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20. 12:41ㆍ관심사
샘 킨(Sam Kean)이라는 과학 작가가 있다. 내가 읽은 그의 첫 번째 책은 <사라진 스푼>이었다. 학생 때부터 화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였지만 너무나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었다. 주기율표에 대한 책들은 대부분 1번 원소부터 나열하는 식인데, 특징에 따라 묶음 형식을 취한 샘 킨의 방식은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볼 수 있게 되어서 흥미로웠다.
이후 샘 킨의 책을 기다리게 되었다. 두 번째 책 <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도 비슷하게 좋았다. <사라진 스푼>처럼 책에서 소개한 한 예화에서 제목을 따오는 방식은 동일했지만 여전히 참신했다. DNA를 이렇게 흥미있게 풀어낼 수 있다니! 학생 시절 샘 킨을 만났더라면 화학과 생물 점수가 좋아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 2년 뒤 샘 킨의 세 번째 책 <뇌과학자들>이 나왔다. 그의 책은 반가웠지만 제목은 아쉬웠다. ‘대체 무슨 책일까?’ 궁금증을 자아내는 대신 ‘이런 책입니다’라고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제목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책의 얼개도 조금 바뀌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 중요한 부분으로 도착하는 식이었다. 재미있었지만 전공 분야라 기존에 알던 내용이 많았기에 가볍게 읽고 다음 책을 기다리기 시작했는데...
소식이 없었다. -_-<뇌과학자들>이 번역된 대가 2016년도였으니 작년 쯤에는 신간이 나오리라 기대했는데 묵묵부답이었다. 그래서 아마존에 들어가봤다. 네 번째 책이 2017년에 이미 발간된 것이었다. 샘 킨 책은 놓치고 싶은 내용이 하나도 없어 원서를 구매하지 않고, 번역이 되길 기다렸다(보고 있나? 해나무 출판!). 하지만 계속 감감 무소식이던 차에 아마존에서 올해 여름 그의 새로운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이 왔다. 아뿔싸!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샘 킨의 네 번째 책 <Caesar's Last Breath>를 주문했다. 한국판은 늘 영어 제목을 직역했으므로 만약 출간이 되었다면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 정도로 번역되지 않았을까 싶다. 책의 내용에서 제목을 뽑은 것은 반가운 부분이었다. 책은 기체(gas)에 대한 내용으로 전작들처럼 한 번 책을 잡으면 손을 떼기 어렵다. 샘 킨은 대체 이런 이야기를 어디에서 가지고 오는지 늘 신기할 뿐이다.
p.11
Mind you, there’s nothing special about Caesar, either.
예전에 알쓸신잡 시즌 1에서 정재승 교수가 이순신의 숨쉬었던 공기를 현대의 우리도 숨쉬고 있다고 소개한 장면이 있었다. 엄청난 계산에 허걱했지만 이 책을 읽으니 서구권에서는 비슷한 방식의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 같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거칠게 내쉬었던 숨을 우리가 지금 마시고 있다! 이런 식으로.
p.139
Some doctors also practiced “concussion anesthesia”: they’d swaddle the patient’s head in a leather helmet, then smack his skull with a mallet.
마취제가 개발되기 전까지 수술하는 의사들이 이렇게 마취를 했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p.144
Science isn’t a private enterprise. Science is public, and in some sense scientific discoveries don’t count until they’re public.
마취제를 개발한 공로를 누구에게 돌릴 것인가? 윌리엄 모튼을 꼽는 이유는 제안에 그치지 않고, 실제 환자에게 시도해봤다는 점, 그리고 성공했다는 점 때문이다.
p.155
Legend has it that Freud kept a picture of Le Petomane on his wall, and drew on him when developing his theory of anal fixation.
의외로 프로이트는 과학책에 깜짝 등장할 때가 많다. 프랑스어 르 페토망은 ‘방귀광’이라는 뜻인데, 실제 조셉 푸욜이라는 프랑스인은 방귀를 자유자재로 뀔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 유명한 극장 ‘물랑 루즈’에서 방귀로 공연을 했다. 프로이트는 혹시 기기묘묘한 방귀 소리 공연을 또 올리면서 낄낄 대고 웃다가 항문기를 불현듯 떠 올리지 않았을까? :-)
p.156
Hydrogen sulfide, which reeks of rotten eggs; methnethiol, which stinks of rotting vegetables; and dimethylsulfide, which smells cloyingly, sickeningly seeet.
방귀 냄새의 화학적 분석도 분석인데, ‘냄새가 나다’의 다양한 표현이 인상적이다. 우리 말로 가능할까?
p.170
He threw himself into steam work in Birmingham.
제임스 와트는 부인의 죽음, 딸의 죽음이라는 개인의 비극을 증기기관을 발명하며 승화(성숙한 방어 기제)시켰다.
p.192
The construction firm requested the “best” iron available for some components. Little did they know that the foundry sold three grades of iron ingots: best, best best, best best best. So in asking for the “best”, the construction firm got the worst.
스코틀랜드의 티교(Tay Bridge)가 무너진 황당한 이유. 문득 1등급 위에 1+와 1++가 있는 우리나라의 괴이한 소고기 등급이 떠 올랐다.
P. 235
The Pig 311 propaganda (pro-pig-anda?) had one overriding purpose.
ㅋㅋㅋ
p.290
It first appeared in the title of a paper he wrote in 1972, “Predictability: Does the Flap of a Butterfly’s Wings in Brazil Set Off a Tornado in Texas?”
애드워드 로렌츠가 카오스 이론에 도달하게 된 경위가 매우 흥미로웠는데, 처음 논문은 브라질과 텍사스인데 왜 베이징과 뉴욕으로 소개가 더 많이 되는 것일까? 어떤 변곡점이 있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p.305
Lowell night have done better to spend $20 on an Italian tutor, who would have told him that canali meant not “canal” but the more neutral term “channel.”
화성에서 생명체를 찾으려 부단히 애쓴 퍼시벌 로웰. 그는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지오바니 스키아파렐리가 발견한 화성의 canali에서 영감을 받고 엄청난 돈을 들여 화성을 연구했으나… 이래서 외국어 공부를 잘 해야한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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