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2. 14. 16:30ㆍ글모음
[9] 수학 불안, 수학 시간에 머리가 아팠던 이유
수학은 앞으로도 학교에서, 일상생활에서, 계속 중요한 지위를 지닐 것이다. 하지만 수학 불안에 대한 적절한 탐색과 체계적인 접근 없이 무조건 수학의 중요성만을 강조하며 학생들을 윽박지르면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기초체력은 부실해질 수 있다. 사람들이 수학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수학 불안을 둘러싼 여러 실험과 논의를 살펴본다.
» 수학이 어려워 불안을 느끼는 사람에게 수학은 외계어처럼 다가온다. 출처/한겨레 자료사진(2007)
사교육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수학은 그 중요성만큼이나 많은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실제로 사람의 골치를 아프게 하는 ‘수학 불안’은 어릴 때부터 수학 성적을 떨어뜨릴 수 있다.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수학 불안이 높은지, 수학 불안을 줄일 수는 있는지 등 수학 불안을 둘러싼 여러 궁금증을 최신 연구 결과를 통해 살펴보자.
» 드라마 속 주인공 케빈(오른쪽)과 위니. 출처/ 한겨레 자료사진
1990년대 초반 <케빈은 12살>(원제 The Wonder Years)이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었다. 성인 주인공이 1960-70년대 청소년 시절을 회상하는 식으로 진행된 이 드라마는 미국에서는 6년 동안 방송되며 큰 인기를 누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시즌 일부인 1990년 가을부터 1991년 겨울까지 분량이 2년에 걸쳐 <케빈은 12살>, <케빈은 13살>이란 제목으로 방송되었다.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열광했는데, 그 인기를 요즘 말로 표현하면 ‘닥본사’(닥치고 본방 사수)쯤 되겠다.
사람마다 이 드라마를 좋아한 이유가 다르겠지만, 많은 남성들은 청순한 여자 주인공 위니의 매력에 푹 빠져 드라마의 열혈 시청자가 되곤 했다. 긴 생머리, 큰 눈망울, 부드러운 미소가 빚어낸 그의 아름다움은 많은 남성이 깊은 연모의 정을 품게 할 만했다. 매력적이며 독특한 미모의 비결은 포르투갈,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의 복합적인 혈통으로 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자 주인공 위니의 본명은 대니카 맥켈러(Danica McKellar). 그는 1975년생으로 드라마 첫 방영 당시 13세였고 이후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 나간다.
» 대니카 맥켈러의 첫 책, <수학은 구리지 않아(Math doesn’t suck)>. 출처/ amazon.com 드라마에서 위니는 공부를 잘 해 파리로 유학을 갔는데 실제의 위니, 즉 맥켈러도 역시 공부를 잘 했다. 그는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 수학과에 입학했고, 1998년에 최우등 학생(summa cum laude)으로 졸업했다. 또한 그는 뛰어난 실력으로 논문에 공동저자로 참여했는데, 그 논문은 저자 이름을 따 “체이스-맥켈러-윈 정리(Chayes-McKellar-Winn Theorm)“로 언급되곤 한다.[1]
2000년 과학·수학 분야에서 여성이 왜 중요한지에 관해 국회에서 연설하기도 했는데 이후에 여학생들의 수학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여러 작품에 출연하는 바쁜 삶 가운데에도 관련 활동에 적극 참여하던 그는 2008년에는 중학생용 수학 책을 써서 펴냈다. 이후에도 수학이 어렵다며 싫어하고, 수학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수학 문제만 봐도 가슴이 뛰며 불안해지는 많은 학생들을 위해 세 권의 책을 더 냈다.
수학의 중요성과 동떨어진 현실
기본적인 수학 능력을 갖추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중요하다. 만일 셈에 능숙하지 못하면 가게 주인이 거스름돈을 적게 줘도 아무 생각 없이 받은 뒤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 어렸을 때 주산학원에 다녀 평소 암산에 능하다고 생각하는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은 그런 어처구니없는 실수야 절대 하지 않는다고 자신만만할 수 있는데 과연 그럴까? 상점에서 가격이 동일한 화장품을 사려고 할 때 한 회사의 제품은 35% 할인된 가격으로 팔고 있고, 다른 회사의 제품은 원래 가격에 50%만큼의 동일 제품을 덤으로 주고 있다면, 어느 쪽을 사는 것이 더 이득일까?
이렇게 쉬운 문제가 있나? 나의 대답은 망설임 없이 후자였다. 35보다 50이 더 크기 때문이다. 자, 이제 실제 계산을 해보자. 간단한 계산을 위해 화장품의 가격을 1만원, 용량을 10밀리리터로 가정하겠다. 그러면 원래 화장품의 가치는 1밀리리터에 1000원이다. 35% 할인해 사면 6500원에 10밀리리터를 구매한 것이므로 1밀리리터를 650원에 산 셈이 된다. 반면 5밀리리터를 덤으로 받으면 1만원에 15밀리리터를 구매한 것이므로 1 밀리리터를 666원에 산 셈이 된다. 내 예상과는 다른 결과에 잠시 충격을 받았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많은 사람이 나와 비슷한 선택을 했다는 점이다.[2]
이처럼 수학은 일상생활에서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중요할 수 있는데,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좋은 내신과 수능 성적이 필요한 우리 사회에서는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수학이 상위권과 하위권을 나누는 데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어떤가? 많은 학생이 일명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가 되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수학에 주눅들어 있고, 수학과 관련된 상황에서 불안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수학’ 글자만 봐도 긴장한 나머지 식은 땀이 나면서 머리가 아파오는 사람들도 있다.
수학 불안은 실제 골치를 아프게 한다
수학을 떠올렸을 때 골치가 아픈 것은 그저 기분일까? 2012년 미국의 베일럭(Beilock) 교수는 뇌 영상을 통해 수학 불안이 유발한 뇌 반응이 실제 몸이 아플 때와 유사함을 보여주었다.[3] 연구진은 먼저 수학과 관련된 여러 상황, 예를 들어 수학 교과서를 받을 때, 수학 수업을 받으러 갈 때, 문제로 가득찬 수학 책을 펼쳤을 때 등등과 같은 상황에서 참가자가 얼마나 불안해 하는지 측정했고, 이에 따라 참가자를 수학 불안이 높은 집단 14명과 낮은 집단 14명으로 나누었다.
» 수학 불안이 높은 집단에서 수학 문제를 풀기 전에 활성화한 뇌의 영역들. 출처/각주[3] 이어서 연구진은 참가자들이 수학 문제와 단어 문제를 푸는 동안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해 이들의 뇌를 촬영했다. 이때 수학 문제는 “(12 × 4) - 19 = 29”가 정답인지 오답인지 선택하는 방식이었고, 단어 문제는 철자가 뒤섞인 단어(예, yrestym)를 수정하면 실제 존재하는 단어(예, mystery)가 있는지 판단해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아울러 연구진은 문제에 앞서 미리 신호를 제시해 참가자가 이후에 풀 문제가 어떤 문제인지 미리 인식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연구진은 참가자가 문제를 풀 때뿐 아니라 문제를 풀기 전의 뇌 반응도 확인할 수 있었다.
실험 결과에서는 문제가 쉬울 때에는 문제 종류에 관계 없이 수학 불안이 높은 집단과 낮은 집단 사이에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 때 수학 불안이 높은 집단은 단어 문제에 비해 수학 문제를 더 못 푸는 모습을 보였다. 뇌 반응과 연관성을 살펴봤더니 수학 불안이 높은 집단에서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기 전에 후배측 섬엽(dorso-posterior insula; INSp)과 중앙부 대상피질(mid-cingulate cortex; MCC)이 활성화했다. 또한 수학 불안이 높을수록 이들 영역은 더욱 활성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수학 불안이 낮은 집단에서는 이러한 소견이 관찰되지 않았다.
활성화한 뇌 영역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섬엽은 뇌의 외측 틈새(lateral fissure)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피질 부분으로 뇌에서 내수용성 감각(內受容性感覺: interoception - 신체 내부에 있는 감각기에서 생성되는 감각)의 처리, 감정(예, 혐오) 관여, 신체 항상성(恒常性: homeostasis -신체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균형을 맞추는 능력) 유지 등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 가운데 통증 처리와 관련해 섬엽의 앞부분과 뒷부분이 담당하는 역할이 다른데 전측 섬엽은 통증과 관련된 정서(예, 불쾌감)와 평가를 담당하는 데 비해, 후측 섬엽은 통증의 위치나 정도를 파악하는 기능을 수행한다.[4] 한편 중앙부 대상피질의 일부는 후측 섬엽과 기능적으로, 해부학적으로 연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5]
정리하면, 수학 불안이 높은 집단이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할 상황에 놓이면 신체적 고통을 경험할 때처럼 두뇌가 활성화함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거절을 당해(예컨대, 이성 친구한테서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아) 가슴이 쓰릴 때에도 이 영역이 활성화하는 것을 고려하면,[6] 수학 불안이 높은 사람은 수학 문제를 풀기 전에 이를 예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아픈 불편을 겪는다. 수학과 관련해 괜히 골치가 아팠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수학 불안은 어릴 때부터 성적에 영향을 준다
수학 불안은 언제부터 두드러질까? 수학이 어려워지고 복잡해지는 시점일까? 실제 많은 학생들이 중학교 때까지는 문제를 푸는 시늉이라도 하지만, 고등학교 입학 뒤에 수학의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아예 수학을 포기하게 된다. 이들은 시험을 볼 때 객관식 문제는 연필을 굴려가며 번호를 고르고, 주관식 문제마저도 ‘황금의 수’ -1, 0, 1로 찍는 모습을 보인다. 고교 시절 동기들에 비해 수학을 썩 잘하지 못했던 나도 역시 의대 예과 시절에 강제적인(?) 교양과목이었던 ‘공업 수학’을 수강할 때 어려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수학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최근 보고된 한 연구에 따르면 초등학교 1학년의 아이들도 다양한 종류의 수학 불안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7] 아울러 수학 불안은 이들의 학습 능력 성취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린 학생들에서도 관찰되는 수학 불안과 관련해 2012년 미국의 메논(Menon) 교수는 수학으로 인해 발생한 부정적인 감정이 실제 학습 능력에 주는 영향을 뇌 영상을 통해 보여줬다.[8]
연구진은 46명의 초등학교 2, 3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수학 불안 정도에 따라 수학 불안이 높은(high math anxiety; HMA) 집단과 낮은(low math anxiety; LMA) 집단으로 나누었다. 이어서 이들이 수학 문제를 푸는 동안에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해 그들의 뇌를 촬영했다. 아울러 여러 검사를 통해 참가 학생들의 지능(IQ), 학업성취도, 작업기억(working memory; 일종의 단기 기억으로 컴퓨터의 램처럼 뇌가 어떤 일을 해결하고자 할 때 그 과정을 정리하고 처리할 수 있는 능력), 특성 불안(trait anxiety; 성격에서 비롯하는 불안), 수학 불안을 측정했다.
뇌 영상 결과에서 문제를 푸는 동안 두 집단의 뇌를 비교하면 수학 불안이 높은 집단에서 우측 편도체(right amygdala) 및 뒤쪽으로는 해마(hippocampus)의 앞부분까지 더 활성화하고 있었다. 반면에 수학 불안이 낮은 집단에서는 우측 배외측 전전두피질(dorsolatral prefrontal cortex, DLPFC), 좌측 두정엽내고랑(intraparietal sulcus; IPS) 등의 영역이 더 활성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수학 문제를 푸는 동안 수학 불안이 높은 집단과 낮은 집단에서 활성화한 뇌 영역들. 출처/각주[8], 변형
시험 결과에서는 수학 불안이 높은 집단이 낮은 집단보다 문제를 정확하게 풀지 못했다. 그러나 두 집단 사이에 지능, 학업 성취도, 작업 기억, 특성 불안의 차이는 없었다. 이는 수학 불안이 문제를 푸는 것과 연관된 작업 기억, 집중력을 감소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수학 불안이 높은 집단이 문제를 푸는 동안 작업 기억, 집중력과 연관된 배외측 전전두피질 등의 활성도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집단에서 수학적 인지와 연관된 후측 두정피질의 활성도가 감소한 것 역시 저조한 수학 과제 수행에 기여했다.
연구진이 추가적으로 분석한 뇌 영역 사이의 연결성을 살펴보면, 수학 불안이 낮은 집단에서는 불안으로 활성화한 편도체가 후측 두정피질과 잘 연결되어 있어 수리 과제를 잘 수행하도록 기능한다. 반면에 수학 불안이 높은 집단에서는 과도한 불안을 처리하기 위해 편도체가 부정적인 감정을 조절하는 뇌 영역과의 연결성이 증가해 있다. 이로 인해 수학 문제를 해결하는 뇌의 능력은 더 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
종합해보면 수학 불안은 초등학교 저학년과 같은 어린 학생에서도 관찰되는데 학생의 수학 불안이 높다면 뇌에서 이를 처리하는 동안 문제 해결 능력이 감소하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게 됨을 알 수 있다. 그 학생이 수학 불안이 낮은 학생과 동등한 능력(지능, 작업기억, 학업 성취도)를 갖고 있는데도 말이다.
여자가 남자보다 수학 불안 클까?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남자는 수학, 과학을 잘 하고, 여자는 문학, 예술을 잘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 우리나라에서도 여전히 고등학교 때 남학생들은 이과로, 여학생들은 문과로 진학을 많이 하는데 이러한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수학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공대에는 남초 현상이 나타나고, 공대의 현실을 자조적으로 혹은 희화적으로 비꼬는 여러 유머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 왔다.
앞에서 수학 불안이 높을수록 수학 수행 능력이 감소하는 것을 살펴봤는데, 그렇다면 수학 불안은 수학을 못하는 여학생에서 더 클까? 관련 연구를 살펴보면 남성보다 여성에서 수학 불안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많긴 하지만, 남성과 여성에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고하는 연구도 역시 많다. 단 남성에서 수학 불안이 높은 것으로 보고된 연구는 확연히 적다. 성미 급한 일부 남성 우월주의자는 혹시 ‘여성 = 높은 수학 불안 = 낮은 수학 실력 = 남성 우월’로 일련의 수학적 계산을 하며 쾌재를 부를지 모르지만 잠깐, 최근의 연구 결과를 하나 살펴보자.
2012년 영국의 슈츠(Szucs) 교수 연구진은 12-15세 남학생 268명과 여학생 165명(총 433명)을 대상으로 수학 불안과 수학 수행 능력 사이에 성별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는 연구를 시행했다.[9] 이 연구의 특징은 유사한 다른 연구에서 다루지 않았던 시험 불안(test anxiety)을 포함시킨 점이다. 연구 결과 남학생 집단에 비해 여학생 집단이 더 높은 수학 불안과 시험 불안을 갖고 있었다. 아울러 남학생, 여학생 집단 모두 수학 불안이 높을수록 수학 수행 능력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정작 두 집단 간에 수학 수행 능력 차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 남학생과 여학생 집단 사이에 수학 수행 능력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았던 반면에 수학 불안과 시험 불안은 여학생 집단에서 모두 높았다. 출처/각주[9]그런데 통계 분석시 시험 불안을 통제한 뒤에도 여학생 집단에서는 여전히 수학 불안이 높을수록 수학 수행 능력이 낮게 나타났다. 하지만 남학생 집단에서는 이러한 연관성이 훨씬 더 약하게 가까스로 나타났다. 이는 수학 문제를 풀 때 비슷하게 불안을 느끼지만 남학생 집단의 불안은 일반적인 시험에 대한 것이라면, 여학생 집단의 불안은 수학에 대한 특정한 것임을 시사한다. 바꿔 이야기하면 여학생 집단에서만 수학 불안이 수학 수행 능력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학 수행 능력에서는 남녀 차이가 없었던 것을 기억하는가? 여학생 집단이 높은 수학 불안을 보이지만 남학생 집단과 대등한 수학 수행 능력을 갖는 것을 뒤집어 생각하면, 실제 여학생 집단은 남학생 집단보다 더 높은 수학 수행 능력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즉 여학생 집단은 높은 수학적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수학 불안 때문에 이러한 능력이 상쇄되어 남학생 집단보다 수학 수행 능력이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여학생이 수학 점수 낮은 이유?
여성의 수학 잠재력이 높을 수 있다는 말을 우리 사회에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망설여질 수 있다. 예를 들면 등급제로 실시한 2008학년도 수능을 제외한 2005-2009년 대학 수학능력 시험 결과를 분석한 결과에서 남학생의 수리 점수는 93.64점으로 여학생(86.56점)에 비해 7점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10][11] 그러나 이는 아직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별 고정관념 및 수업 환경과 같은 환경적 요소가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 위 그래프의 노란색 막대는 수학 점수의 성 격차, 회색 막대는 읽기 점수의 성 격차를 나타내며, 아래 그래프의 막대는 국가별 성격차지수를 나타낸다. 여성의 독립성이 높을수록, 즉 남녀가 평등할수록 수학 점수의 성 격차가 감소하고 있다. 출처/각주[12] 2008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PISA) 자료를 이용한 연구를 살펴보자.[12] 연구진은 40개국 27만 6165명의 15세 학생들이 2003년 동일하게 치룬 수학과 읽기 시험 결과를 세계경제포럼이 2006년 발행한 <세계 성 격차 보고서>의 성격차 지수(Gender Gap Index; GGI)를 이용해 재분석을 시행했다. 그 결과 여학생의 수학 평균 점수는 남학생에 비해 10.5점이 낮았지만 이러한 차이는 남녀가 평등한 국가일수록 감소하고 있었다.
극과 극을 살펴보면 같은 유럽권 국가임에도 이슬람 문화권인 터키에서는 여학생의 점수가 남학생보다 22.6점 낮았지만, 남녀 평등도가 높은 아이슬란드에서는 반대로 여학생의 점수가 14.5점이나 높았다. 참고로 당시 연구에 사용된 우리나라의 성 격차 지수는 유감스럽게도 115개국 중 92위였다.[13] 이처럼 남녀간 수학 수행 능력의 차이는 생물학적 차이가 아닌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 있다. 2013년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성 격차 지수는 136개 국에서 111위를 차지했는데, 이런 사실이야말로 최근 우리 사회에서 과도하게 회자되는 국격 실추의 주범이지 않을까?
» 성별 고정관념을 수용하면 그림처럼 여학생이 읽기를, 남학생이 수학을 잘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출처/각주[14]
2010년 미국의 베일럭(Beilock) 교수의 연구 결과는 성별 고정관념과 같은 문화적 측면이 수학 성취도에 끼치는 영향을 잘 보여준다.[14] 연구진은 17명의 여교사를 대상으로 수학 불안을 측정했고, 초등학교 1, 2학년 학생 117명(남학생 52명, 여학생 65명)을 대상으로 학년 초와 학년 말에 수학 성취도와 성별 고정관념을 측정했다. 학생의 성별 고정관념은 학생들에게 수학과 읽기를 잘 하는 학생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학생을 그리도록 한 뒤 그림의 주인공의 성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묻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 수학 불안이 높은 여교사에게 1년간 수업을 받으며 성별 고정관념을 받아들인 여학생의 수학 성취도는 낮아진다. 출처/각주[14]연구 결과, 수학 불안이 높은 여교사와 1년을 보낸 학생들의 수학 성취도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낮게 나타났는데, 이는 오직 여학생에서만 관찰되었다. 그리고 이 연관성의 매개 요인으로 여학생들이 성별 고정관념을 수용하고 지지하는 것이 작용했다. 즉 여교사의 수학 불안이 높을 때, 정형화된 성적 역할을 더 분명하게 받아들인 여학생은 그렇지 않은 여학생에 비해 수학 성취도가 낮았고, 남학생들과 비교하면 더욱 낮게 나타났다. 반면 여교사의 수학 불안은 남학생들의 성별 고정관념이나 수학 성취도와는 연관성을 보이지 않았다.
초등학교 교사의 90% 이상이 여교사인 미국의 상황과 비교하면 조금 낫긴 하지만 2012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등학교에서 여교사의 비율은 76.2%에 이른다.[15] 초등학교 시기에 학생들은 동성 교사를 자신의 역할 모델로 동일화하기 때문에 여학생은 특히 수학에 대한 여교사의 부정적 태도와 불안에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많은 여교사가 균형 잡힌 시각으로 학생들을 대하겠지만, 우리 사회가 아직 가부장제, 남녀 차별의 잔재에서 자유롭지 못한 만큼 여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문화적 영향을 받으며 시나브로 수학과 멀어질 수 있다.
수학 불안 줄이는 방법 없을까?
» 왼쪽 그래프 : 압박이 덜한 예비 시험에서와는 달리 압박이 심해진 시험에서는 시험 보기 전 그저 조용히 기다린 집단의 수학 성적은 떨어진 반면, 표현적 글쓰기를 한 집단의 성적은 상승했다. 오른쪽 그래프 : 수학 불안과 관계 없는 내용의 글쓰기를 한 집단의 경우 표현적 글쓰기를 한 집단과는 달리 압박이 심해진 시험에서 성적이 떨어졌다. 출처/각주[17] 수학 불안이 높으면 수학 과제를 대할 때 긴장, 염려, 좌절, 공포를 경험하게 되고, 이로 인해 핵심적인 수학 개념 습득이 지연되고 수학 수행 능력이 감소해 학업 성취도가 떨어진다. 나아가 수학과 관계된 상황을 회피하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겪을 뿐 아니라 학업, 직업 선택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16] 앞서 살펴본 것처럼 수학 불안은 어린 나이부터 나타나므로 이를 될수록 일찍 찾아내어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해 보인다.
성적에 영향을 주는 수학 불안을 줄이는 한 방법으로 자신의 마음 속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일명 ‘표현적 글쓰기(expressive writing)’가 도움이 될 수 있다.[17]
» 검정색 막대가 수학 성적, 회색 막대가 언어 성적을 나타내는데, 불안을 재평가한 집단에서 수학 성적이 높게 나타났다. 언어 성적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는데, 이는 장기 기억을 간단하게 재생하는 언어 시험과 정보를 적극적으로 처리하는 집행 기능이 중요한 수학 시험 사이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출처/각주[18] 수학 시험을 앞두고 불안해지면 시험을 망칠까봐 스트레스가 올라간다. 이때 시험 전에 자신의 마음 속에 드는 부정적인 생각과 느낌을 써 보는 것을 통해 수학 불안을 통제할 수 있다. 혹시 내용에 관계없이 글 쓰는 행동 자체가 불안을 줄인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시험 전에 감정과 관련 없는 내용의 글쓰기를 한 경우에는 불안이 줄지 않았다.
이렇게 했는데도 수학 시험을 보기 전에 여전히 불안하다면 이를 재평가(reappraisal) 해보는 것은 어떨까? 대학원 입학자격 시험(GRE)을 보는 학생들에게 시험 전에 “불안 때문에 성적이 떨어지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최신 연구 결과가 있다. 오늘 시험을 보다가 불안해지면 이 사실을 상기하라”고 지도한 경우 성적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고한 연구가 있다.[18] 식은 땀이 나고, 심장이 빨리 뛰는 것과 같은 불안에 따른 신체적 변화를 시험에 불리한 ‘위협’이 아니라 이로운 ‘도전’으로 재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불안을 극복하는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다.
허우대만 멀쩡한 우리나라 수학
이달 3일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 2012’ 결과가 발표되었다.[19] 2000년부터 3년 주기로 시행되는 이 국제 평가는 매번 한 과목을 집중적으로 조사하는데 이번에는 2003년에 이어 두 번째로 수학이 그 대상이었다. 우리나라 15세 학생의 수학 성적은 평균 554점으로 조사 대상인 전체 65개 국 중 5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당당히 1위에 올랐다. 자랑스럽고 뿌듯한 결과다. 그러나 수학을 공부할 때 느끼는 흥미나 즐거움, 수학 공부의 필요성, 수학 문제에 대한 자신감, 자신의 수학 능력에 대한 믿음 등의 항목에서는 반대로 거의 꼴찌에 가까웠다.
뛰어난 성취도를 보이지만 수학을 싫어하는 이 모순적인 현실은 입시 과열이 빚어낸 슬픈 자화상일지 모른다. 이로 인해 정작 성인이 된 뒤에는 수학과 관련된 상황을 회피하고, 관심을 두지 않으며, 심지어는 머리 아프게 수학을 공부해봤자 실생활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주장도 하게 된다. 밖에서 뛰어놀 시간에 선행 학습을 하느라 즐겁지 않았고, 점수에 따라 인생이 결정되는 것 같아 불안했기에 수학을 공부하며 체득한 논리적, 합리적 사고와 같은 유익함은 까마득하게 잊게 되는 것이다.
수학은 앞으로도 학교에서, 일상생활에서, 계속 중요한 지위를 지닐 것이다. 하지만 수학 불안에 대한 적절한 탐색과 체계적인 접근 없이 무조건 수학의 중요성만을 강조하며 학생들을 윽박지르면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기초체력은 부실한 선수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 수학 불안을 둘러싼 과학적 논쟁과 사회적 논의를 통해 사람들이 수학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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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0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http://scienceon.hani.co.kr/?mid=media&category=90222&page=3&document_srl=14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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