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 ‘사람들 앞에만 서면 식은땀…’ 불안·공포 바로보기

2017. 2. 1. 11:27글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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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사회불안장애

 » 디트카(오른쪽)가 열렬히 원했던 선수(왼쪽)와 그의 관계는 한 스포츠 잡지에서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묘사되었다. 좋을 때나 나쁠 때나(for better or worse) 함께하는. 출처/Wikimedia commons000quotation3.jpg

미식축구 경기장 안에서는

위풍당당한 용사였지만,

경기장 밖에서 그 모습은 사뭇 달랐다.

위풍당당한 용사와

낯을 가려 사람을 피하는

소심한 괴짜의 모습은

어떻게 동시에 존재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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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미식축구 팀인 뉴올리언스 세인츠의 코치 마이크 디트카는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특단의 결정을 내렸다.[1] 평소에 눈여겨 보던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세인츠의 지명권을 다른 팀에 넘기겠다는 것이었다. 워싱턴 레드스킨스가 제안에 응했고, 디트카는 넘겨받은 다섯 번째 지명권으로 원하던 선수를 영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가는 컸다. 세인츠는 그해 드래프트의 모든 지명권과 다음해의 첫 번째, 세 번째 지명권까지 레드스킨스에 넘겨줘야 했다.


디트카가 간절히 원했던 선수는 리키 윌리엄스(Ricky Williams)였다. 그는 대학 시절 러닝백(running back; 미식축구에서 공을 잡고 달리면서 전진하는 포지션)으로 각종 기록을 갈아 치웠고, 가장 뛰어난 선수가 받는 ‘하이즈먼 트로피’를 거머쥔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프로 리그에서도 그의 기량은 빛났다. 데뷔 2년 차인 2000년부터 1000야드 러시(전진) 기록을 이뤄냈고, 마이애미 돌핀스로 이적한 2003년에는 무려 1853야드 러시 기록과 더불어 러시로만 터치다운 16개라는 기록을 이뤄냈다. 비결은 몸을 사리지 않는 근성, 뛰어난 운동신경, 그리고 어지간한 태클로도 쓰러지지 않는 건장한 체격에 있었다.


[ 리키 윌리엄스가 세인츠와 돌핀스에서 활약하던 모습을 담은 영상 모음.

  https://youtu.be/y0MTQnD_yWk ]


기장 안에서는 위풍당당한 용사였지만, 밖에서 윌리엄스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2] 기자와 인터뷰 할 때 어두운 색깔의 얼굴 가리개가 있는 헬멧을 쓴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질문에 답하곤 했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말을 걸까봐 온종일 집에 머물렀고, 어쩔 수 없이 상점에 가야 할 때는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뛰어다니면서 물건을 골랐다. 비행기 탈 때에는 혼자 앉아 창 밖을 보며 좌석에 푹 파묻혔고, 식사 자리에 초대 받으면 식탁에서의 대화를 피하기 위해 식사가 끝날 때까지 화장실에 머물렀다. 일상생활에서 그는 냉담하고 기이한 괴짜로 통했다.


힘들어하던 윌리엄스는 한 친구의 권유로 2001년 치료를 받으면서 안도할 수 있었다. 자신이 괴짜가 아닐 뿐 아니라 비슷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인터뷰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팀 동료들과 어울리며, 가족과 함께 외출하기 시작했다. 폐쇄적인 예전 모습이 사라지면서 그의 삶이 확 바뀌었는데, 대체 무엇이 오랫동안 그를 괴롭혔던 것일까? 위풍당당한 용사와 낯을 가리는 괴짜가 어떻게 동시에 존재했던 것일까? 답은 ‘사회불안장애(Social Anxiety Disorder)’에 있었다.



사람 앞에만 서면 두근두근, 콩닥콩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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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불안장애(사회공포증)는 이름 그대로 ‘사회 상황’에서 불안, 공포를 느끼는 질환이다.[3] 이 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은 사람들과 부딪히는 상황에 노출될 때 극심한 공포와 불안을 느끼고,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까봐 두려워하면서 사회 상황 자체를 회피하려고 한다. 임상 현장에서는 이런 공포, 불안, 회피가 6개월 이상 지속될 때 사회불안장애 진단이 내려진다.


‘사회 상황’이란 구체적으로, 대화를 하거나 낯선 사람을 만나는 대인 관계, 음식을 먹고 마시는 자리처럼 관찰받는 상황, 연설이나 발표 할 때처럼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거나 무엇인가를 수행하는 상황을 뜻한다. 이런 상황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타인과 마주칠 때마다 혹시 자신이 ‘불안한, 약한, 미친, 어리석은, 지루한’ 사람으로 비춰질까봐 노심초사하고, ‘얼굴이 붉어지고, 떨고, 땀을 흘리고, 말을 더듬는’ 모습을 보일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사회불안장애의 임상 양상을 보면서 “나도 혹시?”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소개팅 자리에서 얼어붙어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하고, 면접 자리에서 비오듯 식은 땀을 흘리다 엉뚱한 대답을 하고, 직장에서 발표할 때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준비한 내용을 떠올리지 못한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이 꽤 있기 때문이다. 나도 이런 성향을 지니고 있는데, 전공의 시절에 첫 증례 발표를 앞두고 불안한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선배의 권유대로 약물을 복용하고 단상에 올랐던 적도 있다.


00SAD2.jpg » 이해관계에 따라 정신질환을 자의적으로 규정하는 집단이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 크리스토퍼 레인 교수의 책 <만들어진 우울증>. 출처/한겨레출판 그러나 수줍음, 소심함, 낯가림, 내향성, 부끄러움과 같은 단어가 곧바로 사회불안장애를 뜻하지는 않는다. 낯선 사람을 만나거나 대중 앞에 서면 누구나 긴장하고 불편함을 느끼는데, 다만 그 정도의 차이가 개인마다 다를 뿐이다. 쉽게 수줍거나 낯을 가리는 성향 자체만으로는 병적이지 않고, 오히려 상황에 따라서는 장점이나 매력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장애라는 의학적 진단은 사회 상황에서 겪는 불안과 공포가 너무 심해 일상생활에 영향을 끼칠 때에만 가능하다.


회불안장애라는 병명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평범한 성격적 특성을 주요 정신질환으로 변모시켰다라는 주장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의 크리스토퍼 레인(Christopher Lane) 박사는 이익 창출을 위해 정신과 의사와 제약회사가 짜고서 ‘약을 팔기 전에 병을 팔았다’고 주장했다.[4] 1980년 이전에는 한 명도 없던 사회불안장애 환자가 불과 20년 뒤에 1000만 명 이상으로 증가했다고 추산되는 상황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여러 문헌과 임상 현장의 경험을 되돌아보면 사회 상황에서 촉발된 불안, 공포, 회피로 고통 받는 사람이 분명 존재한다. 진단 항목 A부터 J까지를 기계적 혹은 자의적으로 대입해 별 문제 없는 사람을 환자로 몰아가는 것도 문제지만,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오해 때문에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도움을 외면하는 것도 문제다. 개인의 삶에 대한 자세한 이해를 바탕으로 신중하게 사회불안장애 진단이 내려지고, 각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가 제공되는 만큼 일상의 삶을 방해하는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꼭 정신과를 찾기 바란다.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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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이거나 수줍은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해서 다 사회불안장애 환자는 아니다. 단지 연단에 서면 그다지 즐겁지 않고, 타인이 자신에게 집중하면 불편할 뿐이다. 설령 한두 번은 발표를 망치고 모임이 엉망이 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 사람은 사회 상황을 별탈 없이 잘 넘긴다. 나도 비록 첫 발표에서는 약물의 도움을 받았지만 몇 년 뒤에는 농담을 던지면서 발표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일부는 여러 노력을 기울여도 다른 사람 앞에 서면 속절없이 작아져 버린다. 이들의 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회불안장애의 핵심 개념 중 하나는 ‘사회 상황에 대한 공포’이다. 사회불안장애 환자는 다른 사람에게 비난을 받거나 거부 당하는 상황을 두려워하면서 불안을 느낀다. 자연스럽게 초창기 연구는 부정적인 자극을 환자 집단과 일반인 집단에게 가한 뒤 공포 반응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피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한 예로 2006년에 발표된 한 연구에서는 환자 10명과 일반인 10명에게 다양한 얼굴 표정을 보여주면서 이들의 뇌 반응을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비교했다.[5] 그 결과 환자 집단이 행복한 얼굴을 볼 때에 비해 분노, 공포, 혐오처럼 부정적인 얼굴 표정을 볼 때 우측 편도체(amygdale)가 더욱 활성화했다. 또한 활성화가 많이 나타날수록 증상도 더욱 심각하게 나타났다. 편도체는 감정의 중추 역할을 담당하므로, 이런 결과는 사회불안장애 환자가 부정적 단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불안해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00SAD3.jpg » 부정적인 얼굴 표정에 우측 편도체(왼쪽 그림)의 활성화가 일반인(HC)보다 사회불안장애 환자 집단(GSP)에서 두드러졌다(오른쪽 그림). 출처/각주[5],변형


회불안장애 환자는 특히 화난 표정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2004년 발표된 한 연구에서는 환자 15명과 일반인 15명을 대상으로 화난, 행복한, 중립인 얼굴 표정을 이용해 ‘점-탐지 과제(dot-probe task)’를 수행하게 했다.[6] 이 검사는 얼굴 표정 두 개가 동시에 화면에 나타난 직후, 위나 아래를 가리키는 화살표가 화면 한 쪽에 나타날 때 참가자가 화살표의 방향을 맞추게 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화살표에 빠르게 반응할수록 참가자가 화살표 직전에 나타난 얼굴 표정을 더 경계한다고 과제의 해석이 이뤄진다.


연구 결과에서, 얼굴 표정이 짧게(500 밀리세컨드) 나타날 때 환자 집단은 행복하거나 중립인 얼굴에 비해 화난 얼굴에 더 빠르게 반응했다. 사회불안장애 환자가 다른 표정에 비해 화난 표정을 더 경계하는 것은 위협이 되는 감정적인 자극을 빨리 찾아내 부딪히지 않으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환자 집단의 신속한 반응은 ‘경계-회피 가설(vigilance-avoidance hypothesis)’을 따르는 것인데, 실제 얼굴 표정이 조금 더 길게(1250 밀리세컨드) 나타날 때에는 이런 양상이 관찰되지 않았다.


이처럼 사회불안장애 환자는 “민감한 정서 감지기”를 갖고 있다.[7] 다시 말해 일반인이 알아채지 못하는 신호를 감지하는 민감한 안테나가 있어서 행동의 뉘앙스를 빨리 잘 파악한다. 말을 더듬는 증상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영화 <킹스 스피치>의 주인공 조지 7세를 떠올려 보자. 그는 더듬거리며 연설할 때 대중의 얼굴에서 거부와 비난의 시선을 빠르게 느꼈고, 두려움을 자아낸 표정을 쉽게 떨쳐내지 못하면서 연설에 집중하지 못 했고, 그래서 결국 자리를 떠나는 방법으로 무서운 상황에서 벗어났다.


[영화 앞 부분에서 조지 7세가 연설 중 말을 더듬는 장면.

 https://youtu.be/CaYp6hNsD4c ]


조지 7세가 겪었던 상황을 정리하면, 공포스러운 자극에 주의(집중)가 더 쏠렸고, 여기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으며, 회피를 통해 다른 상황으로 주의를 돌렸다. 이런 특징을 학술적으로 표현하면 공포에 대한 주의 편향(attentioanl bias)이 사회불안장애의 기저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8] 다시 말해 사회불안장애 환자는 사람들 앞에 서는 두려움으로 인해 위협을 가하는 자극에 선택적으로 주의를 기울여 예민하게 반응하고, 이를 다시 부정적인 방식으로 해석해 불안이 가중되고, 결국 사회 상황 자체를 회피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



안성맞춤 치료 방법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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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 치료-


2009년 미국 프로야구 아메리칸 리그에서 사이영 상(전설적인 투수 사이 영을 기려 해마다 최고의 활약을 보인 투수에게 주는 상)은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잭 그레인키(Zack Greinke)에게 돌아갔다. 16승 8패, 229.1이닝 소화, 방어율 2.16, 탈삼진 242개, 피안타율 0.230, 이닝당 출루 허용율 1.07, 완투 6회, 완봉 3회, 조정 방어율 205라는 탁월한 성적을 거뒀기에 그레인키가 경쟁자들을 큰 표 차이로 따돌리며 수상자로 선정된 것은 당연해 보였다.


00SAD6.jpg » 사이영 상을 받은 2009년에 그레인키가 역투하는 장면. 그레인키는 2013-2014년 엘에이 다저스에서 류현진과 한솥밥을 먹으면서 활약해 한국 팬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출처/Wikimedia Commons

라운 점은 불과 3년 전에 그레인키가 야구를 그만두려 했다는 사실이다.[9] 2004년에 성공적으로 데뷔한 그는 다음 해 지독한 2년차 징크스를 겪으면서 정신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원하지 않는데도 공을 던지면서 자신을 옥죄고 있다는 생각에 2006년 시즌을 준비하던 스프링 캠프에서 팀을 떠났다. 원인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에게 있던 불안 때문이었다. 그는 치료자를 만난 뒤 사회불안장애와 우울증을 앓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자신을 괴롭히던 마음의 고통을 없애는 방법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바로 약물 치료였다.


“약물은 최고였어요(The medicine is the greatest thing ever).” 치료를 받으면서 그레인키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고, 그해 시즌 막바지에 다시 메이저 리그로 돌아올 수 있었다. 2007년에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활약했고, 2008년에는 다시 선발투수로 복귀해 13승 10패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다음 해 그레인키는 투수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레인키가 복용한 약물은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 SSRI) 중 하나인 졸로프트(Zoloft)였다. 정신과에서 이 계열의 약물은 사회불안장애 외에도 주요우울장애, 범불안장애, 강박장애, 공황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월경전불쾌감장애, 신경성 폭식증 등의 치료에 사용된다.[10] 앞서 소개했던 리키 윌리엄스도 약물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가 복용했던 팍실(Paxil)도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였다.


약물로 사회불안장애를 치료하는 것은 효과적이지만 불가피하게 따라오는 문제점도 있다. 바로 약물의 부작용이다(물론 실제 발생률은 높지 않으며, 설령 나타나도 약물 종류나 용량의 변경을 통해 최소화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그레인키 역시 약물의 효과에 만족하면서도 약간 처지는 느낌 때문에 불만을 토로했다. 또한 기대와 달리 상당수의 환자에서는 약물이 만족할 만한 치료 효과를 가져오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11]


-인지행동치료-

약물의 부작용에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혹은 약물 치료 자체에 잘 반응하지 않는 사회불안장애 환자는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reatment; CBT)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인지행동치료는 불안을 유발하는 잘못된 인지(생각)를 찾아내고 분석하여 교정하는 인지치료와, 문제가 되는 행동 자체를 목표로 해서 교정을 통해 공포심을 수정하는 행동치료로 이뤄진다. 쉽게 표현하면 잘못된 인지를 바꾸고 행동의 변화를 꾀한다는 개념이다.


물론 인지행동치료에도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약물 치료에 비해 더 많은 비용이 들고, 환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치료에 투자해야 한다. 또한 복잡한 심리적 문제를 갖고 있거나 학습 능력에 제한이 있는 사람에게는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 아울러 약물 치료처럼 일부 사회불안장애 환자는 인지행동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곤 한다.[12]


연스럽게 치료자는 고민에 빠지곤 한다. 사회불안장애와 맞서 싸우려는 환자에게 어떤 무기를 건네는 것이 최선일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혹시 미리 반응을 예측해 더 효과적인 치료 방법을 선택해서 환자가 겪을 수 있는 불편함이나 시행착오를 줄일 수는 없을까? 최근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뇌영상학은 임상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이런 질문에도 답을 줄 수 있다.


미국의 존 가브리엘리(John Gabrieli) 교수의 2013년 연구 결과를 살펴보자.[13] 연구진은 사회불안장애 환자 36명을  대상으로 한 척도(Liebowitz Social Anxiety Scale; LSAS)를 이용해 증상이 어느 정도인지 살폈고, 화난 얼굴, 중립인 얼굴, 그리고 여러 장면을 보여주면서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뇌 반응을 살폈다. 이어서 12주 과정의 인지행동치료가 진행되었고, 치료가 끝난 뒤 다시 한 번 척도를 통해 증상이 변한 정도를 확인했다.


00SAD7.jpg » 실험참가자가 자기공명영상 기계에 누워 있는 동안에 모니터를 통해 제시되는 시각 과제들. 출처/각주,[13] 변형


영상 자료와 증상의 변화 정도를 살펴보니, 인지행동치료 전에 화난 얼굴에 뇌의 배측과 복측 후두측두피질(dorsal/ventral occipitotemporal cortex)이 강한 반응을 보인 환자에서 증상이 더 호전되었다. 즉 특정 뇌 영역의 활성화와 긍정적인 치료 반응 사이의 관련성이 확인된 것이다. 증상이 나쁠수록 치료에 잘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14] 연구에서 치료 전 사회불안장애 증상의 심각도는 증상이 호전된 정도를 약 12퍼센트로 설명했다. 그러나 뇌영상 자료까지 같이 고려하면 약 40퍼센트까지 설명이 가능했다.


이런 결과는 종양 내과에서 특정 표지자(marker)를 혈액 검사에서 확인해 항암치료가 어느 정도로 효과가 있을지 예측하는 것과 유사한 접근이 정신과 영역에서도 가능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혹자는 “애걔, 겨우 40퍼센트?”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또한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을 이용하는 경우 일련의 사진을 보면서 지시에 따를 수 있는 사람만 촬영이 가능한 단점이 있다. 가브리엘리 교수는 인지행동치료의 치료반응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시각 과제를 수행하기 어려운 노인이나 아이도 촬영할 수 있는 후속연구 결과를 2016년 발표했다.[15]


00SAD8.jpg » 여러 뇌영상 결과를 함께 사용하면 인지행동치료로 사회불안장애를 치료할 때의 치료반응을 가장 잘 예측할 수 있다. 출처/각주[15] 연구진은 리보위츠 사회불안 척도(LSAS)로 참가자의 증상이 어느 정도인지 측정한 뒤에 이들의 뇌를 촬영했다. 앞선 연구 때와 달리 이번에 환자 38명은 기계 안에서 약 15분 동안 편히 누워 있기만 했다. 그 사이 연구진은 물 분자의 확산 특성을 통해 뇌 구조를 확인하고(확산강조 자기공명영상(diffusion-weighted MRI; dMRI), 뇌의 여러 영역이 어떻게 기능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확인했다(휴지상태 기능적 자기공명영상(resting-state functional MRI; rsfMRI).


이번에도 앞선 연구 결과처럼 증상의 심각도는 전체 치료 반응 중 약 12퍼센트를 예측했다. 뇌영상 자료를 같이 고려하면 증상이 어느 정도로 좋아질지 예측하는 정도가 확산강조 자기공명영상(dMRI)에서 28퍼센트, 휴지상태 기능적 자기공명영상(rsfMRI)에서 50퍼센트로 상승했다. 두 영상 자료를 함께 사용할 경우에는 60퍼센트로 치료반응을 예측했다. 이런 결과를 통해 연구진은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50퍼센트 이상 증상이 호전되는 환자를 81퍼센트의 정확도로 맞출 수 있었다. 향후 뇌영상을 통해 사회불안장애 환자에게 더 효과적인 치료법을 권하는 풍경도 낯설지 않으리라 기대된다.


주변의 시선 대신 내가 행복해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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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수련 받던 시절, 나는 사회불안장애에 관심이 많았다.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때 떨고 다른 과 의사에게 말을 건넬 때 긴장하던 나였기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쏠렸던 것이다. 당시 짧은 생각에는 나 같은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사회불안장애의 평생 유병률은 0.3퍼센트이다. 서구 사회의 7-13퍼센트에 비하면 매우 낮은 유병률이다.[16]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많은 학자들은 한국과 같은 동양문화권의 집단주의와 서구사회의 개인주의에서 그 답을 찾는다.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집단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기고,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기에 사회 불안이 그다지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다. 반면 자신이 중심이고, 돋보이는 것이 중요한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사회 불안이 좀 더 주요한 문제로 다뤄지게 된다.


규범과 규칙이 발달한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사회 상황에서 나타나는 불안, 공포, 회피를 증상으로 받아들이는 기준 역시 개인의 주관적 판단보다는 사회의 암묵적 합의에 따르기 쉽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도 사회불안장애가 혹 저인식, 저평가, 저진단 되는 것은 아닐까? 약 30년 전에 리보위츠 교수가 사회불안장애를 방치된 불안장애로 부르며 질환의 진단과 치료가 한탄스러울 정도로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는데,[17]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유효한 주장이지 않을까? 개인의 행복을 집단에서 보장하지는 않으므로 사회 불안으로 고통 받고 있다면 주변의 시선을 신경쓰지 말고 꼭 정신과에서 도움받기 바란다. 새해에는 행복해야지 않겠는가?


 

[주]



[1] Thaler, R.H., Misbehaving: The Making of Behavioural Economics (번역서,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2015: Penguin Books Limited.

[2] Hollander, E. and N. Bakalar, Coping with Social Anxiety: The Definitive Guide to Effective Treatment Options. 2005: Henry Holt and Company.

[3] Association, A.P.,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5®). 2013: American Psychiatric Publishing.

[4] Lane, C., Shyness: How Normal Behavior Became a Sickness (번역서, <만들어진 우울증>). 2008: Yale University Press.

[5] Phan, K.L., et al., Association between amygdala hyperactivity to harsh faces and severity of social anxiety in generalized social phobia. Biol Psychiatry, 2006. 59(5): p. 424-9.

[6] Mogg, K., P. Philippot, and B.P. Bradley, Selective attention to angry faces in clinical social phobia. J Abnorm Psychol, 2004. 113(1): p. 160-5.

[7] Stossel, S., My Age of Anxiety: Fear, Hope, Dread, and the Search for Peace of Mind (번역서,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2014: Knopf Doubleday Publishing Group.

[8] Cisler, J.M. and E.H. Koster, Mechanisms of attentional biases towards threat in anxiety disorders: An integrative review. Clin Psychol Rev, 2010. 30(2): p. 203-16.

[9] http://m.mlb.com/news/article/41701704/medication-helps-greinke-to-perform-at-high-level/

[10] Sadock, B.J., V.A. Sadock, and P. Ruiz, Kaplan & Sadock‘s Synopsis of Psychiatry: Behavioral Sciences/Clinical Psychiatry. 2014: Lippincott Williams & Wilkins.

[11] Blanco, C., et al., Pharmacological treatment of social anxiety disorder: a meta-analysis. Depress Anxiety, 2003. 18(1): p. 29-40.

[12] Acarturk, C., et al., Psychological treatment of social anxiety disorder: a meta-analysis. Psychol Med, 2009. 39(2): p. 241-54.

[13] Doehrmann, O., et al., Predicting treatment response in social anxiety disorder from 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JAMA Psychiatry, 2013. 70(1): p. 87-97.

[14] Scholing, A. and P.M. Emmelkamp, Prediction of treatment outcome in social phobia: a cross-validation. Behav Res Ther, 1999. 37(7):p. 659-70.

[15] Whitfield-Gabrieli, S., et al., Brain connectomics predict response to treatment in social anxiety disorder. Mol Psychiatry, 2016. 21(5): p. 680-5.

[16] 오강섭·임세원, 사회공포증의 아형 분류와 가해형 사회공포증의 임상적 의의. J Korean Neuropsychiatr Assoc, 2008. 47(3): p. 225-9.

[17] Liebowitz, M.R., et al., Social phobia. Review of a neglected anxiety disorder. Arch Gen Psychiatry, 1985. 42(7): p. 729-36.

2017.1.26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http://scienceon.hani.co.kr/483534