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2. 19. 12:20ㆍ글모음
[12] 성형수술과 신체변형장애
2013년 1월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의 보도를 보면, 한국은 '인구 1000명당 성형수술 시행 횟수'를 기준으로 따져 세계 1위의 나라다. 성형수술이 필요한 사람은 분명 있고, 이를 통해 삶의 만족도가 올라가기도 한다. 하지만 외모에만 신경쓰고 내면을 가꾸지 못한다면 ‘반쪽 미인’에 불과하다. 성형수술 전후에 몸의 변화와 함께 나타나는 마음의 변화를 살펴본다.
» 수술 전후의 사진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한 성형외과의 광고. 출처/한겨레 자료사진
설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우리나라 성형 수술의 메카라는 서울 압구정 지역의 한 성형외과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안부 전화를 걸었다.
따르릉, 따르릉…
우식 : 어, 강아. 오랜만이야. 잘 지내지?
강 : 그럼. 잘 지내고 있지. 너는 어때? 저번 추석처럼 이번 설에도 일했어?
우식 : 다행히 하루만 일했어. 하지만 하루 종일 수술하느라 정신 없었지. 너도 알다시피 성형외과에서 설 같은 명절은 나름 대목이잖아. 그러느라 고향에도 못 내려갔고.
강 : 고생이다. 그런데 성형 수술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아? 내 주변에는 별로 없는것 같은데.
우식 : 생각보다 많아. 특히 요즘 같은 때는 정말 바빠. 요새는 수능 끝나고 쌍꺼풀 하는 건 일종의 졸업 선물처럼 흔해진 것 같아.
강 : 그렇구나. 그런데 수술하면 다들 만족해 해? 혹 내면의 문제가 있던 사람들은 수술 뒤에도 여전히 힘들어하지 않아?
우식 : 대체적으로 만족하긴 하는데, 심리적인 문제는 내 분야가 아니잖아. 네가 공부해서 좀 알려줘. 앗, 나 예약한 환자 봐야겠다. 나중에 한 번 봐. 안녕.
뚜뚜뚜, 뚜뚜뚜
갑작스럽게 숙제가 주어진 느낌이었지만 정신과 의사로서 왠지 꼭 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었다. 그리고 사람 일은 모르지 않나. 나중에 일명 ‘모여라 꿈동산’인 나의 큰 머리를 작게 만드는 성형 수술이 가능한 세상이 오면 이 숙제를 해결한 것으로 친구에게 생색내며 그 누구보다 먼저 수술대에 오를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나라의 성형 수술 현황
» 왼쪽: 신윤복의 ‘미인도’. 오른쪽: 성형 미인을 패러디한 만화가 마인드C의 ‘강남미인도’. 출처/Wikimedia Commons, 한겨레 자료사진 2013년 1월에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재미있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제목은 바로 ‘연습이 완벽을 낳는다(Practice makes perfect)’라는 영어 속담을 비튼 ‘성형이 완벽을 낳는다(Plastic makes perfect)’였다.[1] 이 기사에 따르면 세계에서 성형 수술을 가장 많이 받는 나라는 다름 아닌 우리나라였다. 1위를 한 것은 좋긴 한데 마냥 좋아하기에는 뭔가 조금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강남역 근처에서 미인이긴 한데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여성과 마주쳤을 때 들었던 느낌과 비슷했다.
이코노미스트의 기사는 국제미용성형수술협회(ISAPS)의 2011년 통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2] 사실 이 통계 자료에서는 아쉽게도(?) 한국이 1위가 아니다. 미국이 1위를 차지했는데, 1년 동안 총 310만 5246회의 성형 수술 혹은 시술이 이뤄져 여러 나라 중에서 압도적 1위였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64만 9938회로 7위였다.
순위가 뒤바뀐 것은 순전히 인구 때문이다. 미국은 인구가 3억 명이 넘지만, 우리나라는 5천만 명 정도이다. 그래서 ‘총 횟수’로 접근하면 미국이 1위이지만, 실제 빈도를 반영하는 ‘인구 1000명당 시행 횟수’로 따지면 우리나라가 1위인 것이다. 바뀐 기준의 순위에 따르면 그리스가 우리나라의 뒤를 쫓고, 총 횟수가 가장 많은 미국은 이탈리아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이 순위에는 국내에서 수술 받은 외국인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과장된 통계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단언컨대” 우리나라에서 성형 수술은 대세이다.
» 국민 1000명당 성형 수술을 받은 사람 비율을 계산하면 한국이 세계 1위이다. 출처/각주[1], 변형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성형 수술이 흔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사회적 영향이 가장 큰 것으로 판단된다. 집단주의가 강한 우리 사회에서는 외모와 관련해서도 각자의 개성보다는 사회의 유행이 더 부각되곤 한다. 드라마의 주인공이 착용한 장신구가 며칠 뒤엔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고, 이내 ‘완판(완전 판매)’ 대열에 합류하는 것도 이런 사회 특성 때문으로 보인다.
‘미(美)’는 매우 주관적인 영역이지만 우리 사회에는 객관적으로(?) 인식되는 미인의 기준이 존재한다. 바로 사람들이 대중매체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연예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성형 수술을 받을 때 “연예인 누구처럼 해주세요”라는 요청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한 조사에서 미용성형수술을 받은 여대생의 29.8퍼센트가 ‘연예인과 같은 수준의 외모’를 갖기 위해 이를 감행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3]
» 명절에 고향 대신 병원에 가는 취업준비생. 출처/한겨레 자료그림 다른 사회적 원인으로는 우리나라의 치열한 경쟁 분위기도 한 몫 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수 신해철이 ‘나에게 쓰는 편지’에서 읊조렸던 것처럼 우리 사회는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 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된 지 오래이다. 이 사회에서 ‘돈, 큰 집, 빠른 차, 명성, 사회적 지위’를 얻는 첫 관문이 바로 취업이기 때문에 구직자 사이에 심한 경쟁이 벌어진다. 많은 젊은이가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졸업을 미루고, 경력을 만들기 위해 자비를 들여 해외로 자원봉사를 가고, 대학교 입시 때보다 더 많이 공부하며 취업을 준비한다. 이런 현실에서 면접관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는 ‘취업 성형’은 슬프지만 너무 당연하게 다가온다.[4]
그런데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의 왜곡된 의료 현실이 성형 수술 증가에 일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의사는 돈벌레’라는 오해를 받을지 모르지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보면 우리나라 의료의 큰 문제 중 하나는 바로 낮게 책정된 의료 수가, 소위 ‘저수가’이다. 즉, 의사가 전문성을 바탕으로 검사하고,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들어간 노력에 비해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정신과 영역만 살펴봐도 해마다 물가는 올라가는데 수가는 최근 5년 째 동결 상태이다.
[의료 현장에서 벌어지는 저수가 의료 행위의 한 예. 의료진 4명이 30분간 시행한
드레싱에 대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7570원으로 수가를 정해 놨다. 출처/ 주[5]]
저수가를 보전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양으로 승부하거나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것인데, 둘은 모두 의료 현실을 왜곡한다. 양으로 승부하는 방법은 일명 ‘3시간 대기, 3분 진료’, 즉 가능한 한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보는 것이다. 반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방법 중 하나는 비보험 치료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국가의 규제를 받는 국민 보험 치료와는 달리 가격을 자유롭게 정할 수가 있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후자에 가장 부합하는 의료 영역이 바로 성형 수술이다. 그래서 성형외과 의사 외에 다른 분야의 의사까지 걱정과 부담을 느끼면서도 불꽃에 뛰어드는 부나방처럼 서울 강남으로, 혹은 부산 서면으로 진출하게 된다.
종합해보면, 우리 사회의 미에 대한 획일적 기준, 외모도 경쟁력으로 인식하는 분위기와 함께 의료 자원이 성형 수술에 집중되는 왜곡된 의료 현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우리나라가 성형 수술 1위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양적, 질적 발전을 통해 한국 성형 수술의 위상이 높아졌고, 이제는 많은 외국인이 저렴한 가격에 수준 높은 치료를 받기 위해 의료 관광을 오고 있다. 하지만 그 화려함의 뒤에는 원하는 대로 다 해주는 묻지마 성형 수술, 잊을 만하면 들려오는 의료 사고와 같은 어두운 측면도 함께 존재하고 있다.
성형 수술 = 행복으로 가는 통로?
<렛미인>이라는 케이블방송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남들과 다른 외모로 고통 받던 출연자는 방송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한다. 방송의 형식은 유사 프로그램과 대동소이하다. 앞부분에서는 출연자의 안타까운 사연이 소개되고, 중간 부분에서는 성형외과 의사를 주축으로 한 여러 전문가의 각종 제안과 베일에 싸인 변신(?)의 과정이 그려진다. 그리고 뒷부분에서는 전혀 다른 외모로 다시 태어난 출연자의 행복한 미소, 방송 진행자의 감탄, 방청객의 환호가 어우러진다. 출연자는 공개적으로 자신의 상처를 밝혔던 만큼, 자신의 변화에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해하며 새로운 몸과 마음가짐으로 일상으로 복귀하게 된다.
» 렛미인에서 방송된 한 출연자의 방송 전후의 극적인 변화. 출처/스토리 온 방송 출연을 결심할 정도의 특별한(?)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아닌 평범한 장삼이사들도 성형 수술 이후에 삶이 크게 변할까? 우리나라 여대생이 미용성형수술을 받는 가장 큰 동기가 ‘자신감을 얻기 위해서’로 드러난 조사 결과[3]가 시사하듯이, ‘잘 생겨지고 예뻐지는 것’은 단순한 신체적 변화가 아니라 심리적 측면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평소 자신의 외모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낮은 자존감으로 위축되고, 대인 관게에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기 쉽다. 이들에게 미인 혹은 미남이 될 수 있는 성형 수술은 삶의 돌파구 혹은 전환점의 기회로 다가올 수 있다.
실제 성형 수술이 겨우내 산등성이를 덮고 있던 눈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는 봄의 햇살처럼 외모에서 비롯된 심리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12-19세 노르웨이 청소년 1597명을 13년 동안 추적 관찰한 연구의 결과를 살펴보면 대답은 다소 부정적이다.[6] 연구진은 1992, 1994, 1999, 2005년 네 차례에 걸쳐 청소년의 외모 만족도, 정신 건강 및 문제 행동을 조사했는데, 이처럼 성형 수술을 시행하기 오래 전의 심리 상태와 성형 수술 뒤의 심리 상태를 비교할 수 있었던 점에서 이 연구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연구 기간에 가슴 성형을 포함해 78명의 여성(약 4.9%)이 평균 24.61세에 성형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성형 수술 전후로 이들의 외모 만족도는 변함이 없었고, 우울, 불안, 식이 문제, 음주는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인 기대, 즉 성형 수술로 미인이 되면 여러 심리적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바람을 저버리는 결과이다. 외모에서 비롯하는 심리적 문제 때문에 성형 수술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결심하기 전에 꼭 곱씹어봐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주변에서 성형 수술이 원하는 대로 잘 된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연구 결과와는 뭔가 상반된 모습 아닌가? 이론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커 보이는데,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독일의 한 연구에서 실마리를 찾아보자.[7] 연구진은 광고를 통해 성형 수술을 받은 544명과 성형 수술에 관심은 있지만 수술은 받지 않은 264명을 모집했다. 이후 3개월, 6개월, 그리고 1년 뒤 세 차례에 걸쳐 이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와 심리 상태의 변화를 살폈다.
연구 결과에서는 수술을 받은 사람들이 수술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더 긍정적이며 즐겁고, 자존감이 높고, 삶에 만족하며, 더 건강하다고 느끼면서 덜 불안해 하고, 자신을 매력적으로 여기는 것으로 드러났다. 성형 수술은 수술 받은 사람들의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고, 오히려 우울감이나 대인공포증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의 외모가 만족스럽지 못해 성형 수술을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면 성형 수술을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 정신 건강에는 더 도움이 됨을 알 수 있다.
이 연구의 특징적인 부분은 참가자들이 성형 수술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목표를 조사한 점이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의 자유로운 대답을 얻는 것에 추가적으로 10가지의 일반적인 목표를 제시해 선택하도록 했다. 이 목표에는 ‘기분이 나아지기 위해’, ‘얼굴의 흠을 없애기 위해’와 같은 현실적인 내용부터 ‘새로운 남자/여자가 되기 위해’,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처럼 이뤄지지 어려운 내용까지 포함되었다. 조사 결과 약 12퍼센트 정도의 참가자만 비현실적인 목표를 갖고 있었고, 대부분의 참가자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목표를 추구하고 있었다.
참가자들이 성형 수술을 받은 뒤 1년 동안 지속적으로 만족하고 행복했던 것을 고려한다면, 현실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성형 수술 이후의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즉 쌍꺼풀을 만들었더니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고, 코를 높였더니 지원하는 회사마다 합격을 통보 받고, 턱을 깎았더니 방문하는 음식점마다 공짜 음식을 줄 것이란 기대만 품지 않는다면, 성형 수술을 받은 사람은 관심만 있을 뿐 수술을 받지 않은 사람보다 더 정신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그런 것처럼 성형을 통해 인생이 통째로 바뀌는 것을 바라지 않고 대신 현실적인 목표를 추구하면 성형 수술 뒤에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음. 출처/한겨레 자료사진
마이클 잭슨과 성형 수술
2013년 10월 19일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마칭 밴드(marching band)는 다른 대학 팀과 겨루는 미식 축구경기 중 휴식 시간에 한 가수를 기념하는 공연을 선보였다. 마칭 밴드는 ‘이 나라에서 제일 죽여주는 밴드(the best damn band in the land)’라는 애칭에 걸맞게 화려한 음악과 절도 있는 군무로 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이윽고 마칭 밴드가 하얀 모자와 장갑을 낀 가수의 형상을 만들고 춤을 재현하자 관중들의 환호는 절정에 달했다.
['빌리 진' 선율에 맞춰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moonwalk)를 표현하고 있다]
그 가수는 바로 2009년 사망한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이었다. 마이클 잭슨이 누구인가? 작사, 작곡, 편곡, 제작, 의상, 스타일, 안무, 공연, 영상 등 음악과 관련된 모든 것을 스스로 담당했던 ‘팝의 황제’ 아니었던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1993년 남자 아이를 성추행 한 혐의로 사회적 비난과 언론의 공격을 받으면서 그는 자신을 대중으로부터 유폐(幽閉)시키기 시작했다. 이후 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네버랜드나 피터팬 컴플랙스와 같은 음악 외적인 부분에 더 집중되었다.
마이클 잭슨을 이처럼 가십의 대상으로 만든 또 다른 부분은 그가 과도하게 받은 성형 수술이다. 다들 알다시피 그는 흑인이다. 곱슬 머리, 까만 피부, 뭉툭한 코, 넓은 입술 등 청년 시절만 해도 전형적인 흑인의 외모를 갖고 있었지만, 나이 들어서 그의 외모는 사뭇 달라졌다. 성형 수술이 반복되면서 점차 부자연스러워진 얼굴과 피부 질환과 상처를 가리기 위한 과도한 화장은 호사가들에게 끊임없는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원인이 되었다.
» 1982년 음반과 2001년 음반 사진에서 엿볼 수 있는 마이클 잭슨의 얼굴 변화. 출처/Wikimedia Commons
마이클 잭슨의 외모 변화는 코에서 시작했다.[8] 그는 1979년 춤추던 도중 넘어지면서 코가 부러져 처음으로 코 수술을 받았다. 수술 뒤에 거울에 비친 코가 마음에 들자, 이후 그는 1981, 1984, 1986년에 추가적으로 코 수술을 받았다. 성형 수술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그는 1990년 대 말까지 10여 차례 수술대에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여러 번에 걸친 수술의 결과는 가혹했다. 그의 코는 뾰족하고 날렵해졌지만 연골을 코 끝에 부착하는 수술이 실패하면서 코가 주저앉았고, 비강(鼻腔)이 직접 얼굴로 드러나게 되었다. 이후 그는 코 끝에 인공 구조물을 댄 뒤 진한 화장으로 가린 채 외출하는 신세가 되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정신과 의사는 마이클 잭슨이 ‘신체변형장애(body dysmorphic disorder; 신체변형장애, 신체이형장애로 불리기도 함)’를 앓았기 때문에 성형 수술을 반복적으로 받은 것으로 추정하곤 한다. 신체변형장애란 자신의 외모에 눈에 띄는 흠이나 결함이 있다고 집착하는 질환으로서, 이 때 외모의 흠이나 결함은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거나 혹은 있더라도 경미하다.[9] 물론 마이클 잭슨이 이 질환을 실제 갖고 있었는지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지만, ‘성형 중독’이란 말을 들을 정도였던 그의 행적을 고려하면 이러한 추론은 꽤 설득력 있어 보인다.
신체변형장애 환자들의 삶의 모습은 어떨까? 이들은 자신의 코가 비뚤어진 것 같다며 수시로 거울을 쳐다보고, 머리카락이 푸석푸석한 것 같아 과도하게 빗질을 하고, 피부에 뾰루지가 난 것 같아 수시로 잡아 뜯는 모습을 보이거나 자신의 비정상적인 외모를 다른 사람의 정상적인 외모와 비교하며 괴로워하면서 주변 사람의 도움을 청하곤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는 이들의 외모가 지극히 정상으로 보이기에 이들의 고민은 공감을 얻기가 어렵다.
이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를 비웃을까 봐 불안해 하면서 외출을 꺼리게 되고, 자신의 고통을 주변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힘들어 하면서 우울증을 겪게 된다. 이러한 심리적 문제로 인해 이들의 절반 정도는 병원에 입원하거나 4분의 1 정도는 자살을 시도한다.[10] 외모 문제가 있는 부분을 고치기 위해 피부과 혹은 성형외과를 방문해 봐도 문제의 본질은 외모가 아닌 내면이기에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성형 수술 뒤 사람들이 만족하고 행복해 한 것으로 나타난, 앞서 소개된 연구에서 신체변형장애 환자들이 제외된 이유가 여기에 있을 수 있다. 마음의 문제를 치료하지 않는 한 아무리 완벽하게 성형 수술을 받는다 해도 이들은 자신의 외모에 여전히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인식한다. 낯선 아름다움을 선사하며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성형 수술의 마법이 신체변형장애 환자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세부 모습에 집착하는 신체변형장애
그렇지 않는데도 자신의 외모에 큰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뇌는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을까? 뇌영상을 통해 신체변형장애의 신경학적 기전을 밝혀 온 미국의 퓨스너(Feusner) 교수의 2010년 연구를 살펴보자.[11] 연구진은 신체변형장애 환자 17명과 일반인 16명을 대상으로 이들이 자신의 얼굴 사진과 유명한 남자 배우의 얼굴 사진을 볼 때의 뇌 반응의 차이를 살폈다.
그런데 연구진은 포토샵을 이용해 사진의 해상도를 조절해 고해상도, 저해상도, 일반 해상도의 사진을 실험에 이용했다. 이런 작업을 시행한 이유는 신체변형장애 환자가 임상적으로 전체적인 외모보다는 특정 부위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었다. 이를 통해 참가자가 고해상도의 사진을 볼 때에는 잡티나 눈과 코의 언저리 등을 보고, 저해상도의 사진을 볼 때에는 얼굴 부위의 어울림이나 전체 형태 등을 살피게 되었다.
» 왼쪽은 고해상도, 가운데는 저해상도, 오른쪽은 일반 해상도인 참가자의 사진. 출처/각주[11
실험 결과, 신체변형장애 환자는 해상도가 어떻든 간에 자신의 얼굴을 볼 때 더 혐오스러워했다. 그리고 이들이 낮은 해상도로 자신의 얼굴을 볼 때 일반인에 비해 좌측 후두 피질(occipital cortex)에서 활성도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들이 일반 해상도로 자신의 얼굴을 볼 때에 전두-선조 회로(frontostriatal track)가 일반인에 비해 더 활성화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 왼쪽 : 신체변형장애 환자(밝은 회색)들은 일반인(짙은 회색)에 비해 자신의 얼굴을 더 혐오스럽게 여김. 오른쪽 : 신체변형 환자가 자신의 저해상도 얼굴 사진을 볼 때 좌측 후두 피질이 덜 활성화 함. 출처/각주[11], 변형
후두(後頭) 피질은 이름 그대로 머리의 뒷부분에 해당하는 피질 영역인데, 인간의 시각을 담당하는 시각 영역(visual cortex)이 이곳에 있다. 즉 우리가 눈으로 무엇인가를 봤을 때 망막에 새겨진 영상은 전기 신호로 바뀐 뒤 시신경을 타고 뇌의 뒤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신체변형장애 환자가 낮은 해상도의 사진을 봤을 때 이 영역이 덜 활성화한 것은 이들이 형태적인 정보를 잘 처리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이들은 자신의 얼굴을 볼 때 어울림이나 균형을 전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조화로움이 아름다움에서 더 중요한 부분인데도 말이다. 대신 이들은 외모의 구체적인 부분에 집착하게 된다.
또한 신체변형장애 환자는 다른 사람들이 완전하지 못한 자신의 외모를 알아차릴까 봐 불안해 한다. 이러한 모습은 이들이 자신의 사진을 볼 때 활성화한 전두-선조 회로(frontostriatal track)에서 확인된다. 뇌의 전두피질과 선조체를 잇는 이 회로는 조정과 억제를 담당하며 외부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도록 돕는 역할을 담당한다.[12] 따라서 이들이 자신의 얼굴을 볼 때 전두-선조 회로가 활성화하면 외모 걱정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 이런 모습은 강박 장애와 유사한 부분으로, 실제 2013년에 개정된 <정신질환 진단과 통계 편람(DSM 5)>에서 신체변형장애는 새롭게 강박 장애의 범주에 들어가게 되었다.[13]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
생활용품 기업인 도브(Dove)는 2013년 4월 <진정한 아름다움 스케치(real beauty sketch)>라는 광고를 선보였다.[14] 여성들이 자신의 외모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아보는 실험 방식으로 진행된 이 광고에는 실제 경찰서에서 근무한 법의학 몽타주 전문가가 등장한다. 전문가는 먼저 참가 여성이 자신의 얼굴을 설명하는 내용을 듣고 첫 번째 그림을 그렸고, 이어서 다른 사람이 같은 여성의 얼굴을 묘사하는 대로 두 번째 그림을 그렸다. 참가자가 완성된 두 그림을 비교한 결과는 놀라웠다. 다른 사람들이 평가한 자신의 모습이 평소 자신이 알고 있던 모습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행복하고, 밝아 보였기 때문이다.
[몽타주 전문가가 여성 참가자를 보지 않고 그가 묘사하는 대로 얼굴을 그리고 있는, 광고의 장면]
이 광고는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아름답습니다(You are more beautiful than you think)”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지 못하는 요즘 사회에서 이 광고가 전달하는 감동은 크다. 외모로 인해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 자신을 선남선녀와 비교하며 속상해하는 사람들, 자신이 못났다는 생각에 우울한 사람들이 있다면, 꼭 기억하기 바란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인 것을.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많은 유혹의 손길이 존재한다. 길거리에서 수없이 마주치는 성형 수술 전후의 광고에, 성형 관련 텔레비전 프로그램 참가자의 달라진 모습에, 쌍수(쌍꺼풀 수술)는 요즘 기본이라며 개학 때 예뻐진 모습으로 나타난 친구의 변화에 마음이 혹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 고민 없이 “친구 따라서 강남에 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얼굴에 혹은 신체에 칼을 대는 것은 아무리 의학이 발달했다 하더라도 되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비장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루비콘 강 도하(渡河)를 목전에 둔 카이사르처럼 신중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는 성형 수술을 두고 고민하다가 “나는 생각보다 아름답다”고 외치며 꿋꿋이 살아보리라 다짐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세상은 아름다운 사람을 더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대우하는 방식으로 돌아가지 않던가.[15] 그래서 성형 수술을 받기로 결심한다면 비현실적이고 허황된 기대를 갖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성형 수술은 삶을 통째로 바꿀 수 있는 “로또”가 아니다. 목표를 현실적으로 정해야 수술 이후 바뀐 외모에 만족하고 이후의 삶이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성형 수술을 원하는 이유가 신체변형장애처럼 심리적 원인이 더 클 때에는 치료의 칼이 신체가 아닌 마음에 가해져야 한다. 2004년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소개되어 큰 반향을 일으킨 일명 ‘선풍기 아줌마’를 떠 올려보자. 젊을 적에 가수였던 그는 ‘내성적인 성격’ 탓에 경쟁에서 뒤쳐지는 게 두려워 성형 시술을 시작했고, 이마 성형에 성공하자 ‘큰 성취감’을 느껴 얼굴 곳곳에 주사 보정을 계속해 나갔다. 이후 얼굴이 커지는 부작용이 생겨도 “느낌이 빨라지고 기(氣)가 세지는 느낌”에 그의 성형 시술은 계속되었다.[16] 이 역시 외모와 관련해 겉 뿐만 아니라 속도 잘 치료하는 것이 중요함을 보여 주고 있다.
강준만 전북대학교 교수는 한국 미용·성형의 역사를 살핀 글의 제목을 <”억울하면 출세하라”에서 “억울하면 고쳐라”로> 정한 바 있다.[17] 이미 7년 전 글의 제목이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몰개성적인 기준과 외모조차 경쟁력으로 인식되는 사회 분위기, 그리고 왜곡된 의료 현실이 겹치면서 성형 대국이 된 우리 나라의 현재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성형 수술이 필요한 사람은 분명히 있고, 이를 통해 삶의 만족도가 올라가고 행복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외모에만 신경쓰고, 내면을 가꾸지 못한다면 ‘반쪽 미인’에 불과하다.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의 높은 코가 아니라 그의 총명함과 박식함에 반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주]
[1] http://www.economist.com/blogs/graphicdetail/2013/01/daily-chart-22.
[2] http://www.isaps.org/press-center/isaps-global-statistics.
[3] 류인균, 여대생의 다이어트·미용성형 시술 실태 및 건강에 미치는 영향, 보건복지부 2003.
[4]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35118.html.
[5] http://www.docdocdoc.co.kr/news/newsview.php?newscd=2013103100008.
[6] von Soest, T., I.L. Kvalem, and L. Wichstrom, Predictors of cosmetic surgery and its effects on psychological factors and mental health: a population-based follow-up study among Norwegian females. Psychol Med, 2012. 42(3): p. 617-26.
[7] Margraf, J., A.H. Meyer, and K.L. Lavallee, Well-being from the Knife? : Psychological Effects of Aesthetic Surgery. Clinical Psychological Science, 2013. 1(3): p. 239-252.
[8] Taraborrelli, J.R., Michael Jackson: The Magic, the Madness, the Whole Story. 2009: Sidgwick & Jackson.
[9] Association, A.P.,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5. 2013: Amer Psychiatric Pub Incorporated.
[10] Phillips, K.A. and S.F. Diaz, Gender differences in body dysmorphic disorder. J Nerv Ment Dis, 1997. 185(9): p. 570-7.
[11] Feusner, J.D., et al., Abnormalities of visual processing and frontostriatal systems in body dysmorphic disorder. Arch Gen Psychiatry, 2010. 67(2): p. 197-205.
[12] Menzies, L., et al., Integrating evidence from neuroimaging and neuropsychological studies of obsessive-compulsive disorder: the orbitofronto-striatal model revisited. Neurosci Biobehav Rev, 2008. 32(3): p. 525-49.
[13] http://www.dsm5.org/Documents/changes%20from%20dsm-iv-tr%20to%20dsm-5.pdf.
[14] http://realbeautysketches.dove.com/.
[15] Langlois, J.H., et al., Maxims or myths of beauty? A meta-analytic and theoretical review. Psychol Bull, 2000. 126(3): p. 390-423.
[16] 전보경, 몸-자아 테크놀로지로서의 미용 성형에 대한 계보학적 담론 연구. 2010,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여성학과.
[17] 강준만, 한국 미용·성형의 역사 : “억울하면 출세하라”에서 “억울하면 고쳐라”로. 2007, 인물과사상사. p. 143-192.
2014.3.28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http://scienceon.hani.co.kr/?mid=media&category=90222&page=3&document_srl=155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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