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2. 15. 12:27ㆍ글모음
[10] 체중이 불던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실 별일은 없었다. 적게 움직이고, 많이 먹었기 때문에 살이 찐 것이다. 맞다. 인정한다. 그런데 활동량이 준 것은 쉽게 설명되는데 과식을 하게 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혹시 스트레스 때문에 많이 먹어 그랬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런 논리라면 살찌기 이전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도 체중이 증가했어야 한다. 즉 스트레스만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다른 이유는 정말 없을까?…
나는 뚱뚱하다. 여러 모임에 참석해서 보면 나보다 덩치가 더 큰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으니 확률적으로 뚱뚱한 쪽에 속한다. 또한 나의 현재 체질량지수(BMI)가 27이니 의학적 기준으로도 정상을 벗어난 과체중에 해당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최근 10년간 사람들한테서 핼쑥해졌다, 야위었다, 말랐다, 살이 빠졌다, 날씬해졌다 같은 말을 일체 들어본 적이 없으니 비만인 게 틀림없다.
☞ 체질량지수(BMI: Body Mass Index): 체중[kg]을 키의 제곱[m2]으로 나눈 값, 18.5-25가 정상으로 여겨짐
이 명약관화한 사실을 굳이 변명하자면 나도 태어날 때부터 뚱뚱하지는 않았다. 2.9킬로그램의 체중에 다소 길쭉하게 태어난 나는 과거 인기가 높았던 ‘우량아 선발 대회’ 참가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체형이었다. 10대 시절 내내 체중이 70킬로그램을 넘어본 적 없이 마른 축에 속했고, 20대에 살이 조금 붙긴 했지만 그래도 어디 가서 뚱뚱하단 소리를 듣지는 않았다. 요컨대 의과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지극히 정상 체형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정신과 수련을 받으면서 시작했다. 교수님과 의국 선배의 지도 아래 백지와 같았던 내 두뇌가 정신과 관련 지식으로 채워지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체중이 늘기 시작했다. 결국 전공의 1년차를 마칠 무렵에 체중은 약 12킬로그램이 증가해 있었다. 한 달에 1킬로그램 꼴로 몸이 불어난 것이었다. 이때 이후로 나는 뚱뚱한 사람이 되었다. 처음에는 살이 찐 것이 아니라 단지 부은 것이라며 애써 부인했지만 사람이 10년째 부어 있을 수는 없다. 이제는 눈물을 머금고 인정한다. 나는 뚱뚱하다.
‘잠을 못 자면 뚱뚱해진다’
체중이 급격하게 불어났던 그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실 별일은 없었다. 적게 움직이고, 많이 먹었기 때문에 살이 찐 것이다. 맞다. 인정한다. 그런데 병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던 때라 활동량이 준 것은 쉽게 설명되는데 과식을 하게 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혹시 힘든 1년차 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많이 먹어 그랬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런 논리라면 이전에 여자 친구에게 채였을 때, 재시험에 걸렸을 때, 의사고시를 준비할 때에도 체중이 증가했어야 한다. 즉 스트레스만으로는 늘어난 체중이 잘 설명되지 않는다. 다른 이유는 정말 없을까?
2013년 미국의 워커(Walker) 교수는 수면 부족이 체중 증가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고했다.[1] 이 연구 결과는 그동안 바쁘게 사느라(사실은 이미 늘어난 체중에 적응해서) 잊고 지냈던 나의 뚱뚱함의 근원을 둘러싼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전공의 1년차 때 한 해의 절반 시기에 당직을 서며 보냈고, 밤에 병동 전화를 받거나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를 보느라 잠을 잘 못 자지 않았던가. 혹 나처럼 갑자기 불어난 체중 때문에 전전반측하고 있을 사람들을 위해 이 연구를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 수면 부족으로 일하는 도중 잠든 전공의의 모습은 수련병원에서 흔한 광경임. 출처/의대 동기 권대헌의 누리집
연구진은 23명의 건강한 실험 참가자를 모집했다. 먼저 연구실에서 8시간 정도의 정상 수면을 취하도록 한 뒤 다음날 아침 이들이 얼마나 졸린지, 얼마나 배고픈지 측정했다. 그리고 연구진은 이들에게 여든 가지의 음식 사진을 보여주면서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통해 이들의 뇌 반응을 살폈다. 이때 참가자들은 칼로리가 낮은 음식부터 높은 음식까지 다양한 음식 사진을 보면서 얼마나 그 음식을 원하는지 점수를 매겼다. 일주일 뒤 참가자들은 다시 연구실을 방문해 같은 과정을 반복했는데, 이전과 유일하게 다른 점은 이들이 잠을 전혀 자지 않은 채 밤을 새운 것이었다.
» 정상적으로 자거나 혹은 밤을 샌 다음날 아침 참가자들이 음식 사진(예. 감자칩)을 보면서 얼마나 원하는 지를 정할 때 연구진이 이들의 뇌 반응을 살핌. 출처/각주[1]
연구진은 뇌 전체가 아닌 식욕과 음식에 관련된 특정 뇌 영역에 관심을 기울였다. 일반적으로 음식에 대한 욕구와 음식 자극을 평가하는 것에 뇌의 피질(cortical) 부분과 피질하(subcortical) 부분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
피질 부분은 식욕의 평가, 즉 자신이 선호하는 바에 따라 다양한 음식에 순위를 매기는 것을 담당하는데 전측 섬엽(anterior insular cortex), 외측 안와전두피질(lateral orbital frontal cortex), 전측 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d cortex)이 이에 속한다. 반면에 피질하 부분은 일종의 ‘보상 중추’로서 먹고자 하는 욕구를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편도체(amygdale), 복측 선조체(ventral striatum)가 이에 속한다.
연구 결과에서 참가자들이 밤을 샌 뒤 음식 사진을 볼 때 피질 부분에 해당하는 세 영역이 덜 활성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피질하 부분에서는 음식 자극의 강도가 현저하게 높을 때 더 반응을 잘 하는 편도체의 활성도가 증가한 소견이 관찰되었다. 그러나 복측 선조체의 상대적인 활성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 밤을 새운 뒤 음식 사진을 보면 잠을 잤을 때에 비해 식욕과 관련된 뇌의 피질 부분은 활성도가 감소하고, 피질하 부분은 활성화가 증가함. 출처/각주[1]
이 결과는 잠을 잘 자지 못하면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을 담당하는 뇌 바깥 영역의 활동은 감소하고, 보상에 반응하는 뇌 안쪽 영역의 활동이 증가함을 보여준다. 과장해서 표현하면 이성의 끈은 놓아버린 채 원초적인 본능에 충실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연구 참가자들은 밤을 새운 뒤 살을 찌우기 쉬운 음식, 즉 열량이 높은 음식을 더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잠을 잤을 때와 비교했더니 전체 열량은 무려 600칼로리의 차이가 났다. 그런데 열량이 높은 음식을 원하는 정도는 주관적으로 졸린 정도와 비례하고 있었다. 즉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면 자신도 모르게 높은 열량의 음식에 손이 갈 확률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 왼쪽 : 밤을 새거나 잘 잔 경우 모두에서 낮은 열량의 음식을 원하는 정도에는 큰 차이가 없었으나 ,높은 열량의 음식을 원하는 정도는 큰 차이가 나타났음. 오른쪽 : 주관적으로 졸린 정도와 높은 열량의 음식을 원하는 정도가 비례하고 있음. 출처/각주[1], 변형
종합해보면, 수면 부족은 뇌에서 의사결정과 판단을 담당하는 영역을 둔하게 만들고, 욕구와 보상에 관련된 영역을 활발하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잘 못 자면 열량이 높은 음식을 더 원하게 되는데, 수면이 부족할수록 이러한 정도는 더 증가하고 있다. 그렇구나. 이제 오랜 세월 오리무중 상태였던 갑작스럽게 뚱뚱해진 이유를 알 것 같다. 1년차 때 밤근무가 많았고, 이로 인해 발생한 만성적인 수면 부족 때문에 날씬했던 내가 과체중으로 들어선 것이다.
‘한 번 뚱뚱해지면 계속 뚱뚱해진다’
뚱뚱해지고 나니 전에 입던 바지가 꽉 끼는 것과 같은 소소한 불편함이 생겼다. 또한 오랜만에 지인을 만날 때 종종 불편해졌는데 특히 모두 멋있고 예쁘게 차려 입고 오는 결혼식장에서 더욱 그랬다. 학생 때 나의 날렵함(?)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변한 나의 모습은 충격으로 다가왔나 보다. “살 많이 쪘네”, “얼굴 좋아졌네”, “아저씨 됐네”와 같은 이야기를 한두 번 들을 때는 그냥 웃어 넘길 수 있었지만 여러 번 되풀이해 듣다 보면 언짢아지기도 했다.
그래서 살을 빼 보기로 했다. 공원을 걷고,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앉지 않고, 체육관에 등록을 하고, 병원에서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는 등 활동량을 늘려보려 노력했다. 그러나 체중은 줄지 않았다. 수면이 부족해 뚱뚱하다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전공의 연차가 올라감에 따라 병원에서 당직을 서는 횟수는 점점 줄었고, 4년차 때부터는 아예 당직을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가 문제였을까? 문제는 음식의 양 조절이었다. 맛있는 음식만 보면 체중 감량의 결심은 온데 간데 없이 국물까지 남기지 않고 다 해치웠기 때문이다. 조금 덜 뚱뚱했을 때에는 밥상에서 숟가락을 놓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는데, 뚱뚱해지고 나서는 너무 어렵고 힘든 일이 되어 버렸다. 혹 뚱뚱해진 것이 나의 뇌에 어떤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었을까?
미국의 스타이스(Stice) 교수의 2010년 연구는 이런 나의 의심이 충분히 근거 있음을 확인해 준다.[3] 연구에 참여한 참가자는 총 26명의 뚱뚱한 여성으로 이들의 평균 체질량지수는 27.8이었다. 연구진은 이들이 초콜릿 쉐이크와 맛이 없는 액체를 음미하는 동안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을 이용해 이들의 뇌 반응을 살폈다. 연구에 사용된 초콜릿 쉐이크는 하겐다즈 바닐라 아이스크림 4 숟가락, 2퍼센트 우유 1.5컵, 허쉬 초콜릿 시럽 2큰 술로 만들어졌고(맛있겠다!), 반면에 맛 없는 액체는 일종의 인공 타액으로 열량이 전혀 없었다. 6개월 뒤 참가자들은 같은 실험을 한 번 더 반복했다.
연구진은 참가자를 연구 기간에 체중이 증가한 집단, 체중을 유지한 집단, 체중이 감소한 집단으로 나눠 분석을 시행했다. 그 결과 체중이 증가한 집단에서 맛있는 초콜릿 쉐이크를 음미할 때 관찰되는 우측 미상핵(caudate)의 활성도가 6개월 사이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체중을 유지하거나 체중이 감소한 집단에서 이런 소견이 관찰되지 않았다.
» 초콜릿 쉐이크를 음미할 때 나타나는 미상핵의 활성화가 6개월 사이의 체중 변화에 따라 다르게 나타남. 출처/각주[3]
우리가 진수성찬을 먹을 때 행복해지는 이유는 뇌의 선조체(striatum; 미상핵(caudate)과 피각(putamen)으로 이루어짐)에서 도파민(dopamine)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이 연구에서도 참가자가 초콜릿 쉐이크를 음미할 때 유쾌해지는 것이 선조체의 활성화를 통해 확인된다. 그런데 6개월 동안 체중이 증가한 참가자가 다시 초콜릿 쉐이크를 음미할 때 선조체가 덜 활성화한 것은 예전만큼 기분이 좋아지지 않음을 의미한다.
추가적으로 연구진이 6개월 사이에 나타난 참가자 체질량지수의 변화와 초콜릿 쉐이크를 음미할 때 우측 미상핵 활성화의 변화를 살펴보니 반비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즉 체중이 증가할수록 미상핵의 활성화 양상이 감소하고 있었다. 이는 과식을 해 체중이 증가하면 음식을 먹을 때 즐거워지는 것을 담당하는 뇌의 보상 회로가 둔해졌음을 의미한다.
» 초콜릿 쉐이크를 음미할 때 나타나는 우측 미상핵의 활성도는 6개월 사이 체중이 증가함에 따라 감소하는 경향을 나타냄. 출처/각주[3] 요약해보면 과식해 뚱뚱해지면 맛있는 음식에 반응하는 미상핵이 덜 활성화하는 양상으로 뇌의 보상 회로에 결함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뚱뚱해진 사람은 과거에 맛있게 먹었던 음식을 먹어도 전처럼 기쁘지 않기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혹 덜 먹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며 음식을 더 먹게 된다. 즉 더 먹어서 더 뚱뚱해지면 보상 회로는 더 둔해지고 이는 다시 더 먹는 것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악순환이 생기는 것이다. 체중 감량이란 나의 절실한 목표가 맛있는 음식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져 버린 이유가 여기에 있어 보인다.
뚱뚱하면 성격이 좋다?
» 페르난도 보테르가 그린 ‘모나리자’. 출처/Wikipainting 흔히 뚱뚱한 사람이 성격이 좋다고 한다. 주변에서도 마른 사람들은 뭔가 예민하고 까다로운 측면을 지닌 데 비해 뚱뚱한 사람은 성격도 체형처럼 둥글둥글한 경우가 종종 있다. 화가 페르난도 보테르가 그린 ‘모나리자’를 감상해 보자.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로 세계인을 매혹시킨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보다 더 유쾌하고 푸근해 보이지 않는가? (페르난도 보테르는 조각에도 뛰어난 솜씨를 갖고 있는데 삼성서울병원에 가면 로비 한 켠에서 역시 풍만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그의 조각상을 만날 수 있다)
정말 뚱뚱한 사람은 성격이 좋은 것일까? 혹 그렇다면 성격이 좋기 때문에 뚱뚱해진 것일까? 아니면 뚱뚱하기 때문에 성격이 좋아진 것일까? 한 연구에 따르면 사교적이고 활발하면 뚱뚱하고, 걱정이 많고 예민하면 마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4] 이 연구 결과는 뚱뚱한 사람이 성격이 좋다는 통념과 맞아 떨어져 보인다. 그러나 이는 일본인에서만 관찰되었을 뿐 이탈리아나 미국 사람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5],[6] 이처럼 일관되지 않는 결과는 성격을 조사한 방법 혹은 횡단적(cross-sectional) 연구 특성 때문으로, 성격과 체중 사이의 상호 영향에 대한 의문을 풀어 주기에는 미흡해 보인다.
☞ 횡단 연구 : 한 시점을 기준으로 하는 연구로 현재의 상태만을 관찰함
☞ 종단 연구 : 시간의 흐름에 따른 현상의 변화를 조사함
이런 측면을 고려하면 2011년 미국의 수틴(Sutin) 교수가 볼티모어 노화 종단 연구(the Baltimore Longitudinal Study of Aging; BLSA)의 자료를 바탕으로 발표한 연구 결과는 큰 의미를 지닌다.[7] 볼티모어 노화 종단 연구는 사람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살피기 위해 미국 국립노화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Aging; NIA)가 진행하는 연구로 1958년에 시작해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다. 지금도 1300여 명 사람들이 1-4년마다 연구소를 방문해 약 3일이 걸리는 건강, 인지, 기능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 성인기에 원만하지 못한 사람은 원만한 사람에 비해 나이를 먹을수록 체질량지수가 증가함. 출처/[7] 연구진은 1998명의 체중과 성격을 각각 체질량지수와 5요인 성격 모형(the five-factor model; FFM)을 통해 50년 동안의 변화 추이를 살폈다. 5요인 성격 모형은 성격을 신경증, 외향성, 경험에 대한 개방성, 원만성, 성실성 이렇게 5가지로 분류하는데, 이는 다시 6개의 세부 항목으로 나뉜다. 분석 결과 5요인 중 원만성이 성인의 체질량지수 변화와 연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만하지 못한 사람, 즉 다른 사람에게 적대적인 성격의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더 뚱뚱해진 것이다. 이런 사람은 특히 냉소적이고, 공격적이고, 거만한 특성을 갖고 있었다.
성격의 세부 항목을 살펴보니 신경증의 충동성과 외향성의 자극을 추구하는 성향이 체질량지수 증가와 연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충동적인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서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뚱뚱해진 것이다. 충동성은 체중 증가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는데, 평균적인 충동성을 기준으로 상위 25%와 하위 25%인 사람들의 체질량지수 차이가 30세 때에는 2.3이었지만 90세 때에는 이 차이가 5.22로 증가했다.
» 성인기에 충동적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나이를 먹을수록 체질량지수가 증가함. 출처/각주[7] 특정 성격을 지닌 사람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왜 더 뚱뚱해진 것일까? 충동적인 사람은 유혹에 약하고,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음식이 그런 유혹과 자극이 될 수 있다. 이들은 맛있는 음식 앞에서 식욕을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과식해 시간이 지날수록 뚱뚱해질 수 있다.
원만하지 못한 사람은 일상 생활에서 자주 스트레스를 겪는데 이는 혈압 상승과같은 신체적 변화, 인터루킨-6(IL-6)과 같은 염증 물질의 분비로 이어진다. 문제는 스트레스의 원인이 사라진 뒤에도 이러한 생리적 변화가 지속되는데, 이러한 스트레스로 인한 체내의 염증성 반응은 체중 증가와 연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8]
특정 성격이 체중 증가로 이어지는 것을 확인했는데, 그렇다면 그 반대도 가능할까? 즉 뚱뚱해지면 성격이 충동적이고 원만하지 못한 쪽으로 변하기도 할까? 혹은 그 외 다른 성격이 나타나기도 할까? 수틴 교수의 연구 결과만 놓고 보면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체질량지수는 시간이 지나도 5요인 성격 모형의 어느 종류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체중 증가는 자존감이 낮아지는 등의 심리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지만[9] 한 사람을 정의할 수 있는 안정적인 성격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까지 살펴보니 마음이 조금 우울해진다. 내가 뚱뚱한 것도 서러운데 성격마저 충동적이고 원만하지 못하다니. 그러나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다. 원치 않는 체중 증가는 성격 외에 신체적 활동, 식사량, 유전자, 호르몬, 건강 상태, 약물, 가정 환경과 같은 여러 다른 요소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또한 비만 유전자로 알려진 FTO 유전자의 변이형이 있는 사람들에서 우울증 발병 가능성이 감소하는(비록 8%이긴 하지만) 희망적인 연구 결과도 있으니[10] 비만을 특정 성격과만 연관시키는 것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뚱뚱하면 머리가 나쁘다?
영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7세 때 수학과 읽기 실력이 높을수록 35년이 지난 42세가 되었을 때 많은 연봉, 안정된 직업, 좋은 집으로 대변되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다고 한다.[11] 이 연구를 통해 어릴 적의 기본 학습 능력이 가정 환경, 지능, 학업 열의보다 인생 전체에 끼치는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뚱뚱한 어린이는 훗날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을지도 모르겠다. 미국에서 6250명의 어린이를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관찰한 연구에서 계속 뚱뚱했던 어린이는 정상 체중이거나 나중에 뚱뚱해진 친구들에 비해 수학 실력이 뒤쳐지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12]
뚱뚱한 어린이의 수학 실력은 왜 낮은 것일까? 혹시 뚱뚱하면 몸이 둔해지는 것처럼 머리도 둔해지는 것일까? 앞서 언급한 미국의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그 이유는 뚱뚱한 어린이의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불안, 외로움, 낮은 자존감, 우울과 같은 이들의 내면화 행동(internalizing behaviors) 성향 때문이었다. 내면화 행동은 뚱뚱한 어린이가 또래 사이에서 인기가 없고, 거부나 따돌림을 겪는 중에 자신의 행동을 억제하고 표현하지 못하면서 나타난다. 뚱뚱한 체형으로 인해 발생한 심리적 문제가 어린이의 학업 성취도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 비만인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의 수학 성적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크게 뒤쳐지고 있음. 출처/각주[13] 한국교육개발원의 2011년 보고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뚱뚱한 어린이도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13] 비만인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의 수학 성적이 비만이 아닌 다른 학생들의 성적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또한 비만 학생들의 자존감, 학교 생활 만족도, 인간관계 만족도가 낮게 나타났고, 우울한 정도와 따돌림을 경험한 빈도는 높게 나타났다. 뚱뚱한 어린이를 대할 때 단순히 체중 감량에만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이들의 상처받은 내면을 보듬는 노력이 필요함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나는 어렸을 때 날씬했으니 혹시라도 머리가 나쁘지는 않았겠다면서 안심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영국의 중년 성인 6401명을 추적 관찰한 연구 결과를 고려하면 나이를 먹어서도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될 것 같다.[14] 10년이란 시간이 지난 뒤 날씬한 사람에 비해 뚱뚱한 사람에서 전반적 인지 기능이 더 빠르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결과에는 한 가지 단서가 더 붙는다. 비만에 대사 이상(metabolic abnormality :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당뇨 같은 이상 소견)이 동반될 때 그 위험성이 증가했다.
의과대학 시절 뇌혈관 질환 위험 인자를 쓰는 문제를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obesity(비만)’ 한 단어만 써도 일단 영점 처리는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비만이 뇌혈관 질환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이다. 이는 큰 혈관이 영향 받는 뇌졸중부터 작은 혈관이 막히는 열공성 뇌경색(lacunar infarct)까지 뇌의 여러 이상 소견이 뚱뚱한 사람에서 인지기능의 빠른 저하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의미한다. 뒤집어 생각하면 체중을 잘 관리하고 대사 이상과 연관성을 갖는 복부 비만(내장 지방)을 줄이는 것이 나이 들어서도 똑똑함을 유지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 나이 들어서 머리가 나빠지는 데에 일조할 수 있는 중년의 비만. 출처/한겨레 자료사진
뚱뚱함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몇 년 전 미국에 여행을 갔을 때 뚱뚱한 내가 잠시 행복했던 적이 있다. 나보다 훨씬 더 뚱뚱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상대적으로 덜 뚱뚱한, 아니 날씬한 사람이 되자 심지어 의기양양해졌다. 그러나 옷을 사러 아베크롬비 앤 피치(Abercombie and Fitch; 이하 아베크롬비) 매장에 들어가면서 자신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웃통을 벗은 채 청바지만 입고 있는 몸매 좋은 청년들이 입구에서 인사를 건넬 때 다시 현실감이 돌아왔다. 아, 나는 뚱뚱한 사람이지.
편하게 입을 후드티를 고르는데 다행히(?) 내 몸에 맞는 크기의 옷이 있었다. 안도한 이유는 아베크롬비는 엑스라지(XL), 엑스엑스라지(XXL)처럼 뚱뚱한 여성을 위한 크기의 옷이 없는 것으로 악명 높았기 때문이었다. 뚱뚱한 사람이 매우 많은 미국에서 아베크롬비가 이처럼 특이한 사업 전략을 고수했던 것은 최고경영자 마이클 제프리스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2006년 잡지 <살롱(Salon)>과 한 인터뷰에서 멋지고 잘 생긴 고객만을 목표로 하며 소외되는 고객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혔다.[15](이 기사는 2013년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에 인용되면서[16] 아베크롬비 불매 운동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과연 마이클 제프리스만 유별나고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뚱뚱한 사람에 대해 둔하고, 게으르고, 의지가 박약한 것으로 여기는데 이는 다시 부정적 태도와 차별로 이어지기 쉽다. 과거에는 날씬했다가 비교적 근래에 뚱뚱해진 나 역시 “문학과 고전음악을 사랑합니다” 하면 예전에는 “오!” 했던 반응이 요즘에는 “응?”으로 바뀐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문제는 뚱뚱한 사람이 체중과 관련된 차별을 경험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뚱뚱해지고 심지어 과체중인 사람도 추후 비만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지는 점이다.[17] 편견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들이 폭식을 하거나 운동을 못하는 것으로 여겨 신체활동 자체가 줄기 때문이다.
[새로운 삶의 목표를 위해 분연히 일어서는 엑시엄 호 선장의 첫 걸음]
2014년 새해의 결심
‘나는 날씬하다.’ 이 짧은 문장은 2014년을 시작하는 내가 이루고자 하는 올 한 해의 소박한(?) 목표이다. 이미 충분히 숙면을 취해왔기 때문에 이제는 잠이 부족해 살을 못 뺀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더구나 식사량을 조절하지 못해 뚱뚱함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도 알게 되지 않았는가. 그리고 이대로 뚱뚱함을 방치하면 나이 들어서 지금의 명석함(?)이 감소해, 여기 <사이언스온>에 글을 쓰는 데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체중 감량의 황금률, “많이 움직이고, 적게 먹기”를 충실히 시행하는 것이다. 안다. 그것이 말만큼 쉽지 않음을. 그러나 너무 뚱뚱해 걷는 것조차 잊었던 만화영화 <월-E>의 엑시엄 호 선장의 첫 걸음이 인류의 지구 귀환으로 이어진 것처럼 나도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위해 이제 10년간 동거동락(?)했던 살들에 안녕을 고하는 다이어트의 첫 걸음을 떼어야겠다. 혹 나처럼 체중 감량이 새해의 목표인 동지들이 있다면 건투를 빈다.◑
[주]
[1] Greer, S.M., A.N. Goldstein, and M.P. Walker, The impact of sleep deprivation on food desire in the human brain. Nat Commun, 2013. 4: p. 2259.
[2] Tang, D.W., et al., Food and drug cues activate similar brain regions: a meta-analysis of functional MRI studies. Physiol Behav, 2012. 106(3): p. 3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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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http://scienceon.hani.co.kr/?mid=media&category=90222&page=3&document_srl=146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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