 사랑으로 아픔 보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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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18일 대구 지하철 화재 10주기 추모식이 있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사망자의 넋을 기리고 생존자를 위로해야 할 자리였지만 안타깝게도 추모식은 두 갈래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국민성금으로 추진하기로 한 공익재단 설립 및 추모공원 조성 방식 등을 두고 유족단체가 갈라졌기 때문이다. 상처를 보듬는 데 함께해야 할 힘이 나뉘다 보니 추모 사업과 생존자 대책은 갈팡질팡하고 있다. 백서 발간은 지연되고 있고, 대구시는 한 쪽 편만 들어줄 수 없다며 그저 관망하는 태도만 보이고 있다.


지역 사회도 역시 갈래갈래 나뉘어져 있다. 처음 대구시가 유가족과 협의해 짓기로 했던 추모공원은 물망에 오른 지역들이 상권에 피해가 생길 수 있다는 반대에 밀려 표류하게 되었다. 2년 뒤 일종의 대안으로 ‘대구시민 안전테마파크’가 조성되었지만 이후 수목장 허용과 추모탑 설립 등에 대한 이면합의 유무로 유가족과 대구시는 서로 거짓말을 한다며 비난하고 있다. 또한 유가족이 안전테마파크에서 참배하려 하자 지역 상인은 상권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대구시와 협의한 내용과 다르다는 이유로 반대해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꼬여버린 실타래가 풀리기는커녕 더 복잡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애초에 대구 지하철 화재는 발생해서는 안 될 참사였다. 피할 수 없어 발생했더라도 초등 대처를 잘 했다면 사상자 수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크나큰 참사를 낳은 사고는 안타깝지만 돌이킬 수는 없다. 많은 생존자와 유가족, 그리고 관계된 많은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이라도 적절한 개입과 조처가 시행된다면 더 나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한다", "사랑해"…….

어두운 지하철 안에서 갇힌 채 뜨거운 화염의 열기와 유독 가스에 숨 막히며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통해 전한 마지막 말들은 더할 수 없는 사랑으로 채워져 있었다. 대구 지하철 화재를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망각과 외면이 아니라 망인들이 이 땅을 떠나기 전 보여준 사랑과 배려가 아닐까? 더 늦기 전에 이 소중한 교훈에 바탕을 둔 정책적 지원과 지역 사회의 관심이 다시 시작되길 기대해본다.


[주]



[1] 대구광역시, 대구지하철 중앙역사 화재사고 백서. 국가기록원, 2005.

[2] 성한기·박순진,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과 피의자의 방화행위에 대한 범죄ㆍ심리학적 분석. 형사정책연구원, 2003.

[3] Kim, J.B., S.Y. Ryu, and H. Ahn, A Review of Korean Mental Health Studies Related to Trauma and Disasters. Psychiatr Invest, 2005. 2(2): p. 22-30.

[4] 정태훈 외, 대구지하철참사 부상자 만성후유증관리를 위한 연구용역 : 최종보고서.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2006.

[5] 하신숙 외, 대구시 지하철 화재사고 부상자들의 6년후 정신과적 특성. 대한불안장애학회지, 2009. 5(2): p. 125-32.

[6]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35819

[7] Lyoo, I.K., et al., The neurobiological role of the 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 in recovery from trauma. Longitudinal brain imaging study among survivors of the South Korean subway disaster. Arch Gen Psychiatry, 2011. 68(7): p. 701-13.

[8] Anderson, M.C., et al., Neural systems underlying the suppression of unwanted memories. Science, 2004. 303(5655): p. 232-5.

[9]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31489.html

[10]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8358&yy=2013

[11]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31487.html

[12] http://www.cdc.gov/wtc/index.html


2014.2.14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http://scienceon.hani.co.kr/?mid=media&category=90222&page=3&document_srl=1493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