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혜심의 '인삼의 세계사'
믿거나 말거나, 어렸을 때 코피가 많이 났었다. 이런 저런 검사도 받아보고, 약도 먹어보고, 코 속 혈관도 지져(?)보고 그랬지만 효과가 없었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세수를 하면 코피가 바로 나왔다. 늦잠 자고 싶은 날은 그래서 침대에서 나오자마자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피가 나면 콧구멍을 둘둘 만 휴지로 틀어막고 의기양양하게 나왔다. 누워도 되는 보증수표였으니까. 역시나 믿거나 말거나, 몸이 허해서 그럴 수 있다며 부모님을 종종 나를 한의원으로 데려갔다. 한의사 선생님은 진맥을 한 뒤 대부분 비슷한 말을 건넸다. 간의 열이 코로 이동해 코피가 난다는 것이었다. 보약 처방과 함께 한의사 선생님은 역시 비슷한 말을 덧붙였다. 열이 많은 내게 행여라도 인삼은 먹이면 안 된다는 것이였다. 나야 좋았다...
2020.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